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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주 테마여행 / 21차 /부안 내변산 산행후기
1. 일 시 : 2011. 10. 09(일) / 6시 출발 - 9시 도착 /15시간
2. 장 소 : 새만금 /내변산 / 내소사 /곰소항
3. 참여인원 : 47명
4. 이동코스 : 상주-남상주ic-청원고속도록-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전주ic-새만금-남여치-내소사-곰소항-채석강-태인ic-호남고속도로-청원상주고속도록-남상주ic-무양청사
5. 테마여행 일정
◇등산소요시간 : 남여치매표소서-쌍선봉-월명암-자연보호헌장탑-선녀탕-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내소사주차장/ 9.9km /5시간
◇문화탐방 : 새만금/내소사/곰소항
◇별미탐방 : 새전주횟집(채석강앞) / 063-582-8711
부안의 별미로 곰소항에서 젓갈정식을 먹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어짜피 곰소항에 가면 회원모두가 젓갈을 맛보면서 구입을 할듯 싶어 젓갈정식은 취소하고 회로 저녁겸 별미로 먹기까 계획을 세우고 동양관광사장님께 부탁하여 식당을 주선받았다.
회는 좀 비싼편이였지만 백합죽에 가을 별미인 전어까지 서비스로 주시어 배불리 저녁겸 하산주를 맛볼수 있었다.
채석강 주변도 예전과는 너무나 변해서 식당과 위락시설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예전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길이 없어 왠지 세월의 변화에 씁씁함을 느꼈다
6. 테마여행 후기
부안은 볼거리도 먹걸이도 풍성한 고장이다. 오늘하루 일정도 여유롭지가 않아 좀이른 시간에 상주에서 출발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을 구경하면서 산행의 출발지인 남여치로 향했다.
단풍구경을 하기 위해 산꾼들이 모두들 북으로 갔는지 여기는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한산하게 내변산의 아름다운 조망을 감상하면서 산행을 진행하여 내소사로 하산을 하였다. 천년고찰답게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참배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천년고찰답게 채색되지 않은 대웅전의 모습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가 있었다. 곰소항에서 젓갈과 시원한 막걸리를 맛보고 채석강에서 회로 하산주겸 저녁을 먹고 부안에 대한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상주로 무사히 귀가하였다.
가보아야 할 부안의 명소중 가보지 못한 부안의 인물인 매창의 유적지에 대한것은 기록으로 옮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시인이자 기녀인 이매창이 출생한곳이자 무덤이 있는 곳이 부안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부안에서는 매창을 기념하기위해 매창공원도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다.
37세에 세상을 등진 매창의 산소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의 삶과 시를 기술해 보겠다.
매창은 1610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히니 이루지 못한 한과 함께 묻힌 것이다. 부안읍 외서리에 매창의 묘가 있다.
예전에 마을의 나뭇꾼들이 서로 벌초를 해오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또한 가극단이나 유랑극당이 부안읍내에 들어와 공연을 할때에도 그들은 먼저 매창의 무덤을 찾고 한바탕 굿을 벌이며 시인을 기렸다고 한다.
풍진 세상 고해에는 시비도 많다
깊은 규방 긴 밤이 천년만 같구려
덧없이 지는 해에 머리를 돌려보니
구름속 첩첩 청산 눈 앞은 가리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지은 절명시이다. 그가 죽은후 45년 후에 그의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졌고, 그로부터 13년후에 그가 지은 수백편의 시들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오던 시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간행하였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사람들이 이시집을 찍어달라고 하여 개암사의 재원이 바닥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허균-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때쯤이면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그리고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의 서당도 한번쯤 방문해야할 곳이다. 가보지 못한 부안의 명소는 가슴에 담아두고 떠나왔다.
새만금 - 1차공사는 끝이 났지만 아직도 매립을 다할려고 하면 1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33.9km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면서 새만금의 위용을 감상해 보았다. 새만금 준공기념탑에서 김여사님의 소녀같은 멋진 포즈입니다.
