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3일 교중미사 강론을 들을때 마음에 크게 와 닿는 말이 있었으니 「감사」입니다.
강론의 앞 부분만 정리하고 「감사」와 관련한 최근 저의 경험을 큰 용기 내어 나눕니다.
감사하다 이태리 말로는 그라찌에(Grazie)
그리스 말은 에우까리스
에우 의 뜻은 잘, 풍부하게 올바르게, 좋음을 표현하는 감탄사
까리스 의미는 은총, 은혜, 호의, 친절 의 뜻
감사하다 라는 뜻은
내가 받은 은총,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호의, 친절을 잘 표현하는 것.
감사와 연결된 단어는 찬양, 그다음엔 감사, 영광, 구원 이 순서대로 감사의 과정이
복음에서 묘사된다고 오늘 강론에서 설명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내가 뽑은 성귀는 루카 17장 19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신부님이 선택한 성귀는 루카 17장 16절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감사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고 그 '인식'함을 통해서
감사를 드리게 될 때
구원에로 인도해준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알려주는 메세지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것이 무엇인지 잘 바라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삶,
이 삶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준다 는 강론들을때 마음에 와 닿아 영상을 보며 다시 정리했습니다.
남이 정리한 내용을 보면 그 부분이 확실하게 더 부각되어 잘 들릴 수 있습니다.
감사와 관련한 최근 삶에서 성체조배를 통한 용기로 저의 경험을 나눕니다.
저는 그동안의 삶을 되짚어 보면 사실 믿음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보니 신앙과 일상은 늘 따로 국밥이지만 크게 뭐 잘못한 것도 없으니 문제 인식도 없었습니다.
성당에 열심한 것은 몸이 하는 것이고 봉사도 몸이 행동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아기반도 약하다 보니 교우들의 말에 쉽게 휘둘려져서 마음이 많이 상하다 보니
성당에 다니는게 뭐 다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게 되는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웃이 평일미사5회를 채우고 성체조배시간도 늘려 상 타는 것을 보며
나도 한번 상을 받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동기가 되어 매일 미사에 참례하여 강론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강론내용에서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패턴은 매일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마음에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는게 보였습니다. 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신부님 강론을 집중해서 자세히 들어보니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했던
신부님의 실제 경험을 되살려 신자들에게도 말씀과 성체로 믿음을 키워주시려는 호소가 강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죄를 끊고 믿음을 새롭게 갖다 보니
요즘 읽는 성경책 서간문 전체는 저자가 신자들에게 믿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호소의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이해한 성경의 주골자는 사랑하라 인줄 알았는데 더 중요한건 제발 좀 믿으라고 강조하는게 보입니다.
매일1장 성경읽기를 통하여 성경을 50년만에 순서대로 처음 읽고 있습니다.
요즘 읽는 성경구절은 구구절절이 모두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면지에 옮겨 쓰다 보니 필사가 되고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90세까지 살 수 있는 전제에서 보면 향후 30년의 실천할 시간이 주어진 현실은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나를 온전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모든 세상적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엄청난 재뭃잃음의 사건 주심을 성체조배안에서 바라봅니다.
신부님이 강론끝에 주시는 숙제한다며 어느날 부터는 성체조배 시간을 배로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체조배안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깊은 정적안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작은아들의 행색은 완전 나의 모습인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때 하느님은 작은아들에게 잔치를 벌여주시며 있는그대로 반겨주시는 대목에서는
바닥에 엎디어 오열하듯 소리내어 엉엉 많이 울었습니다.
오늘 2019년 10월 13일 감사관련 복음말씀과 강론 다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