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울엄마
엄마의 글을 쓸려고 하다가
막상 '엄마'에서 목이 메인다
사는게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IMF 오기전 남편의 빛보증으로 모두 날아가고
나는 충격으로 병원으로....
퇴원을 막내동생집으로 했다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빚쟁이들에게 시달릴까봐
"언니는 내가 간호 하겠다"는 동생의 고마운 뜻을 받아들였다
이틀이 멀다 않고 오시는 엄마,
아무런 내색없이 밥잡수시고 그냥 우두커니 앉았다 가시는
뒷모습에서 연신 손을 얼굴로 가져 가신다
빳빳이 고개 들고 가시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큰딸이 볼까봐 손수건도 못 꺼내시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터벅터벅 돌아가시곤 했다
그렇게 늘상 큰자식의 안스러움을 가슴에 담고 사셨다
요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모시고 싶어 우리집으로 오시라 해도
막내집이 편하시다면서 "너그나 잘 살아라"며
큰딸의 가슴에 멍자욱을 남기시는 울 엄마,
이젠 울엄마가 편찮으시다
나땜에 생긴 병이라서 엄마 생각만 하면
길을 걷다가,
버스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내 나이 쉰,
아직도 '엄마'다
오늘 아침에"엄마 저 갈께요"하니
오지말란다
경로잔치간다고 와도 못 만난다고,
여태 이랬다
당신 생신에도 어버이 날도 집에 계시질 않았다
외삼촌집으로 이모집으로 가셨다
자식들 돈 쓴다고....
작은딸 당신가슴에 묻은 울엄마를
연이어 큰딸이 엄마 어깨를 모질게 눌러버렸다
이 죄스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간절한 염원만 두손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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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이라고 큰아들이 "집으로"극장표를 들고와서
아빠 엄마 두분이서 보고오란다
나는 이렇게 아들에게 효도를 받는데...
2002/05/08(07:42) from 211.203.115.145
♧ No, 217
♧ 작자:황영희
♧ 2004/6/21(월)
♧ 조회:555
첫댓글 <남지닷컴>에 올라 있는 글을 복사해 왔습니다.
창녕문학 초기에 활동을 하다 부산으로 떠난 황영희 시조시인은 필명이 황다연 인가 뭐라 했는데 언뜻 기억이 안나고
남지 출생으로 동포동에 내가 살 때 우리 옆집에 살았는데 지금도 그 부모님은 거기 사시고(?)
좀 오래 된 곰 삭은 글이라
곰곰이 맛보아야.......
가끔 <남지닷컴>에 올라 온 황영희 선생님의 글을 읽었는데요.
글품이 예사롭지 않아 눈여겨 읽었는데 시조시인이었군요.
선생님~동포동 그 동네는 터가 좋은가 봅니다. ^^
작가님이 두 분이나 나오셨네요.
연우는 엄마께 언제 효도 한번 해볼련지...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인데....그렇지도 못하니...원
엄마가 살아 계시니 그런 마음도 가질 수 있지.......
비가 오니 엄마가 보고 싶다....... 가슴 저미도록 정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