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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팸 후기(포스팅) 스크랩 의정부시 장암동 노강서원
하늘타리 추천 0 조회 25 13.12.31 17:1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지하철 7호선 종점 장암역에서 큰길을 건너 수락산 들머리를 겸하는 석림사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서계 박세당 선생의 후손이 경영하는 끌림이란 찻집이 보이고 물길 넘어로 고택이 보입니다.


그리고 계곡안에 궤산정을 보고

주춧돌만 남아 있는 청풍정이란 정자가 있던 곳을 지나면

최근에 정려문을 다시 세운 서원을 만납니다. 

 

김시습의 영당인 청절사(淸節祠)가 있던 자리였습니다만

대원군때 훼철되어 빈터만 남아 있다가

노량진가에 있다 한국전쟁때 없어진 노강서원이

1969년에 이곳에 복원되었습니다 

 

노강서원은 숙종 때의 문신 박태보(朴泰輔)를 모신 사당으로,

1695년(숙종 21) 박태보가 죽은 노량진 사육신묘 서쪽 산기슭에 창건되었습니다.
2년 뒤 조윤벽(趙潤壁) 등의 상소로 ‘노강(鷺江)’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1754년(영조 30)에 중건되었습니다.
정조가 화성에 행차하는 도중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는 보살핌을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871년에 대원군이 전국에 47개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할 때 경기도에서는 12개의 서원·사우가 훼철되지 않았는데,

노강서원도 그 중 하나입니다.
1925년 한강 대홍수로 침수 훼손되었으나 그해 중건되었고,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8년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습니다.

 

주벽으로 모셔진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유명한 남구만(南九萬)의 누나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려있는 그의 이력을 옮겨 봅니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생원으로서 1677년 알성 문과에 장원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다.

이 때 시관(試官)으로 출제를 잘못했다는 남인들의 탄핵을 받아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다.

1680년에 홍문관의 부수찬(副修撰)·수찬·부교리(副校理)·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교리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문묘 승출(陞黜 : 위패를 새로이 모시거나 있던 위패를 출향시킴.)에 관한 문제와

당시 이조판서 이단하(李端夏)를 질책한 소를 올려 파직되었다.

그 뒤 서인들이 여러 차례 그의 환수를 청해

1682년 홍문관의 사가독서(賜暇讀書 : 문흥을 위해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독서에만 전념하도록 일정 기간 휴가를 주던 제도)에 선발되었다.

사가독서를 마친 후 이천현감(伊川縣監)을 시작으로 부수찬·교리·이조좌랑, 호남의 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호남에 암행어사로 다녀온 뒤에 중앙에 보고한 과감한 비리 지적에 조정의 대신들이 감탄했으며,

호남 지역의 주민들로부터도 진정한 어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당시 서인 중에서 송시열(宋時烈)과 윤선거(尹宣擧)가 서로 정적으로 있을 때,

윤선거의 외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친족 관계라는 사심을 떠나 공정하게 의리에 기준을 두고 시비를 가려

통쾌하게 논조를 전개한 적도 있다.

이어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거쳐 파주목사로 나갔을 때,

조정에서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위패를 문묘에서 빼어버렸다.

그가 부임해 재직하는 파주에서는 조정의 정책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이를 존속시켜나가 인책, 면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해 주동적으로 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 도중 옥독(獄毒)으로 노량진에서 죽었다.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풍계사(淵溪祠)에 제향되었다."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사당과 동·서재 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고 교육장소인 강당은 없습니다.

건물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의 구분 없이

외삼문과 맞배지붕의 사당, 동·서재가 좌우 마주보며 같은 영역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앞에 툇칸을 둔 정면 3칸의 건물입니다. 

 

 사당에는 ‘鷺江書院’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서재에는 박태보를 추모하는 題詠이 걸려있습니다. 

 

 

 

서원앞에 서있는 몇개의 안내판을 주의깊게 읽어보고

온길 되짚어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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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2.31 21:01

    첫댓글 노강서원에 대하여 잘 알게 되었읍니다^^

  • 14.01.01 23:24

    노강서원에 대해서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아~~근데 요고 이렇게 스크랩 하시면 안되요 혼나요...

    리포스팅 하셔야 하는걸로 알고있는데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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