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민중운동의 퇴조와 ‘신사회운동’의 등장
1. 1987년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은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87년 대선을 통해 수립한 정부는 형식적이나마 민주적 절차를 거쳐 권력을 획득했다는 점과 과학기술혁명에 따른 서구국가의 산업구조와 계급구조의 변동과 이를 반영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심리 및 이데올로기의 변화 그리고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국제정치의 객관적 현실은 비합법적이고 특정 모순을 강조했던 80년대의 민중운동의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변혁운동의 노선에 근거한 변혁론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회문제와 모순의 중층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신사회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2. 소비영역이 고도화되면서 소비영역에서 각 계급계층에 대한 자본의 차별적인 포섭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계급적 동질성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이나 생활조건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생활영역에서 상품의 유통을 통한 소비의 강조와 문화산업의 확장에 따른 의식의 변화는 계급의식의 단일성을 규정하는 의식을 감소시키고 개인의 욕구와 취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렇듯 교묘하게 작동하는 ‘부르주아지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매수’는 사회운동을 계급적, 생산적 방식으로 진행시키는 데 한계를 가져왔으며 대중들의 탈정치화와 무관심을 초래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운동의 외연확장과 중산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계급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는 신사회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신사회운동은 생산영역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주체 설정보다는 소비영역의 확장이라는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생활양상(주택, 환경, 소비, 공해 등)에 대한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춰 ‘생활세계의 민주화’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인다.
3. 이때 설립된 신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조직인 ‘경실련(경제정의실현연합)’도 다음과 같은 요인을 통해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①변화된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민감한 대응 ②해당시기의 쟁점을 대중 생활상의 요구에 입각해 시의적절하게 쟁점화하고 이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③정치정세상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경실련을 지원했던 정치적 여건” 이러한 성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신사회운동 조직들은 자율적인 사회집단의 결집에 따라 생활세계의 민주화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을 갖고 출발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체제 내에서의 개량적 변혁을 추구하였다. 이들의 전략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갈등의 제도화 ②집단 이해의 법적 관철 ③압력의 조직화 ④의회기능의 최대 활용”
4. 변화된 객관적 현실 속에서 ‘신사회운동’의 확장을 수용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한계를 비판하는 견해들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위선적인 군부권력과 독점자본의 전략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부드러운 억압과 착취’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사회운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현체제를 용인함으로써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정의 문제는 영원한 정의를 실현하거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경제적 배분 정의를 수립하는 데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부정의의 구체적 형태를 둘러싸고 이해가 상반된 계급간의 투쟁이 이루어지는 현실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부정의한 사회현실의 피해자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주체인 민중일 수밖에 없다.”
5. 하지만 계급론에 입각한 민중운동의 전개는 분명 현실적인 변화 속에서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90년대 들어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계급적 불평등을 통한 문제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운동의 전개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창조적인 통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민중운동도 기존의 생산영역과 노동자 계급 중심의 ‘계급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활영역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문제점에 주목하고 다양한 계층과의 연대를 확장시켜야 하며. 시민운동 또한 합법적, 체제내적 해결에만 몰두하지 말고 때론 사회적 조건과 정치적 지형, 계급적 대립의 변화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 87체제 이후 형식적이었지만 민주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확대를 향해야 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비판과 대안은 변혁운동이 변화하는 생활조건에 대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대중적 지지와 여론을 얻어 다른 운동의 노선과 실천을 압도할 때에야 가능하다.”라는 견해처럼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정립을 완성할 수 있는 변혁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국한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과 개인의 존엄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사회운동이 좀 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80년대를 압도했던 지극히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였던 ‘민중운동’은 변화될 수밖에 없는 구시대의 영역이 되고 있었다.
첫댓글 -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 정치적 판단이 또하나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