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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극복의 논리 / 유재영
1. 세습적 글 쓰기와 주체적 글 쓰기
오늘의 시조 단에는 두 가지 종류의 창작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시조라는 형식을 빌려 세습적으로 글 쓰기를 하는 쪽과 다른 하나는 주체적 언어로 시조를 현대시로 이어가는 쪽이다. 아직도 어떤 시조 전문지는 회갑을 넘긴 사람들을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추천 사를 싣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사어는 물론이거니와 소재 선택에 있어서도 조선시대 풍속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것이 대부분인 시조를 두고 우리는 시라기보다는 세습적 글 쓰기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툭하면 고시조의 잣대를 들고 나와 <시조 적>이다 아니다를 반복하는 맹목적 율격주의자들도 있다.
오늘의 시조는 시조 적 가능성과 시적 가능성을 함께 하는 복합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시조 적 가능성을 무조건 주장할 경우 시 쓰기가 아닌 세습적 글 쓰기가 된다는 점이다. 시어도 옛것이요, 소재도 옛것이요, 생각도 옛것이 될 때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 시 쓰기로 볼 것인가. 흔히 이들이 후자를 비판하는 경우는 시조의 기존 전형과 달라 보인다. 시어가 고유어에서 일탈되었다, 이미지가 현대시와 동일하다 등의 이유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로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파격에 대한 인식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현대시조의 제반문제는 가람 이후 김상옥·이호우·장순하로부터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반복된 지적이었지만 이런 현상이 오늘 이 시간까지 계속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많은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로 신인 배출의 문제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시조 단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는 우수한 신인을 확보하는 데 있다. 여기서 신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년퇴직하고 손자 어르던 손으로 심심파적으로 쓰는 세습적 글 쓰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주체적 시 쓰기를 하는 오늘의 세대를 말한다. 최근까지도 노·장년의 신인이 쏟아져 나오는 시조 단의 풍토에서 시조문학의 미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노릇이다. 현대시조 100년 사에 변변한 시인 론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인 배출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인 후배>가 많아서 시조모임에 가기 거북하다는 한 젊은 시인의 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조가 세습적 글 쓰기가 아닐 바에야 지금이라도 이러한 시조 단의 풍토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평생을 시조 창작에 몸 바쳐온 많은 시조작가들을 누가 평가하고 누가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 문학사에 기록할 것인가. 우리는 많은 시조를 써오면서 왜 꼭 <시조 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율격 남용에서 오는 가사 풍에 대한 저항감과 그 비현대적 감각이 얼마나 현대시조의 발전을 저해해왔는가. 일본이 17세기의 시인 바쇼를 세계적인 시인으로 만들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고유한 문학형식인 시조를 얼마나 낮추어 보았던가. 이제 시조 단만이라도 미몽에서 깨어나 시조가 최소한 오늘의 우리 문학사에 바로 기록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2. 율격의 친화성에 대하여 한시에 있어서 대구(對句)는 한자의 대부분이 2음절 복합어로 4음절구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강>과 <산>은 하나의 대구가 되며 <화(花)>와 <조(鳥)>도 쉽게 대구가 된다. 이 두 대우(對偶)는 다시 <강산>과 <화조>라는 대구를 성립시킨다. 이러한 까닭으로 한시에서의 대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언어의 구조상 불가피한 표현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대부분 고시조에서 나타나고 있는 초·중장, 전·후구의 대구 활용의 빈도가 높은 것은, 우리말의 구조적 특성과 함께 오랫동안 한시의 영향권 안에서 시조가 가사의 개념으로 쓰여져 왔다는 데에서 그 결론적 의미는 보다 더 뚜렷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시조에 있어서 초·중장, 전·후구의 대구는 대부분 엄격한 반의어(反義語)에 의한 병렬(竝列,Parallelim)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시조가 성조상의 기능에서 사색적 기능으로 바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구는 시조를 포함한 우리 시가에서 대단히 독특한 표현의 한 방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구의 잘못된 사용은 말의 기계적 짝맞춤이 되고 만다. 특히 시조가 정형의 구조로서 오해를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말의 <짝맞춤>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점을 오늘의 시조작가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의 시조가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형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말의 <짝맞춤>으로서가 아니라 언어와 율격의 친화력에 더욱 접근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적·청각적 효과와 단어의 함축과 상징, 그리고 문법적 기능에까지 포함하여 보다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조에서 가장 형식의 엄격성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단시조이며 단시조의 역할은 사실상 오랫동안 <절구(絶句)>의 의미로 받아들여왔다. <절구>의 의미는, 시조에 있어서 어떤 내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감수성의 확대 - 곧 현대시조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상존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절구>는 있되, 시는 없는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시조가 안고 있는 커다란 불행이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말의 <짝맞춤>에서 얻은 것은 <절구>이고, 잃은 것은 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가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활용이 말의 <짝맞춤>이 아닌 병렬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3. 전통과 전승의 차이 흔히 시조를 일컬어 <전통시가>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통>이라는 뜻이 옛 문학의 양식쯤으로 알고, 시조가 지닌 고유성이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 첫번째 예로 형식의 엄격성이다. 전통은 곧 형식이고 일정한 형식에서 벗어난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예로는 제한된 소재의 한계성이다. 이른바 <전통성>에 부합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조 단에서 말하는 <전통>이라는 것의 실체를 명백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전통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어떠한 민족의 특성을 항구적이고 고정적이며 개체적 존재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대적 전변과 생성적 유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별해 채택하기보다는 두 가지를 함께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자의 고정적 존재로만 본다면 전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가변성을 수용할 수 없고, 후자인 전변적인 것에 국한하면 시대 변화의 근본적 원인을 밝힐 수 없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전통>이란 생성되는 가변적인 부분과 항구성을 지닌 객체적 존재라는 두 가지의 공통된 인식에서 그 의미가 찾아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승>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전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세대의 전변을 낳은 동인으로서 역사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 전통과 전승이 갖는 주체성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시조는 전수의 문학이 아니라 전승의 문학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오늘의 정형시인들이 시조를 전승이 아니라 전수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오해들은 전향적 시조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왜 우리가 시조를 써야 하는지, 왜 우리가 전수가 아닌 전승의 개념으로 시조를 보지 못하는지, 왜 오늘의 문학으로서 시조가 시대적 역동성에 뒤처지고 있는지... 이러한 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 자문과 자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 시조의 현대문학적 단층 형성을 위하여 시조에 있어서 심미적 현상에 대한 거부감이 자주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시조가 아직도 현대문학으로서의 단층 형성에 모호한 입장이라는 점에서 보다 충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A.하우저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연구의 목적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상황의 전개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끊임없이 단절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 살아 있는 현실의 존재가 없는, 과거의 사실들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의식의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곧 허구이고 오로지 심미적 기능으로서만 위안되는 독자의 視點 능력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특히 역사 속의 많은 작품들은 오늘의 독자에게 뚜렷한 적응성을 지닐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 시조는 기록적인 가치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꾸준히 보여왔다. 여기서 꾸준히라는 의미는 시조가 발생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해당될 이만큼 현실의식에 등한한 우리 문학의 장르였다는 점으로 파악되어야할 것이다.
