把溪寺 聖殿庵 不二門(嶺南第一禪道場)1
팔공산 영남제일선도장 성전암 현응선원은 영남의 3대 선원중의 하나로 파계사 산내 암자이다.
조선 숙종대왕이 원자 탄생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파계사 용파선사께 부탁드렸는데,기도가
끝난무렵 선정에 들어 조선팔도를 관찰해보니 왕자로 태어날 만한 인연은 도반인 삼각산 금선암
의 농산스님 뿐이였다.이 인연을 알게된 농산스님은 그대로 앉아서 열반에 드시고는 숙빈최씨
(숙종의비)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인연으로 내가 이 세상에 다시 나올 것이다.라고
현몽했다.그래서 태어나신 분이 후일의 조선21대 영조대왕으로 바로 전생의 농산스님이신 것이다.
숙종대왕께서 원자탄생의 공덕을 치하하며 용파선사께 현응이란 시호를 내리시고 파계사 경내에
기영각을 건립하여 왕실의 위패를 봉안하고 만세유전을 기원하는 원당으로 삼고 전국의 사찰
입구에는 하마비를 세워 불교의 위상을 높이도록 유허하였다.이곳은 영조대왕이 시주자가 되어
건립한 도량으로 원자탄생과 기도성취의 성스러운 기운이 모인 집이란 뜻의 성전과 용파선사
의 시호인 현응을 따서 성전암 현응선원이라 이름하게 되었다.근세에는 만공선사.혜월선사
고송선사.철웅선사 등 많은 큰 스님이 수행정진 하셨고, 또한 성철종정스님이 10년간 장좌불와
수행정진을하신 곳이다(조계종 제9교구 파계사 성전암 현응선원)
성전암 불이문(현응선림)(영남제일도장)2
성전암 觀音殿3
관음전 내부4
성전암 관음전과 요사채5
성전암 요사채6
선이란 禪은 單과 示 즉 하나로 보인다는 뜻이다.내몸이 곧 우주요 우주가 한몸임을 깨닫는 것이 禪이다.
내가 있음으로 우주가 있으니 나 자신에게 도이켜 비춰볼 때 거기서 깨닫게 되고 누구나 우주의 주인이며
만족할 줄 알게 되므로 내 마음을 써도 그냥 마음이 아니고 우주의 참마음 참으로 如如한 지혜광명 마음이
된다.언제나 머리숙이고 정진하는 숭고한 天眞佛이다.
참선.성전암(현응선원).무제(허운스님).의자(허운스님)7
把溪寺 大悲庵8
대비암 법당의 불상(중앙)9
대비암 대웅보전10
대비암 대웅보전(불화)11
대비암 대웅보전(불화)12
대비암 대웅보전(불화)13
把溪寺 極樂殿14
把溪寺 地藏殿15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봉안한 전각으로 이 지장보살은 석가여래의 부축을 받고 석존이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6도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한
보살이다.모습은 천관을 쓰고 있으며 중생을 쉼없이 영원히 구제하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2003년도 건립되어 주로 조상의 천도를 위한 전각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장전 불화(제1대왕 秦廣大王. 제2대왕 初江大王. 제3대왕 宋宰大王. 제4대왕 五官大王)16
명부시왕 또는 시왕은 불교에서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열명의 왕을 일컫는다.이는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민간신앙에도 영향을 미쳤다.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
다가 명부사자의 인도로 명부로 간다고 믿는데,이 때 명부에서 죽은자의 죄를 심판한다는
열명의 왕이 바로 명부시왕 이다.그중에서 다섯번째 염라대왕이 시왕 중 우두머리로 여긴다.
죽은자는 7명의 대왕에게 순서대로 각각 7일씩 49일 동안 심판을 받는다.그러나 살면서 죄업
을 많이 지은자는 49일 이후 3명의 대왕에게 다시 심판을 받는데,죽은후 100일이 되는날은
제8평등대왕,그리고 1년이 되는 날에는 제9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오도전륜대왕의 심판
을 받아 총 3년의 기간동안 명부시왕의 심판을 받는다.
