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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구냐? 감히! 나와 숨바꼭질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냐? 모, 목숨
이 아깝지 않다면.. 썩! 모, 모습을 드러내거라! “
말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청의인은 공포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
을 둘러보며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청의인이 입고 있는 옷과 아주 잘 어울리는 청색의 은은한 예기가 흘
러 나오는 검에서는 달빛에 반사되는 섬뜩한 검광이 반사되어 나왔다.
조바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언제라도 검을 날릴 준비를 마친 청의인은
등 뒤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고는 평생 처음으로 느껴본 공포
심에 수치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이 사도명이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모습
이라도 보인다면 어떻게 덤벼보기라도 하겠지만 도대체 이 자는 정체
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보이지 않는 기세하나 만으로도 나를 이토록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거지? 마치.. 얼마 전에 느껴본.. 그자의 느낌
과… 아니? 설마? ‘
처음에는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의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사
도명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
이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었던 기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도명은
급히 검을 내동댕이치고는 땅바닥에 오체투지하며 더욱 더 강력해진
무형의 기운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주, 주인님을 뵈옵니다! 소인 주인님을 몰라보고 감히 검을 꺼내 들
었습니다. 소, 소인을.. 죽여주십시오! “
[어리석은 것! 아직도 나의 기운에 맞서려고 하느냐! 명심하거라. 나
의 뜻에 거역하는 행동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것을! ]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 존재감조차 불분명한 검은 안개 속의 사
내라 짐작되는 인물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사도명은 주변이 온통
검은 장막에 쳐져 있는 것 같은 끔찍한 느낌에 감히 고개를 들어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 소인! 여부가 있겠습니까? 주인님을 모시는 천한 종놈의 주제에
감히 주인님의 뜻에 거역하는 일 따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 다시
는 이런 무례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
사도명은 처음에는 본능적인 공포심에 의해 무형의 기운을 적대시 하
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제는 무형의 기운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어서 인지 조금 전에 보였던 극심한 공포심을
들어내지는 않았다.
사도명의 대답을 들은 검은 안개 속의 사내는 그의 대답이 만족 스러
웠던지 유쾌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하하! 멍청한 줄 알았는데 네놈은 그래도 제법 상황 판단이 뛰어난
놈이었군. 좋아! 이번 한번 만큼은 용서해주도록 하지. 내 이렇게 네
놈을 찾아온 것은 네놈에게 하명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
“주인님의 말씀! 목숨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천하를 호령할 것만 같은 위상을 보였던 사도명
이 맞는가? 이제는 마치 검은 안개속의 사내의 충실한 충견이 된 듯한
사도명의 모습에 안개속의 사내는 몹시 만족한 듯 했다.
[그래야지! 너 같은 놈들 죽이는 건 식은 죽 먹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
어줍잖은 실력으로 나의 뜻을 거역하려는 자들은 이제 머지않아 진
정한 파멸의 무서움을 맛보게 될 것이야! 네 놈은 그래도 나의 충실한
개가 되었으니 앞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도명! ]
“예! 주인님! “
[너는 앞으로 나의 지시에 따라 화운문을 최단시간 내에 접수하거라.
그리고 마교와 함께 혈겁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네 놈이 원하는 게
무엇이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나는 너에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 나는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
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혈겁을 일으켜
달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온 세상을 파멸시켜버리라는
말이다! 으하하! ]
‘컥.. 미친놈! 세상을 파멸시켜? 웃기는 소리하고 있군! 내가 지금이야
네놈의 힘에 눌려 이처럼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두고 봐라! 이
사도명! 절대로 너까짓 괴물 같은 녀석에게 휘둘리지만은 않을 테니까
말이다! ‘
안개속의 사내로부터 흘러나오는 친지를 진동시키는 광소성에 사도명
은 기혈이 뒤엉켜 버리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며 아무 말 없이 땅바닥
만을 죽일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이윽고 천지를 울리는 광소성이 사라지자 사도명의 입가에는 가느다
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 힘을 주겠다. 세상을 파멸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말이다! 앞으로 나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네놈이 나의 뜻을 거역하는 그 순간 너의 모든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너의 영혼까지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을! ]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어찌 주인님을.. “
사도명은 말을 하면서 지금까지 느껴졌던 무형의 기운이 없어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엉겁결에 고개를 들어 올린 사도명이 검은 안개속의 섬뜩하리 만치 차
가운 어떤 무언가를 느꼈을 때였다.
