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에서 능가 대종사님의 49재를 참여한 범어사에는 능가문도들이 참여하였다. 능가 대종사님은 일본유학 승으로 일본어에 능통하기에 일본 저서가 많다고 했다. 물론 무진장 대종사님의 사형이기에 서울에 올라오면 인사동에 머물 수 있는 거처에 친견하였다. 능가 대종사님이 불교계에 정통성을 선 수의 전승을 실형하려고 했던 능가 대종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능가 대종사의 몸을 볼 수 없고 영혼이 되어 친견할 뿐이다.
능가 대종사님의 49재를 올린 이후에 부산 대불련 동문 전회장님이 참배한 내원암을 방문하였다. 그 시기는 오후 2시였는데 대법원에서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에 판결을 생중계로 방송하고 있는 수간을 청취하였다. 부산지역의 정치적 변동이다. 실로 경기도 도지사에 대한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7대 5라는 판단을 하였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라고 오전 5시에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에 대한 찬양시를 올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묘법연화경 6차 사경을 시작하고 화성유픔을 시작한 이후에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에 대한 지속적인 도정을 이행할 수 있다고 본다. 능가대종사님이 머문 내원암에는 부산 지역 대불련 전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명이 있었다.
나는 통도사에 가려고 하는데 윤전할 수 있는가를 물었더니 승낙을 얻어 통도사를 방문하는데 부산 범어사를 나와 통도사를 향해 달려갔다. 통도사에 가려는 것은 극락암에 거주하였던 경봉 대종사님의 38주년 기일을 맞이하여 삼소굴에 대한 대담을 정리하였던 책이다.
통도사에 도착하여 시탑전에 있는 스님들을 방문하고 시탑전에서 일박을 하였다.
극락암에 도착하니 통도사 경봉 문도들과 전국에서 모인 스님들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명정 스님이 거주한 방안에 도착하여 명정 스님의 영전에 사진을 찍었다. 명정 스님과 나는 동화사에서 상선원에서 정진한 도반인데 나이가 많은 도반이다.
극락암에는 경봉선사의 거봉이 상주하면서 수많은 선승들을 배출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선승들이 보여준 선어록을 창작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선승들이 출현하지 않는다. 50년전에는 전국의 선승들이 백지장을 보냈는데 경봉 선승만이 백지 끝에 점을 찢었다고 하여 선승들이 그래도 경봉 선사로구나를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선수행의 정진이 종결된 이후에 열반 38주년이라고 한다.
경봉문도회에서는 박사과정을 수학하고 있는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승단의 교육발전에 조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학금을 수여받은 승려들을 박사가 되어 경봉선사상을 연구하는학바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