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번역) - 690[4 ~ 91](241029)
< 전 체 번 역 >
한편 원상은 부수를 나와 동쪽으로 이동하여 양평에 이르러 양평정에 군사를 주둔했는데 이곳은 기주에서 십칠 리 떨어져 있고 한 쪽은 부수와 가까운 거리이다. 원상은 군사들에게 땔나무와 마른 풀을 한데 모아 밤이 되면 불을 질러 신호를 삼도록 했다. 그리고 주부 [主簿] 이분을 조조군사의 도독으로 변장시켜 곧장 성 아래로 가게 했다. 이분은 성 아래서 큰 소리로 “문 열어라”라고 외쳤다. 심배가 이부의 음성을 알아듣고 문을 열어 성중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부 : “원상께서는 이미 군사를 양평정에 진을 쳐놓고 접응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중의 병사들이 출동할 때 불을 놓아 신호를 보내주세요.” 심배는 성중의 풀 더미에 불을 놓아 신호를 보내게 했다.
이부 : “성중에 양식이 부족하니 늙고 약한 병사들과 부인들을 내 보내 항복하도록 하면 조조 측에서는 별도의 대비를 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백성들 꽁무니에 병사들을 잇달 아 내 보내어 저들을 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심배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음 날, 성 위에 백기가 꽂혔다. 백기위에 “기주 백성들 항복”이라 쓰여 있다.
조조 : “이는 성중에 양식이 없다는 표시이다. 노약한 백성들을 투항시키고 틀림없이 그 뒤를 이어 병사들을 딸려 내 보낼 것이다.” 조조는 장료와 서황을 시켜 각각 삼천군마를 인솔하고 양쪽에 매복토록 지시했다. 조조는 직접 말을 타고 휘개를 펼치고 성 아래까지 나갔다. 과연 성문이 열리는 곳에 백성들이 연로한 노인들을 부축하고 어린 애들을 이끌고 손에는 백기를 들고 나왔다. 백성들이 다 나왔을 때에 성중의 병사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조조는 홍기를 한 번 휘둘러 장료와 서황이 양편에 매복해 두었던 병사들을 일제히 뛰쳐나와 모조리 쳐부수도록 하니 성중에서 나온 병사들은 견디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뒤돌아 성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직접 말을 달려 뒤쫓아 가서 조교 옆에 도달하자 성중에서 쇠뇌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서 조조의 토구를 명중시켜 하마터면 머리를 꿰뚫을 뻔했다. 여러 장수들이 급히 달려들어 구출하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조조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말을 바꿔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원상의 영채를 공격하니 원상이 직접 대적하려 나왔다.
이때 여러 곳의 군마가 일제히 내달려 나와 양군이 혼전을 했는데 원상이 대패했다. 원상은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 서산으로 가서 하채했다. 그곳에서 사람을 시켜 마연과 장의의 군사를 속히 오라고 전갈을 보냈다. 이때 원상은, 조조가 이미 여광과 여상을 시켜 마연과 장의 두 장군을 초안해 오도록 한 사실을 몰랐다. 두 장군은 여광과 여상을 따리 가서 항복했으며 조조는 이번에도 역시 마연과 장의를 열후에 봉했다. 조조는 그날로 군사를 전진시켜 서산을 공격하면서 먼저 여광, 여상, 마연 그리고 장의에게 원상의 양도를 끊게 했다. 원상은 서산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밤에 남구[지명]로 도망쳤다. 미처 영채를 세우기도 전에 사방에서 화광이 치솟고 대기하고 있던 복병들이 일제히 공격해 들어옴으로 너무 급해서 사람은 갑옷을 입지 못하고 말은 안장을 얹지도 못하고 도망쳤다. 원상의 군대는 크게 무너져 오십 리를 도망쳤다. 세는 궁하고 힘은 다해서 할 수 없이 예주 자사 음기[인명]를 조조 진영에 보내어 항복을 청했다. 조조는 거짓으로 항복을 받아주겠다 하고는 도리어 그날 밤 장료와 서황으로 하여금 겁채를 하도록 했다. 원상은 인수와 절부 그리고 의갑 치중등을 모조리 버리고 중산[지명]을 바라고 도망했다.
