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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지닌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좋은 점도 있고 피곤한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을 들자면 그들이 세상 때가 덜 묻었고, 남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크게 없고, 일반인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순진하고 정직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피곤한 점도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고, 작은 일로 불안해하거나, 서운해하거나, 심하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또한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느낄 경우에는 두 번 다시 얼굴을 안 볼 것처럼 지나치게 냉정하고 모질게 사람을 대할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고 함께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당사자들의 이런 행동을 접할 때마다 저는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나무라거나 설득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한 가지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사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나무라거나 설득하는 방식은 더 큰 반발만 불러올 뿐 효과가 없는 방법이라는 걸 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사자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해 왔습니다.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 단계의 생각이지만, 이제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사소한 단서에 민감하다.
조현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대인관계 또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단서들을 민감하게 알아채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로써 얼굴표정의 변화, 목소리의 떨림,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 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의식합니다. 이를 두고 저는 "눈치가 빠르다.", "귀신은 속여도 조현 특성을 지닌 당사자는 못 속인다."고 말하곤 합니다.
2. 사소한 단서에 민감한 이유 = 주의와 의식의 범위가 축소되어 있기 때문
조현특성을 지닌 사람들의 주의의 폭과 의식의 범위는 지나치게 확장될 때도 있고, 지나치게 축소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확장될 때, 그들은 관념적/추상적 사고를 보입니다. 이때 그들은 우주를 논하고, 종교적 진리를 깨달았다고 선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주의의 폭과 의식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될 때, 그들은 문자적/지엽적 사고를 보입니다. 이때 그들은 전체 맥락은 무시하고 몇 가지 작은 단서들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여 이를 과잉일반화하고 확대해석합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이미 학술적으로 입증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제 생각에 그들의 관념적/추상적 사고는 과대의식/과대망상을 가져오고, 그들의 문자적/지엽적 사고는 피해의식/피해망상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즉 그들의 주의의 폭과 의식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고, 그들이 문자적/지엽적 사고를 할 때, 그들은 사소한 단서에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를 조명에 비유하여 집중조명 방식과 분산조명 방식이라고 합니다.
분산조명 방식일 때, 즉 주의의 폭과 의식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고, 사고방식이 문자적/지엽적일 때, 그들은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로써 대화시에 전체적인 맥락이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표현에 집착하여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불안과 분노의 촉발 = 도피행동 또는 투쟁행동의 촉발
그들이 사소한 단서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때, 정서적으로 불안과 분노가 촉발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재기과정 중에 심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일차적인 부정적 정서는 불안과 분노이며, 우울감과 무력감은 대처실패의 결과로 파생되는 부차적인 정서인 것 같습니다.
불안과 분노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불 때, 위기상황에서의 투쟁-도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분노는 투쟁행동을 가져오고, 불안은 도피행동을 가져옵니다. 자연계에서 이 행동들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즉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행동입니다. 따라서 불안과 분노는 생존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정서입니다.
4. 낮은 역치의 문제 =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경보가 울림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불안해 하고, 화낼만한 일이 아닌 일로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불안 또는 분노를 촉발하는 사소한 단서들을 포착한 것이지요.
화재경보기를 예로 들어서 비유하자면 불이 난 게 아니라 담배연기일 뿐인데, 오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보기가 낮은 역치에서 작동한 것이지요. 낮은 역치를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 인내력이 약하다.", "좌절인내력이 약하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부족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사소한 일인데, 큰 일이 난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사소한 일을 큰 일이 난 것처럼 받아들이면 불안한 마음 또는 화난 감정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시켜주는 사소한 단서들을 더 많이 찾아내도록 작용합니다. 이로써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5. 역치가 낮은 이유 = 경직된 신념 때문
그들의 불안 또는 분노 경보기가 낮은 역치에서 작동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직된 신념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들은 "... 해야 한다." 또는 "...하면 안 된다."는 당위적 명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로는 must 또는 should 입니다.
