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사 43〔其四十三〕
동명왕이 도망갈 때 남겼던 한 마디 東明留語出奔時
유리가 동이 깨고 어미에게 들었다오 類利彈盆問母知
일곱 고개 일곱 골짝 돌 위 소나무 石上有松七嶺谷
기둥 아래 검 찾아 아버지 만났다오 柱搜斷劍父逢兒
동명왕(東明王) 주몽(朱蒙)이 동부여(東扶餘)에 있을 때 예씨(禮氏)에게 장가들어 예씨가 임신을 하였다. 예씨는 동명왕이 동부여를 떠난 뒤에 유리(類利)를 낳았다. 유리는 새총을 잘 쏘았는데, 한번은 참새를 쏘다가 잘못하여 물 긷는 여자의 물동이에 맞았다. 여자가 유리에게 아비 없는 놈이라고 욕하자 유리는 돌아와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누구냐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이에 “네 아버지는 남쪽으로 도망갈 때 나에게 ‘물건을 남겨두었는데, 일곱 고개 일곱 골짝의 돌 위 소나무 아래〔七嶺七谷石上松下〕에 숨겨두었으니 이 물건을 가지고 온다면 내 아이로 인정하겠소.’라고 하였단다.”라고 대답하였다. 유리는 주춧돌이 일곱 모〔七稜〕가 난 것을 보고 “일곱 고개 일곱 골짝은 일곱 모를 말한 것이며 돌 위의 소나무는 기둥〔柱〕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서 그 아래에서 부러진 검을 찾아냈다. 졸본(卒本)에 이르러 검을 왕에게 올리자 동명왕은 가지고 있던 검을 꺼내 맞추어보았다. 두 검이 들어맞자 마침내 유리를 후계자로 삼았다.
[주1] 유리(類利) : 고구려 제2대 임금 유리명왕(琉璃明王)으로, 유리(類利)는 휘(諱)이다. 유류(孺留)라고도 한다. 재위 37년째 되던 해(18) 7월에 이궁(離宮)인 두곡(豆谷)에서 죽었다. 《三國史記 卷13 高句麗本紀 琉璃王》
[주2] 일곱 …… 아래 : 《삼국사기》에는 ‘일곱 모난 돌 위 소나무 아래〔七稜石上松下〕’로 되어 있다. 《三國史記 卷13 高句麗本紀 琉璃王》
[주-D003] 졸본(卒本)에 …… 삼았다 : 유리가 부러진 검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동명왕을 찾아온 것은 동명왕 19년(기원전 19) 여름 4월이다. 동명왕은 그해 9월에 40세의 나이로 죽었다. 《三國史記 卷13 高句麗本紀 始祖 東明聖王》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