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완성(반야부 경전들)
1. 대승경전에 관하여
대승경전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곧 이러한 텍스트들의 성격 규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경전은 여러 가지 대상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사리숭배와 마찬가지로 찬양과 숭배에 중점을 둔 불신(佛身)과 같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전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실천 행위를 내포한 것이며, 정신적
체험의 산물이자 안내서이다. 서양 문헌에 익숙한 사람들은 경전이 서론·본론·결론을 갖추어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독자를 이끌어 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독서란 평화와 여유로움, 침묵이 필요한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승경전을 펼쳐 보면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공간과 시간이 확대되고, 융합하고, 내용상 연결고리를 잃은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고, 갑자기 무의미 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압축되어 있고 비밀스러운 관념들이 각 지면마다 반복되는
상황을 만날 수 있다.
만약 이 경전들을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 대승경전들은 마치 규칙만 있고 말과 판은 없는 장기놀이처럼 따분하게 여겨지기 쉽다.
사실 불경을 연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도 아니며 평화로운 일도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도 책을 베껴
쓰고 읽은 것이 분명하지만, 이 경우 에도 읽는다는 것은 큰 소리로 낭독하는 것에 가까웠다(소리내지
않고 책을 읽는 독서법이 세계 문화에서 널리 성행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승려 개개인은 아마 한 권 내지 두 권 밖에 없는 경전들을 빠르게 암송하여 익혔을 것이다. 이는 계속된
반복뿐만 아니라 학문적 환경이 텍스트의 암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전과 그 주석서들이
명상의 지침서가 되었다.
명상은 일련의 기록된 가르침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불경들은 붓다나
다른 깨달은 자 또는 정신적 스승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전통·계보를 통해 그것을
조직적으로 설명하는 보조 기억장치이자 발판 또는 체제일 뿐이다. 경전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나 취급은
불교에서는 역사적인 관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불교도의 행위나 교리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는 마치 건물은 무시한 채
벽돌만 쳐다보고 건축물을 연구하려는 예술사가와 다름없을 것이다.
대승경전들은 길이 면에서 몇 마디로 된 것에서부터 『10만송반야경』과 같이 방대한 운문(韻文)으로 되어
있는 것까지 다양하다. 방대한 분량의 경전들에는 반복되는 내용이 많으며, 대부분 경전들의 원본이
없어져서(산스크리트본은 조금이라도 보존되어 있지만) 정확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수세기에 걸친 경전의 증보 과정을 알아내려는 신중한 텍스트 비판학을 통하여 원전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
그러므로 방대한 경전들이 지금 보이는 것처럼 역사적으 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통일된 형태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전들은 때로는 오랜 세월 동안 증보되고 발달되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경전안에서
조차 하나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의 발견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교의 전통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경전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기 경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전 자체에 대한 장황한 찬양, 즉 자기 찬미 현상이다. 한 구절의
게송이라도 숭배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고 경전을 비방한 사람들은 업에 따라 무거운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의 유명한 품(品)에서 초기 대승의 수용에 대한 이와 유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법회에 모인 5,000명의 청중들은 경전의 설법을 듣지 않고 퇴장해 버렸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
깊은 죄악과 아만심(我慢心)으로 사실 얻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urvitz 1976: 29).
이미 살펴본 것처럼, 경전을 옹호하는 승려들과 경전은 붓다의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승려들이
있었음을 경전 자체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유포되었고, 다른 지적 환경의 산물임에 틀림없는 이야기나 설법이 때로 경전속에
끼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특정 에피소드에 대한 산문본과 운문본을 비교해 보면 짧은 첨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전이 산문과 운문의 두 가지 형태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학자들은 운문들이 더
오래된 것으로 여겼다. 운문 형태는 쉽게 고칠 수 없고 거기서는 때로 고어체나 비표준적인 언어적
특징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다른 많은 단서들과 함께 많은 초기 대승경전들이 처음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중인도의
방언으로 되어 있다가 점차 산스크리트화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대승경전의 산문 부분들보다 운문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견해에 별로 동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잔 나티에(Jan Nattier 2003a: 43-4)는 최초로 번역된 『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大迦葉
問大寶 積正法經, K??yapaparivarta)』과 『화엄경(華嚴經)』에서는 후대에 한역되었거나 (유효한)
티베트어본에서 현존하는 산스크리트어본에서 발견되는 운문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이
경전들이 운문들을 추가하면서 발전했다는 하나의 방식을 의미한다.
