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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사용을 꺼리는 동양문화
우리나라나 중국 등 동양문화권에서는 '나' 라는 1인칭의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요. 한자로 말하자면 나 我는 물론이고 나 吾, 나 予 또는 나 余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특이한 예로 황진이의 '꿈길(相思夢)'이란 시에 나오는 나 儂 자(儂訪歡時歡訪儂 - 내가 그대를 찾아가면 그대는 나를 찾아나서)가 있는데, 이건 황진이니까 쓸 수 있는 게 아닐런지..^^).
겸재 정선의 '남산의 해돋이(木覓朝暾)'
시적으로도 1인칭 대신 3인칭을 가져다 씀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고 시적인 묘미를 더욱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나라 시(唐詩)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시인묵객들이 1인칭 대신 3인칭에 해당되는 글자를 찾아 즐겨 사용해 왔지요. 여기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3인칭의 사용례를 추려 시대순으로 붙여 봅니다.
1. 나그네 客
초당(初唐) 하지장(賀知章, 659~744)의 '고향으로 돌아와 우연히 쓰다(回鄕偶書)' 중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불상식) 아이들이 쳐다보고도 알지 못하고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래) 웃으면서 묻네, 손님은 어디서 오셨냐고
성당(盛唐)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건덕강에서 자면서(宿建德江)'
移舟泊煙渚 日暮客愁心(이주박연저 일모객수심) 배를 옮겨 안개낀 물가에 대니 해저물어 이 나그네 수심 더욱 새로워
野曠天低樹 江淸月近人(야광천저수 강청월근인) 들이 넓어 하늘은 나무에 내려앉고 강은 맑아 달이 사람 가까이 있네
성당(盛唐) 왕유(王維, 701~761)의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그리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 중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서 낯선 나그네 되어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매번 좋은 계절을 맞으면 부모님 생각이 더 납니다
성당(盛唐) 두보(杜甫, 712~770)의 '높은데 올라(登高)' 중
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 만리 애닲픈 가을 언제나 나그네되어
百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대) 평생 병많은 (몸으로) 홀로 누대에 오른다
그의 다른 시 '누각에 오르며(登樓)' 중
花近高樓傷客心(화근고루상객심) 누각 근처에 핀 꾀 이 나그네 심사를 아프게 하는데
萬方多難此登臨(만방다난차등임) 온 나라가 전쟁으로 어려움이 많은 이 때에 누대에 오른다
당(唐) 장계(張繼)의 '풍교에 담에 배를 대고(楓橋夜泊)' 중
姑蘇山外寒山寺(고소산외한산사) 고소산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한밤중에 종소리가 나그네의 배에까지 들리네
*장계(張繼)의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이 시는 한시 중 지금도 가장 널리 회자되고 있음. 이 시를 지은 시기는 과거에 떨어져
낙심하여 蘇州 한산사 부근을 찾아 하루 밤을 지새며 썼다함. 시를 쓴 시기는 대체로 7백년대 중반 당 현종 대로 추정됨
고려 의종대 고조기(高兆基, ?~1157)의 '금양현에서 묶으며(宿金壤縣)' 중
鳥語霜林曉(조어상림효) 서리내린 새벽 숲에 새소리
風驚客榻眠(풍경객탑면) 바람은 걸상에서 새우잠을 자는 나그네(나)를 놀래 (깨우네)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낙동강 상류를 지나며'
誰知倦遊客(수지권유객) 누가 알리오, 게으른 이 나그네가
四海一詩翁(사해일시옹) 천지사방을 떠도는 시짓는 늙은이라는 걸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6~1392)의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奉使日本)' 중
水國春光動(수국춘광동) 물의 나라(일본)에 봄볕 일렁이는데
天涯客未行(천애객미행) 天涯(일본)의 이 나그네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의 다른 시 '전주 望京臺에 올라' 중
九月高風愁客子(구월고풍수객자) 9월(음력) 높은 바람 나그네를 시름지게 하고
百年豪氣誤書生(십년호기어서생) 백년 호방한 기상 이 서생을 그르쳤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시 '4월 초하루' 중