남녀치- 내변산을 종주하는 출발점이다. 일반적으로 여기서부터 산행을 하면서 좌우를 조망하고 직소폭포를 거쳐 내소사로 하산하는 등산코스이다.
10km 정도 걸리는 산행이 거리 쉽지 않음을 알리고 혹시나 해서 회원들에게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남녀치에서 출발을 하였다.
월명암-관음보살을 모신 월명암은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고승들이 세운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2년(692)에 부설거사(浮雪居士)라는 재가불자(在家佛子)가 창건했다. 월명암이라는 이름도 부설거사와 그의 부인 묘화 사이에서 태어난 딸‘월명’(月明)에서 따왔다고 한다.
월명암은 창건 이래로 많은 수난을 겪어 왔다.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졌다가 진묵대사에 의해 중수되었고, 구한말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1908년에 다시 불타고 말았다.
이후 1914년에 학명선사가 다시 세워졌으나,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발생한‘여순반란사건'으로인해 또 다시 소실되었다.
월명암에서 바라본 조망
자연보호 헌장탑 - 터가 넓어 식사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직소폭포-높이 30m이며, 변산반도국립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는 변산8경의 하나이다. 변산반도의 남서부 산악지대인 안변산지역의 선인봉 동남쪽 기슭에 직소천의 지류들이 계곡을 따라 흐르며 이룬 계류폭포이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는 1.5㎢에 이르는 용소(龍沼)가 있다.
이곳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가뭄이 심할 때는 현감이 용소 앞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계속해서 제2폭포·제3폭포와 옥녀담(玉女潭)으로 이어지며, 이 폭포 일대를 안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는다. 폭포를 중심으로 내소사·봉래구곡·중계계곡 등이 있어 일대가 울창한 나무와 암벽들로 심산유곡의 비경지대를 이룬다. 해창천-중계계곡-봉래구곡-관음봉-내소사로 연결되는 안변산 횡단등반로는 타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미를 맛보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뭄이 심해 폭포수가 흐르는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오늘 초보 산꾼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능가산 내소사-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일이 다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혜구 두타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34년(633)에 창건된 고찰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건중수를 거듭해 오다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된 절을 조선 인조때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 11년(1633년)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을 중건하였다. 그후 광무6년(1902)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중축이 있었으며, 내소사의 오늘을 있게한 해안선사가 1932년 내소사에 자리를 잡고 절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무취학 아동들과 무학청년들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서래선림을 개원하여 호남불교의 선풍을 진작시켰다.
이후 혜산우암선사가 선풍을 이어 봉래선원을 신축하고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능가산은 인도의 남해안에 있는 산 이름, 또는 현재의 스리랑카에 있는 아담스 피크 산을 가리킨다고 하며, 산 정상에는 부처의 족적(足跡)이 남아 있다고 함.
부처님이 능가산에 들어가서 설한 내용을 담은 경 이름으로 산스크리트 원본에 대한 한역본으로서 능가아발다라보경, 입릉가경 등 여러 가지 한역본이 있다.
대웅전-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
대웅보전은 높게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40尺×35尺의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집이다. 기둥간살은 넓은 편이며 중앙칸은 더넓으며, 기둥은 두껍고 낮아 평활하며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 안기둥에는 민흘림으로 안정감이 있다.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 출목 내5 출목으로 내외출목간의 차이가 심한편이어서,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내부공간은 높은 천장을 가지게 된다. 외부에서 공포는 살미끝이 심한 앙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의 조각이 새겨져 매우 장식적이고, 내부의 공포 역시 살미끝을 앙서형으로 처리했고 중도리 열주쪽은 빗반자를 사면으로 돌리고 그것을 다시 조각하였다.
정면창호는 2짝-4짝-2짝 구성으로 보다 더 안정감이 있으며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전설속의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수백년의 세월속에 채색은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지만 만져보면 감촉이 참 좋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조선후기 유명한 서화가)가 쓴 글씨다.