어떤 명제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릅니다. 예로써 "부모는 반드시 ...해야 한다.", "교수는 반드시 ... 해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등입니다. 이러한 명제들은 일종의 "안전 울타리"입니다. 그들은 그 명제들이 지켜질 때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회색입니다. 물로 따지자면 적당히 혼탁한 3급수 물이지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미워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무관심하고 소홀할 수도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위선적이거나 부정직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때, 그들은 사회가 순백의 세상이기를 바라는 것이고, 1급수 물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색 세상은 그들의 눈에는 검은색으로 비춰지겠지요. 타인의 융통성은 그들에게는 위선으로 보일 겁니다.
6. 몇 가지 제안 -- 오경보를 끄는 방법
이 시점에서 저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즉 오작동된 경보기를 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안 1] 제 생각에 때때로 주의의 폭과 의식의 범위가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사소한 단서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포착하는 특성은 그들의 선천적인 특성입니다. 마치 왼손잡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특성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교정하려는 행동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결함이 아닙니다. 때로는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소한 단서들에 민감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때 이들은 과제물이나 일처리를 남들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업선택을 할 때 이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시간을 다투며 해야 하는 일, 한꺼번에 이것저것 처리해야 하는 일은 이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충분히 생각하면서, 천천히, 대신에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이 이들에게 맞습니다.
[제안 2] 당사자 입장에서는 경직된 신념을 버려야 합니다. 이 부분은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직 당사자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잘 관찰하여 자신이 어떤 경직된 신념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경직된 신념은 가급적 버리는 게 좋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비록 자신은 그 신념을 지키더라도, 타인에게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융통성이 있는 신념으로 바꿔야 합니다.
[제안 3] 주변사람들은 당사자의 경직된 신념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설득이나 충고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득이나 충고를 할 경우 신념은 교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집니다. 당사자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설득이나 충고는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주변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탐색할 기회를 주고, 말로 표현할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그가 자신의 신념을 주장할 때, 반박하지 않고 그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예로써 당사자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주변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일단 말로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안 4] 당사자는 자신이 불안해지거나 화가날 때, 이를 빨리 알아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이나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산책은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그 외에 운동하기, 집안일하기, 목욕하기, 음악듣기 등도 좋은 방법입니다. 추천할만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수하기입니다. 즉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불안하다. 화가난다."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제안 5] 주변사람들도 당사자가 불안해하거나 화가나 있을 때, 이를 빨리 알아채야 합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불안이나 분노를 가라앉혀주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수면과 휴식을 충분히 취하도록 배려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야 합니다. 추천할만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하기입니다. 마음 상태가 어떤지 물어봐주고,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하는지, 화가 났는지 물어봐줘야 합니다. 성급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에, 관심을 갖고 끈기있게 들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경청해주면 당사자의 불안과 분노는 상당한 정도로 가라앉으며, 당사자 스스로가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됩니다.
7.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 = 외부귀인 (탓하기, 환청, 망상)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면, 재발조짐을 보이거나 또는 재발하게 됩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탓하기, 비난하기, 환청듣기, 망상에 빠지기 등입니다. 하지만 병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 세상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피해사고, 피해망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종종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완벽주의적 성향과 철저한 검증행위를 가져오기 때문에 잘 활용할 경우에는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심과 불신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단서들을 외부에서 찾는데, 그게 탓하기, 비난하기, 환청듣기, 망상에 빠지기 등의 대인관계 문제 또는 증상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이것을 "외부귀인을 통한 정당화"라고 합니다. 즉 문제행동이나 증상들은 "내가 옳다. 내가 의심하고 불신할만 하지 않느냐? 증거들을 봐라."라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는 일, 또는 가라앉혀주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가라앉히지 못할 때, 주변사람들이 가라앉혀 줘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경청하는 방법입니다. 최악의 방법은 불안과 분노를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고 무시하고 묵살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때로 난폭해집니다. 폭언과 폭력, 기물파손을 합니다. 조현병을 지닌 당사자들의 경우 세 명 중 한 명은 부모를 폭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의 폭력은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감소시키려는 행위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기 위한, 즉 재발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이 시기에 이를 폭력으로 맞대응하면 절대 안 됩니다. 또한 심하게 비난하고 질책하고 처벌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그들의 폭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 마지막 발악입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못견디겠다는 표현입니다. 비주장적이고 순종적이기만 하던 당사자가 드디어 자기주장을 하고 나오는 것이기에 오히려 박수를 쳐줘야 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기에 방법이 미숙할 뿐입니다. 폭력 자체는 나쁜 것이지만, 비주장적이고 순종적이기만 하던 당사자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병이 낫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기에 당사자의 폭언과 폭력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잘 대응할 경우에는 당사자와 확고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잘못 대응할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심/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게 됩니다. 잘 대응하는 방법은 폭력이 나오기 전에 당사자를 진정시켜주는 방법입니다. 또한 당사자를 절대 비난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아울러 당사자의 불안해 하는 마음, 화난 마음에 관심을 갖고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하는지, 화가 났는지 물어봐주고 당사자의 얘기를 경청하는 방법입니다. 즉 폭력 대신에 말로써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유도해줘야 합니다.
