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권 인수인계,
끝내는 일이 아니라 시작하는 일
어제까지 우리는 주민자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오늘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관리권을 넘겨받는다는 것은 도장을 하나 넘겨받고,
관리사무소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아파트가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민자치의 첫 번째 실전 과정이다.
그래서 인수인계가 중요하다.
1.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관리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일정한 법정 기한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3개월이나 있으니 천천히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3개월이라는 검증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관리권을 넘겨받는 순간부터 새로운 관리체계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을 수는 없다.
관리비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장기수선충당금은 어떻게 적립하고 사용했는지,
각종 계약은 무엇이 있는지,
시설물은 어떤 상태인지,
하자와 소송 문제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각종 예치금과 미수금·미지급금은 무엇인지,
관리사무소가 가지고 있는 계약서와 장부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3개월은
서둘러 끝내야 할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확인해야 할 시간이다.
2. 인수인계의 목적은 ‘자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자료를 받았다고 인수인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장부 한 권을 받았다고 하자.
그 장부에 숫자가 적혀 있다고 해서
그 숫자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를 받았다고 해서
그 계약이 우리 단지에 적절한 계약이었다는 뜻도 아니다.
시설물 목록을 받았다고 해서
실제 시설물이 그 목록과 같은 상태라는 뜻도 아니다.
따라서 인수인계는
자료 인수 → 내용 확인 → 실제 현장 확인 → 서로 다른 부분 확인 → 필요한 조치 결정
이라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진짜 인수인계다.
3. 그래서 인수인계팀이 필요하다
대표회의가 구성되었다고 해서 회장 한 사람이 모든 자료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회장이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
대신 사람을 적절히 나누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회계에 밝은 사람은 회계를 보고,
시설을 잘 아는 사람은 시설을 보고,
계약과 업체 관계를 살펴볼 사람은 계약을 보고,
장기수선계획을 살펴볼 사람은 장기수선계획을 보고,
하자와 소송을 살펴볼 사람은 그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체 내용을 모아
“우리 단지의 현재 상태가 정확히 무엇인가?”
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인수인계팀의 역할이다.
4.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설명만 듣고 넘어가는 것’이다
과거의 관리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관리사무소의 설명을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된다.
가장 좋은 태도는 이것이다.
“설명은 듣되, 자료로 확인하고, 현장에서 확인하자.”
이것이 주민자치의 자세다.
누군가를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주민의 재산과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특히 관리권이 바뀌는 시점에서는
누가 잘했느냐,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현재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을 앞으로 바로잡아야 하는가
5. 인수인계 과정에서 과거의 잘못이 발견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인수인계를 하다 보면 과거의 관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누가 잘못했느냐?”
를 찾는 데 모든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먼저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적·회계적·관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민자치는 감정으로 과거를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자료와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6. 그리고 새로운 관리주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이제 새로운 업체가 들어왔으니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관리주체가 인수받은 자료와 시설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고,
인수 당시 발견된 문제와 이후 새롭게 발견된 문제를 구분하며,
업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전임자가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몰랐습니다.”
라는 말만으로 끝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인수인계 당시의 상태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관리체계를 보호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주민을 보호하는 장치다.
7. 결국 인수인계는 주민자치의 첫 시험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주민자치를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주민자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회의를 공개하는 것,
자료를 확인하는 것,
질문하는 것,
답변을 기록하는 것,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된 것은 이어가는 것.
그리고 결정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주민자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인수인계가
우리 단지 주민자치의 첫 번째 시험대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관리사무소가 알고 있는 것을 주민이 따라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주민이 알아야 하고, 대표가 질문해야 하고, 관리주체가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관리권을 주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8. 그러니 3개월을 두려워하지 말자
3개월이 길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준비 없이 시작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수받을 자료의 목록을 미리 만들고,
확인할 항목을 정하고,
담당자를 나누고,
확인 방법을 정하고,
발견된 문제를 기록하고,
마지막에 전체 결과를 정리한다면
3개월은 오히려 우리에게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을 끄는 3개월이 아니라
확인하고 검증하는 3개월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리권 인수인계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누가 관리하느냐”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제부터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주민이 어떻게 관리에 참여할 것인가?”
관리권을 가져오는 것만으로 주민자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관리권을 가져온 뒤에도 주민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누군가가 관리의 주인이 되고
주민은 구경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인수인계는 끝이 아니다.
진짜 주민자치를 시작하기 위한 첫 관문이다.
그리고 그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될 사람들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다음에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보자.
“대표가 된 사람은 무엇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가?”
대표의 자리는 권한을 얻는 자리가 아니라
주민의 재산과 생활을 책임지는 공부를 시작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