내부의 후불벽은 측면의 기둥열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내부공간을 확보하고 후불벽을 형성하였고 후불벽 뒷부분에는 유명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색의 天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불단의 기둥을 뒤로 물려 넓은 내부공간을 이루며 상부의 포작들은 연꽃봉오리모양으로 조각되어있고, 천장에도 가득히 장식을 했다. 안팎모두 장식으로 충만해 있지만 적절히 절제되고 통일되어 있어서 번잡한 인상은 주지는 않는다.
꽃문살
『스님,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이렇게 나와서 1년을 기다려도 목수는 오지 않으니, 언제 대웅전을 짓겠습니까? 내일은 소승이 좀 미숙해도 구해 오겠습니다.』
『허, 군말이 많구나.』
『그리고 기다리실 바엔 절에서 기다리시지 하필이면 예까지 나오셔서….』
『멍청한 녀석. 내가 기다리는 것은 목수지만 매일 여기 나오는 것은 백호혈(白虎穴)을 지키기 위해서니라.』
노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늙은 호랑이가 포효하며 노승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의 안광은 석양의 노을 속에 이글거렸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노승이 주장자를 휘저으며 호랑이 앞을 지나려 하자 대호는 앞발을 높이 들고 노승을 향해 으르릉댔다.
『안된다고 해도 그러는구나. 대웅보전을 짓기까지는 안돼.』
노승은 주장자를 들어 소나무 허리를 때렸다.
「팽」하는 소리가 나자 호랑이는 「어흥」하는 외마디 울부짖음을 남기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저녁 타 버린 대웅전 주춧돌에 앉아 산을 내려다보던 노승은 사미승을 불렀다.
『너 일주문 밖에 좀 나가 보아라. 누가 올 터이니 짐을 받아 오도록 해라.』
『이 밤중에 어떻게 일주문 밖을 나가라고 하십니까?』
『일주문 밖과 여기가 어떻게 다르기라도 하단 말이냐?』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간신히 일주문에 다다른 선우의 가슴은 철렁했다.
무슨 기다란 동물이 기둥에 기대어 누워 있지 않은가.
입 속으로 염불을 외우며 다가서니 누었던 사람이 일어났다. 나그네였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이 마중을 보내서 왔습니다.』
나그네는 아무 말 없이 걸망을 둘러메고 걸었다.
『손님, 짐을 저에게 주십시오. 스님께서 짐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나그네는 묵묵히 걸망을 건네주었다.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이 집 속엔 뭣이 들었길래 이리 무겁습니까? 노스님과는 잘 아시나요?』
나그네는 대꾸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대웅전 지을 나무를 찾아 기둥감과 중방감을 켜고 작은 기둥과 서까래를 끊었다. 다음에는 목침만한 크기로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목수는 말없이 목침만을 잘랐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노승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어언 다섯 달. 목수는 비로소 톱을 놓고 대패를 들었다.
목침을 대패로 다듬기 시작한 지 3년. 흡사 삼매에 든 듯 목침만을 다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목수양반, 목침 깎다가 세월 다 가겠소.』
선우의 비웃는 말에도 목수는 잠자코 목침만을 다듬었다. 선우는 슬그머니 화가 나 목수를 골려 주려고 목침 하나를 감췄다.
사흘이 지나 목침깎기 3년이 되던 날. 목수는 대패를 버리고 일어나더니 노적만큼 쌓아올린 목침을 세기 시작했다.
무수한 목침을 다 세고 난 목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일할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었다.
연장을 챙긴 목수는 노승을 찾아갔다.
『스님, 소인은 아직 법당 지을 인연이 먼 듯하옵니다.』
절에 와서 처음으로 입을 여는 목수를 보고 선우의 눈은 왕방울만큼 커졌다.
『왜 무슨 까닭이 있었느냐?』
노승은 조용히 물었다.
