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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장풍대작전 1
씬 1. 프롤로그
화면을 가득 채우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의 뒷모습에서 이동하는 카메라……. 매캐한 담배연기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물들의 얼굴로 인해 도무지 여기가 어떤 공간인지 알 수가 없다…….
무운: 그것도 다 옛말이지……. 산중수련이란 게 시간이 얼매나 먹히는데, 요새 애들 코 묻은 돈 뜯으려고 도장 차린 눔덜 산중수련이 어쩌구 했다는 거 다 뻥이야…….
육봉스님: 거 나두 병두 아빠랑 쌍팔년에 계룡산 들어갔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대여섯 시 아냐. 아침밥 해먹는데 몸 생각하느라고 재료 신경 쓰다보면 한 두시간 걸려요, 그러고 이제 두어 시간 수련해. 그럼 또 점심 아냐. 점심 먹을 거 구하러 마을 내려가지. 또 세 시간 후딱가. 그래 밥 먹고 나서 좀 쉴라고 그러면 잠이 솔솔 온다고. 그러면 또 저녁 금방이야.
끄덕이는 사람들.
육봉스님: 실제로 수련하는 게 두 세 시간 밖에 안 나와 그게……. 그러면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데가 어디냐?……. 절이야. 절. 누가 뒷바라지 안 해 주면 수련 못해. 그거.
설운: (비죽대며) 지가 머리 깎고 집 세우면 그게 다 절인감? 그러고 절간 무술 한다는 양반이 고기는 왜 잡순디야?
육봉스님: 이 사람아 고기를 안 먹고 어찌 무술이 나오나. 힘이 없어서!
반야가인: (주책스런 웃음) 오- 호호호! 그렇게 힘 뒀다 뭐하시게……. ?
육봉스님: (조용히 땀 닦으며) 어허-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구나…….
자운: 이렇게들 모여서 한심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젊은 애들이 도 닦는 걸 밑 닦는 거 정도로 여기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줄 알아?
반야가인: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세상에 뭘 그렇게 심각하게 살아요?…….
자운: 우리 밑으로 마루치 아라치가 없다니까! 마루치 아라치는 둘째 치고 도 닦겠단 애들이 없어. (못마땅한 듯이) 거 보살님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혼자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전화로 한가하게 주역풀이나 하고 있어요?
반야가인: 아니 30초당 1000원에서 10원 덜 받는 게 어떻게 몇 푼이에요? 칠 공공 써비쓰는 대세 흐름이야. 그리고 나 아니었으면 무운 도장 월세 밀린 거 어떻게 해결 했겠소?
무운: 흠……. 흠……. 그래, 반야 말이 일리가 있어. 우리도 시대 흐름에 맞춰서 가야지.
반야가인: 아니 뭐 가르칠 애들이 있어야 비급을 전수하던지 말던지 할 거 아냐…….
설운: 그러게 방송 출연 같은 거 혀서 한바탕 놀래킬 필요가 있다는 거유 지말이……. 뭐가 눈에 확 들어와야 배울라는 마음도 확 땡기지……. 이 노무 건 공중부양 뜬 지가 언젠디 아적까징 혼자 벽보고 떠 있으니…….
자운: 그렇게 광대 짓해서 찾을 거면 벌써 찾았네. 이 사람아.
육봉스님: 요즘은 찾아가는 서비스 아냐……. 요즘 세상 타령하는 게 누군데 아직도 마케팅 개념이 없어 그래…….
자운: 마루치 아라치를 마케팅으로 만들어?! 당장 우리 죽으면 열쇤 누구한테 맡길 거야?!
이때 이들의 괴상한 대화를 파고드는 젊은 여자의 상쾌한 목소리.
여급: (텔레마케팅 직원 같은 소리로) 리필해 드릴까요 손님?
갑자기 끼어드는 여급의 목소리와 함께 뒤로 빠지는 화면……. 카메라가 빠지고 보니, 지금까지의 대화내용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도심 한가운데의 카페 풍경……. 찻잔을 들고, 여급을 돌아보는 도인들, 이들과 골고루 시선을 맞추는 훈련된 여급의 어색한 미소…….
자운: 에스프레소도 리필 되나?
여급: 해드리겠습니다 손님.
여급에게 너도나도 찻잔을 들이미는 도인들.
여급: (커피를 따르며) 한 분씩 차례로 리필해 드리겠습니다. 손님.
여급에게 잔을 쑥 내미는 자운. 여급이 커피를 따르는데 자운의 손과 여급의 손이 스친다,
순간 펑! 하고 플레 쉬가 터지고- 자운의 의식 속에 짧게 스치는 영상. 찻잔을 들고 가던 여급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시 펑- 하고 플레쉬 터지면-
자운이 여급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여전히 훈련된 미소를 지으며 자운을 바라보는 여급.
여급: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손님?
자운: 아가씨 오늘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여급: (여전히 감정 없는 미소를 유지하며) 오늘 조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손님? 감사합니다. 손님. 손님도 조심하십쇼 손님…….
기계적으로 꾸벅 인사하는 여급. 마치 벽보고 대화한 듯 한 이상한 상황에 입을 벌리고 여급을 바라보는 도인들. 이때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화장실을 나서는 한 남자가 느린 화면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웅장함마저 느끼게 하는 고속화면……. 도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여급……. 여급에게 다가가면서도 여급을 보지 못하는 휴대폰 남자……. 휴대폰 남자와 여급은 정면으로 부딪칠 상황이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위험을 경고하는 도인들의 절규하는 표정들……. 자운이 여급에게 손을 뻗는 순간, 완전히 돌아서는 여급. 방향을 돌리자마자 자신을 향해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놀라는 여급……. 여급의 비명에 역시 놀라는 휴대폰 남. 자운이 여급과 휴대폰 남자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손을 뻗으며 몸을 날리는데- 아슬아슬하게 여급의 치맛자락을 잡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는 자운……. 손으로 눈을 가리는 도인들……. 찌익- 찢어지는 여급의 치마. 이와 동시에 충돌하는 여급과 휴대폰 남자. 여급이 들고 있던 쟁반과 찻잔들이 옆 테이블로 날아가고, 휴대폰 남자의 휴대폰도 반대편 테이블을 향해 날아간다. 경악하는 손님들……. 쏟아지는 찻잔에 당하는 남녀손님…….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면- 도미노 현상으로 뒤 테이블 손님들까지 테이블을 덮으며 쓰러지고- 날아가던 휴대폰은 다른 테이블 손님이 시켜둔 음식 위에 떨어진다. 음식물이 튀자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손님들……. 뒤로 넘어진 손님들 덕분에 짐을 나르던 종업원이 바닥으로 구르고, 종업원이 나르던 짐이 바닥에 미끄러져서 카운터에서 계산하던 손님도 짐에 걸려 넘어진다. 계산하던 손님이 넘어지며 허공에 날린 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은 주인이 계산대에 걸려 넘어지고- 고속화면이 풀리며 카페 안을 비추면, 온통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되어있다……. 벙찐 얼굴로 실내를 둘러보는 도인들…….
자운: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씬 2. 타이틀
둥두두둥!!!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인물화의 주인공들이 화선지 안에서 무예를 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펼쳐지며 타이틀 크레디트가 시작된다. 도장에 새겨진 듯한 글자체로 주요인물과 스탭들의 이름이 흐른 후 타이틀…….
