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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황새도 잡고 조개도 잡고 (6)
이듬해인 정장공 32년 여름.
정나라 영토 시래(時來)라는 곳에서 정(鄭), 제(齊), 노(魯) 3국의 군주가 다시 회합을 가졌다.
허(許)나라를 치기 위한 정상회담이었다. 시래(時來)는 황하 강변에 접한 땅으로 지금의 형양시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시래를 회담 장소로 정한 것은 삼국 모두 뱃길이 통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7월 초하룻날을 기하여 정(鄭), 제(齊), 노(魯) 3국은 일제히 허나라를 공격한다.
시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선언문이었다. 세 나라의 밀월(蜜月)시대를 알리는 선포이기도 했다.
성공리에 정상회담을 마친 정장공(鄭莊公)은 흡족한 마음으로 신정으로 돌아왔다. 태궁(太宮)으로 들어가 조상들에게 허(許)나라를 칠 것을 고했다.
태궁은 정나라 조묘를 모신 궁을 말한다.
정장공(鄭莊公)은 성밖 넓은 들판으로 나가 군마를 사열했다.
출정을 앞두고 벌이는 열병식이라 규모와 기세가 대단했다. 신정 들판은 수백 대의 병차와 수만의 병사들로 가득했다. 기치창검(旗幟槍劍)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사열식이 끝난 후 정장공(鄭莊公)은 흥에 겨웠다. 눈에 보이는 장수들마다 모두 믿음직스러웠다. 그는 문득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한가지 여흥을 생각해냈다.
"모호를 가져오라"
모호란 비단으로 만든 대형 깃발이다.
지난번 송나라를 칠 때 특별히 제작했다. 사방길이가 1장 2척이요, 각 가장자리에 24개의 금방울을 매달았다. 기폭에는 황금색 실로 '봉천토죄(奉天討罪)'라는 네 개의 큰 글자를 뚜렷하게 새겨넣었다. 깃대의 길이는 3장 3척, 당시의 1 장은 약 3미터 정도니까 총 10미터에 달하는 깃대인 셈이다. 어마어마한 대형기였다.
병사 다섯 명이 겨우 '모호'를 받쳐들고 정장공 앞에 대령했다.
무엇을 하려는가. 모두들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에 정장공(鄭莊公)이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모호를 들고 평상시처럼 걷는 자가 있으면 이번 싸움에 선봉을 삼는 동시에 노거(輅車) 한 대를 하사하리라!"
장졸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대부분의 장수들이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몇몇 힘센 장수들이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때 한 장수가 대열 앞으로 달려나왔다. 머리에 은색 투구를 쓰고, 몸에는 붉은색 전포(戰袍)와 황금 갑옷을 걸쳤다. 얼굴은 칠(漆)처럼 시커멓고 눈썹은 누에처럼 짙고 굵었다. 호랑이처럼 큰 두 눈에서는 연신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외모를 한 장수는 정나라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대부 하숙영(瑕叔盈)이었다.
"신이 이 기(旗)를 잡고 걸어보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숙영(瑕叔盈)은 병사들이 들고 있던 '모호'를 빼앗듯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3장 3척에 달하는 큰 깃대를 두 손으로 높이 쳐들고 앞으로 3보 나갔다가 다시 뒤로 3보 물러났다. 조금도 힘들어하거나 숨차 하는 기색이 없었다.
"와아....................!"
병졸들 사이에 박수 갈채와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듯 일었다.
하숙영은 대형 기(旗)를 상품으로 내놓은 노거(輅車)에 꽂은 후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수레를 모는 자는 어디 있느냐? 나를 위해 이 수레를 몰아라."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정장공(鄭莊公)이 흐뭇한 표정으로 노거를 하숙영에게 내주려 할때였다.
"주공께서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이런 외침 소리가 대열 속에서 일며 한 장수가 급히 달려나왔다. 머리에는 치관(雉冠)을 쓰고, 이마에는 녹금(綠錦)을 둘렀다. 몸에는 붉은색이 감도는 비포(緋袍)와 서피(犀皮) 갑옷을 입었다.
그 장수는 다시 한 번 외쳤다.
