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시장, 그 찻집 김 숙 현
밀양 시장에 가면 그늘 깊은 나무를 닮은 찻집이 하나 있다
까만 고무신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나지막한 음악에도 어깨가 출렁이는 고요한 바람을 닮은 주인장이 있다
오래된 시집詩集들이 까무룩 졸고 있는 창가, 벽에 걸린 수줍은 그림들과 눈인사를 나누면 무단 횡단하는 까만 봉지마저 가을 풍경이 되고 낡은 의자에 앉은 나도, 액자 속 풍경이 된다
밀양 시장 언저리, 그 찻집에 가면 진홍빛 맨드라미 차 한 잔 마시며 밥 먹고 사는 일,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가물대는 이름 하나 붙잡고, 마음껏 쓸쓸해도 좋다
금요회 공부방에서 유종화 엮음의 <시 창작 강의 노트> 책을 통한 시 쓰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엔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 할 표현들을 다루었고 두 번째 시간엔 처음 시 쓰는 사람을 위하여 단락을, 세 번째 시간엔 시를 찾아가는 아홉 갈래 길 단락을 다루었으므로 시 감상평을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에 기대어 풀어봅니다.
처음 시 쓰는 사람을 위하여에 보면 멋을 내고 거짓을 부리는 데서 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만큼 시가 나옵니다란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놓고 시를 쓸 때, 지나치게 추켜 세우거나 미화시키게 되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밀양시장, 그 찻집은 느티나무 카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하여 `시는 정서의 표현이며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서 환기된 정서를 표현한다고 합니다`란 관점에서 봤을 때 좋은 표현들이 참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3연에서 무단 횡단하는 까만 봉지마저 가을 풍경이 되고
낡은 의자에 앉은 나도, 액자 속 풍경이 된다
세 번째 시 쓰기 공부 시간엔 시를 찾아가는 아홉 갈래 길을 다루었는데요 어떤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를 보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높은 학식과 많은 경험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자신의 내부에서 저도 모르게 뭉실뭉실 피어 오르는 어떤 생각과 느낌들이 많고 적으냐에 따라 좌우 됩니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밀양시장, 그 찻집에서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을 보았으며 더불어 진홍빛 맨드라미 차 한 잔에 밥 먹고 사는 일을 숙현 씨와 같이 내려 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