山禽啼盡落花飛(산금제진낙화비) 산새 소리 그치고 落花는 날리는데
客者未歸春已歸(객자미귀춘이귀) 이 나그네는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봄은 벌써 가고
목은 이색의 손자로 세종대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맹균((李孟畇, 1371~1440)의 '松京懷古' 중
秋風客恨知多少(추풍객한지다소) 가을바람은 이 나그네의 한을 아는지
往事悠悠水自東(왕사유유수자동) 옛일은 아득하고 물은 동쪽으로 부터 흐르네
조선 최초 방랑시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어떤 나그네(有客)' 중
有客淸平寺(유객청평사) 어떤 나그네(김시습)가 청평사에 들러
春山任意遊(춘산임의유) 봄 산을 마음껏 노닐며
연산군의 무오사화 때 원사한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수헌에 차운하여(次睡軒)' 중
去客沒孤島(거객몰고도) 외딴섬으로 잠겨들어 가는 (유배의) 길손(김일손)
浮生同片雲(부생동편운) 떠도는 인생 조각 구름과 같구나
조선 대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화석정(花石亭)' 중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속 정자에는 가을이 벌써 깊어가는데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이 시인의 (근심하는) 마음 끝이 없구나
*騷喀 : 시인
조선 광해군 인조대 문신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의 '아침 일찍 떠나며(早行)' 중
客子就行路 早乘西北風(객자취행로 조승서북풍) 나그네 길을 나서, 일찍 서북풍을 타네
鷄聲月落後 水氣曉寒中(계성월락후 수기효한중) 달 지자 닭 울고, 새벽 한기 속에 물안개
조선 숙종대의 문인 강백년(姜栢年,)의 '啇山나루 건너 자천대를 바라보며' 중
一曲平沙鷗鷺靜(일곡평사구로적) 한구비 모래벌에 갈매기 백로는 졸고 있는데
夕陽歸客上漁船(석양귀객상어선) 석양에 돌아가는 나그네는 고기잡이 배에 오르네
'서유견문록'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의 '미국에서 돌아와 남산 아래에 웅크리고(在美洲歸拘南山下)' 중
三年遠遊客(삼년원유객) 삼년 멀리 떠돌던 나그네
萬里始歸人(만리시귀인) 만리로 부터 돌아온 사람
2. 사람 人
성당(盛唐)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건덕강에서 자면서(宿建德江)'
移舟泊煙渚 日暮客愁心(이주박연저 일모객수심) 배를 옮겨 안개낀 물가에 대니 해저물어 이 나그네 수심 더욱 새로워
野曠天低樹 江淸月近人(야광천저수 강청월근인) 들이 넓어 하늘은 나무에 내려앉고 강은 맑아 달이 사람 가까이 있네
성당(盛唐) 왕유(王維, 701~761)의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그리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 중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멀리 형제들 높은 데 올라
遍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두루 수유를 머리에 끚을 때 이 사람 하나 없음을 알겠지
성당(盛唐) 이백(李白, 701~762)의 '금릉(남경)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樓)
總爲浮雲能蔽日(총위부운능폐일) 느닷없이 뜬구름이 생겨 해를 가릴 수 있음에
長安不見使人愁(장안불견사인수) (임금 계신) 장안이 보이지 않는 이 사람을 시름짓게 하네
성당(盛唐) 최호(崔顥, 704~754)의 '황학루(黃鶴樓)' 중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드메뇨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산사인수) 안개서린 강위에서 이 사람을 시름지게 하누나
만당(晩唐) 두목(杜牧,803~852)의 '淸明' 중,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청명 때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路上行人欲斷魂(노상행인욕단혼) 길 가는 사람 (술 생각에) 넋이 다 나가
고려 의종대 고조기(高兆基, ?~1157)의 '금양현에서 묶으며(宿金壤縣)' 중
簷殘半窺月(첨잔반규월) 처마에 반만 보이는 달
人在一涯天(인재일애천) 이 사람 하늘 한쪽 가에 있는듯
고려말 충선왕 때 이혼(李混, 1252~1312)의 '부벽루' 중
往事微茫問無處(왕사미망문무처) 희미한 옛 일 물을 데 없고
淡煙斜日使人愁(담연사일사일수) 엷게 낀 안개 지는 해에 이 사람 시름지게 하오
조선 초기 문신이며 문인인 권근(權近. 1352 ~1409)의 '봄날 城南에서 즉흥적으로' 중
屋角杏花開欲遍(옥각행화개욕편) 집 모퉁이 살구꽃 활짝 피려고
數枝含露向人傾(수지함로향인경) 몇가지 이슬 머금고 이 사람을 향해 기울었네
