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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의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으신 곳에 대한 문의가 있어 글을 올립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으신 곳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으신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1장 45-51절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은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지명을 찾아 내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 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전후의 말씀과 당시 상황 등을 통하여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 35, 43절과 2장 1, 12절을 살펴 보면 구체적인 어떤 사건 이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이튿날 요한이...’(1:29), ‘또 이튿날 요한이..’(1:35), ‘이튿날 예수께서..’(1:43), ‘사흘째 되던 날...’(2:1), ‘그 후에,,,’(2:12) 이러한 시점은 요한복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은 어떤 사건 이후에 연속적으로 발생되는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장의 이야기는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한 것일까요? 그것은 1장 19-28절까지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예루살렘에서 세례 요한의 일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사람들을 보냈던 때입니다.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1: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1장 19절 이하에 등장하여 세례요한에게 질문하는 자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보낸 조사단들입니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요한복음 제1-6장. p.101). 요한복음 1장의 이야기는 이 사건을 기준으로하여 ‘이튿날’, ‘또 이튿날’, ‘이튿날’, ‘사흘재 되던 날’ 로 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들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하기 전에 28절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가 어디인지는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진 지역에 베다니가 있습니다. 이곳은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0장 22절-11장 44절의 사건의 장소는 ‘예루살렘’ –>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 -> ‘베다니’로 바뀌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으로 ‘요단 강 건녀편 베다니’와 ‘요단 강 저편’으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두 곳이 같은 곳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곳은 나사로의 집이 있는 요단 서편 베다니에서 나흘 길 정도 떨어어져 있는 곳입니다(11:17 참조). 다만, 요단 강 동편에 ‘베다니’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자들 간의 여러 견해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만난 곳은 "요단 동편 베다니"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네 제자를 제자 삼으신 곳도 "요단 동편 베다니"입니다. "요단 동편 베다니"는 예루살렘 옆 "베다니"에서 나흘 길에 있습니다.
그러면 "요단 동편 베다니"는 어디이겠습니까? 이곳은 성경에서 명확한 곳으로 기록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본 및 사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3세기의 오리겐 역시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학자들도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수수깨끼로 남아 있습니다. 오리겐은 "요단 동편 베다니"를 소수의 사본에서 발견되는 "베다바라"(Bethabara)독법을 따라서 "베다바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리겐의 이 의견에 대해서 킹제임스 버전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과 학자들이 오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옥스퍼드 원어 성경 대전, WBC 주석,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카리스 주석, NIV 적용 주석, 엑스포지터스 주석에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1장의 세례 요한의 세례를 베푸는 장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점입니다. 첫째는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라는 점이고, 둘째는 예루살렘 옆 베다니에서 걸어서 나흘 길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성경에는 세례 요한 세례를 베풀었던 또 다른 터가 있을까요? 요한복음 3장 23절에 나옵니다.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을 ‘살렘 가까운 에논’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요단 건너’와 분명히 구별되어 ‘살렘 가까운’ 곳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에논’은 ‘베다니’와 분명히 다른 곳입니다.
에논은 스키토폴리스(벧산)에서 가까운 지역입니다. 특히 살렘은 갈릴리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벧산->에논->살렘에서 요단강을 건너 요단 동편으로 요단강을 따라(요단 지구대 안에서) 내려가서 여리고 동편에서 다시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즉, 갈릴리 지역과 유대 지역을 연결했던 것은 사마리아가 아니니 요단 동편의 베레아였고, 그 관문이 되었던 곳이 여리고 동편 지역과 셀렘 지역이었습니다.
학자들의 추정은 여리고 동편 지역과 에논 지역이 세례 요한의 세례 터였으며 집회 장소로 생각을 합니다. 특히,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을 방문했던 1장의 사건은 여리고 동편 지역으로 예루살렘에까지 세례 요한의 사역 이야기 들려 왔음으로 이에 대한 산헤드린 공의회의 조사가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1장 28절의 ‘요단 강 건터편 베다니’란 여리고 동편 베레아 지역에 있는 한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옥스퍼드 원어 성경 대전, WBC 주석,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카리스 주석, NIV 적용 주석, 엑스포지터스 주석에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정리하면서 다만 예루살렘 옆 베다니와 구별하기 위하여 ‘요단 동편’ 베다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본다).
