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회(蘭菊會)
임두환
봄비가 내리더니 온갖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엊그제만 해도 꽃샘추위로 몸살을 앓았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봄기운이 완연하다.
산수유 꽃과 매화가 물러서기도 전에 벚꽃 목련꽃 철쭉꽃
라일락꽃이 함께 어우러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은 난국회(蘭菊會)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난국회는 고창(高敞)에서 근무하면서 뜻을 같이했던 기관장들끼리
2001년도에 만들어졌다.
이호종 군수님을 비롯하여 경찰서장 이용준, 산림조합장 이성진,
우체국장 유태길, 농산물검사소장 박승희, KT지점장 유점동, 수협장
김요병, 담배인삼공사지점장 임두환, 지적공사지사장 이민태, 삼양사지점장
성영제, 대대장 엄주훈, 사업가 정낙진으로 모두 12명이다.
이 모임의 명칭인 란(蘭)은 봄을 상징하고 국(菊)은 가을을
상징하고 있어서, 우리는 매년 봄가을에 모임을 갖는다.
난국회가 발족한지 16년째인데도 날이 갈수록 정이 두터우니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2000년 12월에 담배인삼공사 고창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관사를 리모델링(Remodeling) 하는 동안, 전주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겨울철이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집을 나설 때는 우중충한 날씨였는데도 정읍을 거쳐 고창에 들어서면
눈이 수북하게 쌓여 딴 세상에 온 듯했다.
담배를 팔아야 먹고사는 우리 회사로서는 담배차량이
움직일 수 없으니 낭패였다.
영업실적도 문제였지만 책임자인 나로서는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숯덩이처럼 타들어 가는데, 판매인들로부터
항의는 왜 그렇게 빗발치던지…….
고창지역은 눈이 한 번 내렸다하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수북하게 쌓인 눈은 치워도 끝이 없었다.
그래서 고창에서는 겨울만큼은 고창이 아니라 ‘눈창’이라고 부른다.
고창은 인심이 온후하고 문화유산이 많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바다와 산과 들녘이 함께 어우러져 살기 좋은 곳이 바로 고창이다.
난국회는 고창에 터를 두고 있어서 웬만하면 고창지역에서 모임을 갖는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고창으로 가는 길에 정읍천변 벚꽃터널을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진해군항제 광양매화축제 구례산수유 꽃 축제를
다녀왔다고 자랑이지만, 나는 아직 내 고장 진안(鎭安) 마이산벚꽃축제만
다녀왔을 뿐, 전주 시내를 벗어난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너무 한 듯싶다. 정읍천변 벚꽃터널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소 중 한 곳이다.
천변에서 내장산입구까지 40여 년생 1,800여 그루가 16Km나 되는
벚꽃 길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푸른 물빛과 샛노란 개나리와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터널은 나를 무아지경에
이르게 했다. 전주에서 왔다는 어느 상춘객은,
“정말, 여기만한 곳이 없네요. 멀리까지 벚꽃놀이 갈 것 없어요.
너무 황홀하네요.”
라며, 탄성을 자아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선 하얀 벚꽃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수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내 앞을 훨훨 날고 있었다.
이번 모임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겉으로는 웃음꽃이 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흘려야했다.
난국회를 15년간이나 이끌었던 이호종 회장께서 향년 86세로 2014년 10월1일
별세했기 때문이다.
이호종 회장은 나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고창군수를 역임하던 시절, 내 고장 담배 피우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자립도가 빈약하여 지방세를
담배소비세로 충당해야 했는데, 외산 담배회사에서는 금품과 물품공세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달려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창
칼과 활로 대항해야 했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난국회원들은 의병이었고 이호종 군수는 의병장이었다.
햇병아리였던 나로서는 천군만마를 얻게 되어, 고창지점관내
외산 담배 점유율 0%를 유지하는 공을 세웠다.
고창은 선운사와 더불어 고인돌군(群)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보존된 성곽 모양성이 있고,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의 고택과 인촌 김성수 생가, 서정주의 미당시문학관이 있다.
고창하면 고창수박 복분자 주꾸미 풍천장어기 있고, 여름이면
구시포와 동호해수욕장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고창은 내가 3년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했던 곳이어서,
나는 고창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난국회는 백전노장들의 모임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고창지역
발전에 공을 세웠지만, 퇴직하고서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
오래 만나다 보니 우리의 우정은 더 깊어졌다. 문화유산해설사로, 시 수필
화가로서, 전문경영인과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을 과시하며 만나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내가 난국회의 모임을 기다리는 이유는 또 따로 있다.
다름 아니라 먹는 재미 때문이다.
고창의 풍천장어구이에 복분자를 한 잔 걸치면 셋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고, 구시포 암주꾸미는 쫄깃쫄깃하여 한마디로 죽여준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무르익어간다고 한다.
저 넓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배 밑에 있는
바닥짐 때문이다.
술이 오랜 동안 발효되어야 제 맛을 내듯이 절친한 친구가 필요하다.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없다면 돈을 주고라도 사귀어야 하고,
그래도 없다면 어린 시절부터 한 명 두 명 더듬어 볼 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가 중요하다.
기쁠 때나 외로울 때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겠다.
나 역시 제2인생의 텃밭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어느 모임에서나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윤활유가 되어야겠다.
첫댓글 좋은 수필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