사육신의 한분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絶命詩' 중
擊鼓催人名(격고최인명) 북소리 사람(나)의 목숨을 재촉하고
西風*日欲斜(서풍일욕사) 서풍에 해는 기울고
*西風대신 西山으로 된 곳도 있고, 回首 또는 回頭(머리를 돌리니)로 전혀 다른 표현도 있슴
조선 세조 대의 문신 김계창(金季昌, ?~1481)의 '밀양연남루(密陽嶺南樓)" 중
主人慣識遊人意(주인관식유인의) 주인은 나그네의 의중을 알고서
笑領春風入醉筵(수령춘풍입취연) 웃으며 봄바람을 끌고 술자리로 들어오네
松都(개성)의 三絶 황진이(黃眞伊, 1506?~1567?)의 '소세양판서를 보내 드리며(奉別蘇判書世讓)' 중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누고천일척 인취주천상)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을 듯, 이 사람 천잔 술에 취했네요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유수화금냉 매화입적향) 流水는 거문고 가락에 싸늘, 매화는 피리소리에 향기롭네
일본의 조선합병에 자결한 충절 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의 '압록강 가는 도중(鴨江途中)'
桃花多事圍山店(도화다사위산점) 복사꽃 야단스럽게 산속 주막을 에워쌓고 있고
蝴蝶隨人上野船(호접수인상야선) 호랑나비는 이 사람을 따라 배에 오르네
3. 몸 身
성당(盛唐) 두보(杜甫, 712~770)의 '들판에서 바라보다(野望)' 중 海內風塵諸弟隔(해내풍진제제격) 나라안 전란으로 모든 동생들과 헤어져 天涯涕淚一身遙(천애체루일신요) 하늘가에 눈물짓는 이 한 몸 멀리 떨어져 있네 중당(中唐) 맹교(盟郊, 751~814)의 '길떠나는 아들의 노래(遊子吟)' 중, 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자보수중선 유자신상의) 사랑하는 어머니 수중의 실, 길떠나는 자식 이 몸의 윗옷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임행밀밀봉 의공지지귀) 떠남에 촘촘히 꿰매는 건, 더디 돌아올까 걱정하는 마음 중당(中唐) 원진(元稹, 779 ~831)의 '남겨진 슬픔을 품고(遺悲懷)' 중 昔日戱言身後事(석일희언신후사) 옛날 우스개 소리로 하던 이 몸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
今朝都到眼前來(금조도도안전래) 오늘 아침 모두 눈앞에 도래했구나 비운의 임금 단종(端宗 1441~1457)의 '영월루에서 짓다(寧越樓作)' 중, 一自寃禽出帝宮(일자원금출제궁) 한마리 원통한 새 궁궐을 나온 후 孤身隻影碧山中(고신척영벽산중) 외로운 몸 외짝 새의 그림자 푸른 산속을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자취을 감춰 은둔한 정희량(鄭希良, 1469~?)의 '봄의 한기(春寒)' 중 地僻經過少(지벽경과소) 땅이 후미지니 지나는 이 적고 身孤老病兼(신고노병겸)
조선 중종대의 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讀書有感' 중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부귀는 다툼이 있기에 손대기 어렵운데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수) 산속엔 금하는 게 없어 이 한몸 편안할 수 있지
조선 중종대의 문신 정구(鄭球, 1490~?)의 '회포에 젖어(遣懷)' 중
自是疎慵見事遲(자시소용견사지) 스스로 재주없고 게으르고 일손 더딤에
世紛無盡一身微(세분무진일신미) 바쁜세상 끝이 없는데 이 하찮은 몸
詩書畵에 모두 능했던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울면서 어머니와 이별하고(泣別慈母)' 중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백발의 어머니를 강릉에 남겨두고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자안독거정) 이 몸 홀로 서울로 향해 하는 심정
*臨瀛: 강릉의 옛 명칭
조선의 글쟁이 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회포를 읊다(詠懷)' 중
安得此身化爲鶴(안득차신화위학) 어찌 이 몸 학처럼 날 수 있다면
統軍亭下一悲鳴(통군정하일비명) 통군정* 아래에서 한번 슬피 울어 볼 것을
*통군정(統軍亭) : 의주에 있는 정자로 평안도 8대 명승지 중 하나
4. 늙은이 老, 翁
성당(盛唐) 전원파 시인 왕유(王維, 701~761)의 '장마에 망천장에서 짓다(積雨輞川莊作)' 중
野老與人爭席罷(야로여인쟁석파) 촌 늙은이 사람들과 자리다툼 끝났거늘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갱상의) 그대들(海鷗*바다갈매기)은 무슨 일로 다시 의심하시는가?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로 아침마다 갈매기와 벗하면 지내던 사람이 하루는 아버지가 갈매기를 잡아오라는 말을 듣고 나갔더니, 갈매기는 하늘에서 날뿐 다가오지 않더라나..