1장의 시간적 기준이 되는 19–28절의 사건을 여리고 동편의 베레아 지역으로 본다고 한다면, 이후의 사건은 바로 이 일 이후에 있어 집니다.
첫 번째는 이튿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찾아온 사건입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사건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조사관들 사건 뒤 이틀이 지난 뒤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나서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건입니다.
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이 두 제자는 안드레와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세례 요한의 제자로 세례 요한의 세례 사역 가운데 함께 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 조사관들의 사건 이후에 4일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가운데 이동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시간의 흐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이틀이 더 지나고 갈릴리로 가시려고 하십니다.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베드로를 제자로 삼은 이후에 이틀이 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에서야 갈릴리로 가려고 계획을 하십니니다. 그런데 그 날 빌립을 만나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45절에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습니다.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성경은 이 모든 일(1:43-51)이 빌립을 제자로 삼은 그 날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흘째 되던 날에 가나에 있음이 2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가나에 언제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고 사흘째 되던 날에 가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2장 1절의 ‘사흘째 되던 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첫째는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은 다음에 가나에 도착하는데 사흘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앞서의 세 번의 이튿날(3일)과 4일이 추가되어 신창조의 일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흘’을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100주년 성서주석, p.106-107).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이러한 날짜와 관련해서 한 번도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이 없습니다. 즉, 모든 날에 대해서 요한복음은 비교적 정확한 시간 계산을 통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으로 비추어 볼 때 첫째 해석과 같이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고 사흘이 흐른 뒤의 이야기가 2장의 가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2장의 12절의 ‘그 후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다, 13절의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르셨던 것, 23절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셨다고 하는 모든 시간의 기록이 정확히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2장1절 만을 상징 혹은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1장 43-51절의 사건으로부터 2장의 사건은 ‘사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고, 1장 43-51절의 사건은 안드레와 베드로를 제자로 삼은 그 이튿날의 사건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요한복음 1장을 해석한다면 위의 아트라스 지도와 같이 예수님은 여리고 동편에서 에논에 이르는 요단강의 어떤 지역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제자로 삼았을 것이고, 그들과 함께 가나 혼인잔치에 참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하마알 성경학교는 시간의 경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리고 동편이 아닌 에논 부근에서 제자들을 삼았던 것으로 유추하여 설명합니다).
비록 나다나엘의 고향이 가나라 할지라도 1장43-51절의 사건을 가나에서 있었던 것으로 볼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자들을 삼는 부분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다릅니다. 이것은 제자들 문제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 자체에 있어서 공관복음은 세례를 받고 갈릴리 사역을 하시고 유월절에 한 번 예루살렘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두 번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르시고, 세 번째에 오르시지 않고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네 번째 해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의 기록을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3년으로 잡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공관복음은 세례후 갈릴리에서 12 제자들을 삼는 것 역시 빠른 시간안에 되어진 것처럼 기록되어 있고, 갈릴리 사역 후 곧 예루살렘에 오르십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처음 공생애 1년 예루살렘에서 8개월동안 사역하는 기간에 다섯 제자(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요한)를 삼았고(학자들은 요한이 요한복음 3장의 기록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기록하기 힘들다고 하는 견해를 따라서 요한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가정한다), 공생애 2년차에 12제자를 확정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부분과 특히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사건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책들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카리스 주석 참조). 굳이 여기서 이 부분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나다나엘이 가나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나다나엘이 비록 가나 사람이지만 가나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근거를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비록 제자들 삼은 이야기를 공관복음의 주장을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공관복음의 경우 가나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나를 방문한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가나 지역은 요직 요한복음 2장과 4장에서만 언급이 되고, 21장에서 나다나엘을 소개하면서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라고 할 때 한 번 사용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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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마알 성경학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여리고 동편, 즉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유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갈릴리로 올라가시는 길에 에논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인 안드레, 베드로와 빌립, 나다나엘, 요한을 제자로 삼고 가나로 가셔서 가나안 혼인잔치에 참여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