시조 발생기로 볼 수 있는 고려조 말기의 대부분 작품들은 회고조에 충실했고,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의절가> 등 대부분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아왔다. 사실 시조형태의 발견은 대부분 주자학의 신봉자였던 고려조 유학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군주의 은총, 자연의 찬양, 충의의 표현으로 고시조 대부분이 주자학의 지도이념으로 원용되어왔다.
자연을 노래하되 그 역시 군주의 은혜로 이어졌고, 꽃과 나무를 노래하되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교의 사상에 젖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상류사회의 관념적 노리개로 더 많이 이용되어왔다. 그것은 마치 이조백자가 유학도의 미의식에 바탕을 둔 색감이라는 일련의 논의와도 다름없는 사실임을 우리는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조가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이 산문화된 사설시조였다.
사설시조에서는 기존 시조가 지닌 평면적·자위적 구조에서 강력한 사회의식을 띠기 시작했다. 육감·애정·패륜·응전 등의 형태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으나, 詩形으로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시조의 기능이나 내용보다 실학사상 이후 우리 사회 현실은 더욱 복잡해지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가 도처에서 상응하였기 때문이었다. 덧붙여서 말하면 시조는 양식이 갖는 전통성과 상호견제하는 가운데 시조의 혁신이나 현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고유양식이기도 하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와는 달리 문자보다는 창을 위주로 그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어 있다. 현대시조가 사설 중심으로 발전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많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설시조의 형식이 미완인 채 우리는 자유시의 거대한 구조와 만나고 말았다. 시조가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갖는다면 평시조 중심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하이쿠는 한 줄도 길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시조문학의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시조문학의 단층 형성에 매우 불리하고도 어려운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시조의 현대문학 단층 형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상당한 긍정적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또 한편으로는 오늘의 시조작가들이 극복하여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절대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그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은 A.하우저의 논리대로 우리의 시조에 있어서도 역사 속의 허구와 심미적 기능의 극복이며, 그것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시조는 <과거의 문학>으로 존재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시조는 지나친 고시조의 반복으로 많은 독자들을 상실해가고 있다. <시조는 형태의 우수성만이 강조될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현실과의 부딪침에 있어서 보다 더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바로 오늘의 문학은 현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선도의 <五友歌>가 그 당시의 현실이었다면, 오늘의 현실은 다시 윤선도의 <五友歌>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견·도화·백로·낙화 따위가 왜 우리의 현실이어야 하며, 쓰잘데없는 헌시주의자들이 왜 우리의 시조작가로 논의되어야 하는지 오늘의 우리 시조가 보다 더 명확한 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시조의 현대문학으로서의 단층 형성은 매우 어려운 입장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본다.
시조는 시조이어야 한다 / 박구하
-"현대시조극복의 논리" 다층 2000 여름호를 읽고-
(이 글은 계간문예지 <다층> 2000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임)
<다층> 2000 여름호의 "시조문학특집"은 시조의 위상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획이었다. 이 특집에 실린 유재영씨의 "현대시조, 극복의 논리"는 일부 쟁점에 있어 구체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신인배출의 문제점과 고시조로부터 전승되어온 시조율격의 고수가 마치 시조를 후퇴시키고 있는 장본인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어 반론코저 한다.
첫째
오늘의 시조단을'세습적으로 글쓰는 쪽'과 '주체적으로 시쓰는 쪽'으로 양분하고"시어도, 소재도, 생각도 옛것이 될 때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 시쓰기로 볼 것인가" 반문하면서 이를 고수하는 쪽을 '세습적' 또는 맹목적 '전수자'라 하고 이를 일탈하는 쪽을 '주체적' 또는 '전승자'라 하고 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시조의 기본 전형'을 고수하는 것, 사어(死語)'나 '고유어'를 쓰거나, '이미지가 현대시적이 아닌 것' '파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점등을 '옛 것'이라 하는 것 같다.
무릇 글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쓰는 사람의 당대의 글이다. 그 사람이 이전의 것을 말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할 것도 없이 인간이 자연을 통해 느끼는 정서는 그 욕망에 변화가 없는 한 같을 것이므로 유사한 정서나 회고조의 반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인식의 방법과 표현기법에서 동서고금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고어(古語)나 사어, 고유어로도 얼마든지 정서를 표현하거나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시정신에 따라 '백로', '낙화', '조선시대의 풍속화' 등의 고루한(?) 소재로도 참신하고 '주체적'인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 당대의 현실에 참여적인 사람도 있고 개인서정에 천착하는 사람도 있다. 어째서 과거단절적이고 현실참여적인 사람만이 주체적이고 그 시조만이 현대적인 것 이라 할 것인가.