성당(盛唐) 두보(杜甫. 711~770 )의 '슬픈 강머리(哀江頭)' 중
少陵野老呑聲哭(소릉야로감성곡) 소릉의 들 늙은이(두보) 소릉의 들 늙은이(두보) 울음을 삼키고
春日潜行曲江曲(춘일잠행곡강곡) 봄날 몰래 곡강 구비로 나간다
중당(中唐)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향로봉 아래 새 뫼집을 마련하고(香爐峰下新卜山居)'
司馬仍爲送老官(사마잉위송로관) 사마 벼슬이 오히려 늙으막을 보낼 벼슬살이로 할 만하고
心泰身寧是歸處(심태신녕시귀처) 마음과 몸이 편안하니 돌아가 (쉴만한) 곳이네
중당(中唐)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강에 눈이 내리고(江雪)' 중,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위에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홀로 눈오는 추운 강에서 낚시질하네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낙동강 상류를 지나며'
誰知倦遊客(수지권유객) 누가 알리오, 게으른 이 나그네가
四海一詩翁(사해일시옹) 천지사방을 떠도는 시짓는 늙은이(이규보)라는 걸
조선 선조대의 松潭 송남수(宋枏壽, 1537~1626)의 '송담에서 우연히 읊다(松潭偶吟)' 중
野老偏愛國 山戎*久據遼(야로편애국 산융구거료) 촌로 외곬 나라 사랑, 오랑캐는 내내 요동에 버티고 있어
西征健兒盡 巷間日蕭條*(서정건아진 항간일소조) 전쟁에 젊은이들 나가고 없어 마을은 날로 쓸쓸하구나
조선 순조대의 문신 홍종응(洪種應, 1783~?)의 '늙어 물러나서(退老)' 중
一竿之釣短蓑衣(일간지조단사의) 한자루 낙시대에 짧은 도롱이를 걸치고
退老江干俗事稀(퇴로강간속사희) 강변 낙향한 늙은이에게 세속의 일이 드물구나
5. 기타
성당(盛唐) 왕유(王維, 699-759)의 '산속 거처의 가을 어스름(山居秋暝). 중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제멋대로 자란 푸르른 풀들은 시들어가지만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귀하신 몸 절로 가히 머믈만 하구나
성당(盛唐) 이백(李白, 701-762)의 '벗을 보내며(送友人)'
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 : 뜬구름은 이 나그네의 마음이요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 지는 해는 보내는 벗의 정이라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6~1392)의 '전주 望京臺에 올라' 중
九月高風愁客子(구월고풍수객자) 9월(음력) 높은 바람 나그네를 시름지게 하고
百年豪氣誤書生(십년호기어서생) 백년 호방한 기상 이 서생을 그르쳤네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도성을 떠나온 감회(出城感懷)' 중
孤臣一掬淚(고신일국루) 외로운 신하(율곡)의 한줄기 눈물을
灑向漢陽城(쇄향한양성) 한양성을 향해 뿌려 볼거나
성웅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진중에서 읊다(陳中吟)' 중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외로운 신하(이순신) 나라를 걱정하는 날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기개있는 선비들은 공을 세울 때입니다
조선 선조대의 선비 마상원(馬尙遠, )의 '회포를 읊다(咏懷)' 중
浮生百年內(부생백년내) 뜬구름 같은 삶 백년도 못 사는데
此生能幾何(차생능기하) 이 내 생 얼마나 갈까?
첫댓글 내가 황진이 수준이었구나
내가 회사 다닐 때 일인칭을 많이 섰는데 (제 생각에는, 제가 알기로는 등) 아주 친한 동료가 일인칭을 쓰지 않는게 좋겠다고 충고 한 적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일인칭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