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며 민 관 식 ( 靑顥 )
내가 어머님 배를 빌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 마을이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구아 부락이다. 우리 마을은 산청군에서도 가장 낙후된 오지의 산골 마을로, 뒤로는 왕산과 팔봉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이고, 앞으로 엄천강이 흐르고 있어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재물이 넉넉지 못하여 봄이 오면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하여 논두렁 밭두렁에 나가 쑥을 캐고 때로는 왕산에 올라 송구를 벗겨 연명하며 유년기를 보내면서도, 날씨가 더워지면 발가벗고 물장구도 치고 개구리 헤엄을 뽐내던 강물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건만, 격전의 6.25를 겪으며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말았다. 산촌의 조그마한 터전에서 생존의 승부를 걸기에는 너무 열악하고 궁핍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서 피와 땀의 노력으로 살아오며 어느 덧 인생 80의 목전까지 이르고 있다.
그 옛날 어릴 때 같이 뛰놀던 내 고향의 다정했던 소꼽친구들, 지금은 뿔뿔이 헤어지고, 그리고 세상을 먼저 등지어 몇이 안남았지만, 그 때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는 어김없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질주하는 시점에서 마지막 저녁 노을을 더욱 찬란하게 붉게 물들이고 싶은 생각이다. 길지 않은 여생을 더욱 보람있고, 더욱 후회없는 삶을 기대하며 다시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
인생을 먼저 살아 온 사람으로서 고향 아우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며 자기 개발에 힘쓰면서 미래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의 형성”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라는 바이다.
여러 분의 미래에는 국경도 없는 지식경제가 기반이 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바, 학교 교육 현장의 다양한 교과 교육에 정진하면서 1인1기의 기능 개발에 꿈과 희망을 갖고 총력을 기울이는 지혜를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며, 소중한 가치로서의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확신을 갖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결실을 맺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생활의 지혜는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태만과 낭비이며, 가장 소중한 것은 근면함과 겸손을 겸비해야 될 것이다.
인생 살이는 이른 봄 싹이 돋아 꽃을 피우고 한여름에 비바람과 폭염속에서 열매를 키운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매섭고 찬바람에 아낌없이 잎을 떨군다.
그 나목이 바로 기성세대들의 모습이라면----,
급속하게 다가오는 고령화 시대에서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당장의 생계유지조차 막연한 노년층들이 적지 않음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또 그 들 기성세대는 가정과 사회에서 밀려나 소외받는 계층으로 전락하여 상실감에 젖어 초라한 여생을 이어 나간다는 사실에도 접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그 들이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피와 땀으로 이루어 놓은 풍요의 빵을 먹으며 세계에서 남부럽지 않은 국가경제하에서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굴욕의 일제 강점기하의 힘없고 가난에 찌든 부모의 그늘에서 암울한 유년기를 보내고, 발랄해야 할 소년기에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6.25사변을 겪어야 했으며, 청년기에는 폐허 속에서 빈곤의 긴 터널을 숨가쁘게 달리며 오로지 잘 살아보자는 신념으로 가정과 국가사회를 위해 돌진해온 우리사회의 주역들이었다.
억새풀처럼 모진 세월을 살아 온 그 들 세대는 지하철에서 시내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약자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마저 지닌 사람들이다. 그 들 세대는 지금도 연륜과 경륜을 동원하여 지혜와 역량을 모아국가사회 발전에 일조하려는 책임감을 갖고있는 사람들이다. 노인이라는 호칭과 주름진 얼굴로 남에게서 대접이나 받고자 하는 얄팍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배려하고 규율과 질서를 지키며 솔선수범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 세대들인 것이다.
기성 노인세대를 흔히 지는 해에 비유한다. 낮동안 빛과 열을 쏟아내고 산위의 능선이나 아득한 수평선에 느긋하게 몸을 뉜 저녁해는 하늘높이 떠 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늠름하다.
초라하게 사라지는 저녁해가 아니라 혼신을 다 하여 아름답고 장엄한 노을로 하늘을 물들인다.
