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그레고리 비일의 글을 정리해 올리면서 조금 어려운 내용을 많이 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속량’(贖良)과 같은 기초적 신앙 용어와 관련된 비일의 신학적 설명을 구분선 아래에 올려 봅니다. 속량은 ‘Daum 국어사전- 1.몸값을 받고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하다. 2.(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대속하다.’의 뜻으로, 기독교가 아닌 세속의 국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이런 내용을 마치 성경 주석처럼 풀어 설명한 내용을 들으면 성경공부와 은혜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로마서 3장 24절에 나타나 있는 '속량'
로마서 3장 24절 나머지 부분과 3장 25절에서 바울은 칭의를 일으키는 수단 곧 "속량"과 "화목"을 통한 방법을 설명한다. 첫째,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통해서 온다고 말한다. '속량'('아폴뤼트로시스')이라는 말은 단순히 '풀어 주다' 또는 '대거나 값을 받고 풀어 주다'를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같은 말이 대가를 함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구원에 사용되기 때문에 단순히 '풀어 주다'는 말을 더 선호한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70인역에서 이 말은 일반적으로 '값을 치르고 되찾다'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와 병행하여 신약 성경 다른 곳에서 사용된 이 말은 '대가를 받고 풀어 주다'나 '몸값을 받고 석방하다'는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대가를 받고 풀어 주다'는 개념이 바울의 사상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대가를 받고 풀어 주다'는 헬라 시대 당시 헬라어의 '뤼트론'('대속' 또는 '속량') 단어군('아폴뤼트로시스'도 이 단어군의 하나)의 일관된 의미다(예, 값을 받고 노예를 석방시키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 둘째, '대가를 받고 풀어 주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값없이'(자체로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고) 칭의를 받았다는 언급으로 보아 분명하다. 하지만 3장 24절의 이어지는 말씀은 다른 어떤 존재(즉, 그리스도)가 대가를 치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셋째, 출애굽 구원 사건도 특히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의 모형이 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대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따라서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말하고, 이것은 바울이 약간 뒤에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20)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는 사실이다(똑같이 딛 2:14에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이라는 말씀이 소개된 다음에 출 19:5; 신 14:2에 대한 언급에서 출애굽 구원을 적용하고 있음도 주목하라). 마찬가지로 베드로전서 1장 18~19절도 분명히 출애굽 구원 배경을 신자들의 구속의 대가인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시킨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뤼트로오')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넷째, 디모데전서 2장 6절의 증거를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값을 치른 형벌 또는 빚에서의 해방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거기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사람’으로서, 5절) 자기를 대속물(‘안틸뤼트론’)로 주신” 분이고, 이것은 대가 지불의 개념을 전달한다. 여기서 대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이것은 자체로 마가복음 10장 45절(// 마 20:28)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뤼트론’)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이사야 53장 12절(“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의 암시이고, 아울러 이사야 53장 10~12절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바울은 마가복음 본문에 암시된 이사야서의 배경(또는 마가복음이 의존한 공관복음서 이전의 전통)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사야 53장 전체에 걸친 내용을 보면, 종은 이스라엘을 속량하고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죄책의 형벌을 위한 대리인으로 고난을 받고 자기를 제공한다. 이 점에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그리스도의 섬김을 언급하는 것은, 디모데전서 2장 6절과 마찬가지로, 이사야 53장 11절의 고난의 종 인물을 반영할 것이다.³¹⁾
다른 곳에서 ‘속량’(‘아폴뤼트로시스’)이 사용될 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피(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엡 1:7)나 그리스도의 죄 사함과 관련되어 있다. 골로새서 1장 14절 본문도 이스라엘의 출애굽 배경을 반영한다. 고린도전서 6장, 베드로전서 1장, 디모데전서 2장 본문의 용법에 비추어 보면, 에베소서 1장과 골로새서 1장 본문의 용법도 속량의 대가로 지불된 그리스도의 피(즉, 그리스도의 죽음)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약 성경, 특히 바울의 ‘속량’ 단어군의 용법에 비추어 보면, 로마서 3장 24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라는 어구는 신자들을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서 해방시키는 대가로 지불된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즉, 죽음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라는 다음 어구가 속량이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기 때문에 개연성이 있다. 일부 문법학자들은 ‘그의 피로써’ 또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문법 구성을 대가를 가리키는 여격 구조로 언급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 요소는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속량을 일어나게 하는 어떤 것을 제공하셔야 했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제공하신 것이 본질상 속량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레고리 비일, 『신약성경신학』(부흥과개혁사), pp.497-499.
첫댓글 내용이 기초 설명이고 아주 좋습니다. 초신자를 위해서 더 요약해 봅니다:
로마서 3장 24절의 속량(아폴뤼트로시스)은 신자를 죄와 정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가를 의미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단지 풀어주는 개념으로 보지만, 헬라어 용법상 속량은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대가 지불의 의미를 일관되게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은 그 뒤에 그리스도께서 대신 대가를 치르셨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구약의 출애굽 구원 사건 역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대가가 수반된 모형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성도의 구속이 금이나 은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는 대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6절의 대속물(안틸뤼트론) 표현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형벌과 빚에서 해방시키는 대가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이 대리자로 고난을 받고 자기를 제공하여 속량을 이룬다는 언약적 배경과 연결됩니다.
신약 전체에서 속량은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 및 죄 사함이라는 대가 지불의 개념과 깊이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피로써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사실은 그의 생명이 속량의 본질적인 대가였음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속량은 성도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완전한 대속의 은혜입니다.
네, 이해가 더 쉬워지네요.
