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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의 여름 , 경남 하동군 화계면 운수리
* 2013. 08.10. 토 / 학정
▣ 쌍계사에 모신 6조 혜능 대사는 누구인가? (2013.09.04. 추기, 33번 사진을 보세요.)
1. 쌍계사(雙磎寺) 9층 석탑, 1990년에 완공된 현대탑.
2. 쌍계사 일주문.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뜻이다. 기둥이 일주는 아니고, 보조 기둥이 있다. 현재의 문은 1977년에 중수 된 것이다.
3. 쌍계사 안내판 1) 지리산은 삼신산 중에 방장산에 해당한다. 2) 쌍계사는 723년 신라 성덕왕 때, 삼법, 대비 두 스님이 건립한 1300년 고찰이다. 3) 달마대사가 창시한 중국 선종 6대조 혜능대사를 정신적으로 모시면서 시작된 사찰이다. 6조의 유골일부를 가져와 모신, 6조정상탑이 모셔져있다. 4) 9세기초에 진감선사는 선과 차와 불교음악인 범패를 일으켜 사찰을 크게 중흥시킨 분이다. 5)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신라 정강왕이 쌍계사라는 사명을 하사했다. 6)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됐고, 왜란후 벽암대사 등이 복원, 1975년 고산 스님이 중수 중창하여 사세를 키웠다. .
4.일주문에서 바라본 금강문 천왕문이 통해 보인다. 쌍계사는 일주문-금강문-천왕문-팔영루-대웅전 이렇게 일직선으로, 큰 줄기 계통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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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금강문 , -일주문 다음 문으로, 절에 들어가는 두번째 관문이다. 두 분의 금강역사가 모셔져 있다. 금강역사는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친다고 한다. -좌측에 밀적금강, 우측은 나라연금강이다. 밀적금강은 언제나 부처님을 바짝붙어 밀착경호하고 비밀스런 내용을 들으려 하였다. 우측 나라연금강은 엄청난 힘을 갖는 신이다. -금강역사를 모시는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흔치 않다. 두번째 문의 금강역사상에 유의 관찰할 필요가 있다. 벽암스님은 왜란 후에 불교중흥에 애를 쓴 스님이지만 실감이 안난다. 그러나 금강문 현판의 벽암스님 글씨를 감상하면서 비로소 가까이 느껴진다.
-옛부터 있었으나, 현재문은 1979년 중수되었다.
7. 천왕문 세번째 관문이다. 4명의 불법 수호신인 4천왕을 모신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지국천왕 / 서쪽=광목천왕 / 남쪽=증장천왕 / 복쪽=다문천왕 이 다스린다. - 수미산은 부처가 거처하는 이상세계, 사찰은 수미산을 재현한 것이다.
8. 천왕문은 사천왕이 지킨다. 1978년 중수
9. 왼쪽 건물은 템플스테이와 관련된 건물이고 샤워시설이 좋았다. 오른 쪽은 천왕문
10. 8영루앞 배롱나무, 이 광장의 9층탑은 배롱나무에 가려져 있다. 8영이란 통일신라기 이 사찰에서 진감선사가 불교음악 범패를 창시하면서,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듧음률로 된 범패인 <어산>을 작곡한 데서 따온 명칭이다. 8영루는 이절의 강당이다. 1978년 중수
11. 8영루 앞 9층탑. -고산 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3과,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전단나무로 조각한 부처님 일위를 함께 모신 탑이다. -백창기 부부 단독 시주로 불기 2531년(서기 1987년)에 시공하여 1990년 완공.
12. 대웅전, 넘어다 보는 저 흰구름도 쌍계사가 궁금한 모양이다. 여기서 필자가 서두에서 제시한 시 <쌍계사 여름> 에 반영됐다. 적절한 시기에 흰구름 한 점에 詩作에 도움을 줬다.
13. 파랗게 맑은 하늘에/ 흰 구름 한 점이 쌍계사가 궁금해 / 지리산 삼신봉 산위에 걸려있다.
14. 쌍계사가 궁금한 저 구름을 보고 다음과 같이 썼다.좌측은 적묵당이다.
15. 중흥조 선禪, 차茶, 범패梵唄 공로 새긴 /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는 / 최치원 선생이 혼으로 쓰고 새긴 글씨, / 일천백 여 년이 지난 후도/ 증발하지 않는 땀방울 알알이 화강암에 맺혀있다.
