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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과 심장에 담아뒀던 누군가를 완전히 떨쳐 내버리는 일, 정말 죽기보다 싫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 고통스럽고도 시원섭섭한 결심을 위해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과학적 수술단계를 거쳐 그 또는 그녀와의 기억을 몽땅 없앨 수 있다는 전제하에 몽상(夢想)적 밑그림을 그려낸다. 연즉 영화의 발단은 여주인공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즐릿)이 조엘(짐 캐리)이라는 남자와 사랑한 죄의 속박에서 스스로를 다시 격리시킨 후를 기정사실로 이야기를 추진한다.
미리 언급하자면 이야기전개는 전진하지만은 않는다. 마치 “호랑나비”의 춤사위처럼 엎어질 듯 뒤로 넘어질 듯 전진과 후진을 반복 재생하는 방식을 취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뇌의 구조처럼 경로를 달리하는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찌됐든 그녀가 자신과 사귀었던 추억을 모두 지웠다는 걸 알게 된 과거의 남자 조엘은 잠시 죽음에 가까운 고통과 번민에 휩싸이지만, 곧 자신도 그녀처럼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다소 허황되지만 사랑했던 두 남과 여의 동상이몽(同床異夢)적 기억을 흔적도 없이 없애는 데는 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연결된 무허가 의학기구가 동원된다. 뇌손상에 대한 우려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 시연하는 장비, <토탈 리콜>(Total Recall)을 언뜻 연상시키는 이 기억제거장비에 의한 시술은 곧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수술 그 자체가 뇌손상에 다름없다.
영화는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이 만든 미로,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와 <어뎁테이션>(Adaptation)의 초현실주의에 버금가는 구도에 의해 전개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짐 캐리와 케이트 윈즐릿이 희비극적 연기호흡을 맞췄다. 영화에서 그들은 때로 스크루볼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 상에서 완전히 다른 성향의 객체들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줄다리기를 한다.
직관적으로 조엘은 내성적이고 클레멘타인은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물과 기름 같은 사이란 흔한 말처럼, 좋을 때보다 서로 다른 이해도로 인한 다툼과 그로인한 불화가 끊일 새 없다. 기술적 차원의 문제든 외부적 여건에 의한 문제든 그러는 동안 둘은 점점 이성상실의 심각한 상태로 빠져든다. 각자 지금까지 맴돌았던 삶의 트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둘의 관계에는 애증(愛憎)과 희비(喜悲)의 감정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영화는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한 미궁의 정신세계 속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간다. 그 자체로 이야기를 똘똘 휘감고 모든 것을 재정립하며 허공으로의 질주를 하다가 다시 정립되는 식이다. 발생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한 과정일 수 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언제부턴가 사랑이라는 열차에 동승했지만, 결국 관계의 종착역이 서로 달랐다. 클레멘타인은 그 후 라쿠나 주식회사의 하워드 미에즈윅 박사(톰 윌킨슨)를 찾아간다. 조엘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했던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우려 마음먹었을 때의 심정이나 정신 상태는 정상적 일리 없다. 마찬가지로 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짓누른 상태에서 이야기도 도대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심연과 함께 요동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두와 같았던 사랑이 무정하게 떠나간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복수심에 자신도 그녀를 지워버리기로 결심한다. 서로의 문제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상의하고 고쳐볼 겨를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즉흥적 결단에 스스로를 내맡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사랑은 종점에서 재생된다. 과거 서로의 나쁜 기억보다는 함께 보낸 좋은 시간들을 되새기며 더 집착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 조엘은 추억의 성들이 붕괴되는 가운데 결국 자신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친다. 그래서 그는 심상의 가장 깊은 곳 모퉁이에 기억의 일부를 감춰두려 애쓰지만, 이미 진행된 처리절차를 바꿀 수는 없다.
