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내일 이사를 합니다.
베란다를 향해 주저앉아서
아직 더
푸른 잎이 많은 나무들 중
물든 나무들을 봅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집주인에게서 온
두 통의 내용증명을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가
물든 나뭇잎들에게 ‘안녕’을 말하는 일입니다.
#1.
대전광역시 서구 복수동 날망이 집. 한겨울.
어머니는 꽁꽁 얼어 잘 떨어지지 않는 개똥을
맨손으로 뜯어(잡어 씹어 먹을‘놈’ 일은 차마 접으시고)
치우시다가도
#2.
내가 들어서면
어떤 땐 눈길 한 번 안 주시다가
어떨 땐 아이구, 우리 아들 왔어? 하시는가 하면
#3.
언젠가, 내가 아이들 몰래
77일 동안, 그것도
먼 나라도 아닌
바로! 내 나라! 내 조국! 어딘가에 좀 있다가
#S1
어스름녘...
아버지 묘소를 다녀와
#4
날망이로 올라섰을 때
어머니는 어찌(내 현장 부재를) 아시고
날망이 중 맨
날망이 끝에서
허수에미처럼
서
계시다가
“아이구, 우리 강아지 왔어?,
아이구...우리 강아지!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아이구...우리 강아지,
고생혔쟈?”
(F.O)
아직 덜 꾸거나 덜 깬 꿈은
재활용이 가능한 몽유의 병에 넣고
관리사무서署에서 준 마댓자루에다가는
내가 마시고, 비우고 비우다가 급기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넣어 정말로 텅 빈, 플래스틱 소줏병도 넣고 까짓 거 몇 달씩 밀렸던 우윳값의 껍데깃따발도 기꺼이 넣고, 내일 이사 가는 날 아침! 혹시 내가 못 일어나서 예의상 두고 가야 할 쓰레받기에 얹혀져야 마땅한, 내 코 푼 종이나 에쎄라이트껍데기담뱃종이 등등을 가득 또, 듬뿍! 채워서 경비아저씨에게 말씀드릴 겁니다.
“마댓자루에 나도 좀 넣어 주시면 안 될까요?”
(F.I)
포장도 안 되고 이삿짐에 실리지도 않을 내 마음은 어머니의 영혼과 함께, 그리고 또 둘이 또 같이 두고 갑니다.
#S2.
(서구 금성백조아파트 이사오던 날)
..#1.
(어머니) 아이구 야야, 참 좋다...아이구 이제 원 풀었다...아이구 우리 자식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야야! 봐라 야 좀 봐아아~!“
(나...) <큰 대자로 뻗어 거실에 드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내심 모르는 척> 엄니 뭘요?
(엄니)...<거실 바닥을 개똥 치우듯 주섬주섬 뭘 주우시는 듯하시면서 거실 중간쯤에, 밝은 양지와 어두운 음지의 경계선에 뭘 잡으려는 듯 두 손 바닥을 쥐었다폈다하시면서 >
아이구...여기 봐봐! 이렇게 볕이 들잖냐! 아이구 우리 벵민이 이제 잘 되것다!
#(black)
내일 이사를 합니다.
베란다를 향해
주저앉아서
아직 더
푸른 잎이 많은 나무들 중(...)
물든 나무들을 봅니다.
잘되기는커녕(여태 숨 잘 쉬는 것 빼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계시는,
두 채의 아파트를 가지고 계시기도 하며,
훌륭하시기도 하고, 긍휼하실 뿐만 아니라
학기 중 대전 선병원에 입원하시는 동안에라도
내게 친히 전화를 주시어
“저기요, 박 교수님...저도 힘들어요, 저...지금 병원에 입원했는데요”
“아, 네...박 선생님 잠깐만요, 운행 중인데요, 정차 좀 하겠습니다(17번 국도 푯말 앞에 세우고) 네, 말씀하세요”
#5.
