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리 절해고도 제주도, 돌이 많고 정말 땅이 척박해 곡식은 안되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지붕이 날아가며 며칠만 가뭄이 들어도 사람들이 굶어죽던 늘 보리 고개였던 유배의 섬, 그러면서도 경관만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기구한 섬은 도대체 언제 생겨났을까요?
옛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거대하고 당당한 여신설문대가 이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어데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설문대는 어느날 망망대해 가운데 제주섬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치마폭에 가득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찢어진 치마구멍 사이로는 끊임없이 흙부스러기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라산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아졌습니다. 치마폭 사이로 떨어진 흙들은 군데군데 모여 나즈막한 오름들이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산을 만들다보니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던졌더니 안덕며 사계리로 떨어져 산방산이 제일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설문대 몸집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몸집이 큰 설문대는 얼마나 거구였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앞 관탈섬에 걸쳐졌다고 합니다. 빨래를 할 때면 손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문지르며 빨았다. 또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오른쪽 다리는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디디고 왼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뎌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하기도 했지요.
어느날 가난한 여인 설문대는 속옷이 없이 제주 백성들에게 속옷을 한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하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명주를 모았으나 아흔아홉동밖에 모을 수 없었습니다. 속옷을 지어주는데는 100동의 명주가 필요 했던 것이였습니다.
옷도 만들지못하고 결국 천이 모자라 제주는 섬으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설문대가 다리를 놓던 흔적이 조천읍 조천리와 신촌리 바닷가에 바위섬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외로운 설문대에게도 배필이 생겼지요. 역시 허우대가 큰 설문대 하르방이었습니다. 두 거구가 사느라니 작은 섬에 먹을게 없어 노상 걱정이었습니다.
하루는 둘이 합심하여 물고기를 잡아먹기로 했다. 설문대 할망은 치마를 벗고 성산읍 신양리 섶지코지 앞바다에 들어앉고 하르방은 우도쪽으로부터 고기몰이를 했습니다.
하르방이 거대한 물건을 꺼내 바다를 휘휘 저으니 놀란 고기떼들이 섶지코지쪽으로 도망가다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설문대 할망의 하문(下門)속으로 들어가 잡혀 그날의 요기거리가 됐다. 이런 연유로 섶지코지는 설문대코지라고 불리게 었습니다.
몸집이 크니 정력이라고 떨어질리 없었다. 우도는 원래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고 힙니다. 설문대할망이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과 성산리 일출봉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오줌을 싸자 육지가 패이며 바다가 그 사이로 들어와 섬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오줌줄기가 셌는지 바다가 깊이 패여 성산과 우도사이 바다는 지금까지도 물살이 유난히 빠르다고 합니다. 요즘도 배들이 이 부근에서 난파당하면 거센 조류에 밀려 일본의 대마도까지 흘러가기 일쑤였지요
설문대 부부에게는 오백명의 건장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한라산 누비며 사냥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설문대 할망은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5백명에게 먹일 죽이라서 엄청나게 큰 솥에서 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망은 솥전에 올라서 가래로 죽을 젓다가 발을 헛디뎌 뜨거운 죽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녁에 돌아온 형제들은 잘익은 죽을 먹으며 오늘은 유난히 맛있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막내아들만은 어머니가 안보이자 이상해 죽을 먹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죽을 다 먹고나서
그때서야 형제들은 어머니가 죽을 쑤다가 솥에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됐었습니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여막내 아들은 서귀포 삼매봉 앞바다로 내려가서 슬피울다가 외돌괴가 되었지요.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울다가 바위로 굳어져 한라산 영실기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눈물자국은 한라산 여기저기에 봄이 되면 철죽으로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라산 영실기암에는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얽힌 슬픈 사연들로 가득합니다.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설문대 할망이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답니다.. 한라산 물장오리라는 화구호는 신령스럽다고 전해오는 물인데 설문대 할망이 얼마나 깊은가 그길이를 재다가 잠겨 다시 돌아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 거대한 여신의 몸뚱아리를 삼킨 물장오리는 ‘창터진물’이라고 불리는 곳은 바다 밑바닥 까지 닿는 다고 합니다. 설문대할망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하고 깊은 해저통로인 물장오리을 통하여 용궁으로 돌아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