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oming out
<No 데이팅> <Yes 데이팅> 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조슈아 헤리스 목사가 2015년 교회를 사임한 후 이혼 사실을 발표하더니 지난 7월 29일에는 자신이 더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영국 크리스천포스트를 통해 말해 기독교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내게 있는 모든 수단을 통원해 내린 기독교인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런가하면, 8월 9일에는 호주 힐송 예배리더 출신 마틴 샘슨이 “기독교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 바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있다”고 말해 그 충격을 더했다.
보수적 신앙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 변절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부에서는 그들의 정직한 고백을 격려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다.
2.
한국 기독교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보수적인 경향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보수 신앙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모든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고, 그 결과 하나님이 상처럼 주시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믿음을 지켜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이기에 믿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순교를 최고의 영광과 가치로 여기고,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은 기독교 신앙의 본보기요 모델이 되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엔도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로드리고 신부의 행동이나 이번 조슈아 해리스, 마틴 샘슨의 고백은 변절 혹은 배신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을 예시로 삼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자며 다짐하는 식으로 당혹스러움을 이기려 할 것이다.
3.
신자의 삶에서 회의와 의심은 대적해야 할 마귀인가? 하나님을 찾는 일생의 여정에서 영적 침체의 순간은 불신이고 죄가 되는 것인가? 오스 기니스는 <회의하는 용기>에서 “정말 놀라운 일은 오랫동안 믿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별것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버티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내 신앙에 찾아온 의심과 회의로 내적 갈등을 겪는 것은 정기검진을 매년 받아오다가 어느 날 질병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상태에 따라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아무런 의심 혹은 이성적 사고 없이 맹목적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잘 믿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과 상관없는 위험한 신앙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것 같다.
4.
버트란트 러셀, 리처드 도킨스의 영향을 받은 무신론적 경향이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조슈아 해리스나 마티 샘슨 같은 젊은 층의 커밍아웃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50대 이상의 신앙인들은 내적 갈등에 스스로 당혹스러워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감추려 할 것이다. 어느 쪽이건 의심과 회의 속에 자신의 신앙에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추구해온 ‘오직 믿음’이라는 신앙적 이념이 현재의 삶을 붙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동안 보수 기독 신앙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예수’를 강조하였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따라 굳건한 믿음을 가지면 인생의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외쳐왔다. 그래서 교회와 기도원에는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가 늘상 있었고, 그러한 믿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능력을 체험한 간증을 모두 거짓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의 신학, 긍정의 신학만을 강조한 개신교 안에서 급기야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처럼 신앙과 자기 계발이 결합된 괴물이 천사의 옷을 입고 기독교의 복음이 되었다. ‘믿음만이 능력’이라는 식의 단순 신앙은 기독교를 현세에서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을 갈망하는 현세적, 물질적 종교로 만들었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개인구원과 축복에 천착하게 만들었으며, 나와 다른 신앙의 모습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 정죄하고 심지어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폭력적인 모습조차 거룩한 신앙의 행위로 여기는 이데올로기적 종교를 낳고 말았다. 자기 내면의 갈등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듣기보다 스스로를 옳다고 확신하는 나르시시즘적 종교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신앙적, 신학적 패러다임속에서 교회는 이기적 개교회주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개종주의, 세속적 성공주의에 빠져 후기자본주의시대에 대한 대항, 대안, 대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늘의 시대는 고통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 부정의 신학에 눈 떠야 한다. 믿고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임재와 만사형통이 자신의 삶을 형통케 할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대해 의심하고 물어야 한다. 일상의 삶에는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 등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하나님 앞에 진실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정직해야 한다. 부재하시는 것 같은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로 현실을 해석하기를 두려워하고, 단순하면서도 낙관적인 기대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강요하는 종교로서의 기독교 신앙을 버리겠다는 커밍아웃은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보수 신앙의 위기이다. 다시 말해, 한국 교회의 위기이다. 새로운 커밍아웃(New Coming out)이 나올 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느니 혹은 신앙의 변절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은 타조와 같은 행동이다. 그들과 함께 그 고민을 나누어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인간의 의심과 회의에 의해 하나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새로운 커밍아웃의 상황에서 ‘생각하는 신앙’, ‘포용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함으로 새로운 믿음의 갑주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조슈아 해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비가 온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르고 말거야” 집을 떠난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왔지만, 집에 머물고 있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떠나 있었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눅15장)
“나는 기독교인인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8.24 10:2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8.24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