교육의 정도(正道)
살다보면 다양한 부류의 인간 군상과 접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처럼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우스개로 죽어서도 집단으로 모이는 것이 자연스런 관례이다. 더구나 군인은 죽어서도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누워있다. 이렇듯 사람들 간의 관계는 종횡으로 연결되어 꾸준히 영향을 주고받으며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나름대로 무리지어 교유를 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4~5학년 정도가 아닌 듯 싶다. 물론 도회지 아이들과는 다르게 시골에서 자란 우리 또래는 아무래도 동네 아이들 끼리 결속이 되어 등, 하교를 하던 기억이 난다. 골목대장 격인 고학년 아이가 인솔하여 노래하고, 소리치며 뛰고 달리며 장난을 치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때에 따라서는 인근 산에 들어가 새알을 줍거나, 보리피리나 풀피리를 불고, 개울가에 들어가 수영을 하거나 아카시아나 감꽃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하였다.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한 형들을 따라 공동 정범의 죄를 짓기도 하고, 밉보이면 놀이에서 제외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가을이 익어 가면 메뚜기를 잡고 흰 눈이 펑펑 내리면 마을 청년을 좇아 꿩을 잡던 기억도 선명하다. 이렇게 살다보니 아이들 싸움조차 동네 간 대결이다. 사실 무리지어 다니게 되니 충돌이 쉽진 않지만 어쩌다 마찰이 일어나면 순간에 동네 싸움 전체로 번진다. 나아가 아이들 싸움이 해묵은 이웃 동네 사이의 분쟁으로 번진다.
어느 해 여름인가는 미친개를 잡는다고 동네 청년들이 몰려다니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커다란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는 마을 행사에 따라가 어린애 크기의 잉어를 잡는 신기한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아예 이런 소소한 재미가 없다. 한 마디로 자연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함께 숨 쉬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도시에서 자라고 자란 아이들은 아예 자연에 대한 이해와 두루 함께 살아간다는 개념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시골아이들은 초등학교 동창회를 떠들썩하게 잘 하고 있는데 도시 아이들에겐 그런 모임이 생소하다. 그런 자랑을 하는 시골 친구가 부럽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장점은 무엇인가? 비교적 시골에 비해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다. 보고 듣는 것이 많다보니 나이에 비해 상식이 풍부하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밀접한 접촉을 통해 미래에 대한 자신의 꿈을 보다 손쉽게 구상하게 된다. 특히, 문화 시설에 대한 접촉의 기회가 많아 상대적으로 상식이 풍부하고 식견이 넓은 장점이 있다.
더구나 서울은 산자수명한 입지조건이 좋기도 하지만 쉽게 문화 유적을 대할 수 있어 역사의 지식을 함양함에 있어서도 아주 큰 매력이 있다. 누군가 말하길 서울 시민도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하였다. 북한산을 올라간 사람과 가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데 후자는 서울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 시내와 한강수를 바라보는 그 기분을 느껴야 시민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복잡한 시내도처에 있는 유흥시설과 정신 건강을 해치는 무질서한 교통질서의 문란과 온갖 쓰레기의 범람과 부랑자의 방랑,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각양각색의 사고 소식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드는 사회 병폐다.
여하튼 도시의 장점은 교육의 질적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학교외의 학원 시설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학원에 의존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대충 시간을 때우며 잠을 자다가 일과 후에 학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패턴이 일반적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두가 반성하고 이를 개선하기에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무조건 일방적으로 학교의 선생님만을 비난할 여지가 없다. 제 자식 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면서 무조건 학교만 탓 수도 없는 일이다.
젊은 층에서 아이를 적게 가지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교육비는 주로 사교육비 인데 어지간한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겨우 시늉에 불과하고 양가의 지원이 없이는 실질적인 교육비의 감당이 어렵다. 이런 지경이니 부의 편중에 따라 교육의 혜택도 다르니 결국 대를 이어 새로운 상류계층을 형성하는 사회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많은 수의 대학생이 다니던 학과를 그만두고 너도 나도 의과대학이나 약학 대학 등으로 전과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 국가 공교육의 붕괴를 의미한다. 각 분야에서 숨은 인재들이 노력해야 국가나 사회가 발전하는 것인데 돈벌이 위주로 직업을 선택한다면 이는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좋지 않은 징조이다.
과거에 진정한 수재는 물리학 등의 순수과학이나 법학 혹은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다른 분야에도 골고루 진출하여 그나마 학문적인 균형을 이루며 이 사회의 다양성에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는 이와는 반대이다. 무조건 돈벌이 위주의 수단만을 강구하다보니 무조건 의사가 되겠다고 난리 속이다. 사실 지금도 넘치는 의사로 본 전문분야는 접어두고 성형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앞으로 그 폐해는 고스란히 전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더구나 한 때는 유행하던 한의사들이 외면을 받고 있으니 사회의 풍조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한 실정이다. 하기는 같은 의사이면서도 힘들고 고난도의 집도를 요구하는 분야는 외면을 받고 있다하니 도대체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 매우 답답한 실정이다.
듣기로 최근 초등학교에 의사반이 운영된다는 소식에 경악을 하였다. 세상이 말세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아 충격이 컸다. 암기위주의 교육은 창의성이 결여되어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의사는 기능인에 불과하다. 그렇게 우수한 사람들이 필요한 분야도 아니란 생각이다. 어쨌든 일부 특권층만 잘 살아 보겠다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되든지 팽개치는 풍토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그야말로 이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생각이다.
오래전 어느 사람으로 부터 강남 지역에 사는 젊은 엄마들의 꿈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최신 정보를 교환하여 잘 가르치는 유치원과 학원을 보낸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 대치동 쪽으로 이사하여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원 지도를 받아 의대 진학을 시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부부 의사를 만들어 결혼을 시키고 기존의 병원을 물려주어 대를 이어 편하게 돈을 벌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할 지언 정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당수의 인재들이 각 방면에 고르게 진출하여 국가 의 번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대책이 절실하다.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하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후손의 미래는 어둡다. 결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형태의 부작용을 과감하게 혁신하는 일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도시나 시골지역의 어디에서 자라나도 충분한 역량을 갖추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희망의 미래를 노래하게 만들어야 나가야한다. 말은 쉬어도 해결책은 어려우니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난제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2023.2.24.작성/3.7.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