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시간
여보게
때로는 마냥 걷는 것도
삶에 주어진 시간이라네.
애써
힘들게 짜 맞추지 말고
가는 시간에 마음을 얹고 가세나.
‘아버지’이라는 멍에
온갖 세파(世波)에 떠밀려서
여기까지 왔다.
오직
젊음 하나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았다.
하지만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고 텅 빈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이라는 무게로 묶인 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지난날
모닥불로 한여름 밤을 지키며
세상이야기 지어내고 있을 때
점점 푸름을 잃어가는
마실 어르신들처럼
나도 어느새
그들과 함께 가고 있었다.
봄이 되면
되새김질하는 꽃같이
삶의 불씨를 피워보고 싶다.
펄펄 끓는 용광로(鎔鑛爐)처럼 되고 싶지만
채근(採根)하는 나 자신에게 시간이 멈춘다면........
자꾸만 자꾸만
내 삶의 불씨가 꺼지려한다.
오늘도
무거운 짐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불효자(不孝子)
‘아버지’이라는 멍에 버겁다고 고백(告白)한다.
*마실-‘마을’의 방언(강원, 경상, 충청)
뭘까?
나는 누구? 물음
아버지에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핏줄 이어서
호흡하는 작은 씨앗
나는 누구? 물음
어머니에 어머니
그 어머니의 육신 늘리며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
밤마다 반짝이는
아버지별 어머니별
하늘 창 밝히는 까닭
뭘까?
눈 내린 풍경
찬바람에 감기 들까봐
장독대도 나무들도
엄마가 만든
하양 털옷을 입고 있네요.
그런 후
내 삶과 함께 하는 사람아
함께 호흡하는 시간마다 늘 기쁨만 있을까요.
때로는 아픔도 있지요.
기쁨도 한 세상
아픔도 한 세상인걸
나는 알고 있었지요.
기쁨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움보다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움이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디딤돌이란 것을
내 삶과 함께 하는 사람아
맑고 맑은 미소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웃음의 길보다
눈물로 가야하는 길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너의 눈물은 더 아름다움이었다.
내 삶과 함께 하는 사람아
가난의 대물림이 싫어 온전히 자신의 삶을
바다에 돈진 내 아버지 눈물의 노래이었다.
닻에 묶인 배
멈춘 고동소리 갈매기 노래도 눈물이었고
아버지를 부르는 내 마음도 눈물이다.
내 삶과 함께 하는 사람아
몸부림치지 않아도 가는 세월
아파도 가야 한다.
거친 숨과 이마에 흐르는 땀
소매 끝으로 훔치며
그래도 가야한다.
뱃전에 출렁이다 돌아가는
파도-괘(波濤罫)의 고요함을 보아야 한다.
그런 후 아름다운 너를 만나겠다.
귀심(歸心)
하나 둘 잊어간다는 것이 아쉬워
추억(追憶)으로 잡아 본다.
사랑했던 시간 지금도 야릇한데
날 오라 손짓한다.
아등바등 살면서
오직 한길 걸어온 나그네 길(道)
꿈꾸었던 것들
다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했다.’
말하고 싶다.
이제 고향에 가고 싶다.
그 바다 그 내음
여기 없소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찾지 않겠소.
나는
여기 없소.
벌써 오래전부터
그가 나를 훔쳐갔소.
그래서 나는
그의 가슴속에 있고 여기 없소.
혹시 나를 만나고 싶거든
그의 가슴속에서 찾구려.
촛불이 되고 싶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인재”가 아닌 “참다운 사람” “사람다운 사람”
한밤중도 아닌 한 낮에
등불을 켜 들고 거리를 누비던 디오게네스를 닮고 싶다.
당신의 이름으로 촛불을 태우며
대한민국 앞에 ‘작은 자’가 되고 싶다.
“또-라이 아냐?”
“단단히 미쳤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혀를 차면서 머리 위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하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더 아픈 대한민국 앞에 외치는 ‘낮은 자’가 되고 싶다.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 하여도
디오게네스는 등불을 켜 들고 소중한 사람을 찾았지만
나는 따스한 햇살보다도 작은 촛불이 되겠다.
사람들은 속이고 울리고
등치는 짓을 한다.
이것은 제 살을 제가 베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을
디오게네스는 알고 있었다.
거짓을 감추려고 속임수를 쓰다가
모든 게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하는 모슴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고 있지 않는가?
언제가지 거짓을 꺼 둘 텐가?
차라리 솔직한 편이 낫지요.
촛불을 켜자.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내 속의 진전한 나를 줄일 순 없다.
함께 사는 세상!
모든 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그 속임수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남이든 내 자신이든 속인다는 것
잠시 쾌감을 주는 일 뿐이다. 하지만 그 열매는 써다.