바쇼의 하이꾸는 발생초기 이래 음절수하나 변격을 허용치 않고 고유어를 쓰며 시조보다 더 짧은 형식을 가지고도 전세계에 당당히 살아있다. 왜 우리는 선조가 물려 준 고유한 가락을 변경시키거나 파괴시키지 않고는 현대의 시적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으며 세계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현대시조가 고시조에서 왔고 "한국인의 성정을 3장 6구 12음보로 표현한 서정시"(김제현)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율격의 준수여부가 생명인 정형시에서 그 율격이 '기본 전형과 다른 것'이거나 '파격'을 인정하는 시조가 어떻게 시조일 수 있는가. 고유어'로 쓰거나, '시조적인 가능성'에 치우쳐 쓴 것은 (주체적) 시조가 아니라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고시조와의 결별을 논한다면 어찌 시조가 수 백년의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 고유의 정통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조는 어느 시대에나 고유감정으로 민족의 모국어인 고유어로 쓰여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둘째
현대시조에 대한 제반논쟁이 반복되는 현실과 시조단이 발전하지 못하는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전문지의 늙은 '신인배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시조라는 배가 늙은 신인 들 때문에 정원초과로 젊고 우수한 신인들을 못 태웠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부끄러운 현상의 책임을 따진다면 기성시인들의 책임이 더 크고,이 땅에 바쇼나 다와라마치 같은 걸출하고 대중적인 시인이 나오지 못한 것은 기성시인들의 무능과 태만 탓이지 늙은 신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조 전문지의 폐단을 논하기 전에 이 척박한 풍토에 그 나마 시조의 맥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의 전문지들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지 격려의 시선이 필요하다.
"<노인 후배>가 많아서 거북하다"는 말과 "노.장년층이 쏟아져 나오는 풍토에서 시조문학의 미래를 운운하는 자체가 부끄럽다"는 말은 시조단에 젊은 피가 부족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아무래도 기득권의 냄새가 난다. 오늘날 '늙은 신인이 득실거리는 것(?)과 젊은 싹을 양성치 못한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무슨 운동시합이라서 나이를 따지는가. 초정, 백수 같은 원로는 갈수록 그 작품세계가 원숙하다.
인생의 예지는 나이가 들수록 빛날 수 있고 시조의 원조라 할 우탁의 탄로가도 바로 '노.장년'의 나이에 지은 것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작품성이다. 시조단은 "우리끼리"의 문학이 아니고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작품이 백화난만할 때 발전하는 것이다.
등단만 해도 그렇다. 요즘은 등단 없이도 바로 작품활동이 가능한 정보화시대다. 이제는 우리 나라와 일본 등지에나 겨우 남아 있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21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재고해 봐야할 시점이다. 시조단이 작품성이나 연구업적 대신 등단한 밥그릇 이나 따지는 단체가 아닌 바에야 무엇이 거북한지 알 수 없다. 배출된 신인은 좋은 시인이 못되면 최소한 시조단의 후원자나 고정독자로 남을 것이다.
시조시인이 많다는 것은 (많다고 해야 자유시인이나 하이꾸 인구 80만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시조발전에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장해가 된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시조인 모임의 구심점이라 할 시조협회를 중심으로 서로 뭉치지 못하고 역대 회장단이나 유력회원들의 즉석냄비식, 따로국밥식 시조 사랑이 더 큰 문제다. 신인배출을 겁낼게 아니라 기성시인들의 권위의식, 상호 비협조, 자기표절이나 동어반복, 자기태만을 뼈 아프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 늙은 신인들이 양산되는 풍토에서 "평생을 시조창작에 몸 바쳐온 많은 시조작가들을 누가 평가하고 누가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 문학사에 기록할 것인가"라고 걱정한다. 작가는 당연히 그 업적과 작품성에 따라 당대 아니면 후대에 평가받는 것이지 "늙은 신인"이나 아류의 후배들한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신인배출의 문제는 그 본질이 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질에 있다.
시조단의 발전은 수많은 잡초가 문제가 아니라 소수의 향기 높은 난초의 생장여부에 있다. 평생을 몸바쳐온 작가들의 노작들이야말로 시조단의 보배요 만고의 등불이 될 것이므로 잡초들의 타작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타작들을 두고 자유시단에서 시조를 얕본다면 품격 높은 시조를 보지 못한 그들의 무지 탓이지 시조단이 통째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전문지의 신인양산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신인확보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
차제에 필자는 신춘문예제도의 개선을 제안한다. 작금의 신춘문예는 마치 출제위원이 예고 된 시험같이 몇몇의 특정인이 수년간 심사단을 독점하고 밀실심사에다 평면적인 심사평만 언급하고 있어 자칫 시조흐름을 왜곡하거나 아류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 금년 중앙지 신춘 문예 당선작중 2/3가 사설시조이고, 당장 표절이나 율격이 문제되고 있지 않은가.