< 原 文 >
却說袁尚出滏水界口,東至陽平,屯軍陽平亭,離冀州十七里,一邊靠著滏水。尙令軍士堆積柴薪乾草,至夜焚燒爲號,遣主簿李孚扮作曹軍都督,直至城下,大叫:「開門!」審配認得是李孚聲音,放入城中,說:「袁尙已陳兵在陽平亭,等候接應;若城中兵出,亦擧火爲號。」配敎城中堆草放火,以通音信。孚曰:「城中無糧,可發老弱殘兵並婦人出降;彼必不爲備,我即以兵繼百姓之後出攻之。」配從其論。
次日,城上豎起白旗,上寫「冀州百姓投降」。操曰:「此是城中無糧,敎老弱百姓投降;後必有兵出也。」操教張遼、徐晃各引三千軍馬,伏於兩邊。操自乘馬,張麾蓋至城下。果見城門開處,百姓扶老攜幼,手持白旗而出。百姓纔出盡,城中兵突出。操教將紅旗一招,張遼、徐晃兩路兵齊出亂殺,城中兵只得復回。操自飛馬趕來,到弔橋邊,城中弩箭如雨,射中操盔,險透其頂。衆將急救回陣。操更衣換馬,引衆將來攻尙寨,尙自迎敵。
時各路軍馬一齊殺至,兩軍混戰,袁尙大敗。尙引兵退往西山下寨,令人催取馬延、張顗軍來。不知曹操已使呂曠、呂翔去招安二將。二將隨二呂來降,操亦封爲列侯。即日進兵攻打西山,先使二呂、馬延、張顗截斷袁尙糧道。尙情知西山守不住,夜走溢口。安營未定,四下火光並起,伏兵齊出,人不及甲,馬不及鞍。尙軍大潰,退走五十里,勢窮力極,只得遣豫州刺史陰夔至操營請降。操佯許之,却連夜使張遼、徐晃去劫寨。尙盡棄印綬節鉞,衣甲輜重,望中山而逃。
< 文 段 解 說 >
(1)却說袁尚出滏水界口,東至陽平,屯軍陽平亭,離冀州十七里,一邊靠著滏水。尙令軍士堆積柴薪乾草,至夜焚燒爲號,遣主簿李孚扮作曹軍都督,直至城下,大叫:「開門!」審配認得是李孚聲音,放入城中,說:「袁尙已陳兵在陽平亭,等候接應;若城中兵出,亦擧火爲號。」配敎城中堆草放火,以通音信。孚曰:「城中無糧,可發老弱殘兵並婦人出降;彼必不爲備,我即以兵繼百姓之後出攻之。」配從其論。
각설원상출부수계구,동지양평,둔군양평정,이기주십칠리,일변고저부수。상영군사퇴적시신건초,지야분소위호,견주부이부분작조군도독,직지성하,대규:「개문!」심배인득시이부성음,방입성중,설:「원상이진병재양평정,등후접응;약성중병출,역거화위호。」배교성중퇴초방화,이통음신。부왈:「성중무량,가발로약잔병병부인출항;피필불위비,아즉이병계백성지후출공지。」배종기론。
靠 기댈 고, 다가서다, 접근하다. 堆 언덕 퇴, 쌓이다, 쌓다. 積 쌓을 적. 柴 섶 시, 산야에 절로 나는 왜소한 잡목. 薪 땔나무 신, 잡초 신. 柴薪 땔나무. 孚 미쁠 부. 扮 꾸밀 분. 發 필 발, 행하다, 행동을 취하다.
< 해 석 >
한편 원상은 부수를 나와 동진하여 양평에 이르러 양평정에 군사를 주둔했는데 이곳은 기주에서 십칠 리 떨어져 있고 한 쪽은 부수와 가까운 거리이다. 원상은 군사들에게 땔나무와 마른 풀을 한데 모아 밤이 되면 불을 질러 신호를 삼도록 했다. 그리고 주부
[主簿] 이분을 조조 군사의 도독으로 변장시켜 곧장 성 아래로 가게 했다. 이분은 성 아래서 큰 소리로 “문 열어라”라고 외쳤다. 심배가 이부의 음성을 알아듣고 문을 열어 성중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부 : “원상께서는 이미 군사를 양평정에 진을 쳐놓고 접응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중의 병사들이 출동할 때 불을 놓아 신호를 보내주세요.” 심배는 성중의 풀 더미에 불을 놓아 신호를 보내게 했다.
