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회를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
2024. 12. 25(성탄감사예배) 누가복음 2:1-7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 하울링 등 많은 영화를 감독한 유하 감독이 쓴 시가 있다. 오늘은 그 시를 낭독함으로 설교를 시작하려 한다. 제가 시를 낭송할 때 여러분은 시의 제목을 맞추어 보기 바란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의 빛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여러분 생각에 이 시의 제목이 무엇이겠는가? 이 시의 제목은 오징어이다. 다리가 10개라서 십초어 라고 불리는 오징어는 2개의 긴 다리를 통하여 먹이를 잡기도 하고, 또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긴 2개의 다리를 촉완, 교미완이라 부른다.
오징어의 이 교미완으로 만들어진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다리를 8개 가진 문어가 오징어에게 너는 왜 다리가 10개냐? 하고 물었다. 그때 오징어가 문어에게 한 말이 에이 무드도 없는 놈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징어는 문어가 없는 긴 2개의 다리로 무들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어를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무드가 넘치는 오징어는 양성주광성을 가지고 있어서 빛만 보면 달려든다.
왜 오징어는 빛을 보면 달려들겠는가? 오징어는 짝짓기를 할 때 발광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란한 불빛을 보면서 자기 평생에 최고의 사랑인 줄 알고 달려들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징어와 같이 우리가 착각하고 살고 있지 않는가? 사사기의 제일 마지막 사건은 이스라엘 11개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가 2차례 승리하여 이스라엘은 1차 전쟁에서 2만 2천명, 2차 전쟁에서 1만 8천명이 전사한다. 이스라엘 11개 지파는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4만명의 병사를 잃은 것이다. 그리고 3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는데, 그 승리로 베냐민 지파의 남자는 림몬바위에 숨은 600명만 남게 된다.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출발할 때 3만 5천 4백명이었던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에 입성할 때 4만 5천 6백명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11개 지파와 전쟁을 위하여 나간 병사는 2만 6천 7백명이었는데, 그들만 다 죽은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죽고 고작 600명만 남은 것이다.
추측해 보건대 베냐민 지파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형제를 향하여 무참히 칼을 휘둘렀던 것에 대하여 이스라엘 11개 지파는 분노하며 베냐민 지파 사람 모두를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스라엘 12개 지파 중에 한개의 지파가 사라지는 위기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에 남자만 600명이 남았을 때 이스라엘은 한 개의 지파가 사라지는 위기를 느껴서 베냐민 지파 남자들 장가보내기 프로젝트 2개를 시작하였다. 그 프로젝트 중에 하나가 전쟁에 동참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을 쳐서 죽이고, 그 남은 여인 400명을 베냐민 남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200명이 부족하였는데, 그 부족한 200명을 위하여 여호와의 명절에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며 포도원을 지나갈 때 그 여자들을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여러분 보시기에 지혜로와 보이는가? 그런데 여호와의 명절에 여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열매에 대하여 감사하며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여인을 붙들어 보쌈하는 것은 그 당시 가나안 문화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주체하지 못한 분노로 무너져 버린 베냐민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가나안 문화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처음이겠는가? 삼손이 딤나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을 하는데, 그때 삼손은 블레셋의 문화대로 일주일 동안 결혼 잔치를 베푼다. 그래서 삼손은 딤나에서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하는 잔치를 하였는데, 여기서 잔치라는 단어는 술을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나실인이 술을 먹고 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삼손은 그 자리에 초대받아 온 30명의 청년과 친구가 되어서 수수께끼를 낸다. 여기서 삼손이 수수께끼를 낸다는 말은 그 잔치의 주도권을 가지고 흥을 돋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삼손의 모습이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방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문화와 가치를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금귀고리로 에봇을 만드는 것도, 또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기를 제일 먼저 영접한 딸을 번제로 드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가나안의 문화와 가치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점점 가나안의 문화와 삶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이 있겠는가? 지난 10월에 한국교총에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내용이 뉴스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왜냐하면 금일 행사가 열립니다를 금요일에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착각해고(90%),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족보를 족발보쌈세트로 알고 있었다. 아니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말에 사과를 장난으로 하나?고 화를 내었다고 한다.
EBS에서 실행한 문해력 테스트를 보면 더 충격적이다. EBS에서 아이들에게 두문불출이 무슨 뜻인가?하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아이들은 두 개의 문과 화산 분출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희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피다.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아이들은 희수가 다쳤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희수의 얼굴에서 피가 난다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는가? 일산중학교 국어시험 때의 일이다. 선생님은 삼강오륜에 대하여 쓰시오 라는 문제를 내었다. 그때 한 학생은 답을 쓰고 수정테이프로 덧씌운 후에 동전으로 긁으면 답이 나옵니다 하고 써 놓았다. 채점을 하던 국어선생님은 동전을 꺼내어 수정테이프 위를 조심스럽게 긁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이노무 새끼 하면서 일어나 교실로 뛰어갔다. 옆 선생님이 뭐라고 써 있길래 저리 화가 나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답안지를 확인해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었다. 꽝! 다음 기회에 삼강오륜을 모르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도 다음기회는 있다.
그러면 세상 문화와 가치에 빠져 헛된 불빛을 쫓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음 기회가 있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을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 만삭이 되었던 마리아는 출산을 하였는데, 여관이 없어서 그 아들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는 이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는가?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 전에 미가와 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한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700년 전에 미가 선지를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말씀하셨고, 또 이사야를 통하여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가를 통하여 호적을 명한다. 그래서 로마의 통치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왜냐하면 다윗왕에게는 20여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요셉은 솔로몬의 계보로 이어진 27대 손이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장 족보).
그러면 만삭의 마리아는 왜 베들레헴으로 올라가야 했겠는가? 누가복음 3장을 보면 마리아는 다윗왕의 아들 중에 나단의 계보로 다윗의 42대 손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었음으로 호적하기위하여 베들레헴으로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날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 다윗의 자손인 마리아와 정혼하게 하였다. 그리고 마리아가 만삭일 때를 기다렸다가 가이사 아구스도를 통하여 호적을 명령하여 베들레헴으로 올라가서 아들을 낳게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한 말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 고 말씀한다. 지금 마리아가 동정녀의 몸에서 아들을 낳은 것은 믿을 수 없는 신비이지만, 하나님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사 7:14)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비의 역사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와 문화를 쫓아 살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을 쫓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하여 주었다.
그 언약의 성취가 오늘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신 것이다.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심으로 저와 여러분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믿기 바란다. 그래서 성탄의 예수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성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