역동하는 사회의 명실상부한 구성원이 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어우르는 징검다리로 그 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튼실한 이음대로 구성원의 가치를 지키는 파수군이 되기도 한다.
까마귀도 고향 까미귀를 보면 반갑다는 말이 있다.
타향의 객지에 있는 향우 제위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으로 사료되며,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에 노파심에서 보고 느낀 점을 사례를 들어 적어 본다.
수 년전 절친한 친우의 부음을 받고 내 어릴 때 꿈과 희망을 키운 고향의 장지에 갔다.
장지에 도착한 바, 동리 리장을 비롯하여 전동민이 길을 막고 중장비로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생장(시신)의 운구는 물론 장례 준비물도 마을을 통과할 수 없다면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장례행렬이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면 마을에 횡액이 생기는 바, 절대로 영구차량이 마을을 통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동네앞 논이나 뒤쪽으로 운구하면 어떻겠냐고 간청을 한 즉, 그마저도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은 거절을 당하고 험준한 재를 넘어서 겨우 장례를 치를 수 밖에 없었다.
고향 인심이 이렇게 각박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잊혀지지 않을 장면들이 떠오른다.
수구초심(首邱初心)호사수구(狐死首邱)라는 옛말이 있다.
여우도 죽을때는 머리를 태어난 곳으로 보고 죽는다는 말이다.
미물 짐승도 태어난 고향을 찾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선산이 있고 조상 대대로 살아 왔으며 성년이 되도록 고향에 살다가 병역을 필하고 농촌의 조그만 터전에서 생존의 승부를 걸기에는 너무 미약하고 궁핍하여 어쩔 수 없이 타관에 가서 자식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혼인시키고 먹고 살다 보면, 어느 덧 백발이 되고 늙어 죽어서 고향산천을 찾아 갔지만 고향을 지키는 친구, 일가, 동네의 이웃들에게서 단호하게 외면을 당하고 만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나의 일이고 우리들의 일이기에 너무 허무하고 무상함을 금할 수 없다.
타관 객지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 생전 고향땅에 가서 살겠다는 소망과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것이 허상으로 끝나는 것이 인간사가 아닌가 싶다.
타관땅 몇십년에 자식 낳아 키우며 살다 보면 덧없이 늙고 병들며 그 옛날의 향수에 젖어 찾아온 그 들에게는 어머님의 품속같이 포근한 고향의 인심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전술한 바, 이러한 사례는 다시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각박하고 메마른 세파에서 훈훈한 정이 오가며 영원히 동심을 잃지 않으며 서로 반기며 여생을 가고 싶은 것이다. 미소와 진실이 오가는 고향을 그리며 언제나 찾아가서 따뜻한 정이 오가는 고향! 그 고향을 향하여 가고 싶은 것이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저녁 노을을 보면서 남은 생을 가정의 화목과 고향의 발전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 고추처럼 유난히 매웠던 지나온 삶의 여정이 그렇게 험하고 힘든 줄이야, 지나고 보니 꿈만 같을 때도 있다.
자신의 인생, 자신이 책임질 수 밖에 없는 가혹하고 어두운 현실 앞에 서있는 자신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면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우리 인생사가 고향을 그리며 친구를 그리며 여생을 이어 감도 값진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옛 생각에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대망의 2015. 새 해를 맞이하며
민 관 식(閔 琯 植)
출생지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신아리 구아부락 770번지
현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뚝섬로 52나길 49(자양동651-43)
전 화 : (02) 446-6569
휴대폰 : 010-3798-1122
첫댓글 좋은 글이라 자랑삼아
본인 허락도 없이 옮겼습니다.
넘,좋은 글입니다.허락하시지 않아도 옮겨야 좋은 글이지요.많은 사람이 보아할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건강하시고 만수무궁하시기를 빕니다.
감명 깊게 잘 읽었읍니다.우리 학봉산악회 회원은 문학인들로 구성 되었음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