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리 우회전은 직진 차가 우선이다
‘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차가 멈춘다. 운전석 쪽 백미러가 약간 접혔다. 깜짝 놀랐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차에서 내렸다. 손으로 백미러를 젖히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른 곳은 부딪힌 흔적이 없다. 한참 후에야 가해 차 운전자가 내린다. 나는 본체만체하고 자기 앞차에서 내린 운전자와 이야기가 심각하다. 내 판단에는 내 차도 가해 차도 그 앞의 차도 별로 다친 곳이 없다.
‘다행이다’ 행사에 참석하려면 시비할 여가가 없다. 서둘러 출발했다. 순간 가해 차의 운전자가 합의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차를 세운다. “내 차는 별로 다친 곳이 없다. 당신 차도 다치지 않았는데 무엇을 합의하느냐?” 하고 다시 출발하려니 “그냥 가면 고발합니다.” 하며 겁을 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한 표정을 지으니 나 때문에 자기가 앞의 차를 다치게 했단다.
어이가 없다. 나는 과속도 하지 않았고, 앞에 가는 차를 들이박은 것도 아니다. 제가 뒤에서 달려와 차의 백미러를 부딪쳐 놓고 내게 잘못이 크단다. 편도 삼 차선 도로의 일 차선이 비어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옆 차와 부딪칠 상황이라면 일차 선으로 피해 갈 수 있지 않은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같은 또래의 젊은이가 대여섯 명이다. 내게는 아무 말도 없이 자기네들끼리 몰려다니며 숙덕숙덕 말이 많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추위를 피해 차 안에 가만히 있었다.
그 차의 보험회사 직원이 왔다. 한참 그들과 이야기하더니 내게 와서 보험회사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는 빨리 보험회사에 연락하란다. 내가 잘못이 없는데 왜 부르느냐고 따졌다. 그러면 경찰을 부르겠단다. 경찰이 왔다. 경찰이 차 접촉 경위를 조사하더니 내 잘못이 크다면서 그도 역시 보험회사에 연락하란다. 내 차의 보험회사 사람이 왔다. 그들과 사건 경위를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한참 나누더니 내게 와서 사고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해자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참 매정하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구나. 현장을 다시 재연해 보통 상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판단하게 한다면 천금을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 법은 상식을 바탕으로 만들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법 없어도 살 수 있다. 도로교통법은 상식과 다른 모양이다. 내가 잘못이란다. 기분이 묘하고 우울하다.
네거리다. 나는 우회전을 한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 평소처럼 직진 차선에서 오는 차에 지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들어섰다. 갑자기 뒤에서 차가 와 백미러를 부딪고 지나가지 않는가. 나쁜 사람 같으니 차를 천천히 운전하지,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면 어떻게 하나. 그래, 사람도 차도 다친 곳이 없으니 다행이다. 살다 보면 이런 경우도 있구나. 행사 참석은 진작 포기한 상태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의 설명은 다르다. 네거리는 직진 차가 우선이란다. 우회전하는 차는 직진 차의 진로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옆 차선이 비어 있어도 그 차의 운전자가 못 볼 수도 있다. 내가 직진 차의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에 그 차가 다시 앞차를 스치는 사고가 났단다. 내 차의 보험회사 직원도 같은 논리다.
분하고 억울하다. 경찰서에 다시 신고했다. 교통사고 전담 경찰관이 조용히 조곤조곤 설명이다. 도로교통법 운운하며 원론적이 이야기다.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 말을 충분히 이해하겠단다. 그러나 교통사고란 반드시 상대가 있어 잘잘 못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의 잣대는 도로교통법에 명시된 것이 우선이다. 내 이야기도 맞다. 그러나 상대가 아니라고 말하고 어찌할 수 없이 접촉 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고 내 차를 피하다 앞의 다른 차를 스치게 되었다. 설명을 듣고 있으니 그게 아니라고 부정할 방법이 없다.
서운하다.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 가해 차의 운전자도, 보험회사 직원도, 교통경찰도 도로교통법 운운하며 원리만 따진다. 참으로 인간미가 없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한 셈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차도 다치지 않았고, 나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손해 본 것은 금전이다. 부지런히 일해 번 돈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곳에 버리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싸하다.
집에 와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나보고 딱하단다. 칠십을 눈앞에 둔 사람이 세상 물정이 그렇게 어두워서 어쩌느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상대 차의 과실을 주장해야 한다. 순발력 있게 사진도 찍어 증거를 확보할 생각은 않고 춥다고 차 속에 가만히 있으니 자기네들끼리 유리하게 말을 맞추어 당신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뀐 게 아니냐. 스마트폰은 무엇 하려 샀느냐.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가슴을 친다. 한참 훈계를 들으니 그 말도 옳다.
길게 낮잠을 자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억울한 생각이 누그러진다. 아내가 답답한 사람이라 하는 내가 그래도 아들딸 키워 교육하고, 지금까지 식구들 큰 걱정 시키지 않고 건사하지 않았는가. 아내로부터 남에게 속지 않고 사는 방법을 몇 차례 더 교육받게 될지 모르나 내 삶의 철학은 변할 것 같지 않다. 함께 행복할 방법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작정이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