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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당 맑은 소리-정화스님 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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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2024.8.30 금요일 감이당. 반야심경 법문 ㅡ새로 출간된 정화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법문
허공 추천 0 조회 14 24.09.16 08:1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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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9.16 11:18

    첫댓글 11쪽
    요즘에 어떤 지식인들도 지식만 따지고 보면 핸드폰보다 더 뛰어난 지식인이 없어요. 그런데 그 핸드폰보다 휠씬 더 굉장한 놈이 나왔죠. 그것이 A.I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식 정보를 계속 쌓아간다고 하는 측면에서는 상향선으로서는 끝이 없어요. 계속.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비워놓고 새로운 인연하고 새로운 장을 만들어내는 능력,
    -11-
    창의적 능력을 만들어내는 이 역할은 다 비우면 끝이 있잖아요. 가장 최상의 말은
    ■■ 니가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적 정보한테도 집착하지 않는 특별한 상태에서, 애착하지 않는 그런 몸과 마음을 우리는 무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 인연에 맞는 꽃을 피운다. 무상정등정각.

  • 작성자 24.09.16 11:20

    그와 마찬가지로
    ■■ 정등정각은 그 시절 인연하고 잘 맞아야 돼요. 그래서 《그 시절하고 잘 맞는 인연을 깨워줄 수 있는 창조적 기능성》이에요.

    그래서 앞에 ■■니르바나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이것이 종교적 본질이라고 여겨왔던 불을 꺼버린 거고,
    ■■그다음에 행동 현상으로는 마음을 비우면서 시절 인연이 온전히 깨어있는 활동한다고 해서 이쪽으로 보면 무상정등 정각이고 이쪽으로 보면 니르바나라고 이렇게 봐요

  • 작성자 24.09.16 11:45

    9쪽
    근데 무명은 앞서 말한 대로 이와 같이
    《 번뇌의 본질도 공하고 보리의 본질도 공하다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을 무명이다》라고 해요.


    살아생전에 신의 판결을 받지 않고 스스로가 해탈을 이루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납득을 통해서 교단이 커져가는 거죠. 그래서 그런 분들을 타타카타라고 불러요. 인도말로 잘 가셨다.
    마음이 흔들림 없이 잘 가셨다는 뜻이에요. 무엇에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노래도 있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타타가타입니다. 그래서 여거라고 쓰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갔다. 갔다 그러면 무슨 말입니까? 갔다라는 이미지는 나로부터 멀어졌다는 이미지 잖아요. 근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돌아가셔서 좋은 해탈 세계를 가는 게 아니고 지금 내 옆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을 여거如去라고 부르면 애매해요. 그래서 갔다 오신 분이잖아요. 그래서 여래如來라고 해요.

  • 작성자 24.09.16 11:46

    그러니까 옛날에는 피안은 죽음 이후에나 갈 수 있는데 그 피안을 차안으로 옮겨온 거랑 똑같아요. 그러니까 종교적 해탈의 정체성이 그 이전이고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는 어떻게 됩니까?
    해탈은 살아서는 없어요.

    근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살아서 있지 않느냐! 마음 관측을 통해서 없던 것이 생긴 것과 똑같잖아요. ●●만일 해탈의 본질이 있고 그것이 죽음 이후에야 가능했다라고 하면은 절대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해탈을 이룰 수가 없지요. 금생에. ●●그런데 그 해탈이라고 하는 것이 특수한 본질이
    있는게 아니고, 그냥 이와 같은 마음을 닦으면 그마음속에서 아까 같이 중생적 사유의 흐름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처의 사유가 나타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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