(대전 선병원, 혈색 좋은 나이롱 환자들이 희희낙락하는 무리들이 전화기 뒤로 보이고) “저 교통사고 당해서 지금 입원해 있어서 긴 말씀은 못 드리고요” (나는 긴 말씀이면 좋았지만 짧을 말은 분명! 방 빼! 하실 것 같았으므로)
아이구,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이고, 괜찮으세요?
아니...뭐, 좀 쉴 겸할 참에, 사고도 나고 해서...
네, 그런데요?
(나는 그때 충북 보은에 지사 개설을 하면 개설 수당으로 백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따라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가는 길 어딘가 T자 코스를 후진으로 박고 다시 우회전 전진으로 ‘입빠이-코스’를 후다닥 꺾은 다음 말합니다)
아니, 제가 지금 운행 중인데요(지구도 그렇습니다만요, 아무튼 이 말은 빼고)네, 말씀하세요.
저 지금 아프거든요.
아, 예...말씀하셨습니다. 일단 다행이십니다. 말씀이라도 하시니요, 네 말씀하세요.
근데요, 죄송한데요.
아이구 별 말씀을요,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거지요.
방 좀 9월 말까지 좀 빼주세요.
네? 계약기간이 11월 16일 아닌가요? 뭐 월세를 못 낸 건 제 탓이라 치더라도 명절도 껴있고 아이들...(핑계거리를 댈 궁리를 하다가 아차, 맞다) 시험 기간도 있고 한데, 그건 좀 가혹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우리 지체장애자 동생 집을 제가 대신해서 명의만 빌려서 관리하고 있는데요, 동생이 돌아온대요, 그러니 비워주세요. 저도 할 만큼 했습니다.
아, 네...그야 저도 할 만큼하렸는데(여기서 일단 막히고 나서), 제 뜻대로 안 된 것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연장 계약은 안 될까요?
(우리 선생님, 톤이 바뀌면서)
아니이~무슨 말씀이세요? 여태 8개월씩이나 밀리면서 어떻게 연장을 하시라는 거예요?
(...C足, 연장 있으면 패겠다)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도 두 통의 내용증명을 받았었 던 바지요.
우리집 주인은 나이가 지긋하시며 열심히 사셔서
본인이 사는 집 말고도 두 채의 아파트를 가지고 계시는
낼모레 육갑을 앞두신 훌륭한 여선생님이십니다.
두 채면,
존경할 만한 인격도 갖춘 분이라고
요즘 나는 생각하며
고로 나는 여태 존재합니다.
갈 때가 된
아무 바람에나 흔들리는
갈대지요.
(계속)
月村.
첫댓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가 말입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텅 빈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제 자신이 서러운 건지, 아니면, 백조아파트 이사 후, 선대부인께서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울 벵민이' 이젠 잘 되겄다는 말씀이 메아리처럼 돌아와서 서러운 건지는요... 내내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텅 빈 사무실에 저도 있어 보아서 압니다. 가슴도 같이 비워지면 좋던데요, 내 경우는 뭔가 꽉 찼었지요. 이제는 비웠다고 제법 뻔뻔하기조차 하답니다. 더 털릴 것도, 낮아질 곳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또 분노로 가득 차 있더군요. 고맙습니다. 기원해 주신대로 건강하겠습니다. 그리고 강해지겠습니다. 안 죽고 산 걸 보면 강해지긴 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뵙게 되면 한 번 웃어봅시다. 그렇게 기원하겠습니다.
약 올리지들 마슈, 나 사무실이란 곳에 앉아 있어본지 좀 되었시다. 들어앉아 있어 봐야 비었는지 찼는지 알기나 하지. 옘병! 어무이, 인쟈는 지가 폭폭합니더. ㅠ,ㅠ
폭폭은 기차의 심장 박동. 어무이의 심장소리도 그랬었던 것 같은 아련한 기억 몇 줌. 내 심장에 품습니다. 유전이고 유전할 겁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기관을 대대손손 물려줄 겁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