16. 비석 귀부. 진감선사는 국사로 쌍계사의 중창주이다. -원래 익산사람으로 774년 혜공왕 10년에 최창원의 아들로 탄생했다. 속가의 성씨는 최씨다. 어머니 태몽에 인도승려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며 유리항아리를 주고 갔다 한다. -진감의 선조가 익산사람인 까닭은 고구려 마지막 왕족 외손인 안승이 신라에서 우대를 받으며 익산 금마저에 옮겨 살도록 배려한 덕분에 안승을 따라왔던 고구려 유민으로 익산에 터전을 잡았다. -진감은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놀 때, 나뭇잎을 사루어 향으로 삼고 꽃을 따서 공양 올리는 시늉도 하며 신심이 깊었다.
17. -31세 때 세공선의 뱃사공이 되기를 자청하여, 중국으로 가서 육조 혜능선사 법손인 창주의 신감대사를 만났다. 그러한 인연으로 37세에 소림사 유리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으니 어머니의 꿈과 같았다. -신라에서 온 도의선사도 만나고, 종남산에서 소나무 열매를 먹으며 3년간 수행하고, 3년은 시정으로 나와서 짚신을 삼아 널리 보시하다가 57세(830년)에 드디어 귀국하니 흥덕왕이 기뻐했다.
-지리산에서 마땅한 가람터를 찾던중 호랑이 몇 마리가 길을 인도하여 화개골 삼법화상이 남긴 절터에 이르게 됐다. 절을 새로 짓고 대나무 통으로 물을 끌어와 옥천사라 명명하였다. 여산의 동림사를 옮겨 온듯하다는 칭찬도 들었다. -헌강왕이 옥천사라는 명칭은 다른 곳에도 있으므로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바꿔 지어주었다. 이것이 쌍계사의 중창이다. 6조 남종선을 최초로 전법하고 해동범패와 다도의 연원을 확립했다. 850년 문성왕 때 탑을 세우지도 행적을 기록하지도 말라고 하면서 입적했다.
18. 화엄전과 그 뒤로 삼성각이다.
19. 금강계단옆 굴뚝
20. 금강계단, 통도사를 닮아 있다.
21. 금강계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상징탑이다.
22. 고준하고 소박한 고탑 하나
23. 고려시대 마애불. 바위에 새긴 부처를 마애불 이라고 한다.
24. 오른쪽은 <명부전>이다. -명부전은 <지장전>, <시왕전>이라고도 불린다. 죽은 사람 명복을 비는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한다. -왼쪽은 대웅전이다. 대웅전을 향해 오른 쪽은 이 명부전이고,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에는 <나한전> 이 있다. 나한전은 <응진전> 이라고도 한다. 16나한 봉안. 나한은 쉽게 말하면 수도승이 성불하여 나한이 된 것이다. 불법승 3보 중에 승보사상에 해당한다.
25. 빨간 배롱나무 화사한 꽃이/ 푸른 숲속 대나무, 편백 수직감과 시원한 대비, / 그 청량감은 누구의 지혜로운 보색補色인가?
26.배롱나무 (백일홍)
27.배롱나무 (백일홍)
28.석양의 9층탑 광장
29. 불일폭포 가는 길 입구에서 절집 지붕들을 바라 봤다.
30. 바위와 나무
31.차의 씨는 통일신라 때, 김대렴이 당에서 가져왔고, 진감선사가 쌍계사 일원에 차밭을 일구고 재배 보급에 성공했다. 그러므로 하동은 우리나라 차의 고향이 됐다.
32. 설선당, 스님들이 기거하고 공부하는 요사채. 설선당 육화료, 해행료가 모여 있다.
33. 쌍계사 박물관에 걸린 6조 혜능대사 모습.
쌍계사는 특히 6조 혜능대사를 숭배하는 신앙이 깊은 곳이다. 쌍계사의 724년 신라 성덕왕 23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三法스님이 혜능의 머리 유골을 가져와 봉안하고 난야라는 수행처를 세웠기 때문이다. 6조 스님의 유골이 이 쌍계사에 모셔진 사유는 이렇다.
삼법은 6조의 선풍진작에 대하여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714년에(성덕왕 13년) 6조 혜능이 입적하자 애통해 했다. 6년 뒤에는 혜능의 저술 6조단경을 구하여 읽었다. "내가 입적한 5~6년이 지나서 1인이 내 머리를 취하러 올 것이다." 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삼법은 이 대목은 자신을 두고 예언한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마땅히 우리나라 만대의 복전을 지으리라' 고 결심하고 실행에 나섰다.
김유신의 부인인 법정(法淨)비구니에게 2만금을 빌려, 상선을 타고 당나라로 가서 홍주의 개원사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신라 백율사의 승려 대비선백이 와 있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친하여 의논하던 중, 이 절에 기거하던 장정만을 설득하여, 2만금을 주고 육조의 정상을 취하여 오게 하였다.
