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단약을 복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머리 위에서 백색의 물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황보유는 내심 실망하는 것 아닌가 하고 긴장된 눈길로 그들을 관찰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가물거리던 물기가 차츰 사라졌다.
두 사람의 얼굴에 활발한 기운이 번졌다.
황보유는 즉시 남은 두 알의 보정단을 주머니 속에다 소중히 간직했다.
그들이 눈을 뜨자 빙그레 웃어 보이며 말문을 열었다.
"두 분께서 잃어버렸던 공력을 되찾은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하오."
여동청은 고마워 어쩔 줄 몰라했다.
"공자의 이 은혜를 여모는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모르겠구려."
"불초 또한 그렇소이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부디 공자께서는 어떠한 일이든 간에 분부만 내리시기 바라오."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더구나 무림에서 그들의 위치는 자못 당당한 것이어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웬만한 일이면 다 할 수 있었다.
"두 분 형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이제는 불안하오이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여동청이 다시 말을 꺼냈다.
"공자의 겸손하고도 넓으신 아량에는 더욱 감복하지 않을 수 없구려.
여모는 지금 이전의 공력을 모조리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약간 늘어난 것도 같으니 이 모두가 공자의 은혜가 아닌가 하오."
형용은 이 말을 듣자 암암리에 운공을 해 보았다.
과연 여동청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그는 여동청과 몇 마디 상의하기 시작했다.
"황보 공자의 크나큰 은혜를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보답해야 하오. 가만 있자.."
여동청은 한참 뭔가 생각하는 눈치이더니 말했다.
"공자께선 수종(隨從)하는 사람이 없나 본데,
나는 어차피 강호를 유랑하며 달리 할 일도 없고 하니
만약 공자께서 허락하신다면 공자의 뒤를 따르겠소이다.
가끔 경치 좋은 곳을 구경도 하고 잔심부름도 해 주겠소.
모르면 몰라도 필시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되오."
반패왕 형용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청은 일전에 자기 목숨을 구해 주었고,
또 오늘에 와서는 잃었던 공력을 되찾게 해 주자,
자신의 신분을 낮추면서까지 황보유를 받들고 싶었다.
보아 하니 황보유는 솔직하고 순진하여
강호의 험악하고 음흉한 속사정을 확실히 모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형용은 자기의 입장으로 비추어 볼 때
여동청처럼 발벗고 나서서 그를 따를 수는 없었다.
우선 그에게는 집안이 있었다.
그리고 벌려 놓은 일 또한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도처로 유랑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이 모든 일들을 서로 한참이나 상의했다.
드디어 황보유가 막 떠나려 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여동청이 뭔가 말을 꺼내려 하자 황보유는 얼른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내 추측으로는 향공도와 경청이 온 것 같소만."
여동청과 형용도 자세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없었다.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는데 다시 황보유가 말했다.
"나는 향공도의 공력을 시험해 보고 싶소.
그렇지만 그들의 적수가 안 될지도 모르오.
두 분께서는 그때 나를 도와 주실 수 있겠소?"
"물론이오."
두 사람은 동시에 당차게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리곤 여동청 혼자서 말을 꺼냈다.
"공자께서 우리의 간섭을 나무라시지만 않는다면 무슨 할 말이 있겠소?"
황보유는 빙그레 웃었다.
"평상시라면 그를 두려워하지 않소. 보시오. 그는 지금 저쪽 지붕 위에 나타났소."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 지붕 위로 쏠렸다.
넓은 장삼을 펄럭이고 있는 귀의 향공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들의 간격은 사 장 거리쯤이었다.
돌연 향공도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황보유 등 세 사람이 있는 곳과 몇 척 거리를 두고 내려섰다.
형용과 여동청은 향공도의 무공이 신기하리만치 고강(高强)한 것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황보유가 공격했다가 오히려 그의 반격을 받는다면
박살이 나고 말 것 같아 근심이 되었다.
귀의 향공도는 담담한 표정으로 황보유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형용과 여동청 두 사람에게 시선을 못박았다.
여동청은 자신은 상대방의 적수가 못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악에 받쳐 전력을 다해 맞붙는다면
사오십 초쯤은 무난히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황보유는 향공도의 무공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 낼 테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손을 쓰지 않아도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즉시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향형의 무공은 크게 진보되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렇다고 옛 친구를 몰라본대서야 어디 말이 되오?"
귀의 향공도는 양 눈썹을 한껏 치켜올렸다.
"나는 설마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대담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옛날의 공력을 되찾았나 보군."
이때 묘수교장 경청이 그의 곁으로 날아 내렸다.
형용은 여동청과 똑같은 마음이었다.
"우리가 공력을 되찾았다고 해서 향형은 무슨 불만이라도 있소?"
향공도는 경청에게 고개를 돌리고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자, 이 두 녀석들 좀 보게. 얼마나 거만하나.."
이번에는 황보유에게 눈길을 주었다.
"너는 이름이 뭐냐? 저놈들이 이렇게 미친 놈처럼 날뛰는 것은 모두 너를 믿는 모양이지?"
황보유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사람을 속여 자기의 공력을 키우는 치사하고 더러운 짓거리를 모르는 사람이오.
그런 야비한 수단으로 얻은 공력으로 설사 천하 제일이라고 할지라도
자랑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오."
향공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 세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듣기 거북하게 자기를 비웃는 말들이 아닌가
그러나 능글맞도록 음흉한 그는 비록 마음 속에서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나
추호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척 표정을 바꾸었다.
아무튼 두 놈이 자기를 야유하는 까닭은
이 영준한 젊은이를 믿기 때문이라고 단정을 내렸다.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은 네 이름이다. 어서 이름이나 대라.
"나는 일개 무명소졸(無名小卒)이라
이름 따위는 밝히나 안 밝히나 똑같다고 생각하오만."
경청은 그가 말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크게 소리쳤다.
"황보유요, 황보유!"
그는 황보유의 양 눈썹 속에서 각기 한 개씩의 붉은 점을 발견해 내고는 그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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