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대한민국시낭송대회
주체: 사단법인 강변문학낭송인협회 후원: 부산광역시, 부산북구청, 만덕2동 동사무소, 부산가산문학협회
1.목적
낭송문학의 발전을 기리기 위하여 모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한민국국민이면 다 함께 참가하여 낭송을 서로 즐기며 사랑함에 있다.
낭송문학의 체계를 이해하여 우리 본연의 민족자존인 시낭송문학의 체계를 이해하여 생활화하며 우리 본연에 담긴 얼을 선양함으로서 시낭송문학을 전 세계에 알림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낭송문학의 체계화를 위한 무한한 도전정신으로 협조 단결하여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단법인 강변문학낭송인협회에서 제4회 대한민국시낭송대회를 시행한다.
2. 행사명 : 제5회 대한민국시낭송대회
3. 일 시 : 2021. 9. 10. (금) 14:00-16:30
4. 장 소 : 만덕2동 동사무소 2층 대회의실
5. 개최요강
1) 참가부문 : 일반부
2) 접수기간 : 2021. 6. 15. - 8. 20.
※ 적정 인원 접수시 선착순 조기 마감함.
3) 접수문의 : 사단법인 강변문학낭송인협회
010-9633-4572(이사장), 010-9198-3253(편집국장)
♥ 접수 시 : 참가신청서 및 자유시 첨부(홈페이지 참조), 참가비 3만원 입금계좌 : 새마을, 9002-1619-5131-7, 강변문학낭송 서주열
4) 접수방법 : 이메일 접수( neo1713@hanmail.net )
5) 참가규정
① 낭송문학을 사랑하는 남녀노소 <문단 등단 유무 무관>
② 자유시 1편, 지정시 1편 암송(배경음악, 악기, 소품 등 사용 불가)
④ 낭송시의 길이는 시간 기준으로 자유시와 지정시를 5분 이내 낭송
6) 심사기준 : 시의 선택과 이해, 낭송기법, 발음(톤과 리듬), 표정, 자세와 태도(기승전결 감정)등 종합평가
7) 시상내역 : 대상1명, 금상1명, 우수상 5명, 대상과 금상에 한해서는 소정의 상금 수여
8) 수상자에게 본 법인 협회 회원가입 및 대한민국시낭송가 인증서 수여
※ 지정 시는 아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참사랑 / 서주열
그 사람 자리 비워두고 일어난 아침 휴대폰이 배달해 주는 나에요 나입니다라는 여인의 그윽한 목소리가 귓전에 쌓인다
함박봉 넘어서 성지곡 수원지로 당신이 넘어올 수 있느냐는 끌림에 무심코 청에 응해버린 대답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벚꽃들의 군무 밤새 애태우며 저렇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함박봉 고개 넘어가는 모퉁이에도 산 벚꽃 산 목련 산수유들이 저희들을 봐달라고 서로가 애걸복걸을 한다
서둘러 가다가 파워 클럽 공원에서 만난 그 사람 안다는 듯 반가운 듯 눈인사로 마주하고 운동기구에 매달리며 서로가 시선을 맞춘다
애인을 만난 건지 부부가 만난 건지 오르는 산길에서 보는 눈은 연인 같아서 지천의 산꽃들이 더욱더 예쁘게 보이고 있다
삼팔 청춘 그 시절엔 부끄러워서 좋았었고 중년이 지나가자 쌓여지는 묵은 정을 발아래 진달래꽃이 방실방실 세상에다 알린다.
● 행복 / 유치환
사랑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아무르 강가에서 /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서시 / 고정희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른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면,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 주네, 산
이승의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움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 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에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네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 주네, 산산산
저 역사의 물레에 혁명의 길을 찾듯 사람은 손잡아 서로 사랑의 길을 찾는 것일까 다시 넘어가야 할 산길에 서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대 생각에 울면, 거기 내 사랑의 눈물 받아 눈부신 철쭉꽃밭 열어주네, 산, 산, 산
●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섞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다.
●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하여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물 긷는 사람 / 이기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소리 포플러 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 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편안함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을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 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 그대 영혼에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 다오 나는 소낙비를 맞고 가시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에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
● 엄마가 그리운 날 / 김 여 경
흐르는 세월은 오색처럼 화사하건만 마음은 그렇지 못한 효도에 미어진 가슴 정처 없이 낙엽처럼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 부르면 기다리고 있던 오 분 대기조처럼 단숨에 달려오시던 엄마
못난 자식 불편해 할까봐 하룻밤 주무시고 이른 아침 집 나서시던 그 모습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어버이 살아생전 잘하라는 그 말의 참 뜻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시고 나서야 알았지만
정말 윤회라는 게 있다면 훗날 당신을 다시 내 엄마로 모셔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효도를 다시 한 번 해드리고 싶습니다
엄마 불러도 오지 못하는 당신 이 밤도 무척이나 그리워 눈물로 눈물로 지새웁니다.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 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청산도 /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 .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 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 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 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 나 하나 꽃 피어서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데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연어에 관한 명상 / 송하선
어부가 바다를 향해 떠나는 건 만선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연어가 바다를 향해 떠나는 것도 만삭이 되어 돌아오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가 아침에 떠나고 우리가 저녁에 돌아오고 우리도 연어처럼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지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떠나는 건 빈손이 되어 돌아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내일을 향해 떠나는 것도 빈손이 되어 돌아가기 위함이다
● 산양 / 이건청 아버지의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은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 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도종환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 없이 멀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홀로 무엇을 하리 / 홍관희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거 무어 있으리.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는 거 무어 있으리.
흔들리는 풀잎 하나 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서 있는 돌멩이 하나 저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다.
멀리 있는 그대여 행여 그대 홀로 이 세상에 서 있다고 생각하거든 행여 그대 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함께 어린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밥그릇 속의 밥알 하나 저 홀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없고 사랑하는 대상도 없이 저 홀로 아름다운 사람 있을 수 없듯
그대의 꿈이 뿌리 뻗은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며 살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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