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에 서서 꽃샘추위에 떨며 듣는 노래
봄이 오는 길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밥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 하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 하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밥에도 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밥에도 온다네
꽃시샘 추위가 이어지면서 봄이 오는 길목이 자꾸 막힙니다. 한 겹 벗고 하루정도 유쾌하게 보낸 다음 여지없이 찾아오는 눈보라와 경직된 찬바람이 참 성가시계 합니다. 어제도 종일 눈보라라가 치며 곳곳에 눈을 쌓아 놓고 음지쪽으로는 빙판을 만들어 놓아 걷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속하게 구매하여 수리를 해야 할 일이 생겨 어디 가면 이 부속을 살 수 있을까? 궁리하다 철물점을 기억해 냈습니다. 거리를 측정해 보니 약 2.4km, 왕복 4,8km, 순간 차로 이동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굳어지는 순간 철회하고 걷기로 하였습니다. 날이 궂어 오늘 산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신속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방풍, 방수, 보온 겸용 재킷을 걸치고 쥐우산을 들고 길을 건너 큰길 따라 걷기 시작할 무렵 상당한 인파가 군중을 이루며 앞을 가로질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대열은 초등학교 정문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아~ 오늘 입학식이구나. 봄은 이렇게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계절입니다.
잠시 걸음 길을 우회하여 도착한 후 소정의 자재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들고 다시 돌아와 보니 쥐우산에 습설이 가득 쌓여 꼭 지붕 위에 쌓였던 눈을 쓸어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툭툭 털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바로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저수조에 담긴 물을 전부 빼내고 물을 담아두기 위하여 배수구를 자동으로 막아주는 덮개를 뜯어내고 당김 줄도 철거했습니다. 그리고 배수구 주변을 청결하게 전부 닦아낸 후 물을 뿌려 청소해 주고 구매한 부속을 조립하고 줄까지 연결해 놓고 잠가 두었던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다시 채운 후 관찰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혹시 새어나가는 물소리는 없는지, 또한 적정 수위를 지켜주는 부뢰에서 나는 소리는 없는지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배수구 막는 덮개가 정밀하게 들어맞지 않으며 물이 새어나가게 되고 부뢰도 줄어드는 물을 채우기 위하여 끄덕거리게 되면 특유의 비명을 지르게 되어 시끄럽습니다. 잠시 관찰 후 완벽하게 수습되었다는 판단으로 역순으로 정리해 놓고 작업을 완성하였습니다.
꽃을 피우고 새싹이 돋아나고 성숙의 과정을 거쳐 결실과 나눔을 연결하는 단초는 봄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봄은 늘 조심조심재촉하지 않으며 봄 준비를 차분히 은근하고 끈기 있게 만들어냅니다. 새 생명이 건강해야 성숙과 결실 또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바로 꽃샘추위가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그래 그럴까? 꽃 시샘이 참 영리하게 느껴집니다. 새내기 대학생 여가수가 자신이 지금 처한 새내기 목소리로 곱고 정겹게 봄노래를 불러 봄을 응원하며 공유하려는 마음에서 봄노래를 올려 봅니다. 옛적 박인희씨의 노래를 들을 적 마다 노랫말이 정겹다 하면서 따라 부르곤 했었는데~~~ 역시 지금도 참 정겹습니다. 독감이 극성을 부립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익은 나이에선 건강이 최우선이십니다.
세월이 바람이라니~~
세월은 바람이야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스쳐 지나간 바람도 또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상기(想起)시킬 때 우린 보통 추억(追憶) 또는 회상(回想)이란 단어를 빌려 사용합니다. 둘 다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 시절(時節)을 이야기할 때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구분합니다. 미래가 당겨지면 오늘이 되고 오늘이 물러가면 어제가 되는 것이 시간이 지닌 연속성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교차는 일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물처럼 이어져 가는 것이 세월입니다. 시위를 떠난 활처럼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시간의 속성이지만 우린 생각이라는 관념을 빌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등등에 대한 정신작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것은 상상(想像)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물이나 일을 머릿속으로 그림 그려 해결하고 현재는 직시를 통하여 헤아릴 수 있어 생각을 충족시키지만 과거는 회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어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신 과거의 일이 현재라는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상세하게 기록을 남겨 두면 생생한 정보를 갖게 되어 생각하고 사유하거나 사고를 통하여 다시 불러내는 데 불편이 없게 됩니다. 세 가지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가장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회상의 시간뿐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일은 변화가 있을 수 없고 항상 그 자리로 지키고 있어 아무 때나 찾아가도 바로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약속이나 어떤 형식을 빌릴 필요도 없이 문득 생각나거나 회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돌릴 수 있어 서두르고 조바심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추억 지니고 있는 좋은 점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을 지니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도 무한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생각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생각이나 사유, 사고를 한다는 자체가 바로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이어간다는 것은 대화를 이어간다는 뜻인 것처럼 특히 추억을 공유한 사람끼리 회상의 그림자를 밟는다는 것은 고요하게 흐르는 달빛과 풀꽃이 어우러진 길을 걷는 기분이 느껴집니다. 젊은 날에 회상은 역사적 사실성만으로 족할 수 있지만 노년에 시기에 갖는 회상의 시간은 특별한 추억의 환경을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억의 저 편에 숨어 있는 자신의 삶, 또는 함께 했던 시간들이 황무지 벌판 위에 아름다운 정원이 새롭게 펼쳐지듯 영화처럼 다가온다는 상상만으로 행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좋은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노년에 갖는 회상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가끔 꺼내 보시며 추억의 삼매경에 풍덩 젖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다가왔습니다. 그 기억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살피다 책을 읽듯 영화를 보듯 다가오는 생각의 그림자가 담긴 공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걸어온 삶 속에 담긴 이야기들로서 여러 갈피의 수필, 또는 수묵화처럼 책과 화첩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오랜 시간 더불어 살아가며 만들어진 공간적 공유의 흔적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는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인연에 따라 수많은 일들이 축적되기 시작됩니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인연에 따라 인적자원도 늘어나고 성향의 안배에 따라 공유하게 되는 일들도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기도 하면서 과거라는 공간 속으로 잊히기도 하지만 기억이 있는 한 다시 재생되어 현실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빛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들끼리 나누는 선한 이야기들은 자신들에게도 물론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까지 감동을 주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고독을 갈파한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Pascal(1623-1662)은 자신의 저서 팡세(Pensees)에서 "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원래 인간을 비참한 존재라고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늘 불확실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유하는 갈대라는 말로 인간의 위대성을 설파합니다. 이 말은 바로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주는 명언입니다. 인간은 미약한 존재지만 생각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수많은 사유의 시간을 통하여 지금가 같은 장대한 인간의 문명을 만들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한 앞으로도 그 일은 인간이 지닌 욕망과 함께 더더욱 발전되고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전 속에서는 실용적인 선택은 가능할지 모르나 인간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인성(人性)의 가치를 그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품을 인성이라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뜻하거나 성격이나 인격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특히 전인(全人) 즉 知, 情, 意를 모두 갖춘 특성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