시조당선작이 옆에 게재된 동시보다 못하다는 쑥덕공론이 있고 자유시와 변별이 안되는 현실에서 신문사들이 있던 지면도 폐지해버리는 수모를 언제까지 겪을 것인가. 씨는 "현대시조 100년사 에 변변한 시인론 하나 못 가지고 있는 것"도 늙은 신인들의 양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춘문예야말로 그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수 십년에 걸쳐 탄생시킨 '우수신인'들이 문예지 출신의 늙은신인들 때문에 활동을 못해서 시조단이 침체에 빠져있다 할 것인가. 솔직히 요즘 신춘문예는 <다층>지의 신인추천제도보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신춘문예가 나름대로 순기능을 하자면 앞으로 누가 봐도 합리적인 방법 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늙은 신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수 신인선발의 공정성의 확보, 사후활동지원 등이야말로 시조의 백년대계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셋째
"왜 시조는 꼭 <시조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율격남용'이 '저항감'을 주고 '비현대적 감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감히 묻건대, 그럼 시조를 쓰는데 '시조적'이지 않고 어떻게 시조를 쓰는가. 시조는 <시조적>이기 보다 <시적>인 것으로 써야한다면 자유시와 어떻게 변별할 것인가. 시조는 내용의 심화도 중요하나 그 이전에 시조의 형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한다고 다 한국인이 아니 듯이 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시조적으로' 쓰지 않으면 시조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시조의 율격은 한시나 하이꾸와 달리 자수에 약간의 여유가 있고 바로 이 여유 있는 가락이 우리 정서에 맞는 호흡체계로 가다듬어져 율격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인데 그 기본틀을 깨고 파격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실험이거나 시도이거나 막론하고 "사이비 시조"지 시조는 아니다. 그리고 '율격남용'이라고 하는데 시조의 율격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그 율격에는 남용이고 절약이고 할 여지가 없다. 오직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준수가 있을 뿐이다. 씨의 말대로 '율격남용'이 '저항감'을 주고 그 율격이 '비현대적인 감각'이라면 그 율격의 바탕 위에 서 있는 시조는 이미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율격을 지키는 것과 고 시조를 답습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기실 아직도 고투로 고시조를 '세습적으로' 쓰는 사람 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씨가 걱정할 정도로 시조단의 발전을 저해할 세력은 못된다. "툭하면 고시조의 잣대를 대고" 시비를 건다고 하는데 그럼 무엇으로 변별할 것인가. 가람이나 오늘의 통설에 따라도 그 율격은 고시조와 다르지 않다. 전통은 전승되는 것이지만 그 뿌리에 대한 전수가 있은 후의 일이다. 고유한 율격이 있는 것이 정형시로서의 시조의 본질인데 율격의 잣대로 율격의 일탈을 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율격이 "불편"하면 자유시로 이행하든지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창설하든지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시조 주변을 맴돌 필요가 없다. 일찍이 가람선생은 시조의 혁신을 위하여 3장8구를 주장하며 시조의 대중화를 위하여 자수율에 여유를 인정하면서도 시조의 품격을 잃을 경우 시조의 소멸가능성을 경계하였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넷째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오늘까지 현실의식에 등한한 문학"이었고 '사회의식'에 눈을 뜬 사설시조가 등장하기까지 "문학으로서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상류사회의 노리개로 이용 되어 왔다"고 하는 대목은 그냥 들어줄 수가 없다.
물론 현실 도피적인 면이 시조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도 그 자체로 그 시대의 노래였다. 시조는 출발부터 "시절가조(時節歌調)" 로서 당대의 현실을 노래해 왔고 기실 회고가, 의절가, 음풍농월가도 뒤집어보면 망국의 한, 충의의 표상, 유배 또는 사화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현실비판 내지 역설적 참여의 문학인 것이다. 감군(感君), 충효, 유교사상은 각각 그 당시에서는 현실이요 시대이념이었다. 이를 오늘의 잣대로 매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시조야말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권위에 구애됨이 없이 왕, 양반에서 평민, 기녀 등 우리 민족의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고루 애용했던 민족시가였지 특정계층의 '노리개'였던 적은 없다.
사설시조는 조선후기 일시 유행하다가 이 땅에 자유시의 물결이 들어오면서 그 유용성이 사라지다시피 한 문학장르인데 오히려 극히 현대에 와서 일부 흐름을 타고 그것이 시조의 한계성을 극복할 무슨 대안인 것처럼 외치는 인식이 창궐하면서 새싹이라 할 젊은 신인이나 일부 중견들이 다투어 사설시조에 집착함으로써 시조의 율격이 무너지고 있는 현 실정이야 말로 참으로 걱정해야 할 일이다. 시조는 '형태의 엄격성'과 '소재의 한계성' 때문에 오히려 '시조적인 것'이며 언어의 절제와 완결미가 돋보이는 것이다.
시조는 시조의 길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가 있다. 한정된 틀에 현실의 문제를 다 담으려 하기 때문에 파격논자들의 비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오늘의 이 복잡다단한 산업사회에서 시조의 필요성이 대두되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조는 자유시가 못 가지는 그리고 전세계에 내놓을 우리의 고유한 율격을 가진 전통시다. 자유시를 따라가며 그 흉내를 내다가는 시조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박재삼은 율격에 따라 시조로 쓸 수 있는 정서와 자유시로 쓸 수 있는 정서가 따로 있다고 하며 그것을 몸소 실천 해 보인 사람이다. 시조의 혁신과 현대화는 율격을 무시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율격을 지켜나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도 시조가 자유시와의 변별성을 가지고 그나마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형식 때문이지 그 내용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용이야 이미 씨의 말 마따나 '시적인 가능성'이 현대시조에 만연해져 있지 않은가. 오늘의 독자는 절제된 서정을 우리 전통가락에 얹어 놓은 정형적 현대시를 읽고저 한다. 이러한 독자의 needs에 다가가려 면 형식에 있어서만은 "시조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씨의 말대로 '역사의 허구와 심미적 기능'의 극복이 하필 왜 고유한 우리 율격의 파괴와 연결되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바둑을 보면 그 좁은 19로의 엄격한 룰과 한정된 공간에서도 역사에 한번도 똑같은 대국이 없이 천변만화의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시조의 율격이 우리에게 맞지 않으면 어느 시기에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없어져 결국 도태될 것이다.
필자는 아직은 우리의 시조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더구나 오늘의 시세계가 무잡한 산문화 경향으로 치닫는 이 때 "시는 짧을수록, 음악적 율격이 있을수록 오래 기억되고 더 좋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증명해 줄 시 형태는 우리의 시조뿐이라고 믿고 있다. 미당도 시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시가 짧아질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시조계는 오히려 자유시가 극복하려고 하는 산문성을 추종하여 사설시조니 옴니버스시조니 하는 것이 난무하고 형태이완을 무슨 새로운 시도인 양 호도하면서 이를 걱정하는 쪽을 '세습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시대 역행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격을 괴롭히지 말고 시조의 존재의 이유와 문학성을 높이고 대중성의 확보를 위해 우수 신인이든 늙은 신인이든 시조의 발전에 필요한 이상 그 추천과 등단의 문을 여는데 인색치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현대시는 자유시인 현대시와 정형시인 현대시조의 양대 수레바퀴로 우리 시단에 영속적으로 살아남아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박구하
* 서울대 법대
*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
* 제1회 올해의 시조문학작품상 수상.
* 논문 "고전시가의 국역과 감상". "달가람" "연대" 시조동인. 계간<시조문학> 편집간사.
* 현 (주)기아 인터트레이드 대표이사.
