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선사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中興祖)로 불리는 불세출의 대선사다. 꺼져가던 조선 불교의 불씨를 되살려 한암(漢岩), 만공(滿空), 수월(水月), 혜월(慧月) 등의 선사들에게 이어지게 한 선사이다
그러나 현대 한국선(韓國禪)이 경허 선사의 압도적 영향 하에 있음에도, 정작 경허 그 자신은 사람들에게 기행을 일삼는 파계승, 혹은 선문(禪門)의 이단자로 외면당하고 있다. 경허스님에 대한 정확한 근거나 사실도 없이 세간에 횡행하는 억측과 통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고독의 끝에 서 있어야만 하는 극도로 모순에 찬 인물이다. 경허가 세상의 억측에 시달리게 된 것은 경허의 생애가 파란만장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경허집(鏡虛集)》이 경허의 입적 30년 후에야 세상에 출간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경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18년에 발행된 이능화(李能和, 1869~1943) 거사의 《조선불교통사》이다. 다음으로는 1931년에는 한암이 쓴 필사본 《경허집》이 있고 1938년에는 《비판(批判)》이란 잡지에 김태흡(金泰洽, 1899~1989)이 〈인간 경허〉를 연재했다. 공식적인 경허집은 경허의 입적 30년 후인 1943년에 오성월·송만공(1871~1946)·장석상(張石霜)·강도봉(康道峰)·김경산(金擎山)·설석우(薛石友)·김구하(金九河)·방한암·김경봉(金鏡峰)·이효봉(李曉峰) 등 당시 한국 선문을 대표하는 41인의 선사들이 선학원판 《경허집》을 발간하였다. 1981년에는 수덕사에서 기존의 《경허집》을 한글화하고 한암이 쓴 경허 행장과 38편의 일화를 더하여 《경허법어》를 출간하였다.
경허가 입적한 1912년부터 《경허집》이 세상에 나온 1943년까지의 기간은 우리 문화가 말살되어온 일제강점기였다. 이 기간에 경허에 대한 진실은 묻히고 유언비어와 악의적인 소문이 세상에 떠돌았다. 경허의 생애는 자극적인 이야깃거리에 탐착하는 세류에 왜곡되어 허공에 난무하였고, 경허에 대한 부정적인 인물평에는 식민통치 이념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선학원판 《경허집》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불교사학자 이능화와 포교사 김태흡은 세상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 없이 전하고 있다. 선학원판 《경허집》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한국불교가 시도한 경허 바로 알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허집》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왜곡되었던 소문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2년 윤창화가 《불교평론》에 발표한 〈경허의 주색(酒色)과 삼수갑산〉이라는 논문은 주로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허는 주색을 일삼다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자취를 감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문들은 일제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경허가 주색잡기에 빠져 놀아난 스님이라고 보도했다. 언론들은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경허를 주색에 놀아난 스님으로 선전하고는 이후에 발표된 반박 논문과 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른바 여론재판이었다.
경허는 잿밥에만 골몰하며 목탁을 두드리던 구한말 불교계에 선의 정신과 선종 교단으로서 한국불교가 지녀야 할 전통의 복원을 이룬 인물이다. 경허는 형식상으로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라서 대승과 소승을 구별하는 불교관을 가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대승과 소승을 회통하는 불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회통의 입장에서 경허는 정혜를 닦고 함께 도솔천에 나기를 발원하는 결사운동을 펼쳤다. 경허는 이계(理戒)와 사계(事戒)로 나누어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사계의 입장에서 계율 하나하나를 지키라고 가르쳤고 깨달음을 얻고 나서 스스로는 마음의 의도를 중요시하는 이계와 무작계(無作戒)의 입장에서 살아갔다.
경허 스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동학혁명 전봉준 장군과 관계, 북쪽에서 독립운동 활동 등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경허집》을 제대로 한 번도 읽지 않고 세간의 소문만을 믿고 망상과 추측으로 경허를 말하고 비판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경허 스님과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았다면 너의 지극히 낮은 눈으로 경험 스님를 평하지 말라. '왜 그랬산냐? 망상 피우지 마라. 다 네 생각일 뿐이다.'
출처 : 불교평론 <허정 스님 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