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34분,
커피 한 잔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 메일함에는 열세 개의 “확인 부탁드립니다”가 도착했다.
다들 나에게 부탁하는데, 누구도 내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시스템 문서와 스크린샷 속에서 21세기형 점쟁이가 되어야 했다.
컨텐츠 조회수를 찾는 점, view_count_adjust의 의미를 해독하는 주술사,
그리고 “내일까지 반영됩니다”라는 예언서를 읽는 신도였다.
기획자 갑은 묻는다.
“컨텐츠 조회수 리턴 가능할까요?”
개발자 을은 답한다.
“data_content.view_count_adjust에 있습니다.”
그 다음 이메일이 열리면 또 다른 사람 병이 중얼거린다.
“base_view가 맞을 것 같긴 한데 확신은 안 서네요ㅎㅎ.”
표면상으로는 웃음이 있지만,
그 ㅎㅎ 속에는 냉소와 피로, 그리고 ‘이건 내 일 아니다’라는
직장인의 만국 공통 방언이 숨어 있다.
조직에는 세 부류의 신이 있다.
“컨텐츠 조회수를 보고 싶어하는 자”,
“조회수를 계산해줄 수 있는 자”,
그리고 “조회수 따위는 신경 쓰기 싫은 자.”
그 셋이 모여 만든 회의의 은 언제나 같다.
“정책 기획팀에서 확인 후 회신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공이 되돌아간다.
누군가의 메일함으로, 다른 시간대의 상사에게로.
그리고 다시 “관련 메일 공유드립니다.”라는 알리바이가 첨부되어 돌아온다.
루프의 끝은 없다.
루프가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산출물은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97통의 메일이다.
조직은 싸움이 나지 않게 구조적으로 설계되었다.
모두 바쁘고, 모두 예의 바르다.
그러니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단지 ‘조회수’를 표시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를 토론하는 동안,
실제 운영자는 손해를 보고,
사용자는 이미 다른 콘텐츠를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CMS > 운영 내역 > 내역 로그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우리의 신앙,
‘시스템만 완성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게 돼 있잖아요”라는 한 문장이
모든 불합리를 정당화하는 주문처럼 쓰인다.
“Adjust 값이 없으면 0으로 리턴됩니다.”
마치 우리 감정도 function 안에서 null 처리되어버린 것처럼.
정작 누구도 묻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조회수를 구분하는 것도, 담당 부서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모든 ‘협업’이 정말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다.
계속 회신이 오고, CC 목록이 길어질수록
‘일을 하고 있다’는 착시가 강해진다.
실제 시스템 인터페이스는 내일까지 반영된다 했지만,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슬쩍 머리를 든다.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김무경 드림’이라는 서명을 다시 본다.
‘드림’.
진심으로 꿈꾸며 쓴 건 아닐 거다.
그저 엔터키에 매크로처럼 달아놓은 체념의 인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우스로 “감사합니다.”를 복사해 새 메일에 붙여넣는다.
이게 오늘의 업무 종료다.
오늘도 정해진 대로 리턴하고, 다시 미소 이모티콘을 붙인다.
조회수 0, 재치 소모됨, 영혼 NULL.
퇴근길, 버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시스템의 에러코드처럼 피곤하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무경님, 조회수 리턴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메일을 열어 ‘드림’으로 끝나는 세상의 무한 루프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