씬 3. 편의점 - 실내/낮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의진의 얼굴. 의진의 시선으로 편의점 내부를 비추면, 시장 통같이 바글바글하는 사람들. 이들은 아마도 유도 선수들인 듯 모두 떡 벌어진 덩치에 운동복을 입고 있다. 미친 듯이 먹을 물건들을 집어 드는 덩치들……. 정신없는 와중에 의진의 선배인 춘하는 능숙하게 손님들을 다루며 계산을 처리한다. 반면 땀을 뻘뻘 흘리며 실수를 연발하는 의진. 손님들은 재촉하고, 짜증내고……. 의진은 거의 패닉 상태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뒤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의진. 언니 춘하는 잔돈이 바닥난 계산대에 잔돈을 채우며 계속 투덜댄다. 한편 사람이 다 빠져나간 편의점 한 귀퉁이에서 어슬렁거리다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다가오는 거친 10대 양아치 선동. 계산대에 껌 한 통을 내놓는다.
의진: 오백 원이요.
선동이 내놓는 껌을 계산해주는 의진. 선동이 내미는 천 원짜리 지폐를 받은 뒤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순간, 선동과 손끝이 스친다. 펑-! 하고 터지는 후레쉬.
선동: 뭐야?
멍하니 선동의 얼굴을 바라보던 의진. 선동에게 줄 오백 원짜리 동전을 꽉 쥐고 있는 의진과 의진의 손에 있는 동전을 빼앗으려는 선동의 잠깐 동안의 힘겨루기…….
의진: (정신 차리고 동전을 건네며) 죄송합니다.
서둘러 편의점을 나가는 선동. 밖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이를 멍하니 보고 있는 의진.
춘하: 야! 안 의진! 너 정말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의진: (다급히) 언니,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춘하: 어라? (밖으로 나가는 의진의 뒤에다 대고) 너 진짜 맨 날 이렇게 농땡이 칠래?!……. 저건 어떻게 된 애가 맨 날 365일 설사에 변비에 매직 데이야?…….
씬 4. 편의점 건물 옥상 - 실내, 외/낮
다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가 건물 옥상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의진. 옥상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은행 앞 붐비는 도로를 선동이 건너고 있다. 은행 앞에서는 제복 입은 경찰이 검은 중형차를 도로 한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씬 5. 은행 앞 도로 - 실외/낮
순찰 제복은 입은 상환이 검은 색 중형차를 상대로 딱지를 떼려는 중이다. 그런데 차안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만만치 않게 보이는 깍두기들이다…….
운전 깍두기: (고개를 쓰윽 내밀며) 뭐?
상환: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신호 위반하셨슴다.
운전 깍두기: 그래서?
상환: (딴 데 보며) 면허증 주십쇼.
운전 깍두기: 뭐?
깡통: (뒷좌석에서 짜증내며) 야 뭐 하는데 이렇게 뜨문 거리냐?
운전 깍두기: (깡통을 돌아보며) 죄송함다. (상환에게) 얌마, 너 우리 몰라? 너 신입이야?
상환이 깍두기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은행에서 잘 차려 입은 퉁퉁이 아줌마가 큼직한 가방을 메고 나온다.
운전 깍두기: (차에서 내려 상환의 머리를 툭툭 치며) 나 면허 없다고, 집에 두고 왔다고…….
상환: 그러게 주민번호라도 대시면 알아보는 건 제가 한다니까요…….
운전 깍두기: 하- 어디서 이런 꼴통 쉬키가……. (상환의 어깨를 툭 치며) 야, (상환의 모자를 툭 쳐서 벗겨내며) 야, 죽을래?
상환은 완전히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꼬리를 내린 상태다. 뭐라고 입에선 웅얼거리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운전 깍두기가 상환을 치려는 듯 손을 쳐드는 순간 "꺅!"하고 울리는 고함소리. 순간 이들 옆으로 편의점에서 나왔던 선동이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돌아보는 상환. 은행 앞에서는 퉁퉁이 아줌마가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고-
상환: (잠시 주저하다가) 아이씨!
운전 깍두기를 한번 훑은 뒤 도주하는 선동을 추적하는 상환.
씬 6. 도심 추격 - 실외/낮
차들과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달리는 선동. 이 뒤로 상환이 나름대로 맹렬하지만 별로 빠르지 않은 달리기로 최선을 다해 선동을 추적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을 뛰어넘으며 달리는 상환.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차에 쿵! 부딪치는데, 운전자를 한번 훑어보더니 계속 달린다. 이들이 달려간 거리의 빌딩 옥상에 뭔가가 점프하며 이들을 추적하는데- 의진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경공으로 넘나들며 선동의 오토바이를 추적하는 의진. 의진이가 높은 건물에서 아래쪽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린다.
씬 7. 건물 사무실 - 실내/낮
조용히 일하던 사무실. 쿵! 소리가 나자 직원들이 모두 천장을 올려본 후, 다시 업무를 이어간다.
씬 8. 도심 추격 - 실외/낮
선동을 추격하는 상환. 달려오는 차량의 보닛을 손바닥으로 짚고 넘는 상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상환에게 욕을 퍼부어 댄다. 운전자, 다시 차에 타려다가 보닛을 보니, 마치 핸드 프린팅을 한 것처럼 상환의 손바닥 모양이 쑥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한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선동. 선동의 동선을 확인한 의진이 건물 벽을 타고 수직으로 뛰어 내려간다.
씬 9. 건물 사무실2 - 실내/낮
창문을 밟으며 순식간에 아래로 사라지는 의진. 창가에 있던 여직원이 짜증을 내며-
여직원: 과장님! 관리실에다 비둘기 집 없애 달라고 얘기하신 거예요?! 저놈에 비둘기 땜에 하루에 몇 번씩 놀래는 거야?!…….
씬 10. 골목길 - 실외/낮
골목으로 접어든 선동. 맹렬하게 달리는데, 의진의 두 다리가 허공에서 힘차게 떨어지며 선동의 앞을 가로막는다! 놀라서 바닥으로 나자빠지는 선동.
한편 상환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계속해서 선동을 추적해 달려온다.
골목에선 의진과 선동이 대치중이다.
선동: 뭐야 이거? 어디서 떨어진 거야? (의진을 알아보곤) 너?…….
의진: 좋은 말 할 때 가방 내놓고 가라 응?
선동: 뭐? (시선을 허공에 돌리며) 나 참- 살다보니까 또 계집애한테 영업방해 받는 날두 있네……. (칼 꺼내며) 야, 나 사실 알고 보면 무서운……. (의진이가 보이질 않자 두리번거리면)
선동의 뒤에 쓰러진 오토바이에서 퍽치기한 가방을 챙기는 의진. 열 받은 선동이 "야!" 소리치며 의진에게 칼을 휘두르는데, 의진이 가볍게 칼을 피한다. 하지만 선동의 칼이 살짝 의진의 옷깃을 스친다. 열 받은 의진.
의진: 너 진짜 이러면 누나 화낸다…….
선동: 이게 엇따대구!…….
의진에게 칼을 던지는 선동! 순간 선동의 칼을 가볍게 잡아내는 의진.
의진: 누나 지금 화났거든…….
고오오오- 기를 끌어올리는 의진.
한편 선동을 뒤따르던 상환이 겨우 어귀에 도착한다. 완전히 기진맥진…….
상환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선동에게 장풍을 날리는 의진!
상환: (순찰 봉을 꺼내며) 꼼짝…….
팡!……. 의진의 장풍이 선동을 피해 이제 막 골목 안으로 들어서던 상환을 맞춘다. 크오오- 한참을 뒤로 나뒹구는 상환……. 어벙한 얼굴로 기절한다. 자신의 몸을 살피는 선동. 멀쩡하다.
의진: (자신의 손을 살피며 짜증) 아- 또 오른쪽이야!
짜증난 의진, 바닥에 나뒹군 상환을 슬쩍 보더니, 선동에게 달려가 선동을 개 잡듯이 패댄다. 무릎 꿇고 싹싹 빌며 애원하는 선동. 의진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선동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선동의 시선 안으로 날아드는 의진의 발! 퍽! 하며 암전.
씬 11. 침술원 시술실 - 실내/밤
암전 상태에서 들리는 말소리들…….