『목침 하나가 부족합니다. 아직 저의 경계가 미흡한가 봅니다.』
『가지 말고 법당을 짓게. 목침이 그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세.』
선우는 놀랐다. 목침으로 법당을 짓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산더미 같은 목침 속에서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다니-.
목수는 기둥을 세우고 중방을 걸고 순식간에 법당을 완성했다.
법당에 단청을 하려고 화공을 불러왔다.
노승은 대중에게 엄격히 타일렀다.
『화공의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봐서는 안되느니라.』
화공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밖에 나오질 않았다. 사람들은 법당안에 그려지는 그림이 보고 싶고 궁금했다. 그러나 법당 앞에는 늘 목수가 아니면 노승이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선우는 법당 가까이 가서 목수에게 말했다.
『스님께서 잠깐 오시랍니다.』
목수가 법당 앞을 떠나자 선우는 재빠르게 문틈으로 법당 안을 들여다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없는데 오색 영롱한 작은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개에 물감을 묻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선우는 문을 살그머니 열고 법당 안으로 발을 디밀었다. 순간 어디선가 산울림 같은 무서운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새는 날아가버렸다.
노호 소리에 놀란 선우가 어슴프레 정신을 차렸을 때 노승은 법당 앞에 죽어 있는 대호를 향해 법문을 설했다.
『대호선사여! 생사가 둘이 아닌데 선사는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는가. 선사가 세운 대웅보전은 길이 법연을 이으리라.』
때는 1633년. 내소사 조실 청민선사는 대웅보전 증축 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변산반도 한 기슭에 자리한 내소사 대웅전(보물 제291호)은 지금도 한 개의 포가 모자란 채 옛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리다 만 벽화는 날로 퇴색해 가고 있다
동종
이 동종은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에 소재한 (신)청림사에서 제작되었으나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가 조선 철종 4년(1853) 내소사에 옮겨진 것으로 전형적인 고려후기의 동종입니다.
당산나무- 천왕문을 들어서면 수령이 1000년이 되는 당산나무가 있다. 입암마을의 할머니 당산이라고 한다. 일주문 바로 바깥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한짝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정월보름에는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서 내소사 스님들이 재물을 준비하고 독경을 하며 입암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해방전까지는 줄다리기를 하고 그줄로 당산나무에 옷을 입히기도 했으나 지금은 인줄만 쳐놓고 재를 지낸다고 한다.
[할머니 당산나무]
[할아버지 당산나무]
곰소항-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위치한 곰소항은 조선시대부터 해군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여오다 1942년 일본의 대동아 전쟁으로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목적으로 항만을 찾던 중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이곳에 제방을 축조하여 만들었습니다.
전북지역에서 수탈한 농산물과 군수물자 등 각종 착취한 물자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군항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죠. 진서면 연동마을에서 곰소를 그리고 작도마을을 연결하는 제방을 쌓고 도로를 개설하여 육지와 연결하여 곰소가 육지가 되었으며 북으로 염전이 형성되었습니다.
곰소항에 고향이 상주 사벌인 딸레미집 젓갈집에서 젓갈과 부안의 막걸리로 시식을 한후 저마다 유명한 곰소소금과 곰소젓갈류를 한가득 장을 보았다.
곰소염전
부안에는 백합죽과 바지락 국수가 별미인데, 사장님이 백합죽과 가을의 별미인 전어 무침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회와 백합죽과 전어무침, 매운탕을 다먹기에는 배가 너무 적었는지 음식이 좀 남았다.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좋지 않은가.
식사를 일찍하신분은 채석강에 갔다왔답니다.. 고문님의 사진연출에 모두들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부안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보지못한 부안의 명소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상주로 돌아왔습니다. 잘뚫린 고속도로 덕택에 귀가가 늦을까 걱정을 했지만 출발때 공지한 시간에 도착을 할수 있었다. 다음달 테마는 전남 장성의 백양사를 품고 있는 상왕봉, 백학봉을 등산한후 장성을 둘러볼 계획입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고, 부안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