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경찰은 한라산의 잔비들을 토벌하는 경찰들의 휴식 및 침식과 잔비들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한라산 주요 길목에 주둔소를 설치하였다. 이 주둔소는 6.25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잔비의 활동을 제한하고 효율적인 토벌을 위해 각 경찰서별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는데 1952년 4월에는 전도에 32개의 주둔소가 설치되었다. 주둔소는 마을 주민들을 의무적으로 동원하여 석축을 쌓고, 경찰 1명과 마을 청년 5~6명이 상주하여 경계를 했다. 토벌경찰 30명 이상이 잘 수 있는 마루방이 있어 토벌경찰의 임시숙소를 사용하였다. 주둔소와 주둔소 사이에는 전화를 가설했으나 전화선이 자주 끊겨 무선으로 통신을 하였다. 이 주둔소에는 토벌대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마을 부녀자들도 살았으며 그리고 중요한 주둔소는 60여명이 동시에 취침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경찰이 고정배치되는 주둔소와 작전 때마 주둔하는 임시주둔소(전투주둔소)롤 분류되었다.
이 주둔소를 쌓은 주민들은 강정리, 법환리, 서호리, 호근리 주민이었다고 한다. 당소 이 주둔소 자리는 들판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잔비(잔여공비)의 활동이 왕성해지자 이경진 제주도경찰국장은 적극적인 잔비 섬멸계획을 세우고 1952년 11월 1일부로 4개부대로 구성된 500여 명 규모의 ‘100전투경찰사령부’를 창설했다. 101부대(한재길 경감, 성읍주둔), 102부대(한낙구 경감, 성산포주둔), 103부대(장석관 경감, 녹하지 주둔), 105부대(현병두 경감, 다래오름주둔) 등 4개 부대로 편성되엇다.
제주도경찰국은 이러한 100사령부와는 별도로 사찰과장이 관장하는 사찰유격중대(허창순 경위)를 운용하였다. 이 부대는 잔비들에 대한 정보수집이 주임무이나 상황에 따라서 토벌임무도 수행하는 부대였다. 위 주둔소는 ‘100전투사령부’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