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16장 1-6절『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가 살아나셨고”(에게르데 ἠγέρθη)에 대해서 살펴보면, 영어번역은 He is risen(kjv), He has risen(niv)이다. 에게르데에 대한 설명이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있다.『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우리말은 살아난다 라고 표현되었지만, 영어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영으로 일어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삼일을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하셨는가?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서『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퓌라케 φυλακῇ)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퓌라케는 감옥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5장 19절에서『주의 사자가 밤에 옥(퓌라케 φυλακῇ)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따라서 이 감옥은 인간의 육체를 의미한다. 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흙속에 있으므로 갇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이라는 것이다.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갇혀있다는 개념이다.
삼일에서 삼(3)이라는 의미는 창세기 1장 9-13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삼(3)은 언약을 의미한다. 창조 셋째날은 보면 세가지가 등장한다.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낸다. 개역개정에는 풀이라고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는 에세브라고 되어있다. 에세브는 채소이다. 따라서 짐승도 풀 뿐만 아니라 채소인 에세브를 먹는다는 것이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에세브에는 제라( זֶ֔רַע 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채소(에세 עֵ֚שֶׂב)에 대해서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에세브는 풀과 차이가 있는 것이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곧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채소는 씨를 가지고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씨는 곡식으로서 떡으로 표현된다. 가나안에서 먹는 열매는 포도주로 표현된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나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다. 결국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때 등장한다. 떡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살로, 포도주는 죄를 대속하는 피(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새언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씨와 열매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성취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육으로는 십자가에서 죽고, 영으로는 온 세상 사람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셨다. 요한복음 5장 25-26절에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음성을 듣는 자는 일어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말씀을 믿는 자가 음성을 듣는 것이다.
삼일길은 언약의 성취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로 나아가는 것이 언약의 성취이다. 출애굽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세례로 표현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세례는 죽음을 표현한다. 세례받은 자는 세상(애굽)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 입구인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다. 가나안은 부활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 땅 앞에서 백성들은 정탐꾼을 요구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차출된 열두명이 사십일간 정탐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명의 정탐꾼이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모세와 벡성에게 말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돌게했으며,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와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을 이끌고 여호수아(예수)와 갈렙(이방인의 상징)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이 말은 그들은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는데, 믿음이 부합되지 않으므로 다 죽은 것이다.
삼이라는 언약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다른 예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그들은 예수님이 영으로 옥에 가서 전한 대상이다.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물에 빠져 죽어야 할 그런 존재들이라는 말이다. 노아 당시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노아는 120년 동안 회개를 외쳤다. 물론 방주를 짓는 기간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야샬의 책을 보면 방주를 5년간 지었다고 한다.
어쨌든 노아가 백성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주는 부활을 상징한다. 사실상 노아와 그의 가족 칠명도 방주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의 비를 맞은 것이다. 하늘의 비를 맞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창세기 7장 7절『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יָּ֣בֹא נֹ֗חַ וּ֠בָנָיו וְאִשְׁתֹּ֧ו וּנְשֵֽׁי־בָנָ֛יו אִתֹּ֖ו אֶל־הַתֵּבָ֑ה מִפְּנֵ֖י מֵ֥י הַמַּבּֽוּל׃
와야버(갔다) 노아 우바나오(그의 아들들) 웨이샤토(그의 아내) 웨느쉐(아내들) 바나오(아들들) 이토(그와 함께) 엘(안으로) 하테바(방주) 미프네(관계사:때문에) 메(물들의) 함마불(홍수의)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홍수의 물들 때문에 방주에 들어갔다』하늘에서 내리는 비(물)가 쏟아지므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방주로 들어간 것이다. 비가 오기 전에 방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비를 맞았다는 말이다.
비는 영적으로 하늘에서 오는 말씀이다. 율법의 비를 맞으면 홍수에 쓸려 죽는다. 그러나 복음의 비를 맞으면 부활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비를 맞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상징하고,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부활의 그리스도가 바로 방주인 것이다. 그들은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들어갔지만, 대단히 두려웠을 것이다. 육적으로 볼 때, 컴컴한 방주에 들어가면 과연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방주에 들어간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음에도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므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범죄한 천사의 영이다. 사람의 딸들은 흙이라는 육체이다. 영과 육체가 만나므로 살아있는 생명체(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옥 갇혀있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감옥에서 풀어줄 열쇠를 지는 여인의 후손(메시야)을 약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좋으므로 이 언약의 약속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제 언약이 성취되셨다. 마가복음 14장 48-49절에서『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성경을 이루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반쪽 복음을 들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에 대해서, 대속을 위해 죽었음을 믿지만, 현재적 부활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다. 현재적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심령 속으로 재림하여 들어가(파루시안:임재) 하나님 나라를 부어주신다.
이게 요엘 2장 28-30절의 말씀이다.『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성령세례와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