육봉스님: 이건 기혈을 방해하는 혈로 보이는데……. 너무 깊이 찌른 거 아냐?
무운: 이거 이쪽에 잘못 놓으면 병신 되는데…….
자운: 어허……. 섭한 말씀들! 이곳이 정혈과 통하는…….
어렴풋이 들리는 말소리들과 함께 떠지는 상환의 시선. 쑥떡대기를 멈추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환을 지켜보는 칠선 도인들. 정신을 조금 차린 상환이 이들을 둘러본다.
자운: 혹시나 했는데, 이럴 수가……. 내가 짚은 혈도를 모두 뚫었어…….
무운: 젊은 사람이 대단한 기운을 품고 있구만……. 우째 이런 일이…….
이상한 시선으로 칠선 도인들을 살펴보는 상환. 무언가 불편하여 몸을 살피는데……. "으악-!!!" 카메라 빠르게 빠져나가면- 상환의 온 몸에 침이 빼곡이 꽂혀있다.
씬 12. 침술원 내부 - 실내/밤
비명소리 가득한 시술실에서 쾌재를 부르며 나오는 자운. 의진이 차를 다려 나오다 자운과 부딪친다.
자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의진아, 이게 어쩐 일이냐? 대박이다 대박. 쟤 어디서 만났냐?
의진: (썰렁하게) 아빤 자기 딸 일자리 날아가서 좋겠수.
자운: 또 짤렸냐?
씬 13. 침술원 시술실 - 실내/밤
방안은 온통 상환 때문에 난리다.
상환: 뭐야 이거! 누가 내 몸에 바늘 꽂으래?!!!
팬티만 입은 채 온몸에 침을 꽂고 꽥꽥거리는 상환을 진정시키려는 칠선 도인들. 자운과 의진이 사태를 수습하러 들어온다.
자운: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 잘못 움직이면 다쳐…….
상환: 이거 빼라구!!! 아저씨들 나 경찰이야!!!
무운: (희죽 웃으며) 그놈 참, 성질로 봐선 재주가 있는 놈일세. 흐흐…….
반야가인: 아이쿠, 저 실한 것 좀 봐 저거…….
의진: 아빠, 또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주민신고 하겠어요!
상환: (그제 서야 의진을 발견하고는) 너! 퍽치기 아냐?! 딱 걸렸어! (자신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도인들의 표정을 살피고는) 당신들 전부 나한테 체포야! 체포! 사람 살려!!!
자운은 발광하는 상환을 더 이상 못 봐주겠는지 손가락 하나로 혈을 눌러 제압, 기절시킨다. 암전.
씬 14. 지하터널 안 - 실내/밤
암전 상태에서 한 줄기 후레쉬 불빛이 화면에 번진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하 터널 안을 배관 엔지니어들이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어간다. 전기공 하나가 일행에 뒤쳐져서 벽을 향해 오줌을 싸는데, 벽이 힘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전기공: (오줌발에 무너지는 벽을 보며) 잉? 뭐야 이거……. 세멘을 이따위로 발라 놨으니 이거…….
전기공이 벽을 살피려 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분 나쁜 신음 소리.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벽 너머에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전기공: (약간 긴장) 거기……. 누구 있어요?!
돌아오는 노인의 힘없는 소리……. 놀란 전기공이 벽을 툭 치는데- 벽이 스르르 무너진다.
씬 15. 지하터널 안, 벽 너머 막다른 공간 - 실내/밤
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기분 나쁜 신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후레쉬로 비추는 순간, 갑자기 드러나는 백발 장발에 반나체의 몸으로 누워 있는 노인.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빨래판처럼 보일 만큼 처참한 모습이다.
전기공: 아니, 할아버지,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요?
노인, 끊어지는 듯 한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쇠징을 가리킨다. 노인의 머리 위, 발 밑, 양 팔 근처에 꽂혀있는 쇠징들……. 놀란 전기공이 노인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벽을 모두 허물어 버린다. 벽을 허물고 들어와 전선을 끌어 실내등을 켜는 순간, 노인의 주변에 쇠징으로 정교한 괘를 이룬 봉인진이 펼쳐진다.
전기공: 말세다 말세……. 그래 이런 데까지 들어와서 노인네를 버리고 가?……. 쫌만 참으세요!
할아버지를 일으키려 전기공이 다가오자 노인은 자신보다 먼저 징을 뽑아 달라고 손짓을 한다. 노인의 뜻대로 쇠징을 뽑으려는 전기공. 잘 뽑히지 않는 징을 뽑아내려 애쓴다. 애쓰는 전기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빛난다. 전기공이 기합을 넣으며 힘을 줘 징을 뽑아내는 순간, 크오- 굉음과 함께 거대한 빛이 발광하며 White F. O.
씬 16. 침술원 시술실 - 실내/밤
자운을 제외한 칠선 도인들이 상환을 둘러싸고 앉아 상환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자운: ……. 자네가 이 모든 것을 갑자기 다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보네…….
무운: 그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추구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육봉스님: (무운을 제끼며) 아, 자꾸 부담 느끼게 왜 그래……. 청년,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현실에 얽매여서 재능을 썩히지 말란 얘기야.
상환: (답답하다는 듯) 아니 상식적으로 경찰을 앞에 두고 어떻게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까?…….
설운: 아니 경찰이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허고 어울리면 안 된다는 법있남? 외려 우덜이 상대허는 넘덜이랑 자네가 상대허는 넘덜이랑 공통점이 많다믄 많을 텐디…….
무운: (자운에게 조용히) 우리 일이 그렇게 법적으로 걸리나?
상환: 세상에 경찰하고 퍽치기 일당하고 손잡고 일하다 걸리면 그걸 누가 봐줍니까? 딱 보니까 아저씨들 빽도 없어 보이는 구만.
"퍽치기 일당"이란 말에 썰렁해지는 도인들…….
반야가인: 오! 호호호호호!!! 총각이 큰 오해를 하고 있구만……. 우린 그런 사람들이 아냐……. 우린 도 닦는 사람들을 마루치 아라치가 되게 끌어주는 칠선이란 사람들이야.
상환: ?
씬 17. 파출소 - 실내/밤
상환이 근무하는 파출소. 소장과 최 순경을 비롯한 경찰들이 연락 두절된 상환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
소장: 아니 이놈은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돼? 그러게 유순경 얘 혼자 어디 내보내지 말라니까!
씬 18. 침술원 시술실 - 실내/밤
자운: 자네가 믿기 힘들겠지만 세상엔 많은 기운이 있고 그 기운을 깨워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지. 우린 그 기운을 깨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상환: (벙찐 얼굴로 다음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아저씨 아줌마들 칠선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다섯 명밖에 없어요? 다섯 명이면 칠선이 아니라 오복성이나 독수리 오형제 뭐 이런 이름이 더 맞는 거 아닌가?
반야가인: 총각이 또 잘못 오해하는데, 나 아직 처녀야…….
써얼렁~ 주위의 썰렁한 시선을 살피며 어색하게 웃는 반야가인…….
상환: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도 닦은 사람들이란 거 아녜요,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보여줘 봐요, 공중부양 같은 거.
상환이 말을 마치자 마자 표정이 굳는다. 상환의 시선으로 보이는 도인들. 설운이 가부좌를 튼 채 공중에 떠있다.
상환: (눈을 껌벅이며) 벽도 타요?
후다닥 벽면을 타는 육봉스님.
상환: 장풍! 장풍!
무표정하게 상환에게 장풍을 날리는 무운. 상환이 나가떨어진다. 하이 파이브하는 도인들.
씬 19. 침술원 내부 - 실내/밤
요란 법석하게 시술실에서 나오는 상환과 상환을 잡으러 나오는 칠선들.