영화는 아주 깊은 수면 중 무의식의 세계를 관통해 들어간다. 영화의 시작에서 조엘은 사랑의 불시착이라 할 설명할 수 없는 충동으로 붙들리고 몬토크(Montauk)행 열차를 탄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그는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둘 다 서로 이전에 본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왠지 거기엔 묘한 연관성, 기시감(deja vu)의 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언제고 막힘없이 어지럽게 순행과 역행을 앞뒤로 반복하며 이동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관객들은 동일시의 상태에서 서로 가졌고, 앞으로도 또 가질 수 있는 관계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서로 공유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터널 선샤인>은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가 감독했다. 그는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베테랑, 카우프만이 쓴 <휴먼 네이처>(Human Nature, 2002)를 첫 작품으로 영화계에 공식 등단했다. 정신병적인 그의 연출은 천재적이고 상투성을 확 비껴간다. 고의로 방향감각을 상실케 한 이야기전개를 통해 고생을 감내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터널 선샤인>은 감정적 중심을 잡고 있고 그것이 영화를 작동하도록 만든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현실 속 다양한 로맨스의 무대들을 통해 옥신각신 주고받는 플레이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사랑을 향한 인간의 욕구와 우정이다. 특이하게도 인간적 충동은 이를 계속해서 추구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정말 서로 너무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성적이고 강박적인 반면, 그녀는 외향적이고 자주 제멋대로 굴 만큼 다혈질적이다. 서로 반대되는 매력을 가진 둘은 서로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잘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기억 삭제전문 라쿠나 회사를 통해 증인보호프로그램으로 대체되는 운명의 갈림길을 택하고 만 것이다.
짐 캐리에게 이 영화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와 평가절하 된 <마제스틱>(The Majestic)과 같이 또 다른 성공적 도전이다. 스크루 볼 코미디를 넘어 그 자신의 연기영역을 확장한 또 다른 개가라 할 만하다. 그는 평범한 호소력을 갖췄고, 여기서 그는 전무한 것보다 나은 일말의 기억을 붙잡으려 처절하게 외롭고, 절망적으로 갈망하는 남자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 자신의 본원적인 힘을 낮췄다. 케이트 윈즐릿은 그를 바로 좌절시키고 조엘의 기벽 때문에 짜증내지만, 한편 역설적으로 둘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그들 사이에서 야바위적 속임수를 쓰는 라쿠나 주식회사는 현실 속의 또 다른 레벨을 제시한다. 하지만 거기서조차도 숨기고 싶은 비밀들은 드러나고 이상하게도 감정적으로 동감하게 만든다.
카우프만의 여정은 인간의 심리를 관통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의 인물들은 명배우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의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여행을 통해 좋은 가능성을 열어뒀고, <어뎁테이션>에서는 모두 같이 한 몸에 거주한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등장인물들이 그들 자신 밖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그가 간파하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오늘하루의 끝에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실재하는 우리 속에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떠났을 때 우리는 또한 잊혀져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의 영화들은 풍자적 매혹으로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불평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평균적으로 각기 지적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에 매력과 미적 감각을 더하는 데는 또한 음악이 결정적 역할을 다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에 특징적으로 담긴 카터 버웰(Carter Burwell)의 심히 침울한 스코어는 뷰욕(Björk)의 몽환적인 기여 'Amphibian'과 저항불가의 'Malkovich masterpiece remix'를 포함한 기억의 잔상을 남겼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공드리 감독의 <휴먼 네이처>(Human Nature)는 그렘 레벨(Graeme Revell)이 쓴 재즈, 팝, 클래식 그리고 'Hair everywhere(Remix)'와 같은 뮤지컬 곡들로 채워졌다. 모두 호평 받은 작품들이었다.
카터 버웰이 다시 음악을 맡은 <어뎁테이션>(Adaptation) 스코어는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의 리믹스버전과 1960년대의 명곡 'Happy together'(터틀스)를 특별히 사용한 매우 고요한 작품이었다. 영화와의 궁합은 물론 최상이라 할만 했다. 그리고 알렉스 워만(Alex Wurman)의 스코어와 도노반(Donovan),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 로즈마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프래디 캐논(Fredy Cannon) 등의 노래들로 구성된 <컨페션>(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 사운드트랙까지, 완벽한 구성을 자랑했다.