[출처] 현대시조, 극복의 논리/유재영|작성자 장지성
현대시조, 극복의 논리 / 유재영
1. 세습적 글 쓰기와 주체적 글 쓰기
오늘의 시조 단에는 두 가지 종류의 창작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시조라는 형식을 빌려 세습적으로 글 쓰기를 하는 쪽과 다른 하나는 주체적 언어로 시조를 현대시로 이어가는 쪽이다. 아직도 어떤 시조 전문지는 회갑을 넘긴 사람들을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추천 사를 싣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사어는 물론이거니와 소재 선택에 있어서도 조선시대 풍속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것이 대부분인 시조를 두고 우리는 시라기보다는 세습적 글 쓰기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툭하면 고시조의 잣대를 들고 나와 <시조 적>이다 아니다를 반복하는 맹목적 율격주의자들도 있다.
오늘의 시조는 시조 적 가능성과 시적 가능성을 함께 하는 복합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시조 적 가능성을 무조건 주장할 경우 시 쓰기가 아닌 세습적 글 쓰기가 된다는 점이다. 시어도 옛것이요, 소재도 옛것이요, 생각도 옛것이 될 때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 시 쓰기로 볼 것인가. 흔히 이들이 후자를 비판하는 경우는 시조의 기존 전형과 달라 보인다. 시어가 고유어에서 일탈되었다, 이미지가 현대시와 동일하다 등의 이유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로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파격에 대한 인식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현대시조의 제반문제는 가람 이후 김상옥·이호우·장순하로부터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반복된 지적이었지만 이런 현상이 오늘 이 시간까지 계속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많은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로 신인 배출의 문제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시조 단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는 우수한 신인을 확보하는 데 있다. 여기서 신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년퇴직하고 손자 어르던 손으로 심심파적으로 쓰는 세습적 글 쓰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주체적 시 쓰기를 하는 오늘의 세대를 말한다. 최근까지도 노·장년의 신인이 쏟아져 나오는 시조 단의 풍토에서 시조문학의 미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노릇이다. 현대시조 100년 사에 변변한 시인 론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인 배출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인 후배>가 많아서 시조모임에 가기 거북하다는 한 젊은 시인의 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조가 세습적 글 쓰기가 아닐 바에야 지금이라도 이러한 시조 단의 풍토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평생을 시조 창작에 몸 바쳐온 많은 시조작가들을 누가 평가하고 누가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 문학사에 기록할 것인가. 우리는 많은 시조를 써오면서 왜 꼭 <시조 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율격 남용에서 오는 가사 풍에 대한 저항감과 그 비현대적 감각이 얼마나 현대시조의 발전을 저해해왔는가. 일본이 17세기의 시인 바쇼를 세계적인 시인으로 만들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고유한 문학형식인 시조를 얼마나 낮추어 보았던가. 이제 시조 단만이라도 미몽에서 깨어나 시조가 최소한 오늘의 우리 문학사에 바로 기록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2. 율격의 친화성에 대하여 한시에 있어서 대구(對句)는 한자의 대부분이 2음절 복합어로 4음절구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강>과 <산>은 하나의 대구가 되며 <화(花)>와 <조(鳥)>도 쉽게 대구가 된다. 이 두 대우(對偶)는 다시 <강산>과 <화조>라는 대구를 성립시킨다. 이러한 까닭으로 한시에서의 대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언어의 구조상 불가피한 표현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대부분 고시조에서 나타나고 있는 초·중장, 전·후구의 대구 활용의 빈도가 높은 것은, 우리말의 구조적 특성과 함께 오랫동안 한시의 영향권 안에서 시조가 가사의 개념으로 쓰여져 왔다는 데에서 그 결론적 의미는 보다 더 뚜렷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시조에 있어서 초·중장, 전·후구의 대구는 대부분 엄격한 반의어(反義語)에 의한 병렬(竝列,Parallelim)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시조가 성조상의 기능에서 사색적 기능으로 바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구는 시조를 포함한 우리 시가에서 대단히 독특한 표현의 한 방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구의 잘못된 사용은 말의 기계적 짝맞춤이 되고 만다. 특히 시조가 정형의 구조로서 오해를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말의 <짝맞춤>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점을 오늘의 시조작가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의 시조가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형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말의 <짝맞춤>으로서가 아니라 언어와 율격의 친화력에 더욱 접근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적·청각적 효과와 단어의 함축과 상징, 그리고 문법적 기능에까지 포함하여 보다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조에서 가장 형식의 엄격성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단시조이며 단시조의 역할은 사실상 오랫동안 <절구(絶句)>의 의미로 받아들여왔다. <절구>의 의미는, 시조에 있어서 어떤 내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감수성의 확대 - 곧 현대시조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상존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절구>는 있되, 시는 없는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시조가 안고 있는 커다란 불행이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말의 <짝맞춤>에서 얻은 것은 <절구>이고, 잃은 것은 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가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활용이 말의 <짝맞춤>이 아닌 병렬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3. 전통과 전승의 차이 흔히 시조를 일컬어 <전통시가>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통>이라는 뜻이 옛 문학의 양식쯤으로 알고, 시조가 지닌 고유성이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 첫번째 예로 형식의 엄격성이다. 전통은 곧 형식이고 일정한 형식에서 벗어난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예로는 제한된 소재의 한계성이다. 이른바 <전통성>에 부합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조 단에서 말하는 <전통>이라는 것의 실체를 명백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전통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어떠한 민족의 특성을 항구적이고 고정적이며 개체적 존재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대적 전변과 생성적 유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별해 채택하기보다는 두 가지를 함께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자의 고정적 존재로만 본다면 전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가변성을 수용할 수 없고, 후자인 전변적인 것에 국한하면 시대 변화의 근본적 원인을 밝힐 수 없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전통>이란 생성되는 가변적인 부분과 항구성을 지닌 객체적 존재라는 두 가지의 공통된 인식에서 그 의미가 찾아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승>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전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세대의 전변을 낳은 동인으로서 역사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 전통과 전승이 갖는 주체성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시조는 전수의 문학이 아니라 전승의 문학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오늘의 정형시인들이 시조를 전승이 아니라 전수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오해들은 전향적 시조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왜 우리가 시조를 써야 하는지, 왜 우리가 전수가 아닌 전승의 개념으로 시조를 보지 못하는지, 왜 오늘의 문학으로서 시조가 시대적 역동성에 뒤처지고 있는지... 이러한 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 자문과 자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 시조의 현대문학적 단층 형성을 위하여 시조에 있어서 심미적 현상에 대한 거부감이 자주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시조가 아직도 현대문학으로서의 단층 형성에 모호한 입장이라는 점에서 보다 충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A.하우저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연구의 목적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상황의 전개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끊임없이 단절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 살아 있는 현실의 존재가 없는, 과거의 사실들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의식의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곧 허구이고 오로지 심미적 기능으로서만 위안되는 독자의 視點 능력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특히 역사 속의 많은 작품들은 오늘의 독자에게 뚜렷한 적응성을 지닐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 시조는 기록적인 가치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꾸준히 보여왔다. 여기서 꾸준히라는 의미는 시조가 발생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해당될 이만큼 현실의식에 등한한 우리 문학의 장르였다는 점으로 파악되어야할 것이다.