상환: 아 글쎄 관심 없다니까요, 이 나이에 써커스 배울 일 있어요? 아저씨들 조용히 놔주면 여기서 그냥 접을 테니까 잡지 마세요.
육봉스님: 청년. 자네가 본 건 아주 일부야 일부……. 더 놀라운…….
무운: (육봉의 말을 자르며) 왜 자기 능력을 아깝게 썩히나?
상환: 아니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래요?…….
자운: 자넨 그 동안 내가 만났던 젊은이들 중에 가장 강한 기운을 품고 있어. 내 딸이 자넬 치료해달라고 데려왔을 때 자네가 입은 내상은 보통사람들의 그것과 달랐네. 자넨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뚫은 혈도를 모두 버텨냈어.
상환: (조용히 자운을 바라보다) 좋아, 좋아, 그래 아저씨 말대로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액션을 직접 취하며) 이렇게 장풍도 쏘고, 이렇게 벽도 타고, 이렇게 공중부양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어라?…….
말하는 동안, 말하는 대로 벽을 타고 넘어 공중에 떠 있는 상환. 황당한 상환 앞에, 방금 전 쏜 상환의 장풍 때문인지, 유리벽이 우르르 무너진다. 상환, 자기에게 놀라서 어리둥절한데- 이 뒤로…….
의진: 그냥 가라고 해요! 매번 이렇게 미친 사람 취급받는 거 지겹지도 않아요?!
썰렁해지는 도인들……. 상환도 썰렁해진 분위기를 틈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의진을 돌아보는 자운. 의진은 자운의 눈을 피해 방으로 들어간다.
무운: 정말 이렇게 보낼 건가?
자운: 욕심이 과했나보군. 억지로 인연을 만들 수는 없지…….
반야가인: 그냥 보내긴 아까운데…….
자운: 저 친구가 정말 마루치가 될 재목이라면 곧 인연이 만들어지겠지…….
씬 20. 밤거리 - 실외/밤
터벅터벅 돌아가는 상환. 자신의 손을 한번 쳐다보더니 거리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 광고 유리벽에 대고 장풍을 쏴본다. 끄덕도 하지 않는 광고판.
상환: 그럼 그렇지…….
시계를 쳐다보며 갈 길을 재촉하는 상환. 상환이 광고판에서 멀어지는데, 광고 유리벽이 스스르 무너져 내린다.
씬 21. 박물관 앞거리 - 실외/밤
밤거리를 걷고 있는 흑운. 전기공의 옷을 어울리지 않게 입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아까 그 노인인데,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거대한 박물관 앞에 서서 올려다보는 흑운.
씬 22. 박물관 안 로비 - 실내/밤
텅 빈 실내. 경비원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경비원: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내며 다정하게) 우리 민지 맘마 많이 먹었쩌?……. 그래……. 아빠가 오늘 일하니까 일 끝나고 아이스크림하고, 보노보노 인형하고 사 가지고 아침에 들어갈께요…….
흑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경비원: (흑운을 보더니) 민지야 아빠가 쫌 있다 전화 다시 할게……. 사랑해…….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슨……. 일이십니까?
흑운: 내 물건 찾으러…….
경비원: (당황해서 흑운을 막아서며) 무슨 물건이요?
경비의 말을 들은 체도 안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흑운.
경비원: 아니 아저씨, 이러시면…….
흑운을 잡아 내몰려는 경비. 경비의 손이 흑운의 어깨에 닿는 순간, 흑운이 어깨를 튕겨내자- 펑!……. 경비의 손이 터져 나간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경비. 흑운이 경비를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기운을 일으킨다. 경악하는 경비의 의 주변에 바람이 일더니 경비의 몸이 허공으로 뜨기 시작한다. 용 모양의 문양이 박힌 흑운의 오른 손바닥으로 끌려가는 경비.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경비의 이마가 흑운의 오른 손에 닿는다. 경비에게서 기를 빨아들이는 흑운……. 경비는 급속도로 늙어가기 시작하고, 흑운의 근육은 살아나기 시작한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경비를 내던지는 흑운.
씬 23. 박물관 경비상황실 - 실내/밤
경비를 제압하고 복도를 걸어가는 흑운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되어 모니터로 보여지고 있다. 이를 발견한 경비실 직원이 비상벨을 누른다.
씬 24. 박물관 복도 - 실내/밤
복도를 걸어오는 흑운. 한편 흑운을 막아서기 위해 나선 보안요원들이 계단을 뛰어오르고, 다른 한 무리의 보안요원들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보안요원1: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무기 전시관으로 진행 중입니다.
흑운이 무기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로 돌아서면, 계단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보안요원들이 흑운을 향해 다가간다.
보안과장: 무슨 일이십니까?
보안과장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걸어오는 흑운.
보안과장: (위협적으로) 멈추십쇼!
계속 걸어오는 흑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 같다. 긴장하며 흑운에게 다가서는 보안요원들. 보안요원1이 흑운을 막아서자 보안요원1의 가슴을 쳐내는 흑운. 카메라가 보안요원1의 가슴 안으로 들어가더니, 보안요원1의 몸속에서 역류하는 피의 흐름을 보여준다. 피의 흐름을 따라 내장기관을 유영하는 화면. 구강으로 피가 토해지는 순간, 빠져 나오는 카메라. 보안요원1이 피를 토해내며 허공을 날아 구석으로 쳐 박힌다.
보안과장: 막아!
보안과장을 포함한 다섯 명의 보안 요원들이 흑운에게 덤빈다. 보안요원들이 달려오자 허공으로 솟구치는 흑운. 허공에 떠오른 흑운을 보고 입을 쩍 벌리는 보안요원들. 순간, 흑운의 날카롭고 빠른 발차기가 작렬하며 보안요원들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린다. 처참하게 쓰러지는 보안 요원들. 마지막 남은 보안과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기 충격 봉을 꺼내 흑운과 대치하는데, 흑운은 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보안과장의 품에 파고들어 전기 충격봉을 들고 있는 보안과장의 팔을 꺾어버린다. "으아아아악!!!" 자신이 들고 있던 전기 충격봉에 충격을 받는 보안과장.
씬 25. 무기 전시실 - 실내/밤
쾅! 하고 전시실 문이 열리면, 흑운의 모습이 보인다. 실내를 살피는 흑운. 흑운의 시야에 벽에 걸린 장검이 들어온다. 장검을 보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 흑운. 장검을 향해 오른 손을 뻗는다. 흑운의 손에 박힌 용 문양이 뚜렷이 보인다. 장검의 손잡이에는 흑운의 손에 박힌 문양과 같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흑운이 손을 뻗자 검붉은 기운이 우러나오기 시작한다.
씬 26. 상환네 포장마차 - 실내/밤
상환이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포장마차. 트럭을 개조한 곳이다. 술 취한 사람들의 비틀거리는 소리, 분주히 움직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새파랗게 어린 녀석들의 시중을 다 받아주고 있다.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환.
아버지: 잉? 아니 이눔 자식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어머니: (음식을 만들다 말고) 야 인석아, 뭔 일이냐? 파출소에서 난리가 났었어.
상환: 큰 일 아니에요…….
어머니: 전화라도 하지…….
상환: 전화할 상황이 아니었어…….
이때 한쪽 테이블에 갓 십대를 넘긴 듯 한 녀석들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른다.
젊은 손님: 여기 안주 안 갖다 줘! 시킨 지가 언젠데 진짜!
아버지: 예 갑니다, 죄송합니다…….