귀국하여 법정비구니가 머무는 영묘사에서 밤마다 육조의 정상에 공양을 올렸다. 꿈에 6조가 나타나 '자신의 인연터가 지리산 아래의 눈 속에 등나무꽃이 피는 곳이 있으니, 그 곳으로 옮겨라' 고 명하였다. 대비선백과 함께 12월의 겨울 지리산 자락을 헤매던 중에 따뜻하고 등꽃이 핀 곳을 드디어 찾아 냈다. 이 곳에 돌을 쫓아 함을 만들고 봉안하여 암자를 세웠다. 18년간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739년에 앉아서 입적했다. 이와 같이 처음에 난야(蘭若)라고 하는 조그만 수행처였으나, 신라말 진감선사가 거대한 가람으로 만들었다.
▣ 쌍계사에 모신 6조 혜능 대사는 누구인가? (2013.09.04. 추기)
☞ [중앙일보] 2013.09.04 기사,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을 낸 고우 스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선불교 뿌리 혜능 1300주기 동아시아 선불교의 뿌리 육조(六祖) 혜능(慧能·638∼713)의 가르침을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인 고우(75) 스님의 친절한 해설로 만난다. 혜능의 열반 1300주기 기일(9.7일)에 맞춰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조계종출판사) 을 출간했다.
중국 당나라 때 사람인 혜능은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 대사를 초조(初祖)로 하는 중국 선불교 법맥(法脈)의 여섯 번째 조사(祖師), 육조다. 그의 법문집인 『육조단경』은 선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부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묶은 책에만 붙이는 명칭인 ‘경(經)’으로 불리는 명예를 얻었다.
♣ 혜능 가르침 핵심은 중도 고우 스님은 “『육조단경』은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한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 가르침의 핵심은 중도(中道)”라고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중도의 철학이 스며 있는 대목으로 단경의 다음과 같은 문장, ‘선지식아, 깨끗한 마음으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를 꼽았다. “이 깨끗한 마음이 바로 ‘더럽다’는 개념의 상대적인 의미인 ‘깨끗함’이 아니라 깨끗하다 또는 더럽다, 라는 양 극단을 떠나 집착·분별하지 않는 중도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이런 시각에서 세상을 보면 대립과 갈등, 투쟁, 극심한 생존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이런 시각으로 사고가 바뀌면 서로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길이 열려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도 발전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런 면에서 단경은 “인류의 행복지침서”라고 했다. / 신진 기자
34. 졸린 한 낮, 팔상전 일원은 하안거 대문 굳게 닫혀/ 금당의 6조정상탑을 참배할 수 없다. / 맴도는 구름아, 너도 내마음이구나. //
-이 대문 안으로 청학루, 영모전,팔상전, 봉래당, 영주당. 금당 등이 모여 있다. 하안거 하는 동안에는 개방이 안된다. - 대문에 <돈오문 頓悟門>이라고 쓰였다. 돈오란 고려후기 선종을 부흥시킨 보조국사 지눌이 강조한 요지다. <돈오점수> 즉 '깨달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오고, 그 후에 꾸준히 수양해야 한다' 는 의미다.
35. 불일폭포, 불일암은 2.4,km 산길이다.
36.식당에서 사용하는 돌저수조, 물이 너무 좋다.
37.해행료, 숙소와 식당이다.
38.해행료옆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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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속세의 옷을 벗고 수양에 들어 갔다. 오는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45일동안 해인사와 합천군 가야면 일대에서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 행사 준비에 분주한 합천 해인사 선해 주지스님에게 -'요즘같이 혼탁한 우리 사회에 바른길을 제시한다면?' 하고 국제신문 기자의 질문에 성철스님이 남기신 대중생활의 지침 가운데, '삼단유시(三段諭示)를 제시했다. 첫째 지계청정(持戒淸淨·청정한 계행을 지켜라), 둘째 화합애경(和合愛敬·계율을 청정히 한 뒤 서로 사랑하고 공경해서 화합하라), 셋째 이익중생(利益衆生·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라)이다.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주어진 환경에서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이고 사람의 길이다. 노력하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 온다."고 하였다. -가을에는 합천해인사를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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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산대장과 학정선생 두분이 쌍계사 여름탬플스태이 하셨는지요.승복차림과 함께 두손 꼭잡은 모습이 정감이 보이네요.
폭염더위에 성불 많이 하심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예, 8월 10일~11일
3박4일조 빡시게 하는 팀에, 우리는 사정이 안되어 1박2일간, 헐렁한 휴식형으로 잠시 끼어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