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 하 철
지하철 1호선종착역인 인천역이 서서히 다가왔다. 지하철 실내가 갑자기 소란스럽고 번잡했다. 승객들은 하차하기 좋은 승강장으로 가기위해 모두 앞쪽 문으로 일어나 이동하고 있었다. 어떤 승객은 졸다가 깜짝 놀라 문으로 뛰쳐나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휴대폰 통화중에 가방을 깜박 선반에 놓고 내려, 부리나케 다시 가방을 챙겨나가는 회사원, 어떤 아줌마는 선잠에 잠투정 부리는 아이의 허리 맨살이 벗겨지도록 밑으로 처진 채 안고 나가는 모습, 지하철문이 닫히려는 순간, 짐 보따리를 문틈 사이에 끼워 넣어 지하철 자동문이 다시 열리게 하고 잽싸게 빠져나가는 아줌마의 모습등도 보였다.
역무원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졸고 있는 승객들을 깨워 종점이라고 하차 시키고 있었다.
한식어머니도 처음 온 곳이라 역무원이 종점이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어떨 결에 사람들에 떠밀려 내렸다. 도대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지하철 승강장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한식어머니는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몰랐다. 단지 아들집으로 간다고 집을 나선 것만 기억났다.
“할머니! 비켜요 지하철 들어와요”
노인은 역무원의 호각소리와 신호봉으로 미는 바람에 한 발짝 노란선 뒤로 물러났다.
“여기가 어디요?”
“인천이예요”
“인천?”
“할머닌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아들집에 가야하는데”
“거기가 어딘데요?”
“.......”
역무원은 한식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려 하였지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노인을 모시고 역무원 사무실로 모셔갔다.
“여기 할머니 한분이 승강장에서 서성거리셔서 모셔왔어!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 확인해서 집을 찾아 드리도록 해요”
나이가 든 역무원이 모자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동료에게 말을 했다.
“혹시, 할머니를 일부러 이곳에다 버린 것 아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젊은 역무원이 힐끔 처다 보며 말을 던졌다.
“에잇! 이 사람아 버리긴 뭘 버려, 할머니가 뭐? 물건이야!”
“세상이 하도 험해서”
“그래도 그렇지! 할소리가 따로 있지.”
“아냐! 어제도 치매 걸리신 할머니 한 분이 이곳에 버려져, 경찰서에 인계했다고!”
“그래?”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일이 많아.......”
“설마하니 부모님을......?”
“그럼 혹시, 이 할머니도?”
“버려진 할머니 특징은 치매가 걸렸거나, 정신이 없으시고 모든 연락이나 신원을 확인 할 만 한 것은 절대로 몸에 지니지 않는 거야!”
“그래?”
“설사 연락처를 알고 있거나 정신이 있으셔도 절대로 말을 않는 다는 거야.”
“왜, 그러시지?”
“자식들이 당신 모시는것이 고생스럽다고 그런다나?”
“참 안타까운 일이네!”
“유일하게 딸과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할머니가 입을 봉하는 거지.”
“그래?”
“그런 사실을 자식들이 알기나 하나?”
“글쎄!”
“설사 자식들이 연락이 닿아도 그런 할머닌 모른다고 싹 잡아떼기 일쑤야.”
“허참!”
“이 할머니한테 뭐가 있나? 자세히 보아야겠는데........”
“할머니 주머니에 뭐가 있나? 보라구”
“할머니!”
키가 작은 역무원이 다정히 노인을 불렀다.
“왜? 불러 이놈아!”
역무원은 노인의 입에서 대답대신 욕이 튀어나오자, 이맛살을 찡그렸다.
“할머니 어디서 왔어요?”
“뭐라고?”
“집, 집이 어디냐고?”
“우리 집에서 왔지!”
“집이 어딘데?”
“서울대핵교”
“서울대?”
역무원은 한식어머니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할머니 역시 한식식구들 외에는 다른 사람 말은 노인의 귀에 익숙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할머니 몸을 뒤져봐 혹시! 연락처가 있나?”
“노인 속주머니나, 팔소매, 저고리 안을 보라고!”
“할머니 어디 봅시다.”
“이런? 육시랄 놈 있나! 어디를 만져?
노인은 저고리를 만지는 역무원을 뿌리쳤다.
“아! 여기 뭔가 목에 걸려 있네요.”
“거 보라고 버려진 할머니가 아니잖아!”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요.”
“그래? 빨리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역무원들은 노인의 목에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인식표를 보고 자기 일처럼 모두들 좋아했다. 역무원 한사람이 전화를 돌렸다.
“여보세요!”
“혹시 이금례 할머니 알고 계십니까?”
“네, 저의 어머님이신데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발신자 표시가 안 된 낮선 전화가 걸려왔다.
“아, 여기는 인천지하철역인데 할머니가 이곳 지하철종점인 인천역에서 길을 잃고 서성거려 저희들이 사무실에 보호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이 되니 다행입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신림동에서 인천까지 갔죠?”
“글쎄!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할머님이 귀도 어두우신지 말씀을 못 알아들으세요.”
“네! 귀도 어두우시고 연세도 아흔이 넘으셨어요.”
“아 그러시군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모셔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전화 해주신 것도 고마운데, 말씀만 들어도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한식어머니는 외출을 하면 작년과는 달리 항상 길을 잃고 헤매시는 일이 다 반사였다. 그래서 한식은 어머니가 외출을 해도 위치를 항상 알 수 있게 노인용 핸드폰을 구입해 목에 걸어 드렸다. 한식이 사무실에서 핸드폰으로 친구 찾기를 하면, 어머니 계신 곳의 위치는 대강은 파악 할 수 있었으나 목이 아프다고 핸드폰을 집에다 놓고 다니셨다.