그래서 그런지
거짓이 밀물처럼 밀려와도 나는 그 위에 당당히 맞서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예쁘게 그릴 때
밝은 세상을 비추는 작은 촛불이고 싶다.
-광화문 5차 촛불집회 참여 하면서- 2016.12.07
마음의 시(詩)
바람이 불면
눕는 갈대 같은 당신
마음의 시(詩) 슨다.
마르셀 없는 손이지만
음식도 청소도
다 해치운 여인의 삶
흰 머리카락의 당신 때문에
또, 다른 세상이 온다.
아직 다하지 못한 당신
지금도 마음의 시(詩)를 쓰고 있다.
새 출발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우리함께로
이젠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차가운 겨울하늘이었지만
정의의 함성은 내 가슴 속 따스한 향기로 간직하고 싶다.
무겁던 어제를 던져버리고
답답했던 내일을 벗기자.
미움을 씻어버리고 포옹하는 마음으로 새 출발해야하는 국민혁명!
그 참 모습을 보고 싶다.
2016.12.09 16시 박근혜대통령 탄핵안 가결 날
고향바다
끝없이 달려오고 있다.
계절이 바뀌었지만 달려오고 있다.
어릴 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고함치면서 달려오고 있다.
잠김 눈 비비며
달려오는 너를 막았지만
내 이름을 알고 달려오기에
갇혔던 내 마음 뻥 둘렸다.
너를 만나기에 나는 다시 일어나
그리고 힘을 내어 본다.
장독대
한여름 볕을 호박넝쿨 이고
시원한 바람 기다리며
시간을 담느다.
장독!
어머니 손맛을 담아
보송보송 눈 내려도
온종일 어머니는 장독을 안고 있었다.
자질구레한 걱정까지 담아
참고 견디며 인고(忍苦)의 시간 보낸 뒤
나는 알았다. 장독 속을
이젠 손길마저 닿지 않지만
옹기종기 모인 장독대 보니
어머니를 닮아가고 싶다.
소식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왔어요.
엄마 품안에서 10달
아무 일 없었는지
잘 지냈는지
가족들
핸드폰 들고
카-톡 카-톡
울리는 카톡방만 봐요.
2018.07.13 소망 태어난 날
찾아올 때는
함께 가고자 할 땐
한번만 날 찾아 주세요.
버선발로 맞이하겠습니다.
하늘과 땅
멀고 멀어도
바다와 산
제아무리 높은 뱍일지라도
주님을 향한 내 마음 변하지 않습니다.
도 다시 찾아올 때는
십자가 지고 오소서
내 작은 등 어깨 메고 뒤따라가겠습니다.
어서 오게나? 친구
삐죽하고 가면 얼마나 더 간다고
아등바등합니까?
불혹을 넘고 지천명 되어도
세상은 여전희 지척불변인걸.
이보게? 얼굴 한번 보세!
이래나 저래나 가는 세월
나름대로 고통과 상처안고
수많은 역경도 뎐뎌내지 않았는가?
이제는 잊자.
잊을 만하면 다시 맴돌지만
그래도 잊자.
매일매일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지 않는가?
이보게? 초라한 포장마차면 어때?
추억담은 잔에 마음껏 취하여 보세!
모든 것
아니 생각마져 가는 세월에 맡겨보세!
보고 싶은 친구! 어서 오게나?
세월
세월이 오고 간자리에
갈색 고운 사연을 담아본다.
가을!
꺼낼때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청명한 날
따가운 햇살로 토해내는 넌
세월이 가면
내 기억속에 또 머문다.
아버지를 찾으려면
'보고 싶다.'고 하여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 아버지
나는 더 이상 찾지 않고 돌아섰다.
아버지는 그기에 없었다.
벌써 오래전에
본향으로 갔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 가슴속에 있고
여기 없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가만히 가슴속을 뒤져본다.
별을 보고 있다.
을미년에 연못을 만들었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오는 이가 있기에
이제는
버려야 하는 때가 왔다.
병신년
고맙고
늘 행복했으면 하는 투정 해 본다.
그래
나는 지금
두 년 앞에서 별을 보고 있다.
기다림
눈시울로 귀를 열어본다.
천리 밖 당신의 숨소리 들린다.
씨 뿌리 듯 소곤소곤
마음에 심기니 심장은 하들 짝 놀란다.
수혈 하듯 쿵쿵 두드리니
사랑의 움
트는 소리 드린다.
꽃을 찾아 나선 나비처럼
나래 펴고
기지개를 편다.
세월의 강엔 놓인
봄의 징검다리 건너는 나는
대자연 따라
노래하는 중이다.
생명
오래전 한 남자
긴 세월 기다려 한 여자를 만났다.
알 수 없는 바람에
작은 홀씨로 날아와 움틀 때까지
얼마나 애간장 태우며 지켜보았을까?
