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돌머리]님께서 "브롬덴 추장은 무사히 그 골짜기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 정신질환자의 배제와 차별의 정치경제" 라는 신영전 교수의 글을 2015. 10. 7. 게시글로 올려주셨는데, 그 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책을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을 올립니다.
원본 동영상의 주소는 https://www.youtube.com/watch?v=5Ylk300dqEg
[추신 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는 1962년 켄 키지 (Ken Kesey)가 쓴 소설인데, 1963년부터 연극으로 상영되기 시작하였고, 1975년에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그해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위 동영상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는 1960년대 당시에 미국사람들이 정신병원을 지칭할 때 사용한 은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뻐꾸기는 둥지가 없는 새이죠. 둥지를 짓지 않고 남의 둥지 안에 알을 낳아서 다른 새가 자신의 새끼를 기르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는 새입니다. 따라서 뻐꾸기 둥지(cookoo's nest)는 이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 둥지이죠. 말장난이죠. 뻐꾸기 둥지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말한다 해도 엉터리 말이 되지요. 실제로는 둥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뻐꾸기 둥지라는 말은 말장난이거나 거짓말에 해당하는 말이지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붕어빵 같은 단어가 아닐까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말이지요. 뻐꾸기 둥지라고 말할 때 얼른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지요.
당시에 사람들은 왜 뻐꾸기 둥지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그에 대한 설명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이 뻐꾸기는 둥지가 없는 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또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라는 은어로 정신병원을 지칭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뻐꾸기 둥지"라는 이 표현 속에는 정신병원에 대한 비판과 조롱, 예로써 허구성, 비현실성 등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저는 영화로만 이 작품을 봤을 뿐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소설을 읽어봐야 할 듯합니다. 동영상에 소개된 바로는 이 소설은 미국에서 100대 소설로 선정된 소설이고, 중고등학생들에게 읽기를 권장하는 추천도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영상에서 소개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어쩌면 소설의 서문이나 후기에 "뻐꾸기 둥지"라는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추신 2]
저는 우리나라 정신보건 분야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50~60년, 일본에 비해 20~30년 뒤처져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책은 1962년도에 출간되어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이러한 책, 즉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방식과 처우방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이러한 종류의 책이 출간된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설혹 출간된다 하더라도 미국처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정신보건 분야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50~60년 뒤처져 있다는 제 주장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정신보건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과 문화수준, 그리고 관행이 전반적으로 그만큼 낙후되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약물만 신약일 뿐, 약물처방은 과용량 처방이 일상화되어 있지요. 진단은 오진단 투성이고, 의료적 개입법 이외의 개입법은 극소수의 환자들만 혜택을 볼 뿐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가족과 당사자는 수치심에 싸여 있고, 사회일반인들은 무관심하지요. 병과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직업군이나 직장은 제공되지 않으며, 일하지 못하는 이유를 병 탓으로 돌립니다.
조현과 조울은 "만성질환"입니다. "만성"이 무슨 뜻인가요? 쉽게 낫지 않는다. 때때로 재발한다. 약을 꾸준히 또는 평생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만으로는 안 된다. 기능수준이 이전보다 못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많을 수 있다. 등등 이런 뜻을 지닌 단어 아닌가요? "만성질환"이라면 병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나요? "만성질환"이라고 하면서 병이 낫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더욱이 그 책임을 당사자와 가족들이 져야 하는 게 당연한 듯이 말한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표현이 아닌가요? 완치가 어렵다면, 어렵다고 인정하고, 병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여건을 확보하려 노력하거나 또는 확보해주려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만성질환을 두고, 완치 가능한 것처럼 말한다면...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라는 말처럼... 그것은 말장난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