종종 『대보적경(大寶積經, Mah?ratnak??a S?tra)』과 『화엄경』에서처럼 많은 다른 경전들이 합해져서
하나의 경전군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중국인들은 특히 대승경전들에 매우 감명받아서 수많은
위경(僞經)을 만들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중국불교 발전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도 있다.
일본 선종의 대가인 도원(道元, 13세기)은 중국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이른바 선불교의 소의(所依)
경전 가운데 하나인 『능엄경(楞嚴經)』이 인도 본래의 경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견해는
오늘 날 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경전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위경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가는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결국 대승 이전 부파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대승경전들은 가짜일 것이기 때문이다.
2. 반야부 경전의 기원과 발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반야부 경전의 기원과 발달에 관해 확실하게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에
반야부 경전과 대승불교 자체가 아마 중인도나 남인도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설이 널리 주장되었는데,
이는 붓다 열반 후에 반야바라밀(Prajñ?p?ramit?)이 남부로 유포될 것이고, 거기서 동부와 북부로 유포될
것이라는 『8천송반야경』의 주장에 의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Conze 1973b: 159).6)
그러나 라모트는 인도 북서 지역과 중앙아시아 코탄 지역이 반야부 경전의 기원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승 출현기에 불교에서 발생했던 변화가 지중해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Lamotte 1954: 377 이하; 1958). 콘즈는 라모트의 주장이 반야부 경전이 쿠샨왕조 시절(1세기경) 북서
지역에서 크게 성행했다는 점만을 주시했을 뿐 그곳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Conze 1960: 9 이하).
반야부 경전의 기원문제와 대승의 기원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현재 최초의 대승경전
들은 아마도 반야부의 경전들인 것 같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 고고학과 금석학적 증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어도 경전상의 증거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바샴은 비문의 증거에 근거해 대승불교가 북쪽 지방에서 기원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한다. 바샴은 몇몇
학자들이 대승의 기원지를 남쪽 지방에서 찾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승의 신화와 대승의 철학적
관념을 구분하고 있다. 대승의 철학적 관념은 남쪽이 기원지라고 볼 수 있지만, 천계의 보살들에 대한
신앙과 같은 현상은 확실히 북부 쪽이라는 것이다(Basham 1981: 37).
비록 현존하는 반야부 경전에는 이 두 가지가 섞여 있지만 반야부 경전의 철학적인 관념과 불·보살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신화는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승의 출현은 그 기원에서 ‘철학적인 것’ 과
‘종교적인 것’(이 용어들은 전적으로 약칭이다)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층이 혼합되어 하나의 동질적인
형태로 된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현존하는 반야부 경전들은 적어도 최초의 형태는 철학적인 측면이 우세하고, 종교적인 측면은 정토계
경전들과 『아촉불국경』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기원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전통을 통합하기 위하여
『반주삼매경』이 나타났다는 견해가 있다(Harrison 1978: 40).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의 기원을 조사해 보면 서로 상이한 (비록 반드시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종교적 경향 및 철학적 경향을 찾아낼 수 있고, 이에 따라 아마 지리적인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결론은 대승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흐름을 혼합하여 나타난 하나의 존재에 기인하므로 대승의 지리적 기원을 찾는 것은 시행착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능한 한 문헌이나 고고학 및 금석학의 풍부한 요소와 흔적을 통하여
상호간의 관계와 영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는 반야부 경전의 발달 과정을 1,000년 이상의 기간으로 확장하여
4단계로 나누었다(Conze 1960: 9 이하; 1968: 11 이하).
1) 기원전 약 100년부터 기원후 100년까지는 기본 텍스트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2) 그 이후 200년 동안은 이 기본 텍스트가 대폭 확장되었다.
3) 한편 기원 후 500년까지의 다음 200년 동안에는 한편으로 짧은 경전들을 통하여 기본적인 사상을
다시 언급하고 다른 한편 게송으로 요약한 것이 특징이다.
4) 기원후 600년에서 1200년까지의 마지막 시기에는 탄트라의 영향으로 인하여 반야부 경전이
약화되었는데, 경전에 신비적인 요소들과 그들의 사용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각
영역의 예를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