상환에게 잠깐 앉아 있으라고 눈치 주고는 음식을 나르는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녀석들에게 굽신거리는 아버지를 보는 상환. 어린 손님들이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느닷없이 큰소리가 터진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술병이 깨지고, 안주들이 날아다닌다. 싸움을 말리러 나서는 어머니.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팽팽한 젊은이들의 힘을 당해내는 것이 버겁다. 결국 앞으로 나서며 이들을 막는 상환. "뭐야?"하며 덩치 좋은 친구가 상환의 따귀를 올려붙인다. 열 받은 상환. 드디어 폭발해 덩치의 면상을 주먹으로 때리는데- 퍽! 약간 고개가 돌아갔다가 끄덕도 하지 않고 원위치 하는 덩치. 순간, 술 마시던 주위의 손님들이 모두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님들은 모두 젊은 녀석들과 한 패거리였던 것……. 자신이 실수했다고 판단한 상환. 총알같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상환을 쫓아 뛰어나오는 무서운 십대들.
상환: (포장마차를 뛰쳐나와 달리며 휴대폰에 대고) 최 순경님! 저 상환인데요! 저희 어머니 가게로 순찰차 한 대만 보내주세요!
씬 27. 순찰차 안 - 실외/낮
상환과 강 순경이 순찰차를 타고 순찰을 돌고 있다.
최 순경: 꼭 보면 공부 못하는 애들이 시험 전날 밤새웠다고 시험 시간에 졸다가 문제 못 풀어요……. 사회생활도 똑 같은 거라니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퍽치기 하는 애 쫓아가다가 기절해서 날 샜다고 그러면 누가 믿냐구? 사람들이 보는 데서 뛰어다니는 게 중요하다 이거야.
상환: …….
최 순경: 봐봐, 내가 땀 뻘뻘 흘리면서 쫓다가 놓친 걸 사람들이 봤으면 그걸 갖고 뭐라고 하진 않거던. 난 어쨌든 최선을 다했다 이거야, 당신들도 보지 않았냐?……. 국회의원들이 괜히 텔레비전 카메라만 들이대면 싸우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이때 무전으로 출동신고를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전 소리: 지세븐, 지 세븐, 자루 단란주점 폭력신고 발생.
최 순경: (무전 받으며) 지세븐, 저희가 출동하겠습니다.
사건현장으로 출동하는 순찰차.
씬 28. 자루 단란주점 - 실내/낮
지하 단란주점. 5씬에 나왔던 깡통 패거리들이 단란주점을 점거하고 있다. 험악한 분위기 안으로 들어서는 최 순경과 상환. 앞서서 들어오던 최 순경이 험악한 사태를 보고 긴장한다. 이때 긴장을 깨뜨리며 들리는 목소리.
깡통: 야, 이게 누구야? 우리 최 보안관 아냐?
최 순경: (긴장이 풀리며) 아이고, 깡통 사장님 아니세요? 난 또 누가 우리 구역에서 이렇게 일 벌리나 했지…….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상환. 이런 상환을 운전 깍두기가 발견한다.
최 순경: (주위를 둘러보며) 아니 깡 사장님 너무 하셨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리한테 말씀하시지 신고까지 하게하고…….
상환: 검문할까요?
최 순경: 아냐, 됐어. (대충 둘러본 뒤 깡통에게) 대충 정리되신 거죠?
깡통: 그럼, 그럼……. 그리고 최 순경님하고 동료 분들 요즘 고생하시는데 충식이네 가게 한 번 들려. 내가 한 번 쏴야 되는데…….
최 순경: 아이구 뭘 또……. 그럼 가보겠습니다.
상환: (돌아서는 최 순경을 붙잡고) 최 순경님.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최 순경: 그냥 나와 임마. 우리가 끼어들면 더 골치 아파져.
상환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는 최 순경.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뭐야?" 하는 큰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는 최 순경. 상환이 따라오지 않았다! 서둘러 다시 들어가는 최 순경. 최 순경이 실내로 들어가 보니 상환과 깡통 패거리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상환: 신분증 제시하시라고요!
깡통: 야, 얘 좀 어떻게 해 봐.
상환: 끝까지 이러시면 같이 가주셔야 됩니다.
운전 깍두기: 야 너 진짜 확 따버린다.
이때 최 순경이 끼어들며-
최 순경: 죄송합니다. 얘가 신참이라 아직 돌아가는 상황 파악이 안돼요.
깡통: 아니 최 순경 정말 나 이러면 섭섭해. 애들 교육 어떻게 시키는 거야?
상환: 최 순경님. 깡패 새끼들이 뭐가 무섭다고 빌빌 깁니까?
깡통: 뭐? 깡패 쒜키덜? 최 순경 나와봐.
최 순경: 깡 사장님 좀 참으세요, 얘가 뭘 몰라서…….
깡통: (최 순경을 제끼고 상환 앞에 서며) 너 지금 뭐라구 그랬어?
상환: (약간 톤이 낮아져서) 왜 빌빌 거리냐고…….
깡통: (머리를 툭 치며) 그 전에.
상환: (더욱 자신 없는 소리로) 뭐가 무섭냐고…….
깡통: (상환의 머리를 더욱 기분 나쁘게 때리며) 그 전에.
상환: 깡……. 패……. 새끼들…….
"하, 참!" 어이가 없다는 듯 허공을 응시하는 깡통. 상환을 노려보더니 "야" 하며 따귀를 올려붙인다. 최 순경이 말리는데 운전 깍두기가 최 순경을 제지한다. 덩치들에 둘러싸여 조용해지는 최 순경.
깡통: 꿇어. (상환의 따귀를 때리며) 꿇으라고!…….
덩치들이 달려들어 상환의 오금을 꺾어 무릎을 꿇게 만든다.
깡통: (상환의 머리를 발로 차며) 야이 꼴통 쉬키야, 우리가 동네 양아치로 보여?!……. 응?…….
뒤로 쓰러진 상환. 몸을 일으키려는데, 깡통이 상환의 얼굴을 발로 짓이긴다.
깡통: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고…….
이빨을 꽉 깨물며 고통을 참는 상환. 결국 고통을 못 이기고 비명을 지른다.
깡통: (발을 거두며) 얘 일으켜.
상환을 일으키는 덩치들. 깡통이 상환의 따귀를 다시 올려붙인다. 어쩔 줄 모르는 상환. 툭, 툭, 때리던 깡통의 따귀가 점점 강도를 더해가더니- 결국 상환을 쓰러뜨려 놓고 마구 짓밟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보고만 있는 최 순경. 상환, 입에서 피를 주르르 쏟아낸다.
깡통: (구두 발을 상환 앞에 내밀며) 닦아.
비참하게 고개를 숙이는 상환.
깡통: 닦으라고! 콱!
움찔하는 상환…….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깡통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질끈 감고 소매 끝으로 깡통의 구두를 닦는다.
깡통: 혓바닥으로 닦아야 광이 나지.
이를 악무는 상환…….
깡통: 왜? 드러워서 못 닦겠냐?……. 내 구두가 암만 드러워도 순사 혓바닥보다 더 드럽겠냐?…….
낄낄거리는 덩치들……. 비참해지는 상환과 최 순경……. 덩치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엄청난 모욕을 경험하는 상환……. 점점 숨이 거칠어지더니- "이야야야야!!!" 고함을 지르며 깡통을 밀치는데, 펑- 순간적으로 상환의 손에서 기운이 터져 나온다. 허공으로 떠오른 뒤 바닥으로 나뒹구는 깡통. 놀라는 사람들. 상환 역시 자신에게 놀랐다. 깡통의 부하들이 자신을 죽일 듯이 쏘아보자 권총을 뽑아드는 상환. 탕! 허공에 한 발을 쏜다.
상환: 야이 새끼들아! 전부 꼼짝 마!
최 순경: 얌마, 너 미쳤어?
운전 깍두기: (앞으로 나서며) 쏴봐!
상환: …….
운전 깍두기: (가슴팍을 내밀며) 사람 죽일 깡 있으면 쏴 보라구!
상환: ……. 에이씨!
