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28
질문 : 좌선 중에 다리가 너무 저려서 갈수록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답변 : 용기라는 마음의 힘이 점점 줄어들었다. 수행을 할 때는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 참고 >
좌선은 몸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어떤 것이 되었거나 모두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통증, 졸음, 망상이 생깁니다. 통증은 저리고 쑤시고 화끈거리고 찌르고 땅기고 떨리는 등등의 느낌입니다. 좌선은 이런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으로 나타난 것이라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관념이 아닌 실재를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에서 나타나는 통증은 부르기 위한 명칭으로 관념입니다. 이때 통증의 실재는 저리고 쑤시고 화끈거리는 느낌입니다. 졸음이나 망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졸릴 때의 실재는 희미한 마음과 나른하고 무거운 몸의 느낌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이란 바로 이런 실재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린 느낌이 일어났다면 알아차릴 대상이 나타난 것으로 이것을 싫어해서 수행을 그만두면 안 됩니다.
나타난 대상은 모두 손님입니다. 이때의 손님이 바로 법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은 바로 이런 실재하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저린 현상을 통증이라고 생각하면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린 현상의 실재인 저리고 쑤시고 화끈거리는 것이 알아차릴 대상으로 받아들이면 싫어하지 않게 되며 단지 하나의 현상으로 보게 됩니다.
다리가 저릴 때 자세를 바꾸면 저린 현상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고 저린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때 인내가 길러집니다. 인내는 열반에 이르는 가장 좋은 약입니다. 인내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수행은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조화의 과정입니다. 이런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죽어도 좋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는 굳은 의지가 생깁니다.
저는 처음에 위빠사나 수행을 배울 때 스승으로부터 수행을 하다 죽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가르침은 수행을 하는 내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행 중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때 이런 장애에 대한 아픔보다 이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괴롭게 합니다. 사소한 현상에도 “이것이 무슨 병이 아닌가?”걱정하거나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수행을 하다 죽지 않는다는 스승의 가르침이 떠올라 고난을 이겨내곤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수행을 한 뒤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닥쳐왔을 때는 “수행을 하다 죽은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하는 생각을 하여 오히려 고통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수행을 하다 죽어도 좋다는 결연한 의지만 있으면 수행 중에 생기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감각적 욕망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오랫동안 감각적 욕망의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은 괴로움을 싫어합니다. 이러한 욕망의 폐해가 쾌락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 중에 나타나는 크고 작은 고통을 알아차림으로 견디면 자연스럽게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이 길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 중에 나타나는 괴로움은 오히려 자신의 오염된 허물을 벗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리가 저릴 때 다리가 저린 실재를 알아차리면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졸음에 떨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집중하기가 더 좋습니다. 무엇이나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