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같은 사주인데 왜 다른 인생을 사는지... 명리학 최고 난제에 대해서 의견을 몇 자 적어볼까 한다.
필자는 불교 철학을 전공하였고 과거에는 내노라 하는 역술인들과도 많이 어울려 보았다. 물론 그들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하다. 전국 돌아다니며 사주... 역술... 무당... 게다가 좋은 산(산신)과 바다(용궁)... 찾아다니느라 쓴 돈만 수천만원이다.
하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아무도 진리의 길로 나를 인도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답답해서 나 스스로 사주명리를 궁구하고 탐구하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이고 물론 철학 뿐 아니라 명상과 영적 수행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계속 하고 있다.
명상을 제대로 하게 되면 정신과 물질이 다르지 않으며, 정신에는 "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 등으로 구분하였다.
욕계... 중생들이 사는 세상이다. 욕심으로 점철된 세상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생각하면 되겠다
색계... 상(常, 이미지)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각 종교에서 신 바로 아래의 존재들인 천사, 보살, 용, 가루다 등이 여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중생들은 이러한 신령하고 강력한 존재들을 동경하며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고 싶어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완벽(이상)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무색계... 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불교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깨우친 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부처의 경지인 것이다.
이렇듯 불교식으로 계를 나누어 볼 수 있다. 실제로 계는 불교식으로 나누던, 기독교식으로 나누던, 이슬람식으로 나누던, 혹은 다른방식으로 나누던 정신과 영혼의 수준을 결정한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기거하는 영적 세상을 넓디 넓은 바다에 비유하면 계는 잠수부의 위치라 할 수 있다. 파도가 치는 바다의 표층일 수도, 아니면 파도와는 관계없이 고요히 흐르는 심층일 수도,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신의 계가 덜 성숙한 자는 같은 사주팔자를 갖고도 미숙하게 사용하고, 정신의 계가 성숙한 자는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이다.(최근 유행하는 영혼 진화론과도 비슷한 견해가 될 수 있으나, 필자는 영혼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예를 들어 인성이 과다한 사주가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거지의 사주팔자이기도 하면서 양아치의 사주팔자이기도 하면서 세계적인 격투가의 사주팔자가 될 수도 있다. 왜 그러한가?
인성이 많으면 자기가 일을 안해도 남으로부터 연민의 감정만 유발하면 공짜로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니 거지가 되기에는 딱 좋다. 거지가 팔자가 좋으면 동냥이 잘 되는 것이다.
양아치가 되기에도 좋다. 가끔 길신이라는 정인이 많은데 생양아치가 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러한가? 인성은 마음의 상처를 받기가 쉬운 인자이다. 보통 반사회적으로 삐뚤어지는 사람들은 순수했던 어릴 때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양아치가 된다.
격투가가 되기에도 좋다. 인성은 끈기와 인내를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하기 힘든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코칭스태프의 지시대로 매일 식단을 조절하고 몸을 만들어서 대회에 나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게끔 만드는 힘도 인성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사주팔자를 이런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주 나쁜 팔자를 갖고 있어도 이순신의 영혼이 그 팔자를 가지면 나라를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이 카페의 이순신 사주풀이 참고)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삶의 변화 변동을 팔자에서 찾지 않고 영적 개념을 동원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정신의 "계"를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이동할 때 느꼈던 그 희망과 용기와 신비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고,
긍정적인 경험 뿐 아니라 부정적으로는 "계"가 이동할 때의 절망과 분노도 나의 의지로는 어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적 세상이 이렇게 실존하는데 어찌 부정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