후다닥 튀어나가는 상환.
최 순경: (뒤따라 나가며) 얌마! 유순경! 유순경!
깡통: (어리둥절해하는 부하들을 보며) 뭐해! 저것들 잡아!!!
씬 29. 거리에서 학교까지 - 실외/낮에서 저녁으로
사람들을 뚫고 미친 듯이 달리는 상환. 뛰고, 뛰고, 또 뛰고……. 완전히 탈진해버리는 상환……. 어느새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달려왔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 상환…….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고함을 지른다. 고개를 들어 교실을 바라보는 상환.
씬 30. 상환의 회상
초등학교 교실 안.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준비물을 빼앗기는 상환……. 점프하면, 상환이 준비해 온 준비물을 대신 내놓고 검사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덩치들. 상환은 준비물을 제출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다.
중학교 화장실. 중학생 상환이 휴지를 들고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오는데, 발빠른 다른 녀석이 상환이 들어가려던 칸을 치고 들어간다. 옆 칸으로 가려는데, 다른 한 녀석이 상환이 들고 있던 휴지마저 빼앗아 화장실로 들어간다. 윽!……. 다음 칸을 여는데, 양아치 한 녀석이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며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양아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눈을 피하며 옆 칸으로 피하는 상환. 마지막 칸을 여는데- 덩치들이 약해 보이는 모범생을 붙잡아놓고 교육중이다. 자포자기 하는 상환. 바지가 젖는다…….
고등학교 등굣길. 선도부 완장을 차고 살벌하게 생긴 친구들과 함께 아이들의 복장 검사를 하는 상환. 복장이 불량한 한 녀석을 잡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냥 통과시켜주라고 위협한다.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보내는 상환.
고등학교 쓰레기장. 상환이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등굣길에 걸렸던 복장불량 맨이 친구들과 함께 상환을 향해 다가온다. 들고 있던 쓰레기통을 버리고 잽싸게 튀는 상환. 하지만 결국 녀석들에게 잡히고- 쓰레기장으로 상환을 몰아붙이며 다짜고짜 상환을 때리기 시작하는 녀석들……. 상환을 때리며 담배를 피우는데……. 망보던 한 녀석이 달려와 "떴다!!!"…….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후다닥 사라지는 녀석들. 이 뒤로 이들을 쫓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피를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상환. 이 앞으로 선생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상환이 버렸던 쓰레기통을 한 손에 들고, 상환의 앞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발견하는 선생님. "이 새끼가……. " 상환을 한 대 쥐어박고 상환의 귀를 잡아끌고 나간다. "아아아-!" 절규하는 상환…….
씬 31. 침술원 앞 - 실외/저녁
꾸부정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거리를 걷는 상환의 뒷모습. 어느 새 침술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발길을 멈추고 잠시 침술원을 바라보는 상환. 들어가 볼까?……. 말까?…….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침술원 앞을 지나쳐간다. 한산한 거리. 썰렁한 바람이 거리를 훑고 지나가는데- 잠시 후 다시 상환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씬 32. 침술원 입구 - 실내/저녁
쾅!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환.
상환: 아저씨! 도사 아저씨!
의진: (소리에 놀라 뛰어나오며) 누구세요? 어?
상환: 야, 너 말고 나한테 도술 가르쳐 준다는 아저씨들 어디 있어?
뒤따라 자운이 모습을 보인다.
상환: ……. 아저씨들이 나 가르쳐 준다는 거 배우면 싸움 잘 해요?
씬 33. 침술원 시술실/시술실 앞 - 실내/밤
시술실. 얼굴에 멍이 든 상환, 거울을 향해 총을 뻗고 있다.
상환: 당신을 폭행 및 협박, 공무 집행 방해죄로 체포한다. 당신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아! 병신 왜 이걸 못해?! 응?!…….
이 때, 문이 화르륵 열리며, 의진이 들어온다. 화들짝 놀라 총을 뒤로 숨기는 상환.
의진: 어디서 또 그렇게 터지셨나…….
상환: (의진의 손에 들린 침술기구를 보고) 뭐하게? 또…….
의진: 치료해야지.
상환: 할 줄 알아?
의진: (무시하고) 뒤에 숨기고 있는 거 뭐야?
상환: (엉덩이 밑으로 총을 숨기며) 몰라도 돼…….
의진: 몰라도 되긴……. (상환의 팔을 꺾어 제압한 뒤 엉덩이를 들추며) 앗!……. 이거! 총 아냐! 너 권총도 있어? 야, 한번만 만져보자.
상환: 안 돼, 이거 아무나 만지는 거 아니란 말야.
이 때, 시술실로 들어가려던 자운.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자 멈칫하고, 귀를 기울여 이들의 대화 내용을 듣는다.
의진: 야, 딱 한번만……. 옛날부터 진짜 만지구 싶었단 말야. 넌 심심하면 맨 날 만지작거릴 거 아냐.
침을 꿀꺽 삼키는 자운. 문을 열까말까 고민한다. 다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운.
의진: 진짜로 만져만 본다니까. 너 장풍 쏘는 거 배우러 찾아왔다 메? 공짜로 가르쳐 줘, 맞은 데 치료해 줘, 근데 이거 하나 못 만지게 하냐?
상환: ……. 좋아, 딱 한번만이야.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의진: 알았어. ……. 와, 한 손에 쏙 들어오는데……. 생각보다 작네.
시술실 안에서 조심스럽게 총을 만지며 대화하는 두 사람.
상환: 야, 크다고 다 좋은 거 아냐.
의진: 너……. 이거 써 본적 있어?
더 이상 참기 힘든 자운. 폭발 직전이다…….
상환: 한 번……. 이거 잘못 놀리면 인생 종친다고 봐야지…….
의진: 이거 나한테 한 발만 주면 안 돼? 나, 처음이란 말야.
"안 돼!!!" 결국 문을 발로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가는 자운. 놀라서 돌아보는 상환과 의진.
상환: (권총을 뺏으며) 거 봐…….
자운,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씬 34. 길거리 - 실외/낮
사람이 붐비고 있는 한낮의 도심 거리. 빠르게 걷고 있는 의진 뒤로 한참 뒤쳐져 있는 상환. 뛰어와 속도를 맞출라 하면 어느새 또 멀어진 의진.
상환: (짜증내며) 같이 가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의진: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따라오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상환: (도저히 못 따라가겠는지 자리에 멈춰 서서) 야! 찾아오면, 도술 가르쳐 준다 메! 장풍 쏘고 하늘 날고 구름 타고 그런 거!
소리친 상환이 뭔가 썰렁한 듯 주위를 살피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상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씬 35. 공원 - 실외/낮
거리를 걸으며 설명하는 의진.
의진: 득도한 남자를 마루치라고하고 여자를 아라치라고 불러. 마루라고 하는 건 산마루 들마루 할 때처럼, 정상이란 뜻이야.
상환: ?
인터컷 - 석양을 등지고 산등성이에서 외롭게 권법을 수련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 위로-
의진 (소리): 한문으로 할 경우 마루 종(宗) 자로, 신성하다 뭐 그런 거지.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치가 붙어 마루치, 한 마디로 신성을 받은 자라 이거야.
화면 바뀌면 고대무사의 복장을 한 여인이 현란한 검술을 펼친다.
의진 (소리): 또 아라는 아름답다, 아랑 할 때 아라라는 뜻도 있고, 알이란 뜻도 있지. 알이란 게 또 주몽 신화에도 나오듯이 신성하다는 뜻도 되거던.
의진이 인터컷 화면 앞으로 나와 마치 일기예보를 하듯이 설명을 이어간다.
의진: 그러니까 아라치도 신성을 받은 사람이란 뜻이라고 보면 돼.
상환: (썰렁하게) 그래서 어쨌다고?…….