흙더미 속 무리 진 벌레들
처음 만난 여인처럼 속삭여도
홀씨의 심장박동은 멈추지 않았다.
어둠에 목줄 타 들어가도
홀씨는 햇살의 입맞춤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가늘게 떨리는 남자의 몸짓이
새 생명의 집을 짓는다.
꽃이었다고
임이 온다기에
동구 밖 가보니
임은 오지 않고 봄만 왔다.
행여 올까?
나뭇가지에 마음 걸어놓고
꽃잎으로 웃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
오지 못한다면
차라리 소식이라도 보내주오.
온다는 말도 없고
약속도 없다면
꽃 지는 날 내 사랑도 지리라.
먼 날 임이 와
향기에 취해
떨어진 꽃이라도 찾는다면
기다리다 지쳐
떨어진 꽃도
꽃이었다고 전해주오.
시어(詩語)
"너는 미친 것이야!" 하는
그 소리는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깨어났다.
알고 싶다는 것이 그만 믿음이 된 것이다.
낮엔 일을 하고
새벽시간 예배당에 간다.
매일매일 하나님 만나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니다.
보잘 곳 촌(村)사내
소리 없는 세월에 끌려 다녔지만
이젠
하루하루 행복한 날이었다.
성경을 읽고
찬양대 노래하고 있는 시어(詩語)쓰고
믿음, 소망, 사랑
넘치는 시간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냥 좋나서요.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생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에 쓰고 있다고 마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기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웃는 것은
징그림보다 웃게 해 주는 당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쓴 것을 읽어봅니다.
하 하 하
촌자 웃어봅니다.
그냥 좋아서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네요.
풀도 없는
마당을 보니
생각이 났어요.
늘 빗자루 든 아버지 모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 항아리엔
무엇이 담겼을까요.
아마도
하루를 만들어 담았지요.
집은 말하네요.
인품으로 지어졌다고
싸리문 열어 있으니
햇빛이 다라 들어오고
평안이 찾아오니
웃음이 쏟아 나겠지요.
내 마음 열어보니
세상이 내 안에 들어오네요.
사진을 받으니
내일이 보이고 힘이 나네요.
'오늘'이 왔다.
나에겐 '어제'라는 시간은 갔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데려다 주고 갔다.
나에겐 '오늘'은
새로운 한 날을 기쁨으로 맞게 한다.
나에겐 '오늘'은
다시 올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이다.
힘이 솟는다.
가슴이 뛴다.
이제부터 시작한다.
'내일' 아닌'오늘'의 열정 때문에
다람쥐채바퀴
지금가지 함께한 당신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여전히 다람쥐채바퀴처럼
빙빙 돌고 있습니다.
어디쯤 왔는지?
아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쾌도에 맴돌고 있습니다.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시간의 다람쥐채바퀴도 어디쯤엔
돌다가 멈추겠지요.
다람쥐채바퀴가 멈추었다고 해도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
이제 모든 것 내려 놓고
바윗돌 움켜잡고 가을하늘 보며
당신과 꿈 키우던 그때를 그려봅니다.
비록 멈춰버린 시간일지라도
언제 도 다시 시간 속 타임-머심(Time Machine)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달려온 발자국 만큼 보람 있었던 일을 들어다봅니다.
후회 없는 삶 위해 나는
당신을 더 사랑하며
하루하루
웃음꽃으로 피우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돌리는 다람쥐채바퀴라면
자녀에게 댓가 없이
기쁨의 콧노래로 달리겠습니다.
재래시장의 방식
명일재래시장에 갔다.
입구부터 아우성이었다.
세월을 말해주듯
귀퉁이가 낡아 구멍 난 바구니
즐비하게 놓여 있다.
바구니 안에 담긴 밥상재료들
주인을 기다리는 머슴 같았고
작은 양품에는 마지막인줄 아는 듯
아등바등 하는 미구라지도 있다.
역시 시장은
쾌쾌한 생선 비린내로 범벅이 되어야
제대로 재래시장 모양으로
눈길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나보네.
오랜 세월
시장에 쭈그리고 눌러앉은 노파께
조심스럽게 던져본다.
"요즘 장사는 잘 되나요?"
설레설레 하면서
여전히 그 자리 지키는 육신
하얀색으로 바-랜 머리를 이고
물이 흘러가듯이 위에서 아래로 가는 행인
이족에서 저족으로 가는 행인보고
"오백-원이오. 내가 직접 기른 것이오."
말을 끌고 간다.
너는
그 옛날 대세였는데
백화점대세에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오래 버티면서 지켜왔다.
묵직한 무게로 지켜온 재래시장
오랜 모습의 허물을 벗고
기지개를 켠다.
재래시장!
많은 행인 올수록 제 맛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