"기(旗)를 들고 걷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내가 기(旗)를 들고 춤을 출테니 모든 사람들은 잘 보아두어라!"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로 의인(義人)으로 이름난 대부 영고숙이 아닌가. 영고숙은 정장공(鄭莊公)의 승낙을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모호'가 꽂혀 있는 수레 앞에 가 섰다. 한 손으로 대형 깃대를 뽑는가 싶더니 몸을 빙빙 돌리며 깃발을 높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10미터에 달하는 깃대는 마치 대나무봉처럼 가볍게 영고숙의 손 안에서 놀았다. 발이 땅을 찰 때마다 영고숙의 몸은 공중 높이 솟아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졌으며, 그때마다 깃발은 두르르 말렸다가는 퍼지고, 퍼졌다가는 말리곤 하였다. 마치 9만리 드넓은 창공에서 붕새가 춤을 추는 형국이었다.
"아하 -!"
"우우..."
어찌 사람의 힘으로 저럴 수가 있을 것인가.
영고숙(潁考叔)이 깃발 휘두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놀라고 신기해하기는 정장공(鄭莊公)도 마찬가지였다.
천하의 효자이자 의인인줄로만 알았던 영고숙(潁考叔)이 이렇듯 힘이 세고 무용이 출중할 줄이야. 정장공은 너무나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인들 이를 따를 것인가. 영고숙이야말로 이 수레를 받고 선봉장이 될 장수로다!"
그런데 정장공(鄭莊公)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또다시 대열 중에서 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주공께서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돌아다보았다.
이번에는 소년 장수 한 사람이 달려나오고 있었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희고, 몸에는 녹포(綠袍)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금관을 썼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소년 장수는 앞으로 달려나오면서 손가락을 들어 영고숙을 가리키며 계속 외쳐댔다.
"그대만 기(旗)를 들고 춤을 출 줄 아느냐. 영고숙은 수레에 오르지 말고 기다려라."
영고숙(潁考叔)은 문득 자신을 향해 가까이 오는 소년 장수의 형세에서 흉악하고 살기가 가득한 것을 느꼈다.
'저것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다라고 직감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목숨을 건 싸움이 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깃발과 수레를 빼앗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피하고 보자'
순간적으로 이렇게 판단한 영고숙(潁考叔)은 재빨리 한손으로 깃대를 잡은 채 수레 위로 성큼 올라탔다. 그러고는 다른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수레를 몰아 교장(敎場)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어디로 가느냐?"
소년 장수는 방천극 한 자루를 집어들고 달아나는 영고숙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사열장 안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변했다.
정장공은 즉시 대부 공손획(公孫獲)을 불러 명했다.
"빨리 가서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려라!"
잠시 후 공손획이 소년 장수를 끌듯 데리고 교장 안으로 돌아왔다.
소년 장수는 여전히 분개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늘 영고숙(潁考叔)은 나만 업신여긴 게 아니라, 우리 희성(姬姓)을 모두 업신여긴 것이다. 내가 언제고 그자를 죽이리라!"
정나라는 희성(姬姓)이다. 여기서 희성이란 정나라 공족들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이 소년 장수는 대관절 누구이기에 희성 운운하며 영고숙을 몰아붙이는것인가.
그는 바로 정나라 창업자인 정환공의 손자 공손알(公孫閼)이었다.
자(字)는 자도(子都). 정나라 제일의 미남자라 불릴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졌다.
그러나 성격이 몹시 난폭하고 교활한데다가 정장공(鄭莊公)의 총애를 과신한 나머지 안하무인격인 행동을 자주 했다.
'자도(子都)의 교활'을 모른다면 그것은 곧 눈이 없는 자다.
훗날 아성(亞聖)이라 불리는 맹자(孟子)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 보는 안목을 말함인데, 이때의 자도(子都)가 바로 공손알(公孫閼)이다. 공손알은 그 정도로 교활하고 횡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정장공은 이 공손알(公孫閼)을 무척 총애했다. 늘 그를 비호하고 칭찬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고숙과 한판 붙으려고 하는 공손알의 행동을 야단치기는 커녕 오히려 칭찬했다.
"너의 용맹을 이길 자가 가히 없도다."
그러고는 영고숙 외에 공손알과 하숙영에게도 각각 수레와 말을 상으로 내려줌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일었났던 감정을 가라앉혀 주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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