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대 · 숙종]
생애 · 1661~1720
재위기간 · 1674~1720
휘 · 이순
묘호 · 숙종
출생과 즉위 · 조선 18대 왕 현종의 첫째 아들로 14세의 왕위에 오른다.
가족관계 · 왕비 : 3명, 후궁 : 6명, 자녀 : 6남 2녀
숙종은 조선 제 19대 왕으로 현종의 적장자였다. 그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를 하였다. 그만큼 엄청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종은 붕당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다. 그 도구로 선택한 방식이 바로 환국이다. 환국은 왕이 신하들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는 걸 말한다. 첫 번째 환국은 경신환국이었다. 남인의 당대표였던 허적이란 사람은 남인들을 모아 연회를 하였다. 그런데 그날 비가 내렸다. 숙종은 야외에서 쓰는 천막을 신하에게 가져다주라고 한다. 천막은 원래 왕실의 행사에서만 사용하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허적이 왕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이미 천막을 가져간 것이었다. 숙종의 매우 화가나 남인들을 처벌하고 서인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다. 권력을 잃은 남인은 계략을 세운다. 숙종은 왕비인 인현왕후와의 사이에서 7년 동안 자식이 없었다. 그 사이에 숙종의 총애를 받은 자가 바로 장희빈이었다. 실록에서도 장희빈은 “자못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희빈은 명문 통역관 집안의 딸이었다. 즉 모든 것을 갖춘 여자였다. 그렇다면 왜 장희빈은 궁에 들어갔는가? 당시 장희빈 집안은 남인과 손을 잡고 있었다. 남인은 숙종에게 장희빈을 소개했다. 장희빈은 숙종의 총애를 받고, 서인 측은 장희빈을 쫓아내라는 상소까지 올리는 상황이었다. 숙종의 정비인 인현왕후 또한 장희빈을 시기했다. 하지만 장희빈은 심지어 숙종의 아들까지 낳는다. 숙종은 이 아들을 자신의 원자로 책봉하겠다고 한다. 원자는 원래 왕비가 낳은 장남에게만 내릴 수 있는 칭호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당시 여당인 서인은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그러나 숙종은 꿋꿋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면서 원자 책봉에 반대했던 서인들을 가차 없이 처벌한다. 이를 기사환국이라고 한다. 또한 왕비 인현왕후는 폐위되고 장희빈이 왕비가 된다. 그러나 숙종은 궁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천한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를 사랑하게 된다. 숙빈은 숙종 19년 10월에 왕자를 낳고 그 이듬해 9월에 또다시 왕자를 낳았다. 결국 장희빈은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다시 서인이 집권하게 된다. 당연히 인현왕후도 왕비가 돼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를 갑술환국이라고 한다. 남인은 이 과정에서 권력을 잃고 아예 사라지게 된다. 후궁이 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한다. 그런데 그 과정동안 인현왕후가 병을 앓다가 죽는다. 분노한 숙종은 장희빈에게 자진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장희빈은 사약을 마시고 사망한다.