시조 발생기로 볼 수 있는 고려조 말기의 대부분 작품들은 회고조에 충실했고,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의절가> 등 대부분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아왔다. 사실 시조형태의 발견은 대부분 주자학의 신봉자였던 고려조 유학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군주의 은총, 자연의 찬양, 충의의 표현으로 고시조 대부분이 주자학의 지도이념으로 원용되어왔다.
자연을 노래하되 그 역시 군주의 은혜로 이어졌고, 꽃과 나무를 노래하되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교의 사상에 젖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상류사회의 관념적 노리개로 더 많이 이용되어왔다. 그것은 마치 이조백자가 유학도의 미의식에 바탕을 둔 색감이라는 일련의 논의와도 다름없는 사실임을 우리는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조가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이 산문화된 사설시조였다.
사설시조에서는 기존 시조가 지닌 평면적·자위적 구조에서 강력한 사회의식을 띠기 시작했다. 육감·애정·패륜·응전 등의 형태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으나, 詩形으로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시조의 기능이나 내용보다 실학사상 이후 우리 사회 현실은 더욱 복잡해지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가 도처에서 상응하였기 때문이었다. 덧붙여서 말하면 시조는 양식이 갖는 전통성과 상호견제하는 가운데 시조의 혁신이나 현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고유양식이기도 하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와는 달리 문자보다는 창을 위주로 그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어 있다. 현대시조가 사설 중심으로 발전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많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설시조의 형식이 미완인 채 우리는 자유시의 거대한 구조와 만나고 말았다. 시조가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갖는다면 평시조 중심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하이쿠는 한 줄도 길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시조문학의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시조문학의 단층 형성에 매우 불리하고도 어려운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시조의 현대문학 단층 형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상당한 긍정적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또 한편으로는 오늘의 시조작가들이 극복하여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절대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그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은 A.하우저의 논리대로 우리의 시조에 있어서도 역사 속의 허구와 심미적 기능의 극복이며, 그것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시조는 <과거의 문학>으로 존재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시조는 지나친 고시조의 반복으로 많은 독자들을 상실해가고 있다. <시조는 형태의 우수성만이 강조될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현실과의 부딪침에 있어서 보다 더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바로 오늘의 문학은 현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선도의 <五友歌>가 그 당시의 현실이었다면, 오늘의 현실은 다시 윤선도의 <五友歌>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견·도화·백로·낙화 따위가 왜 우리의 현실이어야 하며, 쓰잘데없는 헌시주의자들이 왜 우리의 시조작가로 논의되어야 하는지 오늘의 우리 시조가 보다 더 명확한 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시조의 현대문학으로서의 단층 형성은 매우 어려운 입장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본다.
시조는 시조이어야 한다 / 박구하
-"현대시조극복의 논리" 다층 2000 여름호를 읽고-
(이 글은 계간문예지 <다층> 2000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임)
<다층> 2000 여름호의 "시조문학특집"은 시조의 위상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획이었다. 이 특집에 실린 유재영씨의 "현대시조, 극복의 논리"는 일부 쟁점에 있어 구체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신인배출의 문제점과 고시조로부터 전승되어온 시조율격의 고수가 마치 시조를 후퇴시키고 있는 장본인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어 반론코저 한다.
첫째
오늘의 시조단을'세습적으로 글쓰는 쪽'과 '주체적으로 시쓰는 쪽'으로 양분하고"시어도, 소재도, 생각도 옛것이 될 때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 시쓰기로 볼 것인가" 반문하면서 이를 고수하는 쪽을 '세습적' 또는 맹목적 '전수자'라 하고 이를 일탈하는 쪽을 '주체적' 또는 '전승자'라 하고 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시조의 기본 전형'을 고수하는 것, 사어(死語)'나 '고유어'를 쓰거나, '이미지가 현대시적이 아닌 것' '파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점등을 '옛 것'이라 하는 것 같다.
무릇 글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쓰는 사람의 당대의 글이다. 그 사람이 이전의 것을 말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할 것도 없이 인간이 자연을 통해 느끼는 정서는 그 욕망에 변화가 없는 한 같을 것이므로 유사한 정서나 회고조의 반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인식의 방법과 표현기법에서 동서고금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고어(古語)나 사어, 고유어로도 얼마든지 정서를 표현하거나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시정신에 따라 '백로', '낙화', '조선시대의 풍속화' 등의 고루한(?) 소재로도 참신하고 '주체적'인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 당대의 현실에 참여적인 사람도 있고 개인서정에 천착하는 사람도 있다. 어째서 과거단절적이고 현실참여적인 사람만이 주체적이고 그 시조만이 현대적인 것 이라 할 것인가.
