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 8경 중에서 가장 비장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제7경 몰운대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아슬아슬 서서 가지를 뒤틀고 서 있는 죽은 소나무 한 그루가 비장감을 더해주는 곳이다.
눈발이 날리는 날에 물가에 층층이 포개놓은 듯 깎아지른 절벽에 서면 세상이 다 아득하
다.
물에서 피워올린 안개에 잠긴 듯하다 해서 ‘몰운(沒雲)’이란 이름을 얻었다.
몰운대의 절벽 끝에는 족히 수백 년은 됐음 직한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벼랑 끝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깎아지른 벼랑이 보여주는 건 넘치는 긴장감. 그 긴장의 끄트머리에서 삭풍한설을 견디며 발끝으로
매달려있다가 1992년 말라죽은 늙은 소나무 고사목이 드러내는 건 비장미다.
소나무 고사목, 둥치 아래에 지난 2019년 심어진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죽은 소나무의 발치에는 후계목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언제 삭정이로 무너져 사라질지 모르는 고사목의 대를 잇고자 심은 어린 소나무다.
2019년 4월에 심은 것이라는데, 4년 넘게 자랐는데도 키가 60㎝가 채 안 된다.
죽은 제 아비 소나무의 풍모처럼 자라려면 얼마나 더 아득한 시간이 흘러야 할까.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후계목이 있다는 건 마음 놓이는 일이다.
고사목이 쓰러지는 게 더 이상 가슴 철렁한 일이 아니라, 순리처럼 느껴진다.
# 정선의 꽃베루길(10.5Km)
초겨울 정선의 걷는 길 중에서 ‘꽃베루길’을 추천한다.
남평에서 여량을 오가던 10여㎞의 옛길이다. 길은 꽃베루재를 넘는데, 꽂베루란 이름이 명확하지 않다.
‘꽃베루’라는 이들도 있고, 더러 ‘꽃벼루’로 쓰기도 한다.
꽃베루길은 정선읍에서 남평을 지나 여량으로 가는 옛길이다.
꽃베루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베루, 혹은 벼루는 정선지역 사투리로 ‘벼랑’이란 뜻. 꽃은 ‘곧은’ 혹은 ‘곧’에서 왔다.
꽃베루에 얽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앞서 말했던 고종 때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 그리고 그의 부인과 관련된 얘기다.
오횡묵은 정선군수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지방 수령 벼슬을 했다.
자인현감, 함안군수, 고성부사를 지내고 여수군수와 진보(청송)군수, 익산군수, 평택군수까지 지냈다.
민심을 잘 살피고 능력도 인정받은 행정가였다.
군수 오횡묵과 함께 꽃베루재를 넘어오던 부인이 고갯길이 너무나 길고 지루해 탄식하자,
오 군수가 나졸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이 고개가 언제 끝나는가” 그랬더니 나졸이 그때마다 말했다.
“곧 베루(벼랑)가 끝나요.” 그때의 ‘곧 베루’가 ‘꽃베루’가 됐다는 얘기다.
산허리를 굽이굽이 도는 꽃베루길은 42번 국도가 놓이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도 역할을 했다.
이 길은 정선에서 강릉으로 가는 외길이나 다름없었다.
정선읍에서 꽃베루길을 따라 여량과 임계를 거쳐 강릉으로 넘어갔고, 강릉에서 꽃베루길을 걸어 정선으로
돌아왔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이 길을 따라 버스가 다녔다고 했다.
험한 데다 수십 길의 절벽을 따라가는 산길이어서 버스가 구르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 사라진 길이 되살아난 사연
42번 국도가 놓이고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꽃베루길은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저 아래 강변을 끼고 번듯한 도로가 났으니 산중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꽃베루길은 당장 쓸모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버려진 길이 다시 살아나게 된 건 2002년과 2003년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와 매미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과 수해로 국도가 유실되면서 일대 주민들이 고립되자, 산중의 꽃베루길을 비상도로로 활용하기 위해 시멘트 포장을 했다. 이후 군도로 관리하면서 묻혔던 꽃베루길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꽃베루길의 가장 큰 매력은 빼어난 조망이다.
줄곧 산의 허리와 가슴 사이쯤의 높이로 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덕에 마치 길고 긴 전망대 덱 위를 걷는 기분이다.
울창한 금강송 숲을 끼고 걷는 내내 반대편으로 골지천 물길과 일대의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상원산과 두타산, 가리왕산의 겹쳐진 능선이 그려내는 산 그림자도 일품이다.
꽃베루길의 절정은 단연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노랗게 빛나는 겨울 햇살이 눈부신 역광으로 강변과 마을에
쏟아져 흘러넘치는 풍경을 마주하고 서면 가슴이 다 저릿저릿할 정도다.
꽃베루길을 넘던 얘기가 정선아리랑 가사에 있다.
“아질 아질 곧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여기 왔나. 정선 땅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곧베루….” 아찔아찔 위태롭고 지루했던 그 길이, 이제는 경관을 즐기면서 걷는 근사한 길이 됐다.
그래 봐야 그사이의 시간이 고작 60년 안쪽이다.
■ 몰운대
130여 년 전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의 이름이 몰운대 절벽에 새겨져 있다.
그가 다녀간 뒤에 쓴 시에서 그 얘기가 나온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세속을 떠났으니 /…/이름을 남겨 유랑(劉郞)에게 부탁하는데/그래도 비(碑)에 비하면 나은 것 같네.’ 유랑이란 소설 ‘유명록(幽明錄)’에 나오는 후한 때의 인물 유신(劉晨). 천태산에 가서 선녀를 만나 살았는데 세상에 나왔다 다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이 있다. 그 후 유랑이란 ‘세월이 지나 다시 찾아왔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