이부 : “성중에 양식이 부족하니 늙고 약한 병사들과 부인들을 내 보내 항복하도록 하면 조조 측에서는 별도의 대비를 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백성들 꽁무니에 병사들을 잇달아 내 보내어 저들을 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심배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2)次日,城上豎起白旗,上寫「冀州百姓投降」。操曰:「此是城中無糧,敎老弱百姓投降;後必有兵出也。」操教張遼、徐晃各引三千軍馬,伏於兩邊。操自乘馬,張麾蓋至城下。果見城門開處,百姓扶老攜幼,手持白旗而出。百姓纔出盡,城中兵突出。操教將紅旗一招,張遼、徐晃兩路兵齊出亂殺,城中兵只得復回。操自飛馬趕來,到弔橋邊,城中弩箭如雨,射中操盔,險透其頂。衆將急救回陣。操更衣換馬,引衆將來攻尙寨,尙自迎敵。
차일,성상수기백기,上寫「기주백성투강」。조왈:「차시성중무량,교로약백성투강;후필유병출야。」조교장료、서황각인삼천군마,복어양변。조자승마,장휘개지성하。과견성문개처,백성부로휴유,수지백기이출。백성재출진,성중병돌출。조교장홍기일초,장료、서황량로병제출난살,성중병지득부회。조자비마간래,도조교변,성중노전여우,사중조회,험투기정。중장급구회진。조경의환마,인중장래공상채,상자영적。
豎 더벅머리 수, 내시, 천하다, [똑바로]세울 수. 張 베풀 장, 펼치다. 그물, 장막따위를침. 麾 대장기 휘, 지휘하다. 蓋 덮을 개, 덮개. 麾蓋 대장기와 수레에 세우는 일산. 携 끌 휴, 이끌다. 纔 겨우 재, ---에야 비로소, 방금. 招 부를 초, 흔들다. 亂 어지러울 란[난]. 只得 부득불, 할 수없이, 부득이. 弩 쇠뇌 노. 盔 투구 회. 險 험할 험, 하마터면. 頂 정수리 정, 머리. 更衣[경의] 의복을 갈아입다, 변소에 가다.
< 해 석 >
다음 날, 성 위에 백기가 꽂혔다. 백기위에 “기주 백성들 항복”이라 쓰여 있다.
조조 : “이는 성중에 양식이 없다는 표시이다. 노약한 백성들을 투항시키고 틀림없이 그 뒤를 이어 병사들을 딸려 내 보낼 것이다.” 조조는 장료와 서황을 시켜 각각 삼천군마를 인솔하고 양쪽에 매복토록 지시했다. 조조는 직접 말을 타고 휘개를 펼치고 성 아래까지 달려갔다. 과연 성문이 열리는 곳에 백성들이 연로한 노인들을 부축하고 어린 애들을 이끌고 손에는 백기를 들고 나왔다. 백성들이 다 나왔을 때에 성중의 병사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조조는 홍기를 한 번 휘둘러 장료와 서황이 양편에 매복해 두었던 병사들을 일제히
뛰쳐나와 모조리 쳐부수도록 하니 성중에서 나온 병사들은 견디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뒤돌아 성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직접 말을 달려 뒤쫓아 가서 조교 옆에 도달하자 성중에서 쇠뇌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서 조조의 토구를 명중시켜 하마터면 머리를 꿰뚫을 뻔했다. 여러 장수들이 급히 달려들어 구출하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조조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말을 바꿔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원상의 영채를 공격하니 원상이 직접 대적하려 나왔다.