제가 이미 제안한 5가지 제안은 이 시점에서도 또한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8. 조현병의 핵심 특성 = 의심/불신
미국식 진단분류방식인 DSM 체계에서는 조현병의 가장 큰 특징을 "사고장애"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사고장애"는 표면적인 특징일 뿐 그 밑바닥에는 "지각장애"가 있고, 그 밑바닥에는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리 스탁 설리반(Harry Stark Sullivan)이라는 정신과의사가 있는데, "현대 미국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이 분은 대학 재학 시절에 조현병으로 치료받은 병력이 있습니다. 이 분은 조현병의 핵심특징을 "대인관계장애"로 보았습니다.
조현병을 지닌 당사자들은 약물치료로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상당수가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들은 대인관계에서 고립되어 있고,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들 많은 곳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또한 타인과 잘 소통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당사자들은 직업유지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들의 주의집중 방식에 대해 앞에서 설명한 "분산조명방식"과 그들의 "대인관계장애"가 서로 합쳐지면서, 그들의 직업유지 곤란을 가져오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깐 살펴보자면, 그들이 겪는 문제는 증상,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 직업유지의 곤란, 이 3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증상은 약물치료로 상당 부분 호전시킬 수 있지만,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과 직업유지의 곤란은 약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또한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고는 직업유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중심에 "대인관계 문제"가 놓여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설리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설리반은 조현병을 지닌 사람들의 "대인관계장애"는 생후 1세 이전에 형성된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언제 무엇 때문에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신있게 제 의견을 표명할 단계가 못됩니다. 하지만 조현병 당사자들에게는 설리반의 주장처럼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제 생각이 맞다면, 조현병 당사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최소한 한 사람은 그들과 확고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월로 따지자면 10년 세월로도 쉽지 않습니다. 이 부분의 관건은 저 자신의 인격성숙과 세심함, 그리고 행동일관성입니다. 현재의 저로서는 아직까지 역부족입니다.
조현병을 병으로만 생각하고, 당사자에게만 "노력해라. 바뀌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족이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져야 하고, 더 세심해져야 하고, 더 일관성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대인관계장애"라는 말은 결국 "관계장애"라는 말입니다. "부모-자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 부분은 부모와 자녀 쌍방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누가 먼저 노력할 것인가? 당연히 나이도 더 많고, 세상 경험도 더 많은 사람이, 즉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9. 확고한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 추가적인 제안
그들의 마음 저 밑바닥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 마음을 버리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도록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안 6] 당사자 입장에서는 일단 누군가 한 사람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믿기로 선택하고 결심해야 합니다. 또한 그 마음을 변치 않아야 합니다. 정히 사람을 못믿겠다면, 어떤 종교든 한 가지 종교를 선택하여, 절대자를 믿어야 하며, 그 마음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제안 7]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당사자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한심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질책하면 안 됩니다. 당사자를 믿기로 결심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무수히 반복해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10. 몇 가지 추가적인 얘기들
현대의학의 발달과 효과적인 약물의 개발로 현재 이 문제는 의료적 문제로 간주됩니다. 즉 조현병이라고 하지요. 저는 약물복용의 이득과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것이 "병"이 아니라, 조현특성 또는 조현특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함 또는 잘못된 것, 고쳐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과는 다른 어떤 특성 또는 특질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 발휘되면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잘 발휘하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좋은 강점이 될 수 있는 특성 또는 특질이지요.