감독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에겐 영국아카데미(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감독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예를,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에게 오스카트로피를 안겨준 영화를 위한 음악은 비교적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작곡가 존 브라이언(Jon Brion)이 맡았다. 우선 대부분의 영화음악들이 영화의 이야기전개 내외에서 보강하거나 전개를 돕거나 또는 동일한 감정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등의 역할에 절대적인 비중이 실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터널 선샤인>에 쓰인 브라이언의 음악은 매우 기묘하고 이상하게 영화음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영화와 같이 음악은 묘하고 애처로우며 결정적으로 모든 내용적 요소들을 특별히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끔 아름다운 음악의 양식 안에 결합시킨다. 이 모든 음악적 환경들이 창출되고 경과해 어떤 결과에 이르는데 노고를 아끼지 않은 존 브라이언(Jon Brion)은 영화음악작곡가이기 이전에,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음반을 비롯해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 에이미 만(Aimee Mann), 일스(The Eels)와 같은 록 뮤지션들과 함께 제작자로서 음반작업을 한 저력이 있다. 2001년에는 개인작품 < Meaningless >을 낸 바 있는 명실상부한 실력자다. 영화에 입문해서는 <매그놀리아>(Magnolia)와 <펀치 드렁크 러브>(Punch Drunk Love), 두 서로 다른 영화를 위해 각기 색다른 작곡을 해 인식된 바 있다. 브라이언은 영화음악뿐만 아니라 음반제작에도 두루 재능을 가진 차별적이고 이채로운 음악가임에 분명하다.
음악양식 또한 전통을 답습하기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감동 포인트를 잡아내는 데 역점을 둔다. 대개의 숙련된 작곡가들이 주로 오케스트라의 방식을 토대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데 반해, 브라이언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연주를 할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쓰더라도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편성의 실내악적 형식을 추구한다. 절대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적당한 배합을 요한다. 거기에 다양하고 이국적인 악기들을 편성해 재래식 낭만의 감정들을 불러내는 양식미를 구현해내는 식이다.
이 점에서 2001년 <아멜리에>(Amelie)와 2003년 <굿바이 레닌>(Goodbye Lenin)의 얀 티에르상(Yann Tiersen)의 작법과 동일노선을 추구한다. 무조나 불협화음을 통해 무서운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감상적인 곡 자체로의 완성도보다는 영화를 위해 적합한 감흥을 제공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향이 짙다. 그렇더라도 지우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의 이중적 자아 속에서 변화무쌍한 혼돈을 겪는 주인공의 내면을 투영하듯 모든 곡들은 성긴 구석이 있는 반면 매우 교묘하고 단정하게 감성을 조율한다.
전적으로 존 브라이언(Jon Brion)의 음악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여러모로 매우 세심함이 돋보인다. 영화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이 그러하듯 매순간 매혹적이고 기묘하다. <매그놀리아>(Magnolia)와 <펀치 드렁크 러브>(Punch Drunk Love)에서 선보인 것의 연장선상에서 브라이언은 묘한 분위기를 내는 색다른 악기편성, 감염적인 멜로디 그리고 완벽하게 조응하는 한 두 곡의 기성 대중음악을 결합해 음악적임과 동시에 비음악적인 악상을 투영해냈다.
사운드트랙에 실린 브라이언의 소리들은 때론 무조주의와 불협화음을 내기도하고, 때론 다양한 사운드질료들을 기계적으로 엮어낸 것처럼 조악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제 기능을 정확히 발휘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강렬한 감정적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전반적으로 음울하면서도 희비극적인 감성이 혼재하는 영화의 분위기에 꼭 맞는 사운드트랙은 이해를 돕는 음악적 지도와 같다. 복잡하게 앞뒤로 뒤얽힌 영화의 전개방식과 같이 음악도 순행과 역행을 반복재생해낸 실험적 사운드 속에 재래식 낭만의 감정을 불러내는 특징적 질료들로 구성되었다.
