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실과 날실에 얽힌 마음
2022년 11월 15일부터 27일까지 진부 문화예술창작 스튜디오에서 최금란(崔琴蘭, 횡계교회 사모) 화가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10월 19일~25일까지 서울 인사동 루우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화가촌 사람들의 작품과 함께 '첫 번째 나들이'란 주제를 붙여 개최했다. 주로 서울에서 개최했던 전시회를 올해는 그의 후원자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평창 진부에서도 개최한 것이다.
최금란 사모가 붓을 잡기 시작한 지는 약 30여 년이 되었다. 목회자 남편(李淵相 목사)을 만나 경기도 문산에서 교회(文山上洞敎會)를 개척하고 열심히 영혼 구원에 힘을 쏟던 젊은 시절이었다. 슬하에 세 딸 중 올해 30세가 넘은 막내가 2살 되던 때에 안타깝게도 침샘암이라는 희귀 병에 걸려 4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할 수 없는 불치의 병마와 싸우면서 그는 수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처럼 병이 나았지만 그놈은 그의 얼굴에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예뻤던 얼굴에 골 깊은 수술 자국이 새겨졌다. 당시 30대 젊은 여인에게는 또 다른 고통의 바통 터치나 다름없었다. 이전 회복을 위하여 성형 수술이 불가피했다. 또 찾아온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수십 차례 수술했지만 그 자국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아픔은 한이 되어 평생 그의 마음 안에 웅크리고 있다. 세상사가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는데 목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얼굴의 새겨진 흉터는 그를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꺼리게 했고, 결국 그는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거의 폐집(廢蟄) 생활로 이어갔다. 자신을 점점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대인기피증 환자는 아니지만 증상은 그런 중환자와 비슷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자 죽음의 먹구름이 높은 산자락에 걸쳐 있듯이 한동안 머물고 있었다. 어린 딸들을 키워야 하는 육아맘(mom)의 자리도, 목회를 돕는 배필의 사명도 놓고만 싶었다. 차라리 죽음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증이 엄습했다.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살아야 하는 생존의 긴박한 상황이 그를 짓누를 때마다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렸는지 모른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를 만져주시고 어둠에 갇혀버린 그에게 새 소망의 빛을 비추셨다. 그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었고 미대(美大)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은 생소한 그림으로 그를 안으신 것이다.
화가의 꿈은 그 당시로는 사치였고 그저 남들처럼 편안하게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대인기피증은 제대로 된 미술 교육조차 방해했지만 그는 생존을 위하여 자기만의 골방에 들어가서 매일 그림과 사투하며 생명의 불씨를 지폈다. 점점 그림 안에 생명의 빛이 비치었고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시작했다. 그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목사의 부인이 주의 일 이외 그림에만 빠져있는 세속적인 사모라는 비난도 퍼부었다. 그들의 말이 일리(一理)가 있더라도 최금란 사모에게 그림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끈이었기에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시간이 지나가자 붓을 잡으며 씨름했던 그 세월은 흐르는 물이 저수지에 고이듯이 그에게 실력을 쌓게 했다. 그 실력은 여러 미술 경연대회에 나가서 입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침내 대한민국 미술전람회(國展)에 나가서 입선, 외국의 미술 대회에서는 특별상 수상 등의 성과를 올렸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끝에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발군(拔群)의 실력을 갖춘 화가가 된 것이다. 수상 경력은 작가로서 채워야 할 점수를 보탰고, 그 점수가 임계점에 다다르자 그는 미술인들의 선망의 자리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그의 수상 경력은 그의 실력이 기라성(綺羅星) 같은 화가들의 군집 세계에서 당당하게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보통 큰 대회의 심사위원은 대학교수들로 구성된다. 실력의 차이보다는 학연으로 인한 이점(利點)이 입상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다. 비슷한 실력이라면 기왕에 내 동문이나 제자가 받도록 팔을 안으로 구부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교수 자신은 물론 출신 대학에도 명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히 짜인 그물에 입상이란 대어(大魚)로 걸리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세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순전히 그만의 실력으로 이룩한 쾌거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잘 알고 있다. 암 병의 굴혈(窟穴)을 빠져나와 성형의 골짜기에서 음침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하나님은 우람하고 찬란한 아침햇살을 비춰주신 것이다.
최금란 작가는 자기의 미술 과정을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의 그림과 비유한다. 이징(李澄)은 어려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울면서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찍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은 이징이 어렸을 때 누각에 올라 3일간 귀가를 망각할 정도로 그림 습작에 몰두했던 것을 보고 전문적인 기예를 이루기 위해 보여준 집착과 편벽성을 높이 평가했다. 최금란 사모도 자신 안에서 흐르는 그 눈물을 찍어서 그렇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는 이번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은 모두 씨실과 날실로 한 올 한 올을 부드럽고 투명하게, 직조처럼 치열하게 그려낸 실오라기 천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졌다. 거기에서 분청 다완(粉靑茶盌)이 살포시 그 품 안에서 안겨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는 실오라기가 서로 엮여서 만든 삼베는 온몸이 낡아지기까지 덮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또한 그것은 십자가에서 온몸이 낡아지기까지 겸손이란 씨실과 온유란 날실로 엮어서 범죄 한 인간을 따뜻하게 품어주신 우리 주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