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 신앙의 다른이름 미신 / 안순희
긴 역사를 이어온 우리민족은 그 안에서 만들어진 풍습이 자연스럽게 신앙이 되고 문화가 되었으니 요즘 흔히 말하는 미신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단골이라 불리던 무당이 구역을 나누어 관리하며 마을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일을 했었다. 급한 환자가 셍기면 달려가서 맑은 물을 정갈한 솔잎에 적셔 온 집안을 돌며 뿌려 도량을 깨끗이 한 다음 환자를 위한 의식을 하는 동안 회복이 되기도 하고 소용이 없기도 했지만 급할 때 기댈 수 있는 의지 처인 것은 사실이었다.
무당의 역할은 지역사회 여러 문재를 살폈으니 결혼이나 장례 의식도 그들의 일이었다. 그런다고 정해진 보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고 의식에 차려진 상에 놓인 곡식이나 옷가지 떡 정도를 챙겨 갔고 가을이면 구역의 마을을 돌며 볏단을 거두어갔다 그것 역시 형편에 따라 더 주는 이도 있고 덜 주는 집도 있지만 불평 하진 않았다. 어렵던 시절엔 그나마 가난한 양반네 집보다 그들의 형편이 더 나았으니 불평은 없었다.
신과 사람의 다리 역할을 하는 그들의 위치가 높지 않았던 것은 지배 계급들의 묘수가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인 무당에게 마을 사람들이 나이가 많고 적음이 구분 없이 하대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신분 차이가 오늘날의 종교처럼 민중 위에 군림할 수 없도록 하는 칸막이로 작동했으리라 생각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의료 해택을 충분히 누리는 오늘날에도 생명은 쉼 없이 나고 죽는다. 인명이 제천인 걸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첨단 의료진도 살리지 못하는 생명을 붙잡으려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 하느라. 기도원이나 사찰이 붐비는 것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배를 받던 황폐한 이 땅. 물밀려온 서구 문명을 아무 여과 없이 받아드리며 신 문명이니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무조건 떠받들던 동안 우리의 토속 신앙은 미신이란 이름으로 홀대받았다. 그 틈을 비집고 근본도 모르는 온갖 사이비 종교가. 판을치는 무법천지가 되어 가는 현실이 참으로 걱정된다. 우리 민족은 지해로워서 밝은 과학문명 시대에는 스스로 알아 우라가 사는 현실밖 어디에도 간판 달아놓은 지옥과 천당은 없다는 것쯤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차만별의 세상사 안에 지옥도 천당도 늘 함께하는게 아닐까?
그옛날 어둡던 시절에 겪었던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그 유명한 68년 큰 가뭄이 남도 지방을 덮쳤을때 일이다. 모가 무릎까지 자라서 들판에 초록이 가득할때 부터 불볕 더위만 이글 거릴뿐 비는 고사하고 이슬도 내리지 않았다. 벼폭은 불에 탈 정도로 말라 붙었고 단물이 흐르던 우물물이 바닥 나 두래박을 들고 우물가를 지키느라. 밤을 새웠다. 논밭은 돌덩이 되어 먼지만 날리고 곡식은 고사하고 뿔뿌리도 말라버렸다 하루는 무당 할머니가 나와 세살 위의 이웃 언니를 불러 아주 대단한 임무를 맡겼다. 우리 마을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산너머 마을에 사철 흘러 넘치는 우물이 있는데 순결한 처녀가 그 물을 길러다 우리 우물에 부으면 물길이 우리 마을로 돌아 온다며 커다란 주젼자를 양 손에 들려주며 아무도 보지 않을 한밤중에 소리없이 다녀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스므살과 열일곱짜리 처녀 둘이서 소나무가 우거진 산을 넘고 구부러진 논둑길을 건너가 주전자를 체워 들고 되돌아 오는데 달그림자가 온갖 형상으로 보여 가슴이 오그라 들었지만 위기를 넘기는데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그 산을 넘어와 남은 물을 우물에 보태고나니 물에 빠젔던 것처럼 땀에 젖어있었다 .
어렸지만 그 무당의 비방이 효과가 없으리란 것쯤은 알았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무거운 주전자를 조절하며 물을 조금씩 흘려 마른 땅 위에 물길을 그려놓고 와 남겨 온 물을 우물에 보태기까지의 그 놀라운 집중력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끈기를 길러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실물도 말라가는 절망적인 때 희망의 끄나풀을 만들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한줄기 불빛으로 작동하는 묘한 작용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가난하고 어둡던 그시절 그들은 민중과 함께하며 신분에 맞는 책임감으로 그 모자란 지혜를 만들어낸 고뇌가 가상하지 않은가?. 그 어리석은 행위가. 다른이에개 피해를 주거나 억압하는 의도가 없는 순수 자체였으니 그 시절 우리민중들은 그들을 고마운 동반자로 여겼던 것같다. 지금쯤은 우리도 전해오던 토속신앙이 무지에서 행해졌던 부끄러운 유산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그 안에 담겨진 귀한 가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닳을 때가 아닐까.?
무식하지 않고 모자란 것 없는 오늘을 사는 이들은 왜 수천만원 씩을 들여 굿을 하는가?듣기에도 끔찍한 온갖 비방으로 타인을 해하려 할까?인간이 그렇게 나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늘 그렇게 어리석어 질 수 있는 거라고 그냥 웃어본다.
첫댓글 무당 하면 좋은 이미지가 아닌데 그래도 동네의 안녕을 위해 애쓰는 게 고맙네요. 글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점이나 굿을 그냥 미신이라고 치부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토속신앙으로서의 가치를 되새겨
볼 만하다는데 적극 동의합니다.
옛날 우리 동네 골목에도 무당이 살아서 굿을 자주 해, 별 이질감 없이 축제처럼 구경했답니다. 엄마도 새해만 되면 토정비결을 보러 가는 등, 미신을 일상처럼 즐기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당에 관한 추억도 선생님 생각도 잘 읽었습니다.
하소연할 곳 없는 민초들의 아픔과 고민을 들어주던 역할을 했지요. 무당을 말씀하시니 ‘태백산맥’이 생각나네요.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