대개의 곡들이 비교적 간결하고 1분 이하로, 브라이언이 창작한 서 너 개의 테마들 중 하나를 일부 변주한 것들이다. 2002년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의 'Here we go'에 이어 그가 곡을 쓰고 직접 노래한 'Strings that tie to you'을 변주한 곡도 포함된다. 'Collecting things'와 'Phone call'은 섬세하고 은은한 기타의 순환적 연주음을 공유한다. 마치 추억의 LP 블랙비닐음반을 플레이하는 것 같은 재래식 낭만의 감정이 배어난다. 한편 슬픔을 자아내는 현의 울림도 주위를 맴돌며 감정을 일으킨다. 그리고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기억을 삭제한 것과 같이 결국 갑자기 사라진다. 후반부에 음악은 일정한 악구를 반복하듯 동일한 루프를 취한다. 이는 더욱 깊고 짙은 현악의 울림 속에서 엷은 키보드사운드가 산재하는 양식 내에서 훨씬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다른 곡들은 훨씬 더 전위적이고 'Showtime'(쇼타임)과 같은 곡은 토마스 뉴먼(Thomas Newman)이 가진 실험적 스타일과 유사하면서 또 다른 변형이다. 'Showtime'은 타악기와 피아노, 금관과 목관악기, 그리고 메인테마의 키보드 변주를 전위적으로 조합해 상당히 혼란스러운 기분을 야기한다. 이 곡은 슬픔과 허무 그리고 혼돈에 휩싸인 조엘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반영하는데 기막히게 작용한다. 관객들이 각기 서로 다른 기억의 여정을 겪게 될 거라는 전조와도 같다. 메인테마와 메인타이틀 그리고 'A dream upon walking'(꿈속을 거닐다)에 내포된 기억들의 몽타주들은 다른 선율의 사운드와 악기들의 연발로 아름답고 조직화된 혼돈을 창출해내는 놀라운 솜씨에서 두르러진다. 한편 'Row'와 'Peer pressure'와 같이 다른 현저한 특징들은 간소하고 마음을 교란시키는 피아노독주의 사용으로 정말 눈부신 잔상들을 만들어낸다.
'Row'는 소박한 매력의 피아노 독주곡, 영화의 도입부에서 분위기를 잡는 테마는 엄숙하고 울적한 음표들, 골동품 뮤직 박스에서 나올법한 곡조를 들려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미리 암시하는 효과를 주는 거다. 'Elephant parade'는 그 자체로 애처롭고 감동적이다. 한편 현악에 의한 'Drive in'은 쾌활하고 호기심 가득한 감각적 곡. 브라이언이 쓴 연주곡들이 영화의 내용에 분위기를 제공하는 가운데, 벡(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과 브라이언의 'String that tie you', E.L.O의 'Mr. blue sky', 폴리포닉 스프리(The polyphonic spree)의 두 곡, 그리고 윌로우즈(The Willowz)의 노래들이 사용돼 상념에 잡히게 하는 영화와 동일한 감정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소수정예의 훌륭한 노래들을 자신의 스코어와 함께 완벽하게 선곡해 넣었다. 이.엘.오(Electric Light Orchestra)의 경쾌한 챔버 팝스타일 록 송 'Mr. blue sky'(1978년 35위), 플래밍 립스(The Flaming Lips)와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에 실내악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양식을 결합한 음악을 구사하는 폴리포닉 스프리(Polyphonic Spree)의 록 찬가 'Light & Day'와 몽상적인 사이키델릭 록 'It's the Sun', 순수한 회고조의 돈 넬슨(Don Nelson)의 스윙감 있는 재즈, 라타 만게쉬카(Lata Mangeshkar)의 영적이면서 로맨틱한 인도음악, 윌로우즈의 펑크록 'Something'과 고운 어쿠스틱 'I wonder'를 포함한다. 한편 벡(Beck)의 가창과 곡조가 영상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 곡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은 진정한 하이라이트다. 완벽하진 못해도 최우수작 중 하나임에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카우프만의 영화에 고급취향에 아름답고 다채로운 시도의 곡들을 투영했다.
부정적인 면에서 덧붙이자면 사운드트랙에서 브라이언의 음악은 영화의 또 다른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무기력함과 울적함에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조엘의 차안에서 플레이되어 나오는 벡의 노래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만이 기억에 잔상에 남을 뿐, 영화전반을 좌우하는 브라이언의 연주곡은 기억의 저편너머로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존이 이곡의 제작에 벡과 함께 공동명의를 올렸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해두자. 폴리포닉 스프리의 'Light&day'와 같은 곡들은 영화의 배경에서 짧고 희미하게 지나갈 뿐이다. E.L.O의 'Mr. blue sky'는 극장용 예고편으로 기억될 테지만, 독특한 접근방식에 따른 브라이언의 실험적 작품들은 영화 속 앨범으로 더욱 오랫동안 고이 간직 될 것이다. 특히 피아노와 베이스의 왈츠 풍 합주가 아련한 인상으로 남는 메인테마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