칼빈(John Calvin)은 로마서 3장 24절의 ‘속량’(redemption, apolytrōsis)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적 정죄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치르신 ‘단번의 대가(몸값)’이자 완전한 대속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나 공로로는 결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형벌과 채무를 청산하는 유일한 값(price)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 속량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free grace)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가 지불이 결합된 사건으로, 신자에게 주어지는 칭의와 영원한 자비의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대가를 대신 치뤄 주신다고 해서 대속과 같은 의미 같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서 3장 24절의 '속량(Redemption)'에 대해, 죄와 사망, 마귀의 권세 아래 종노릇 하던 인간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신 '거룩한 교환(The Blessed Exchange)'이자 완전한 해방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루터의 견해를 핵심적인 관점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거룩한 교환 (The Blessed Exchange)
루터 신학의 핵심 개념인 '거룩한 교환'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수치, 하나님의 진노를 당신의 것으로 받으셨고, 반대로 당신의 완전한 의와 생명, 자유를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속량은 바로 이 교환을 통해 실현됩니다.
2.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대속
루터는 갈라디아서 3장 13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을 강조하며,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정죄와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심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셨다고 보았습니다.
3. 마귀와 사망의 권세에서의 해방
루터에게 속량은 단순한 법정적 죄 사함을 넘어,
인간을 압제하던 원수들—즉 죄, 사망, 마귀—과의 영적 전쟁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심으로 성도를 사로잡힌 상태에서 풀어나주신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4.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 (Sola Gratia, Sola Fide)
우리가 치를 수 없는 막대한 대가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온전히 지불하셨기 때문에, 속량은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오직 은혜'로 주어집니다. 신자는 이 속량의 효력을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누리게 됩니다.
3 sola 잘 알아야겠네요.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로마서 3장 24절의 속량(Redemption)을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작정하신 은혜의 언약 속에서, 그리스도의 단번의 희생 제사를 통해 죄와 형벌에서 신자를 온전히 해방시키신 구원의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츠빙글리의 속량관을 주요 관점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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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한 단번의 완전한 대속
츠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만이 인류의 죄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한 대속의 대가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나 공로, 혹은 어떠한 주술적·화합적 행위로도 죄의 형벌을 벗어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하나님 공의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키시고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유일한 중보와 해방
그는 속량을 죄와 마귀, 그리고 영원한 정죄의 권세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으로 보았으며, 이 속량을 이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제도나 성인들의 공로, 미사의 희생 제사 등 인간적 매개체는 속량의 대가가 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단번의 희생(Hebrews 10:12)만이 속량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언약적 실현
츠빙글리에게 속량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창세 전 선택에 근거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속의 값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영원한 언약의 성취이며, 신자는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 없이 오직 성령의 역사와 믿음을 통해 이 속량의 효력을 감사함으로 받아누리게 됩니다.
이분 나오면 설명에 언약 개념이 따라오더라고요.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로마서 3장 24절의 속량(Redemption, *apolytrōsis*)을 하나님의 법정적 공의와 대속적 속죄의 원리에 기초한 '법정적·대속적 해방'으로 정리합니다.
벌코프의 속량관을 주요 관점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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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적 속죄와 법정적 해방
벌코프는 속량이 단순히 죄인을 무조건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대속적 값(price)'이 지불됨으로써 이루어진 법정적 사건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인을 정죄와 율법의 저주에서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몸값(ransom)이며, 이를 통해 신자는 죄의 형벌과 법적 정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됩니다.
객관적 완성으로서의 속량과 주관적 적용으로서의 구속
벌코프는 신학적으로 속량을 두 가지 차원으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객관적 속량(Redemption Accomplished)'으로, 죄인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성취하신 대속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각 신자의 삶 속에서 죄의 권세와 오염으로부터 실제로 자유롭게 되는 '주관적 적용(Redemption Applied)'입니다.
은혜의 언약 안에서 성취된 제한속죄
벌코프는 속량이 창세 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맺으신 '구원 언약(Covenant of Redemption)'에 근거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무차별적인 모든 인류를 향한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확실하고 완전하게 구원하기 위해 치러진 실제적이고 효력 있는 속량(Particular/Definite Redemption)입니다.
죄의 형벌과 권세, 존재 자체로부터의 완전한 구원
벌코프에게 속량은 과거의 죄책(guilt) 해방에만 머무르지 않는 전인적이고 단계적인 구원 과정입니다. 신자는 칭의를 통해 죄의 형벌에서 속량받고, 성화를 통해 죄의 권세와 오염에서 지속적으로 속량받으며, 마지막 영화를 통해 육신의 부활과 함께 죄의 존재 자체와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속량받아 궁극적인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객관적, 주관적 속량의 개념 구분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던 우리를 위해 친히 거룩한 몸값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온전한 속량을 이루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성취하신 객관적 속량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삶 가운데 주관적으로 적용되어, 날마다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칭의를 넘어 성화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죄의 오염과 형벌에서 우리를 완벽하게 구원하시는 주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의지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길 원합니다.
아멘!
십자가의 완벽한 대속으로 우리를 정죄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자유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오늘 하루도 성령의 인두치심 가운데 거룩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아멘!
율법의 정죄 아래 있던 우리를 위해 친히 몸값이 되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영원하고 완벽한 속량을 이루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객관적 속량이 성령님의 은혜로 날마다 주관적으로 적용되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리길 원합니다.
칭의를 시작으로 성화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전인적으로 구원하시는 주님의 신실한 은혜를 붙들고, 오늘 하루도 거룩하고 담대하게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죄인을 풀어주는 댓가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피를, 생명 값으로 지불하신 은혜가 크고 깊기만 합니다. 속량의 은혜를 틈틈히 묵상합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