저는 조현에 대한 현재의 접근방법은 첫 단추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이다.", "잘못된 것이다.", "고쳐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처음부터 열등감과 수치심을 심어주고 시작합니다. 병이나 증상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심어진 열등감과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발버둥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불행한 느낌 속에서 평생을 살도록 만듭니다.
저는 열등감과 수치심을 주지 않는 설명방식을 원합니다. 저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을 지키는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지키는 사람이 다수이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조현특질을 지닌 사람과 조울특질을 지닌 사람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에 속합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세상을 지킨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요한데, 조현특질과 조울특질의 최대 강점이 창의력입니다. 제가 앞에서 설명한 "분산조명 방식"과 "세상에 대한 의심/불신"이 조현특질을 지닌 사람들의 창의력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조현특질의 창의력이 생산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는 기초교육 또는 기초학습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마추어 발명가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발명가와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발명가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채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제대로된 발명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능입니다.
저는 상당수 당사자들이 비현실적인 허황된 생각에 빠져 지내는 이유가 기초지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들의 취미이자 강점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 생각을 깊이 하는 것, 남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착안하는 것인데, 기초지식을 제대로 갖추었을 경우에는 이것이 생산적인 이론이나 발명품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초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그야말로 헛생각만 하며 지낼 뿐입니다.
여기에 당사자들의 어려움이 있는데, 흔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시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기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성기 증상이 상당한 정도로 가라앉은 경우에도 본인 스스로가 학업에 흥미를 못느껴서, 주변사람들이 공부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또는 대인관계가 불편해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신의 조현특질을 강점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야라도 좋으니 한 가지 분야를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주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정보검색을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지원해줘야겠지요. 이러한 일들이 가능해지려면, 그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과 그들 자신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이 "고장난 사람 "이 아니라,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창의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보고 있기에, 그들에 대한 기존의 설명방식과 연구방향이 180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현특질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또 한가지 조건은 그들의 관심사가 인정욕구와 애정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과업 중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불신을 갖고 있고, 타인들로부터 무시당한 경험이 있고, 자존심이 손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타인의 태도와 평가에 매우 민감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좀체로 과업중심적이 되지를 못합니다. 예로써 학교에서 낮은 성적을 받을 경우, 그들은 자신의 과업수행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교수가 자신을 안 좋게 보기 때문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과제물을 수행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제물은 과제물일 뿐이고, 시험은 시험일 뿐인데, 그들은 그것을 본질적으로, 진짜로, 정말로 제대로 완벽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정해진 기한을 지키기도 어렵고, 일부 과제물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고 다른 과제물들에는 애초에 손도 못대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따라서 교수가 요구하는 것과 그들의 과업수행 간에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고, 종종 자신의 노력에 비해 저평가되곤 합니다. 핀트가 안 맞은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핀트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과업중심적이 아니라 관계중심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을 갖게 되며, 거기에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실제 집중해야 할 과업에는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악순환이 시작되고, 결국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이들이 관계중심적이 아니라, 과업중심적으로 학업이나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와 좋은 상사가 필요합니다. 또는 그 누구라도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은 역량발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부모이면 더 좋지요. 그리고 여기에 지도교수 또는 직장상사가 자신을 믿어주는 분이라면 금상첨화입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학교 또는 직장을 찾아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즉 자신을 믿어주고 높이 평가해주는 사람 곁으로 가야 합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은 그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 첫 번째 조건은 믿어주는 것,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일입니다.