바쇼의 하이꾸는 발생초기 이래 음절수하나 변격을 허용치 않고 고유어를 쓰며 시조보다 더 짧은 형식을 가지고도 전세계에 당당히 살아있다. 왜 우리는 선조가 물려 준 고유한 가락을 변경시키거나 파괴시키지 않고는 현대의 시적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으며 세계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현대시조가 고시조에서 왔고 "한국인의 성정을 3장 6구 12음보로 표현한 서정시"(김제현)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율격의 준수여부가 생명인 정형시에서 그 율격이 '기본 전형과 다른 것'이거나 '파격'을 인정하는 시조가 어떻게 시조일 수 있는가. 고유어'로 쓰거나, '시조적인 가능성'에 치우쳐 쓴 것은 (주체적) 시조가 아니라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고시조와의 결별을 논한다면 어찌 시조가 수 백년의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 고유의 정통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조는 어느 시대에나 고유감정으로 민족의 모국어인 고유어로 쓰여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둘째
현대시조에 대한 제반논쟁이 반복되는 현실과 시조단이 발전하지 못하는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전문지의 늙은 '신인배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시조라는 배가 늙은 신인 들 때문에 정원초과로 젊고 우수한 신인들을 못 태웠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부끄러운 현상의 책임을 따진다면 기성시인들의 책임이 더 크고,이 땅에 바쇼나 다와라마치 같은 걸출하고 대중적인 시인이 나오지 못한 것은 기성시인들의 무능과 태만 탓이지 늙은 신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조 전문지의 폐단을 논하기 전에 이 척박한 풍토에 그 나마 시조의 맥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의 전문지들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지 격려의 시선이 필요하다.
"<노인 후배>가 많아서 거북하다"는 말과 "노.장년층이 쏟아져 나오는 풍토에서 시조문학의 미래를 운운하는 자체가 부끄럽다"는 말은 시조단에 젊은 피가 부족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아무래도 기득권의 냄새가 난다. 오늘날 '늙은 신인이 득실거리는 것(?)과 젊은 싹을 양성치 못한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무슨 운동시합이라서 나이를 따지는가. 초정, 백수 같은 원로는 갈수록 그 작품세계가 원숙하다.
인생의 예지는 나이가 들수록 빛날 수 있고 시조의 원조라 할 우탁의 탄로가도 바로 '노.장년'의 나이에 지은 것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작품성이다. 시조단은 "우리끼리"의 문학이 아니고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작품이 백화난만할 때 발전하는 것이다.
등단만 해도 그렇다. 요즘은 등단 없이도 바로 작품활동이 가능한 정보화시대다. 이제는 우리 나라와 일본 등지에나 겨우 남아 있는 "등단"이라는 제도가 21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재고해 봐야할 시점이다. 시조단이 작품성이나 연구업적 대신 등단한 밥그릇 이나 따지는 단체가 아닌 바에야 무엇이 거북한지 알 수 없다. 배출된 신인은 좋은 시인이 못되면 최소한 시조단의 후원자나 고정독자로 남을 것이다.
시조시인이 많다는 것은 (많다고 해야 자유시인이나 하이꾸 인구 80만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시조발전에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장해가 된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시조인 모임의 구심점이라 할 시조협회를 중심으로 서로 뭉치지 못하고 역대 회장단이나 유력회원들의 즉석냄비식, 따로국밥식 시조 사랑이 더 큰 문제다. 신인배출을 겁낼게 아니라 기성시인들의 권위의식, 상호 비협조, 자기표절이나 동어반복, 자기태만을 뼈 아프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 늙은 신인들이 양산되는 풍토에서 "평생을 시조창작에 몸 바쳐온 많은 시조작가들을 누가 평가하고 누가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 문학사에 기록할 것인가"라고 걱정한다. 작가는 당연히 그 업적과 작품성에 따라 당대 아니면 후대에 평가받는 것이지 "늙은 신인"이나 아류의 후배들한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신인배출의 문제는 그 본질이 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질에 있다.
시조단의 발전은 수많은 잡초가 문제가 아니라 소수의 향기 높은 난초의 생장여부에 있다. 평생을 몸바쳐온 작가들의 노작들이야말로 시조단의 보배요 만고의 등불이 될 것이므로 잡초들의 타작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타작들을 두고 자유시단에서 시조를 얕본다면 품격 높은 시조를 보지 못한 그들의 무지 탓이지 시조단이 통째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전문지의 신인양산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신인확보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
차제에 필자는 신춘문예제도의 개선을 제안한다. 작금의 신춘문예는 마치 출제위원이 예고 된 시험같이 몇몇의 특정인이 수년간 심사단을 독점하고 밀실심사에다 평면적인 심사평만 언급하고 있어 자칫 시조흐름을 왜곡하거나 아류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 금년 중앙지 신춘 문예 당선작중 2/3가 사설시조이고, 당장 표절이나 율격이 문제되고 있지 않은가.
