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 나무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2 작성자 : 별꽃
4. 숲속 빈 틈새에 자라다 (일본목련, 밤나무)
밤나무
곰은 나무 위에서 가지를 부러뜨려 밤을 먹고 다 먹고 나면 가지를 한 군데 모아 쌓아 놓는다. 새의 둥지처럼 보인다. 이를 상사리라 부른다.
6월말부터 꽃을 피우는 밤나무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잎자루가 붙은 부분(잎겨드랑이) 옆으로 10~20cm 길이의 이삭모양꽃차례를 이룬 수꽃이 나와 있다. 크림색의 수술을 십여 개 쑥 내밀며 수꽃이 무더기로 피기 시작, 수꽃 꽃차례는 가지의 성장과 함께 차례차례 위 쪽 잎의 잎겨드랑이에서도 뻗어 나온다. 새잎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수꽃 꽃차례의 밑부분에 암꽃 꽃차례가 하나 나온다. 암꽃 꽃차례 속에는 암꽃이 3개 들어 있으며, 꽃가루받이 후 발달해 가을에 밤 세 알을 볼 수 있게 된다. 암꽃이 개화를 마치면 끝부분에서 수꽃이 다시 피기 시작한다. 밤나무는 수꽃, 암꽃, 수꽃의 순으로 시기를 달리해 핀다. 제꽃가루받이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밤나무 암꽃의 암술머리에 붙은 꽃가루를 떼어 내어 DNA를 추출해 조사해 보았더니 암술머리에 붙은 꽃가루의 90%가 자신의 꽃가루였다. 하지만 가을에 성숙한 열매의 DNA를 조사해 보았더니 모두 다른 개체의 꽃가루에 의한 딴꽃가루받이로 생긴 열매였다. 밤나무는 자신의 꽃가루로는 자식을 만들지 못하는 자가불화합성 식물이다.
밤나무는 다른 나무에서 온 꽃가루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곤충이 뒤영벌이다.
밤나무는 타닌, 사포닌이 적어 먹기 쉬워 숲속 동물 모두 밤을 좋아한다.
밤나무 열매에 자석을 부착해 금속탐지기로 밤의 행방을 조사. 어린 낙엽활엽수림 숲 바닥에 열매를 두자 흰넓적다리붉은 쥐와 애기붉은쥐가 나타나 우선 가까이에 묻는다. 곧 다시 파내더니 멀리 가져가 묻는다. 이 일을 몇 번 반복한다. 낙엽을 살짝 들쳐 그 밑에 넣어 놓고 다시 낙엽을 덮어 가리는 정도. 처음 열매를 둔 장소에서 최대 35M 거리까지 옮겨 갔다. 하지만 이듬해 싹을 틔우는 것은 아주 적다. 대부분 멀리 옮기는 도중이나 겨울에 먹어 치운다. 쥐들의 보금자리는 지하 70~80cm 깊이에 있어 혹 먹다 남은 열매가 있더라도 땅속 깊이 묻혀 있어 땅 위로 얼굴을 내밀 수 없다. 숲지붕 사이 밝은 틈새가 생긴 곳에서 싹을 틔우기도 한다. ‘열매가 떨어지는 시기’에 비밀이 있다. 밤나무는 9월경에 열매를 떨어뜨리는데, 그 무렵 숲에 생긴 틈새에는 풀과 키 작은 나무의 잎들이 무성하다. 쥐는 덤불에 몸을 숨기며 열매를 묻으러 가는 습성이 있어 틈새에 있는 수풀을 다니며 묻으러 돌아다니지만 풀이 마르고 키 작은 나무의 잎이 떨어지면 쥐가 몸을 숨길 곳이 없어지므로 틈새를 옮겨다 놓은 밤을 포기하고 만다.
밤나무가 어두운 숲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씨앗이 크기 때문에 싹을 틔운 해에는 씨앗의 저장양분을 살아가지만 새 잎을 내기 때문에 광합성으로 얻을 수 있는 탄소량보다 호흡으로 소비하는 양이 많아져 살 수 없게 된다. 잎 속에 타닌과 페놀 등의 방어물질이 많지 않는 것도 이유다.
어두운 숲속에서는 병원균과 잎을 먹는 곤충이 많은데 공격을 피해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충분히 않다. 밤나무 씨앗 하나에서 뿌리가 두 줄기 나오고, 그 뒤 주축(방배축)도 2개 나온다. 다배종자다. 가는 뿌리에 외생균근균이 공생하면서 뿌리의 양분 흡수를 돕는다. 밤나무는 왕가래나무처럼 자유생장형으로 차례차례 새 잎을 펼치면서 위로 성장을 계속한다. 밤나무 싹은 물참나무 싹에 비해 뿌리에 축척된 탄수화물이 적다. 잎과 지상부의 가지와 곁가지에만 투자를 하면서 이로만 뻗어 간다. 틈새에서만 적응 가능한 생존 전략을 지닌 종이다.
‘트레이드 오프’라 불리는 한쪽이 강하면 한쪽은 약한 관계가 각 나무의 서식지를 보증하고 다양한 종이 함께 사는 환경을 만들어 간다.
야생밤은 재배종에 비하면 무척 작다. 밤은 어두운 숲속에서 정착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밤나무는 어두운 곳에서는 광합성 산물을 거의 만들 수 없다. 씨앗이 커봐야 의미가 없다. 작은 씨앗을 많이 만드는 편이 큰 씨앗을 조금 만드는 것보다 숲의 밝은 틈새에 산포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밤나무는 같은 에너지를 투자한다면 큰 씨앗을 소량 만드는 것보다 작은 씨앗을 많이 만드는 쪽이 정착율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