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시편 기자가 말씀을 지키려는 열정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는지 그것을 종일 묵상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묵상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요즘은 이렇게 읍조리다고 이렇게 번역을 해놨어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입에서 말씀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나 이런 말들이 계속 그 입에서 떠나지 않고 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스스로의 삶에 실망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말씀의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런 실망하는 부분이 생겨났을 거예요. 우리가 우리 인생에 못마땅해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것들은 내가 이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공간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너무 쉽게 우리의 일상의 삶과 분리가 됩니다. 큐티를 할 때는 적용하지만 실제로 삶에서는 적응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고 읽기는 하지만 외우긴 하지만 부적처럼 악세사리처럼 취급하고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가 정말 사랑했고 좋아했고 지키려고 했던 말씀이 자기의 삶의 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자신을 원수보다 더 지혜롭게 했고, 스승보다 노인보다 더 명철하게 해줬다는 거예요.
말씀을 늘 읊조리고 말씀에 인생을 기울여서 살았더니 이 말씀이 자기 스승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했고 노인보다 더 명철하게 했다는 겁니다. 시편 기자가 원수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 노인과 스승과 대결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악한 길로 결코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거 말씀의 맛을 보고 나니까 악한 길로 가지 않겠다는 맹세가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난 거예요.
우리가 교회의 맛을 보면 세상에 가기가 쉽지가 않아요. 말씀의 맛을 보면 세상에 맞들이기가 쉽지가 않아요. 근데 우리가 교회는 다니고 예배는 드리지만 교회나 예배나 말씀에 아직 맛이 푹 들지 않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맛들을 자꾸 기울이게 됩니다. 여기서 악한 길은 생각의 악함, 행위의 악함을 다 포함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행위로도 악한 길을 가지 않겠고 생각으로도 악한 생각을 가지 않겠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다짐합니다. 차량을 운행하다가 실수를 하거나 신호를 얻게 되면 어김없이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고 이렇게 차를 멈추게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달아나는 사람이 있어요. 달아나는 게 가능할까요? 일단 경찰이나 경찰 차나 오토바이가 나보다 훨씬 더 모는 경찰들이 실력이 운전 실력이 더 좋아요. 또 CCTV가 온 전국에 다 깔려 있어서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런데 사람이 어리석게 되면 지혜가 사라지면 잡힐 줄 알면서도 도망가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에 대해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말씀 신호등이 여러분과 저의 삶을 딱 멈추게 신호를 줬어요. 그런데도 줄행랑을 치는 거예요. 뺑소니를 치는 거예요. 달아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달아나고 회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회피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에 대한 진한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말씀을 떠나지 않게 되었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가 경험한 말씀의 농도는 꿀보다 더 진하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꿀이 얼마나 진한 것인지 아십니까? 꿀을 잘못 먹으면 사람이 기절을 해요. 이게 너무 농도가 진해서 그런 거예요. 시편 기자가 경험한 말씀의 농도가 그렇다는 거예요. 너무 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삶의 반응의 농도가 지금보다 더 짙어져야 됩니다. 시편 기자가 경험한 말씀으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거짓 행위로 인해서 얻는 유익보다 말씀을 지킴으로 얻게 되는 명철로 인해서 얻는 요역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말씀을 맛봐야 되는 거예요.
말씀을 맛보면 거짓말을 해서 얻는 유익보다 말씀에 순종해서 얻는 유익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근데 우리가 말씀을 진하게 경험한 적이 많지 않은 거죠. 말씀을 진하게 경험할수록 악으로부터는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되어 있고 거짓은 미워하게 돼 있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로부터 우리가 달아나게 되는 겁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에 대한 강력한 경험으로 인해서 말씀이 어떤 상황에도 인생의 빛이 되고 또 인생의 등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고난 중에도 생명이 위험할 때도 악인이 올무를 놓았을 때도 말씀을 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자기를 살리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은 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어떤 경우에라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다짐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말씀에 마음을 기울였다 그랬어요. 이게 말씀에 마음을 줬다는 거예요. 사람이 마음을 준 곳에 모든 신경이 우리가 꽃이잖아요. 내가 마음을 준 사람 결혼하기 전에는 마음을 준 이성에게 모든 신경과 신경이 다 꽂혀요. 결혼을 하고 나면 내가 내 마음을 둔 곳에 모든 삶의 에너지를 사람이 쏟아붓고 살아가요. 어떤 사람은 뭐 취미에 취미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요. 그래서 취미 활동에 모든 마음을 다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반대로 말씀의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거예요. 말씀의 마음을 빼앗겼어요. 말씀의 마음을 줬어요. 그랬더니 말씀이 자기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고 말씀이 자기 마음에 약이 되었다고 말하는 거 말씀의 마음을 줬더니 말씀이 비로소 자기 삶에 힘이 되고 영향력이 되고 에너지가 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없어요.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줘야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장기 선교사로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파송을 받았어요. 선교사의 생활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2년 만에 사직서를 냈어요. 왜 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좀 지난 이야기라서 어떻든 문제가 있었겠죠. 그래서 나름대로 사직서를 내고 난 이후에 자기의 삶이나 또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역에 여러 가지 이제 문제들을 깨닫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이렇게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근데 말씀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고 늘어나고 늘어날수록 목회와 관계 그리고 기도와 삶과 사역의 모든 요소가 다 회복됐다는 말씀을 죽기 살기로 읽었는데 이 말씀이 깨어졌던 모든 관계들을 다 회복시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죽기 살기로 성경 읽기라는 책을 표현했습니다. 말씀을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 이것은 삶의 수준이나 방향을 좌우하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말씀의 마음을 주셨습니까? 마음을 세상에 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마음을 기울이며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은 말씀을 어떤 자세로 어떤 가치로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대하십니까?
그 모습이 변하면 우리의 삶도 사역도 우리 가정도 변할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강도가 강할수록 말씀의 역사는 세지는 것이고, 말씀에 내 마음을 많이 줄수록 말씀은 더 힘 있게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할수록 내 인생을 비추는 말씀의 빛의 강도가 더 강력해진다는 게 말씀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내 인생을 비춰준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때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뚜렷하고 선명하게 비춰주십니까? 그럴 수 있도록 말씀의 마음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 말씀이 그렇게 역사한다는 겁니다. 112절에 보면 내가 주의 율례를 영원히 행하려고 마음을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마음을 기울였다는 말이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말씀에 내 마음을 넘겨줬다. 말씀에 내 마음을 빼앗겼다는 의미예요. 여러분은 말씀에 여러분의 마음을 주셨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뭔가 신앙생활이 아쉽고 또 안타까움이 있고 뭔가 있다면 다른 공간에 마음을 더 주지 마시고 말씀에 마음을 좀 넘겨줘 보십시오. 그러면 말씀의 힘을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선명하게 나를 인도하게 되는 것도 보게 될 것이고,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면 할수록 확실히 선명해져요. 말씀에 대한 묵상이 깊어지거나 말씀을 사모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거나 어떤 말씀에 대한 어떤 열정이 깊어지면 인생이 훨씬 더 지금보다 선명해져 가요. 그러니까 흐릿해져 가는 것 마치 우리가 시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영적인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은 말씀에 대한 집중력이 지금 내가 우리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교회든 개인이든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을 넘겨주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말씀은 더욱 선명하게 우리가 깨달아지고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목장 교회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