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은 서울의 대표적 부자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2018년 12월16일 일요일 학인들과 처음으로 답사했다. 삼청각, 심우당, 길상사를 답사했다.
율동공원에서 하차하여 한양도성길을 따라 내려와 만해 한용운 선생이 10년간 기거하시고 입적하신곳 심우장으로 걸어서 골목골목 좁은 길로 내려왔다.
율동공원에서 바라본 성북동 모습
한양도성 둘레길
멀리 보이는 북악산, 북악 스카이웨이와 팔각정이 있는 청와대 뒷산이다.
성북동, 사진 바로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판잣집이 보이고 멀리 좋은 터에는 대궐같은 큰집들 모인곳이 보인다.
한양도성 둘레길이 보이고 그 아래 가난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지붕을 덮고, 좁은 골목길이 이어진 판자촌이 곳곳에 구석구석 자리잡고, 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터가 나쁜 곳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다.
큰부자들이 사는 성북동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산동네 판자촌 같은 곳이 많이 있다. 한동네에도 좋은터에 사는 사람은 돈이 많고 나쁜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성북동 전체를 풍수적으로 평가한다면 돈이 모이는 곳은 아니고 부자들이 들어와 사는 곳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평창동과 비교하면 평창동보다는 훨씬 좋은 터로 보인다.
성북동 판자촌 좁은 길
만해 한용용 선생께서 입적하신 심우장 앞 골목길 입적하시기 전 10년간 기거 하실때 수없이 오르고 내린 좁은 길이다.
심우장,
골짜기에 자리잡은 터, 땅의 보호를 못받는 곳에 집을 지었다. 10년간 지네시고 66세에 입적하셨다니, 학식이 높고 깊으신 분이 지리에는 무관심 하신듯 좀더 건강하게 오래 못사신 연유가 터가 아닌가 싶다.
심우장의 위치는 풍수상 아주 나쁜 골짜기에 자리해 나쁜곳이고 우백호 자락이 자리를 향해 찔러고 있는 자리라 집주인의 몸이 빨리 상할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만해 선생께서 풍수지리에는 관심을 안두고 사신것 같아 아쉬운 면이 있었다.
심우장 건축당시에는 주변에 집이 없었다 한다. 그런데 터를 잘 못 잡은 것이 확실시 된다. 누가 나쁜 의도로 지은 집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해 선생도 풍수지리를 너무 등한시 한 듯 하다.
만해 선생님이 10년간 오르내렸을 좁고 경사진 집앞 길의 모습
만해 한용운 선생이 10년간 살다가 입적하신 심우당
심우당의 뒷뜰, 건축물의 뒤로 한칸을 내밀어 설계된
한옥, 앞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런 구조는 건축의 함정을 만든것으로 불상사가 생겨서 송사에 시달릴수 있고 교통사고 등 좋지않은 일이 생긴다.
심우당 부엌, 마당에서 보면 맨우측 한칸이 부엌이다.
심우당 침실
삼청각의 뒷 모습, 용맥을 잘라서 건축 해 우뚝하고 웅장해 보인다. 위세를 떨칠수 있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길게 오래 가지는 못하는 곳, 식당으로의 명성은 유지하겠다.
삼청각내 식당 입구
삼청각에서 바라본 북한산 산성 둘레길
삼청각 주건물의 앞면 일화당 간판이 걸린 모습
삼청각 주차장
점심은 효자동의 육당 최남선 선생께서 살았던 자리 들어선 일번지 고기집 식당에서 들깨버섯탕은 정말
시원하고 구수하고 맛있게 오랫만에 잘 먹은 점심.
길상사 입구 문
길상사 정문 앞의 대궐같은 집들
길상사 본전 극락전의 모습, 명당터에 자리했다.
극락전 뒷면
극락전 원근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진영각, 골짜기에 위치해서
말년에 건강을 유지하기 나쁜 곳이다.
법정스님의 유해는 담밑에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다.
진영각의 원근
삼청각 일화당 뜰앞에서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