(3)時各路軍馬一齊殺至,兩軍混戰,袁尙大敗。尙引兵退往西山下寨,令人催取馬延、張顗軍來。不知曹操已使呂曠、呂翔去招安二將。二將隨二呂來降,操亦封爲列侯。即日進兵攻打西山,先使二呂、馬延、張顗截斷袁尙糧道。尙情知西山守不住,夜走濫口。安營未定,四下火光並起,伏兵齊出,人不及甲,馬不及鞍。尙軍大潰,退走五十里,勢窮力極,只得遣豫州刺史陰夔至操營請降。操佯許之,却連夜使張遼、徐晃去劫寨。尙盡棄印綬節鉞,衣甲輜重,望中山而逃。
시각로군마일제쇄지,양군혼전,원상대패。상인병퇴왕서산하채,영인최취마연、장의군내。부지조조이사여광、여상거초안이장。이장수이려내항,조역봉위열후。즉일진병공타서산,선사이려、마연、장의절단원상양도。상정지서산수부주,야주남구。안영미정,사하화광병기,복병제출,인불급갑,마불급안。상군대궤,퇴주오십리,세궁역극,지득견예주자사음기지조영청항。조양허지,각연야사장료、서황거겁채。상진기인수절월,의갑치중,망중산이도。
殺 빠를 쇄, 심할 쇄, 감할 쇄, 매우 쇄, 죽일 살, 없앨 살. 催 재촉할 최. 招 부를 초. 招安 (무마(撫摩)하여) 복종시키다, 투항하게하다, 귀순시키다. 情知 확실하게알다
情 뜻 정, 정성 정, 명백히. 不住[중] 그치지 않다, 살지 않다, 거주하지 않다, ---하지 못하다. 極 다할 극, 남아있지 않다. 夔 조심할 기. 佯 거짓 양. 連夜 1. 며칠 밤을 계속함. 2. 밤새도록, 밤 내내, 밤새껏. 3. 그날 밤.(즉시 행동하는 경우에 쓰임) 4. 며칠 밤 계속. 印綬[인수] 관인(官印), 또는 관인을 묶는 끈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관인을 몸에 차고 다녔는데, 수(綬)란 그 도장 손잡이를 묶는 끈이다. 관리의 계급이 다르면 도장을 만드는 재료나 인수(印綬)의 색깔, 그리고 그것을 짜는 방법도 달랐다. 節鉞[절월] 고대 중국에서 중앙 정권이 관원에게 어떠한 권한을 수여할 때, 그 관원에게 천자의 군정(軍政) 직권을 대행(혹은 천자를 대신해 지방을 순수)하는 것을 윤허한다는 상징물로써, 그 형태나 양식은 어떤 권력을 대표하느냐에 따라서 제각기 달랐다. 절월은 주로 군사권에 따른 상징으로써 주어졌다. 輜 짐수레 치. 輜重 말이나 수레에 실은 짐, 군대의 군수품.
< 해 석 >
이때 여러 곳의 군마가 일제히 내달려 나와 양군이 혼전을 했는데 원상이 대패했다. 원상은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 서산으로 가서 하채했다. 그곳에서 사람을 시켜 마연과 장의의 군사를 속히 오라고 전갈을 보냈다. 이때 원상은, 조조가 이미 여광과 여상을 시켜 마연과 장의 두 장군을 초안해 오도록 한 사실을 몰랐다. 두 장군은 여광과 여상을 따리 가서 항복했으며 조조는 이번에 도 역시 마연과 장의를 열후에 봉했다. 조조는 그날로 군사를 전진시켜 서산을 공격하면서 먼저 여광, 여상, 마연 그리고 장의에게 원상의 양도를 끊게 했다. 원상은 서산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밤에 남구[지명]로 도망쳤다. 미처 영채를 세우기도 전에 사방에서 화광이 치솟고 대기하고 있던 복병들이 일제히 공격해 들어옴으로 너무 급해서 사람은 갑옷을 입지 못하고 말은 안장을 얹지도 못했다. 원상의 군대는 크게 무너져 오십 리를 도망쳤다. 세는 궁하고 힘은 다해서 할 수 없이 예주 자사 음기[인명]를 조조 진영에 보내어 항복을 청했다. 조조는 거짓으로 항복을 받아주겠다 하고는 도리어 그날 밤 장료와 서황으로 하여금 겁채를 하도록 했다. 원상은 인수와 절부 그리고 의갑 치중등을 다 버리고 중산[지명]을 바라고 도망했다.
2024년 10월 29일
이 종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