어느 새 고층 빌딩 앞에 서있는 두 사람. 의진은 조용히 손가락으로 초고층 건물에서 유리창 닦기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카메라 가까이 다가가면 안전 끈에 매달려 있는 물통과 공구들.
의진: 저 사람들이 뭐 믿고 저렇게 올라가 있는 거 같냐?
상환: 뭘 믿긴 뭘 믿어?…….
의진: 저게 경공이란 거야……. 건설현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지.
씬 36. 빌딩축조 현장 - 실외/낮
철근뼈대를 높이 세우는 작업을 진행 중인 건설인부. 마치 원숭이 같이 철근에 붙어서 30미터 위로 오르고 있다.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빼고 보고 있는 상환의 옆으로 다가와 서는 의진.
의진: 나름대로 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아.
씬 37. 은행 - 실내/낮
은행에서 기계보다 빠른 속도로 돈을 세는 여자 은행원.
의진: 얼마 전에 은행 무장 강도를 맨손으로 잡은 주인공 있지?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약해 보이는 여자가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 수가 있겠니?
은행 강도의 팔을 꺾어 제압하는 여자 은행원의 모습을 CCTV로 잡은 뉴스화면……. 은행원의 활약을 다룬 뉴스화면에서 실제로 벌어진 괴상한 사건들을 나룬 자료화면들이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옐로우 페이퍼에 실린 각종 희귀 소식들도 자료화면으로 보이고……. 이 위로-
의진 (소리): 왜 생활하다보면 꼭 화장실 다녀오는데 한 시간씩 걸리고 심부름 보내면 세월아 내월아 하는 사람들 있지?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사람들 모르게 도를 닦으며 악한 기운과 싸우는 사람들이야.
상환 (소리): 야,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이 왜 저렇게 꾀재재하게 사냐?
의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야 되는데, 자리 잡고 사는 게 쉽냐? 힘이라는 게 또 쪼끔만 방심하면 금방 권력이 되거든. 우리 도 닦는 사람들은 또 권력 같은 거 체질적으로 싫어하잖니.
씬 38. 거리 - 실외/낮
계속 걸으며 상환에게 설명하는 의진.
의진: 뭔 일이 터졌는데 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싶으면 대충 알겠지?
의진이가 설명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는 상환. 상환의 두리번거리는 시선 속으로 들어오는 일상적이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놀라운 그림들이 펼쳐진다. 고층 빌딩에서 유리창을 닦는 사람, 대형 건물 철골을 자유자재로 오르는 사람. 그 옆으로 마치 외 줄타기를 하듯 공사장 위를 오가는 사람,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거운 짐을 주고받는 사람들, 무거운 짐을 이고 자유자재로 걸어 다니는 할머니, 엄청난 양의 짐을 실은 채 달리는 퀵 서비스 아저씨,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방에 못을 박는 목수 아저씨, 몇 층씩 쟁반을 쌓아서 나르는 밥집 아줌마, 차에서 던져주는 신문 더미들을 기가 막히게 받아내 놀라운 속도로 끈을 풀고는 놀라운 휘리릭 전단지를 끼우는 신문보급소 직원들……. 이 위로 들리는 의진의 목소리…….
의진 (소리): 하지만 도를 닦는다고 모두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지. 우리 아빠하고 칠선 선생님들이 찾는 건 득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마루치야. 어쩜 우리 세대엔 마루치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환: 마루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의진: 작은 불로 어둠을 밝히는 덴 한계가 있는 법.
상환: 뭐야?……. 썰렁해…….
의진과 상환이 거리를 걸으며 지나간다. 사람들 틈에 섞이는 두 사람. 카메라, 하늘로 치솟은 건물 옥상 한쪽을 비추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흑운의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 기운을 모으는 흑운. 이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흑운에게서 빠르게 빠져나가는 카메라.
씬 39. 침술원 내부 - 실내/낮
빠르게 도심을 훑고 날아가던 카메라는 침술원에서 정좌하고 있는 자운에게 도착한다. 상체를 벗고 몸에 뜸을 뜨고 있는 자운. 자운의 등에는 커다란 용문신이 새겨져있다. 지긋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는 자운.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듯 땀을 흘리며 현기증을 느끼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씬 40. 무운의 도장과 침술원의 교차 - 실내/낮
무운의 도장에서는 흑운이 저지른 사고현장을 보도하는 뉴스가 흐르고 있다.
무운: 나야……. 오늘 뉴스 봤어?
자운: 혹시……. 흑운 소식인가?
무운: 아무래도……. 봉인진이 뚫린 것 같아……. 합마기흡음공을 사용한 사건이 두 건이나 있어…….
자운: !……. 언젠가 뚫릴 줄은 알았지만, 아직 마루치도 찾지 못했는데……. 우리가 너무 느긋했어.
무운: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야…….
자운: 어쨌든 확인을 한 번 해봐야겠네. 그 동안 상환이 녀석 좀 맡겨도 되겠지?
무운: 자네 정말 그 친구에게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운: 이미 우리 옆에 어둠이 왔다면 그 옆에 빛도 있다는 거 아닌가.
씬 41. 방송국 스튜디오 - 실내/낮
와아- 하는 방청객들의 함성과 함께 진행자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진행자: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지난 한 주일 동안 우리 "고수를 찾아서" 시간만 기다리시느라 안과에 가신 분들이 많데요.
패널: 안과에는 왜요?
진행자: 기다리다 눈이 빠져서요.
꺄르르- 진행자의 말도 안 되는 유머에 열심히 웃는 방청객들과 방청객들에게 웃음을 유도하는 FD. 스튜디오 구석에서 썰렁하게 이 모습을 지켜보는 상환과 의진.
의진: 원래 우린 사람들 앞에서 시범보이고 하는 게 금기였어.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워낙 관심이 없어서 내부에서도 변화가 좀 생겼지. 요즘엔 뭐든지 직접 보여줘야 믿잖아. 너처럼…….
상환: ……. 야 근데 너 나 언제 봤다고 첨 볼 때부터 반말이냐?
이때, 다시 꺄르르- 터지는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진행자: 자, 그럼, 우리 VJ가 만나 뵙고 온 이 두 분의 기인들을 이곳으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분들은 신체 이동 술로 이곳에 등장하실 지도 모르니까 정신들 바짝 차리세요!! 득도의 경지로 안내합니다! 육봉 스님과 설운 도사님 나와 주세요!
방청객들의 박수와 함께 무대로 나오며 정중히 답례하는 육봉 스님과 설운.
진행자: 아, 두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을 텐데……. (육봉 스님의 헝겊가방을 가리키며) 아, 이건 뭔가요?
육봉스님: 아무래도 복잡한 시내에서 다닐 땐 이렇게 돌이라도 이고 다니지 않으면, 제가 너무 빨라서 사람들하고 자꾸 부딪쳐요. 나야 괜찮지만 부딪친 사람들 내상이 걱정 돼서…….
진행자: (말문이 막힌 듯) 아……. 정말 빠르신가 보군요……. 그럼 오늘도 축지법으로 오신 겁니까?
육봉스님: 77번 버스 타고 왔습니다.
진행자: 예……. 아무래도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많은 설명보다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원하실 겁니다……. 놀라운 신체능력의 현장! 파괴의 장입니다!…….
무대에 엄청난 통나무가 들어온다. 이를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긴장하는 상환과 의진. 육봉 스님, 무대에 준비된 두꺼운 통나무의 격파시범을 보이려 호흡을 가다듬는다. 눈을 가늘게 뜨며 숨을 멈춘 상태로 들어가는 기합!!! 상환이 집중해서 살펴본다. 엄청난 기운……. !!! "이얍!!!" 통나무를 향해 내리치는 육봉 스님의 손날! 퍽!……. 고요한 실내……. 긴장하는 사람들……. 멀쩡한 통나무……. 눈을 돌리는 의진. 당황한 육봉과 설운.