시조당선작이 옆에 게재된 동시보다 못하다는 쑥덕공론이 있고 자유시와 변별이 안되는 현실에서 신문사들이 있던 지면도 폐지해버리는 수모를 언제까지 겪을 것인가. 씨는 "현대시조 100년사 에 변변한 시인론 하나 못 가지고 있는 것"도 늙은 신인들의 양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춘문예야말로 그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수 십년에 걸쳐 탄생시킨 '우수신인'들이 문예지 출신의 늙은신인들 때문에 활동을 못해서 시조단이 침체에 빠져있다 할 것인가. 솔직히 요즘 신춘문예는 <다층>지의 신인추천제도보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신춘문예가 나름대로 순기능을 하자면 앞으로 누가 봐도 합리적인 방법 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늙은 신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수 신인선발의 공정성의 확보, 사후활동지원 등이야말로 시조의 백년대계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셋째
"왜 시조는 꼭 <시조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율격남용'이 '저항감'을 주고 '비현대적 감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감히 묻건대, 그럼 시조를 쓰는데 '시조적'이지 않고 어떻게 시조를 쓰는가. 시조는 <시조적>이기 보다 <시적>인 것으로 써야한다면 자유시와 어떻게 변별할 것인가. 시조는 내용의 심화도 중요하나 그 이전에 시조의 형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한다고 다 한국인이 아니 듯이 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시조적으로' 쓰지 않으면 시조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시조의 율격은 한시나 하이꾸와 달리 자수에 약간의 여유가 있고 바로 이 여유 있는 가락이 우리 정서에 맞는 호흡체계로 가다듬어져 율격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인데 그 기본틀을 깨고 파격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실험이거나 시도이거나 막론하고 "사이비 시조"지 시조는 아니다. 그리고 '율격남용'이라고 하는데 시조의 율격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그 율격에는 남용이고 절약이고 할 여지가 없다. 오직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준수가 있을 뿐이다. 씨의 말대로 '율격남용'이 '저항감'을 주고 그 율격이 '비현대적인 감각'이라면 그 율격의 바탕 위에 서 있는 시조는 이미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율격을 지키는 것과 고 시조를 답습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기실 아직도 고투로 고시조를 '세습적으로' 쓰는 사람 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씨가 걱정할 정도로 시조단의 발전을 저해할 세력은 못된다. "툭하면 고시조의 잣대를 대고" 시비를 건다고 하는데 그럼 무엇으로 변별할 것인가. 가람이나 오늘의 통설에 따라도 그 율격은 고시조와 다르지 않다. 전통은 전승되는 것이지만 그 뿌리에 대한 전수가 있은 후의 일이다. 고유한 율격이 있는 것이 정형시로서의 시조의 본질인데 율격의 잣대로 율격의 일탈을 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율격이 "불편"하면 자유시로 이행하든지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창설하든지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시조 주변을 맴돌 필요가 없다. 일찍이 가람선생은 시조의 혁신을 위하여 3장8구를 주장하며 시조의 대중화를 위하여 자수율에 여유를 인정하면서도 시조의 품격을 잃을 경우 시조의 소멸가능성을 경계하였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넷째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오늘까지 현실의식에 등한한 문학"이었고 '사회의식'에 눈을 뜬 사설시조가 등장하기까지 "문학으로서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상류사회의 노리개로 이용 되어 왔다"고 하는 대목은 그냥 들어줄 수가 없다.
물론 현실 도피적인 면이 시조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도 그 자체로 그 시대의 노래였다. 시조는 출발부터 "시절가조(時節歌調)" 로서 당대의 현실을 노래해 왔고 기실 회고가, 의절가, 음풍농월가도 뒤집어보면 망국의 한, 충의의 표상, 유배 또는 사화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현실비판 내지 역설적 참여의 문학인 것이다. 감군(感君), 충효, 유교사상은 각각 그 당시에서는 현실이요 시대이념이었다. 이를 오늘의 잣대로 매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시조야말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권위에 구애됨이 없이 왕, 양반에서 평민, 기녀 등 우리 민족의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고루 애용했던 민족시가였지 특정계층의 '노리개'였던 적은 없다.
사설시조는 조선후기 일시 유행하다가 이 땅에 자유시의 물결이 들어오면서 그 유용성이 사라지다시피 한 문학장르인데 오히려 극히 현대에 와서 일부 흐름을 타고 그것이 시조의 한계성을 극복할 무슨 대안인 것처럼 외치는 인식이 창궐하면서 새싹이라 할 젊은 신인이나 일부 중견들이 다투어 사설시조에 집착함으로써 시조의 율격이 무너지고 있는 현 실정이야 말로 참으로 걱정해야 할 일이다. 시조는 '형태의 엄격성'과 '소재의 한계성' 때문에 오히려 '시조적인 것'이며 언어의 절제와 완결미가 돋보이는 것이다.
시조는 시조의 길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가 있다. 한정된 틀에 현실의 문제를 다 담으려 하기 때문에 파격논자들의 비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오늘의 이 복잡다단한 산업사회에서 시조의 필요성이 대두되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조는 자유시가 못 가지는 그리고 전세계에 내놓을 우리의 고유한 율격을 가진 전통시다. 자유시를 따라가며 그 흉내를 내다가는 시조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박재삼은 율격에 따라 시조로 쓸 수 있는 정서와 자유시로 쓸 수 있는 정서가 따로 있다고 하며 그것을 몸소 실천 해 보인 사람이다. 시조의 혁신과 현대화는 율격을 무시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율격을 지켜나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도 시조가 자유시와의 변별성을 가지고 그나마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형식 때문이지 그 내용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용이야 이미 씨의 말 마따나 '시적인 가능성'이 현대시조에 만연해져 있지 않은가. 오늘의 독자는 절제된 서정을 우리 전통가락에 얹어 놓은 정형적 현대시를 읽고저 한다. 이러한 독자의 needs에 다가가려 면 형식에 있어서만은 "시조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씨의 말대로 '역사의 허구와 심미적 기능'의 극복이 하필 왜 고유한 우리 율격의 파괴와 연결되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바둑을 보면 그 좁은 19로의 엄격한 룰과 한정된 공간에서도 역사에 한번도 똑같은 대국이 없이 천변만화의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시조의 율격이 우리에게 맞지 않으면 어느 시기에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없어져 결국 도태될 것이다.
필자는 아직은 우리의 시조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더구나 오늘의 시세계가 무잡한 산문화 경향으로 치닫는 이 때 "시는 짧을수록, 음악적 율격이 있을수록 오래 기억되고 더 좋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증명해 줄 시 형태는 우리의 시조뿐이라고 믿고 있다. 미당도 시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시가 짧아질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시조계는 오히려 자유시가 극복하려고 하는 산문성을 추종하여 사설시조니 옴니버스시조니 하는 것이 난무하고 형태이완을 무슨 새로운 시도인 양 호도하면서 이를 걱정하는 쪽을 '세습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시대 역행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격을 괴롭히지 말고 시조의 존재의 이유와 문학성을 높이고 대중성의 확보를 위해 우수 신인이든 늙은 신인이든 시조의 발전에 필요한 이상 그 추천과 등단의 문을 여는데 인색치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현대시는 자유시인 현대시와 정형시인 현대시조의 양대 수레바퀴로 우리 시단에 영속적으로 살아남아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박구하
* 서울대 법대
*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
* 제1회 올해의 시조문학작품상 수상.
* 논문 "고전시가의 국역과 감상". "달가람" "연대" 시조동인. 계간<시조문학> 편집간사.
* 현 (주)기아 인터트레이드 대표이사.
[출처] 현대시조, 극복의 논리/유재영|작성자 장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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