지장전 불화(제5대왕 閻羅大王. 제6대왕 變成大王. 제7대왕 泰山大王. 제8대왕 平等大王)17
지장전 불화(제9대왕 都市大王. 제10대왕 五道轉輪大王혹은 전륜대왕)18
파계사 전각들의 현판19
기영각.적묵당.팔공산 파계사(晦山 朴基敦).설선당(晦山 朴基敦).산해숭심
특히 山海崇深은 여래(부처님)의 높고 깊은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파계사 圓通殿(보1850호)20
파계사는 통일신라 애장왕5년(804년)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임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38년(1605년)에
중건하고 숙종21년(1695년)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원통전은 관음을 모시는 법당으로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이다.정면.측면3칸인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다포양식으로
조선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파계사 원통전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992호)21
이 불상은 삼베와 옻칠을 여러번 도포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불상이다.1979년 불상내부에서
영조16년(1740년) 쓰여진 발원문과 영조대왕의 도포가 발견되었다.불상높이가 108.1cm
머리에는 꽃모양을 정교하게 붙인 3층의 높은 관이 듬직하게 씌여져 있다.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파계사에는 영산회상도(보1214호)와 영조대왕 도포(중민220호)
등도 보관되어 있다.
원통전의 주련22
파계사 祈永閣(문11호)23
기영각은 연잉군(영조)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시던 전각으로 숙종35년
(1696년) 현응조사가 성전암과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정면3칸.측면2칸으로 조선후기 이익
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파계사 山靈閣(문8호)24
산령각은 전통 민간신앙이 불교에 알맞게 조화시켜 나타난 전각 중 하나로 창건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76년에 중건하고,1979년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규모는
정면.측면1칸이며 맞배지붕이고 초익공 양식을 하며 조선후기의 번잡한 장식수법이다.
파계사 應眞殿25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으로 나한전이라고도 한다.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이다.응당 공양을 받은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응진전이라 한다.
파계사 寂默堂(문9호)26
적묵당은 광해군12년(1620년)에 짓고 숙종21년(1695년)과 1920년에 중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적묵당의 적묵이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한다는 뜻이다.
정면.측면6칸이며 팔작지붕을 하며 구조양식은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작은 접시 모양의 소로를 끼워 소박하게 장식한 조선후기의 모습이다.
설법전으로 가는 예쁜 문과 설선당에 달린 종27
파계사 說禪堂(문7호)28
설선당은 대중식사와 강습소로 사용했던 건물로 인조1년(1623년)에 계관법사가 창건했고 1646년
1725년 두번 중수하고 1976년 대수선을 했다.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공포를 두지않은 민도리집이다.
설법전.요사채.종(중앙).파계사종무소.응진전앞 굴뚝29
파계사 鎭洞樓(문10호)30
파계사는 9갈레로 흩어져 있는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동루 누각은
9줄기 물의 기를 진압하는데,파계사라는 이름으로도 부족하다하여 지었다고 한다.
정면5칸.측면3칸 2층규모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이익공양식으로 조선후기의 건축모습이다.
영조임금 나무(느티나무)(수고17m.둘레3.8m).범종각.寶藏閣31
조선21대왕 영조(1724년-1776년)는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최씨이다. 탕평책을
실시해 붕당정치를 혁파하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했고,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응스님의 도움으로 영조
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영조의 도포를 간직한 절이다.따라서 250년정도 된 사찰
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이 느티나무를 영조대왕의 나무로 이름지었다.
(2017.08.20)
첫댓글 파계사는 오르기가 힘들지만 고즈적한 산사로 우리 마음에 던져주는 느낌이 남다르지. 2년 전까지는 대구스탬프트레일 도장 받으려고 매년 갔었는지.
근간에는 가지 못했는다네. 곳곳을 빠짐없이 찍어 놓은 사진으로 파계사 구경을 다시 잘 하였네.
파계사가 영조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성전암과 원통전을 지으신 현응스님과 숙종과의 관련이 있는 이야기는 이번에 알았고, 그리고 서예가로 이름난 회산 박기돈선생이 쓴 현판을 많이 찍어 보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