한 가지 부언할 점은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두루두루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직 한 가지 일만 잘합니다. 그리고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약합니다. 예로써 번역은 하되, 타이핑은 못합니다. 그림은 그리되, 그것을 파는 방법은 모릅니다. 글을 쓰되, 그것을 출판해 내지는 못합니다. 카페를 만들되 사람들을 모아들이지는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로써, 반 고흐에게 그의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반 고흐는 생계유지가 어려웠을 것이고,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그의 작품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고, 그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또한 그들이 사회 속에서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삼류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방치하지 않고,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는 기존의 교과서적 설명방식으로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느낍니다. 기존의 설명방식은 그들의 존엄과 행복에 기여하는 설명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을 훼손하는 댓가로 전문가집단이 권위와 이득을 독점하는 설명방식입니다. 저는 조현특질을 지닌 당사자들의 존엄과 행복에 기여하는 설명방식,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설명방식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이 글은 아직까지 가설 단계입니다. 비록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제 경험에 부합하고, 조현특질을 지닌 많은 분들의 경험에 부합하기에, 저는 제 생각이 진실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정말 도움이 되는 설명방식인지?"를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고민에 동참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첫댓글 정말 좋은 내용이에요 잘 봤습니다..
ㅎ~ 고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힘들때마다 읽겠읍니다~
예...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정말 감사드림니다.
좋은부모 되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예. 감사합니다.
당사자의 특성을 당사자 입장에서 이론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인 스스로 개개인의 회복에 대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들 화이팅해요!
예.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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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직접 쓴 거예요. 잘 썼다고 칭찬해주니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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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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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잘못된 몸의 신호전달체계"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요.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엊그제 모임에서 다루어진 말씀이라 더 가슴에 와닿네요.
어느 정신과관련 글보다 현실적이고 이해하기쉬우니 널리 읽히게되면 좋을것 같아요.
예... 감사합니다.
불안과 분노, 불신....이런 것들이 제 안에 있지요. 믿는 사람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정말 맞아요.ㅠㅠ
예... 감사합니다.
늘 촛불님의 글을 대하며 감탄을 합니다.
어쩌면 이리도 적절하게 잘 표현하실까...
독자의 피부에 와 닿게 정말 설명을 잘 해 주십니다.
맞습니다. 구구절절이 공감합니다.
공짜로 읽기에는 죄송한 소중한 정보들...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
예...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구절절이 저의 얘기 같고 공감합니다. 글을 읽기전 어설프게 생각되던 생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회원님의 댓글대로 두고두고 읽고싶습니다.
공감한다고 말씀해주시니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프린트해서 생각 날때마다 꺼내 읽어야 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구구절절 공감되는 글 입니다.감사합니다그리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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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동의합니다.
와... 좋은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폭력과 폭언이 외려 좋은 징후라는 부분이 넘 걸림니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이 글을 읽은 뒤라면 좀더 스무스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ㅜㅜ 글 잘 읽었습니다!!!!
야우님! 이번에 부산방에서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많이 아쉬운 점들이 있겠지만, 지나간 일이니 일단은 털어버려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사이가 많이 틀어져 있어서 당장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야우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실지에 따라서 훗날에는 모든 게 다 달라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듯하여 보기에 좋았는데, 힘든 일이 많아도 잘 견뎌내시고 밝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촛불님^--^ 항상 좋은글 올려주셔서 늘 지친 일상에 활력소가 되고있답니다 특히 일할때 짬짬이 읽는 글들이 제 생각을 하나하나 바꾸어 놓고 있답니다 그리고 병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더 깨닫게 되었어요 부모님과의 관계가 마니 틀어져있어 더욱더 옛 일에 미련이 남아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못난 자식땜에 지금이라도 떨어져 있을때 잠시라도 편하시길 바라는 맘 뿐임니다 항상 촛불님 앞길 밝히 비추어지길 바라며 건강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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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환자에게 생기는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면 재발조짐을 보이거나 재발을 한다는 것과 나무라거나 설득하는 것은 반발을 불러올뿐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대인관계가 거의 없고 낯선사람을 만나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싫습니다..제가 고쳐야할 부분입니다..
관심있게 읽어보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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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14 16:02
촛불님 감사합니다. 환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