진행자: 아하, 역시 방송국이란 곳이 이렇게 산으로 들로 수련하러 다니시는 분들께는 좀 긴장되는 장소죠? 여러분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방청객과 진행자, 긴장이 풀리며 다시 격려의 박수를 친다. 다시 정중하게 인사하는 육봉 스님…….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기합에 들어간다. 두 번째 격파! 여전히 꿈쩍도 안 하는 통나무. 무안해진 진행자와 썰렁한 객석. 어이가 없는 상환. 머리를 쥐어뜯는 PD…….
진행자: 하하하……. 지금 이런 기술은 매우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에 이렇게 평생 수련을 하신 분들도 쉽게 격파하기가 힘든 거죠. (통나무로 다가가 직접 내리치려는 듯) 보시다시피 이게 일반인들은 그냥 내리치기도 힘든 겁니다 이게…….
진행자가 힘을 주어 내리치자 금이 쩍 가며 두 동강이 나는 통나무. 자신도 놀라는 진행자……. 놀라는 사람들……. 한심하게 이들을 바라보는 상환.
씬 42. 거리 - 실외/밤
전자상점 앞에서 유심히 방송을 보고 있는 흑운……. 텔레비전 안에는 설운이 경공 시범을 보인다며 형광등 위를 올라갔다가 형광등을 다 깨뜨리는 장면이 흐르고 있다. 이를 유심히 살펴보는 흑운.
씬 43. 무운의 도장 - 실내/밤
상환과 의진이 무운 도사의 도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심각한 자세로 명상을 하며 상환과 의진을 맞이하는 무운. 의진, 방해 될 새라 조심조심 하는데, 무운이 눈을 감은 채 말문을 연다.
무운: 강호에 들어오는 길은 여러 갈래일지 모르나 무림은 하나다.
웬 알 수 없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뻘줌히 서있는 상환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의진.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장 바닥에 앉는 상환. 상환을 마주 앉혀놓고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운: 무릇 모든 일의 경계는 그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예전에 백호 선생은 속리산을 떠나며 "도가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한 것이요, 산이 세속을 떠난 것이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난 것"이라 하셨다…….
상환: (쩌억 하품하며) 오늘 하루 종일 얘한테서 그런 얘기만 들었어요. 뭐 보여준다고 그래서 따라갔더니만, 쌩 코메디나 하고 말이야. 아저씨들 진짜 도사들 맞아요? 마루치네 아라치네 하면 뭘 좀 그럴 듯한 걸 가르쳐 줘야지…….
무운: 흐흠……. 기특한 놈……. 니가 바로 수련에 들어가길 원하는 구나. 의진아 이놈 좀 잡아라. 몸부터 펴야겠다.
상환: 뭐야? 왜 이래?…….
무운과 의진이 자신의 몸을 잡자 눈이 동그레지는 상환. "으헙!" 기합과 함께 상환의 다리를 사정없이 찢어버리는 무운. "으아아악!!!"
씬 44. 지하터널 안 - 실내/밤
지하터널을 걷고 있는 자운. 전기공이 걸어갔던 궤적을 따라 이동한다. 흑운을 가두었던 진의 장소에 다다른다. 바닥 위에 놓인 쇠징을 집어 드는 자운의 심각한 얼굴.
씬 45. 무운의 도장 - 실내/낮
밥상에 앉아있는 상환과 의진, 그리고 무운. 상환의 팔에는 자전거 타이어가 묶여져 있다.
상환: 아니 이러고 어떻게 밥을 먹어요?
무운: 도 닦는 건 공부한다는 거야. 공부라는 게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공부가 되냐? 자기가 절실해야 배우는 거야.
상환: 아니 그럼 왜 아저씨하고…….
무운: 야, 너는 명색이 도 닦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놈이 사부한테 아저씨가 뭐냐? 아저씨가. 아무리 그냥 넘길라고. 해도 기본이 안 돼 있어 기본이……. 너 학교 어디까지 나왔어?
부글부글 끓지만 꾹 참고 수저를 드는 상환. 벌 벌벌 떨리는 손. 음식이 제대로 입에 들어올 리가 없다.
씬 46. 도장 화장실 - 실내/낮
어정어정한 자세로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와 바지 내리고 변기에 앉는 상환.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
의진: 너 담배 피냐?
상환: (후다닥 담배를 끄며) 담배는 무슨 담배, 큰일 날라구…….
상환이 급하게 담배 불을 끄자마자 화장실 칸막이 위로 고개를 쑥 내미는 의진. 화들짝 놀라는 상환.
의진: 너 밀어내기 할 때도 기마 자세로 밀어내라고 그랬지?
상환: 아이씨- 뭔 놈에 볼 일도 못 보게 지랄이야……. 알았다 알았어…….
투덜거리며 일어나 양변기에 다리를 걸치고 기마 자세로 볼일 보는 상환.
상환: (의진이 가지 않고 버티자) 특별한 일없으면 좀 나가주지?
씬 47. 도장 - 실내/낮
상환이 볼일을 마치고 도장으로 들어서는데 문이 삐걱 열리며 덩치 좋은 낯선 남자가 도장 안으로 들어선다.
방문자: 계십니까?
명상하고 있던 무운이 조용히 돌아본다.
무운: 무슨 일이십니까?
방문자: 이곳 관장님 명성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가능하다면 관장님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습니다.
도장 안에 팽팽하게 도는 긴장감. 상환 침을 꿀꺽 삼킨다. 두둥!
무운: (말없이 방문자를 바라보다가) 의진아!
의진: 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 싸움…….
무운: ……. 파출소에 전화 넣어라.
씬 48. 방송국 로비 - 실내/낮
방송국 로비 안. 시끄러운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가로지르는 FD의 고함소리. 분주한 가운데 "고수를 찾아서" 진행자가 로비를 나선다. 그 앞을 가로막는 흑운…….
진행자: 죄송한데, 싸인은 나중에 합시다. 내가 지금 생방 스케줄이 바빠서…….
진행자를 잡는 흑운.
진행자: 아, 이 양반 참 바빠 죽겠는데……. 알았어 알았어…….
펜을 꺼내 능숙하게 흑운의 옷자락에 싸인을 해주는 진행자…….
씬 49. 방송국 화장실 - 실내/낮
쾅!- 천장으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진행자. 피를 주르르 쏟아낸다.
진행자: ……. 살려주세요…….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릴 게……. 살려만 주세요…….
흑운: ……. 통나무하고 씨름하던 놈들 어딨어.
진행자: ……. 예?
씬 50. 무운의 도장 - 실내/저녁
뻘뻘 땀 흘리며 도장 청소를 하는 상환. 청소를 마치고 탈진해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진 상환 앞에 의진이 다가와 선다.
의진: 청소 끝났으면 물구나무서야지?
상환: (걸레를 내팽게치며) 아, 진짜 못해먹겠네……. 아니 하루 종일 청소하고, 뛰고, 빨래하고, 물구나무서고, 도술 하는 거 가르쳐 준데 메?! 이건 어떻게 태권도장에서 애들하고 노는 것 보다 못하냐?!
무운: (도장 구석에서 발을 걸치고 앉아서) 이 놈아 도 닦는 게 공부라니까 공부…….
상환: (무운에게 다가서며) 아니 공부고 뭐고 어느 세월에 싸우는 거 배워요?!
무운: 이놈아 싸움 기술 배우려면 다른 데 가보라니까.
상환: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요, 장풍 쏘는 거 가르쳐 줘요! 장풍!
조용히 눈감고 있던 무운이 한쪽 벽면을 가리킨다. 무운의 손가락을 따라 상환이 고개를 돌리면, 도장 기둥에 붙어있는 경고문. - "실내에선 장풍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