“으헉! 커억! “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를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사도명을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검은 안개가 사도명의 모공을 통해 서서히 흡수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개는 겨우 사람 하나를 가릴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오래 지나지
않아 사도명의 모공을 통해 모두 흡수되어 버렸고 그와 동시에 사도
명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장막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검은 장막이 소멸됨과 동시에 안개속의 괴인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
어 버렸고 산산이 조각 나버린 고목의 파편위에 사도명 혼자만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전에 비해 감히 비교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 정도로 극강해져 버린
자신의 능력에 사도명은 잠시 자신이 한순간 꿈을 꾸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의심도 해 보았지만 얼마 후 꿈이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교활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젠 더 이상 기다릴 필요조차 없어져 버렸군! 비록 내가
그 빌어먹을 괴물 같은 것에게 이용을 당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의
능력이라면 무림을 뒤엎어 버리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 괴물아! 네놈이 바라는 대로 이 세상을 피와 살육이 가득한
생지옥으로 만들어줄 터이니 걱정 말거라. 이젠 나 스스로 그러고
싶으니 말이다! 으하하하! “
사도명은 발밑에 떨어져 있는 검을 두둥실 띄워 검집에 꽂아 넣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렇게 차례차례 모두가 떠나가 버리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고목이
서 있었던 자리에 강운이 조용히 나타났다.
고요한 달빛을 받으며 산산 조각난 고목의 잔해를 바라보는 강운의
얼굴에는 슬픔의 표정이 가득했다.
“나무야.. 미안하구나.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이미 떠나 버
린 너의 영혼을 되찾아 올 수는 없겠지만.. 원래 너의 모습으로 만들
어 줄게.. 그래봤자 생명 없는 단지 형체에 지나지 않겠지만.. “
말을 마친 강운은 조용히 손을 들어올려 산산 조각난 고목의 잔해들
을 모두 하늘로 띄워 보낸 후 천천히 손뼉을 마주쳐 나갔다.
강운이 손벽이 마주쳐 나가자 산산 조각난 고목의 잔해들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합쳐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강운의 손과 손이 마주
닿았을 때에는 전과 다름없는 고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모습은 전과 다름없었지만 왠지 생기가 없어 보이는 고목의 모습이
달빛과 함께 몹시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강운은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백호와 함께 평안객잔으로 다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느껴진 사악한
기운에 강운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젠가 느껴보았던 사악한 기운이 얼마 전 자신이 떠나온 곳에서부터
느껴졌던 것이다. 강운은 백호를 먼저 객잔으로 돌려 보낸 후 서둘러
공간이동을 해서 고목이 있던 자리에 와 보았지만 사악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교활해 보이는 청의인 혼자 한참을 중얼거리고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강운은 사악한 기운을 느낌과 거의 동시에 공간을 이동해 온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적인 시간동안에 사악한 기운의 소유자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기 때문에 강운은 허탕만 치고 말았다.
멍청한 눈빛으로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강운의 품으로 어떤 하얀
물체가 형체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려와
안겨들었다.
강운은 백호에게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백호는 강운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는
예감에 강운을 뒤쫓아 왔던 것이다.
[운아!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여기 와서 뭐하는 거야? ]
“백호야 먼저 가 있으라구 했는데 왜 따라온 거야? “
[왜 따라오기는! 운이 너가 걱정돼서 그렇지! 근데 내가 괜히 힘만
뺀 것 같다. 운아.. 근데 별일은 없는 거지? ]
백호 역시 영물 중에 영물이었기에 주변에 아직 남아 있는 사악한 기
운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고목을 바라보고는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전혀 내색을 내지는 않았다.
“그럼! 아무 일도 없었지. 백호야! “
[어? ]
강운은 백호에게 뭔가를 말해 줄려고 하다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져으
며 백호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그냥 달이 참 밝다고.. “
강운은 달을 가리키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가만히
고목을 쓰다듬어 보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호야 가자! 가서 수연이 간호해 줘야지. 수연이가 너 귀여워하던
데 애완용으로 줘 버릴까? 헤헤 “
[뭐라구? 운이 너 정말! 흥! 웃기는 소리 하지마! 내가 그런 인간 계
집따위의 애완용을 하다니 말두 안 돼! ]
“하하! 안 돼긴 뭐가 안 돼! 가서 수연이 깨어나면 진짜 물어봐야겠다. “
[운이 너! 이.. 이! 거기 서! ]
강운은 잔뜩 독이 올라있는 백호를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가 버렸고 백호 역시 그런 강운에 못지않은 속도로 강운을 뒤쫓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