“어머니! 외출할 땐 핸드폰은 꼭 가지고 다니세요.”
“뭔, 소린지 알 수도 없는데 뭣 하러 가지고 다녀?”
“어머님이 혹, 길을 잃어버리시면 우리가 이 핸드폰으로 찾을 수 있어요.”
“나 길눈이 밝아, 그런 것 목에 걸면 고개가 아파!”
“어머니 전번에도 길을 잃으셨으면서....”
“그때는 버스가 이상한데 내려줘서 그랬지.”
한식은 다시 위치 추적기를 가입하여 어머니한테 걸어 드렸다. 며칠간 외출한 곳과 어머니위치를 파악 할 수가 있어 안심은 할 수 있었지만, 노인은 귀찮다고 집에다 벗어놓고 다녔고, 한식아내가 목에다 걸어드리면 소리가 난다고 스위치를 꺼버렸다.
한식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큰딸 송이가, 회사 출입증카드에 할머니인식표를 만들었다. 핸드폰이나 위치 추적기처럼 거추장스럽거나 무겁지 않아서 할머니 목에 부담이 없었다. 인식표에는 집 전화는 물론 한식의 직장전화번호, 핸드폰번호, 그리고 두 딸과 동생 핸드폰 번호 네 개를 모두 적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이렇게 적었다.
"저희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십니다. 혹 길을 잃고 계실 때는 뒷면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한식어머니는 손녀가 만들었다고 이것만큼은 목에 걸고 외출을 하셨다. 할머니는 이것을 “마패”라고 불렀다. 가끔 할머니는 곤경에 처했을 때 마패를 꺼내들 때면 남들이 도움을 받는 덕을 톡톡히 봤다.
인천지하철 역무원도 한식 어머니 목에 걸어드린 인식표를 보고 전화를 했다.
“따르릉!”
전화가 한식에게 또 울렸다.
“아버지 아롬 이예요. 대학 다니는 그의 아들이었다. 할머니가 길을 읽고 인천지하철역에 계시대요.”
“그러냐? 나도 방금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할머니를 모시러 갈려고!”
“아버지! 지금 제가 할머니한테로 가고 있어요? 아버지는 바쁘신데 안 오셔도 돼요."
"학교는 어떡하고?”
“학교는 수업이 끝나서 걱정 없어요. 이쪽에서 가는 게 빠릅니다.”
“그래! 그럼 갔다 와라. 너는 공부가 우선 인 것 알지?”
“네 알아요.”
“아버지엄마는 걱정 마세요. 제가 책임집니다. 아버지는 우리엄마만 책임지면 돼요!”
“후후! 그래라! 난, 네 엄마한테 잘 할 테니 너도 우리엄마 잘 좀 모셔오렴!”
한식은 아들과 딸들이 고마웠다. 언제나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자신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집에서도 아래층에 할머니가 혼자 있으면 쓸쓸하실 거라며 서슴없이 자기 방을 비우고 아래층 할머니 방 옆으로 옮겼다. 다른 집 아이들은 할머니하고 마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자기 스스로 할머니 말 상대를 위해서 방을 옮기는 이런 마음씀씀이가 여간 기특한 게 아니었다. 한식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하는 부분을 아이들이 대신 메워 주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지하철 입구에서 이스트냄새가 물씬 나는 스펀지 같은 커다란 술 빵을 사오셨다. 맛도 없고 이스트냄새가 마치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요즘 아이들이 먹는 피자나 롤 케이크 같은 것과 다른 빵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할머니가 자기들을 위해 사 오신 빵을 차마 맛이 없다고 먹지 않을 수 없어, 할머니 보는 앞에선 맛이 있다고 억지로 먹었다.
한식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이 이 빵을 잘 먹는다고 생각하고선 다음날, 그다음날도, 빵을 사오셨다. 아이들은 할머니 앞에서 먹다먹다 지쳐서 이층으로 몰래 가지고 올라왔다.
“오늘은 아버지도 할머니 빵을 드셔야 되요”
한식은 아이들이 도와 달라며 빵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너무 고마웠다.
그날, 온 식구들은 싫도록 스펀지 같은 술 빵을 먹었다. 잘 먹히지 않으면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도 발라먹었다.
한식집에서 가장 특별한 파티가 벌어진 날이었다.
한식아들 아롬은 인천에서 할머니를 모셔왔다.
오늘은 할머니 손에 술 빵 대신, 길거리에서 사온 순대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 오늘은 우리가족이 순대를 먹는 날인가 봐요!”
“며칠 동안 할머니가 또 순대를 사오시겠다!”
“그래도, 술빵보단 났다.”
“맞아 떡복기에 넣어 먹으면 되”
빛나가 순대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첫댓글 침해를 앓는 노인이 있는 다른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환경이네요.
현실을 받아드리고 수용하며 헤쳐 나가는 부모의 모습속에서
섬기고 순종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막대한 유산을 남겨 주는 것보다 더 값진 유산이지요.
술빵만 계속 사오신 할머니, 이제는 순대를 먹게 되었다고
받아드릴 줄 아는 자녀들....할머니를 모시러 가는 한식아들 등...
정말 기특하고 훈훈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귀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반갑고 감사를 드려요.
백발의 노파 사진을 보며 늙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한삭이네같은 자녀둘만 있으면 노후가 덜 슬프고 덜 외로을것 같군요.
가족들의 행복과 부모를 공경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듯합니다.
다음은 어떤 소재로 아름다움을 표현하실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식어머님의 외출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외출을 못하게 막고 성가시다고 좋은 요양시설에 모시는 것만이 효도라고 착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평소처럼 가족과 생활하게 하시는것이 치매에 걸리지 않고 또한 치매가 있더라도 더 이상 악화 시키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잔잔한 감동은 파장이 오래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